전광진 교수가 드라마로 엮은 우리말 속뜻 논어
전광진(65) 성균관대 명예교수, 정년퇴임 기념문집 대신 답례품으로 쓸 논어와 금강경을 국역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엮은 ‘우리말 속뜻 논어’와 ‘우리말 속뜻 금강경’(속뜻사전교육출판사)이 각각 인문분야와 종교분야의 베스트셀러 권에 진입할 정도로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동양 고전의 압권이자 이 시대 최고 교양서인 ‘논어’를 드라마 보듯이 하룻밤 새 다 읽을 수 있도록 엮은 뒷이야기를 들어 본다.
논어를 드라마처럼 엮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논어를 탐독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우리말로 쉽고 재미있게 옮겨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년 전입니다. 한 자, 한 줄의 속뜻을 깊이 있게 파헤치며 전후 맥락을 생각해 보다가 문득 ‘아! 드라마의 대본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희곡 작품 가운데 무대 지시문(direction)이 가장 많은 헨리크 입쎈의 ‘인형의 집’과 ‘유령’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대본의 3대 요소를 생각해가며 지시문을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 맨 앞에 등장인물, 즉 주연 공자, 조연 1 제자, 조연 2 정적들, 조연 3 임금들에 대한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지시문은 원문에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괄호 안에다 넣고 분간하기 쉽도록 빨간색으로 써놓았습니다.
이를테면 ‘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을지를 걱정하라(不患無位, 患所以立)’라는 공자님 말씀 앞에 ‘(온통 취업 걱정만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는 배경 설명 지시문을 넣었습니다(이인편 04-14). 이렇게 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취업 걱정은 2,5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임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또 현대인이 관심사를 대입시켜 논어를 실감나게 읽을 수 있게 해주었지요.”
그런 사례가 있나요?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논어’로 검색해보면 2,251 종의 책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드라마 관점에서 엮은 것은 우리 책밖에 없습니다. 창의성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관점을 달리하면 다른 점이 보입니다. 주자(朱子)가 쓴 책인 ≪학규류편≫(學規類編)에 “濯去舊見, 以來新意(탁거구견 이래신의)”이란 말이 나옵니다. “낡은 생각을 버려야, 새로운 뜻이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관점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논어 국역 400년 역사상 첫 시도라는 말이 그런 의미군요?
“‘전후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드라마 대본처럼 엮었다.’는 점 외에도 세 가지가 더 있습니다. ‘처음 입문하려는 분을 위하여 가급적 쉬운 우리말로 옮겼다.’ ‘국역한 논어만 읽어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 깊이 알고 싶은 분을 위하여 원문을 찾기 쉽게 배치하였다.’ 이상 세 가지도 초유의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 맨 앞에 있는 ‘일러두기’에서 소상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논어 국역은 조선 선조 21년(1588)년에 나온 ‘논어언해’(論語諺解)에서 비롯되니 줄잡아도 400년의 역사를 지닙니다. 역사상 처음 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배려가 이 책 곳곳에 스며있습니다.”
논어를 하룻밤 새 읽을 수 있다니 솔깃합니다.
“논어라고 하면 먼저 어려운 ‘한문’을 연상하는데 이제부터는 그런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논어를 ‘우리말’로 먼저 읽을 수 있도록 왼쪽 페이지에 배치하였습니다. 그것만 죽죽 읽어 내려가다가 보면 논어 전체가 손에 잡히게 될 것입니다. 원문을 꼭 확인해 보고 싶으면 오른쪽 페이지를 찾아보면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논어라고 해도 쉬운 ‘우리말’을 먼저 연상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이 책으로 인하여 새롭게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책을 백번 읽다보면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讀書百遍, 其義自見(독서백편, 기의자현)을 누구나 체감하게 될 것입니다. 한글 깨친 초등학생부터, 중고생, 대학생 까지 논어 입문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각종 배려와 장치를 다 해 놓았으니까요.
한문에 앞서 우리말로 읽어라! 어떻게 발상을?
“대학에서 ‘중국 명언과 한자의 이해’(K-Mook에 공개되어 있음)라는 과목을 강의할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은 쌍으로 이르지 아니하고, 화는 혼자서 다니지 아니한다.’는 우리말을 먼저 제시한 다음 “福無雙至, 禍不單行”(복무쌍지, 화불단행)이라는 원문을 설명해주면 더 쉽게 더 빨리 이해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논어에 적용시켜 보았던 것일 뿐입니다.
논어를 끝까지 읽을 사람이 거의 없다던데 양상이 달라지겠네요.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각종 논어 해설서가 2,000종이 넘습니다. 대부분 원문을 번역한 다음 각종 해설을 많이 덧붙여 놓았기 때문에 볼륨이 커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고는 다 읽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책에서는 인물, 사건, 배경에 관한 약간의 팁을 제외하고 일체의 추가 해설은 일부러 배제하였습니다. 논어 전체를 줄줄 읽어가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독자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다정이 병’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논어를 ‘1번 읽으면 지식인이 되고, 10번 읽으면 지성인이 되고, 100번 읽으면 지도자가 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책으로 인하여 지성인과 지도자가 속속 출현하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빨간 논어라는 별명이 있다구요?
“표지가 빨강색이고, 각 편 앞에 빨강색 간지를 넣어 놓았고, 본문도 빨강색과 검정색 2도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생기게 되었나 봅니다. 국내 최고의 북디자이너 덕분에 구태의연하지 않고 모던하고 스마트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논어가 약 2,500년 전 사람들의 이야기 이지만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느끼도록 내용은 물론 외관도 현대적 감각이 들도록 하였습니다.”
새빨간 거짓말도 있다면서요?
“하! 하! 그렇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 놓았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무대 지시문에 해당하는 내용은 원문에 없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괄호 안에다 빨간 글씨로 써놓았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거짓말(lie)이 아니라 허구(fiction)인 셈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습관이 들도록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하고, 사람은 생각이 깊어야 합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 갑니다. 우리 논어 독자들은 반드시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논어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팁을 주세요.
“공자님 당시에도 강의 때 쉽게 설명하려고 무척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2분법, 대비법을 자주 썼던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이렇고, 반대로 소인은 이렇다는 설명이 총 23번이나 나옵니다. 예를 들면 위령공편(20-15)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군자는 [해결책을] 자기에게서 찾고(君子求諸己),
소인은 [해결책을] 남들에게서 찾는다(小人求諸人).”
이것을 읽으실 때 군자는 ‘고수’로, 소인은 ‘하수’로 바꾸어서 이해하면 대단히 쉽고 재미있습니다. 즉 ‘가슴으로 읽는 독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해결책을 자기에서 찾으면 고수이고, 남에게서 찾으면 하수이다.’라고 말이지요. 직역(直譯), 의역(意譯), 윤역(潤譯), 창역(創譯)이란 4차 번역을 통하여 쉬운 우리말로 옮기려고 무척 애를 쓴 결과이긴 하나 읽을 때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슴으로 읽는 독서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윤역과 창역은 무슨 말이죠?
“번역된 문장은 우리말로서 독립성과 생명력을 지녀야한다는 것이 제가 대학 강단에서 강조한 지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1차 직역(直譯) 작업, 우리말 어법과 구조에 맞도록 조정하는 2차 의역(意譯) 단계에 그치지 않고, 우리말 표현의 관습에 맞도록 윤문(潤文)하는 3차 윤역(潤譯) 단계, 원문에 숨겨진 내용을 속속들이 찾아내고 가감(加減)하여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4차 창역(創譯)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우리말다운 우리말로 바뀌게 됩니다. ‘4차 번역론’을 개발하여 논어와 금강경에 접목시킨 결과물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두렵습니다. 새롭게 엮고[新編] 새롭게 옮긴[新譯] 열매를, 과연 독자들이 좋아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전 교수의 4차 번역론은 동양 고전뿐만 아니라 서양 고전에도 적용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다면 수많은 동서 고전이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연찬 활동이 침체된 우리 인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 같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하고, 사람은 생각이 깊어야 한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는 그의 말은 씹을수록 구수해지는 누룽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말 속뜻 논어’가 우리 생각의 깊이와 높이 그리고 넓이를 더해줄 것이라 믿으며 대담을 마친다.
[출처] 우리말 속뜻 논어 전광진 교수 인터뷰|작성자 속뜻사전교육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