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결 같은 인생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자장암 감원) 승인 2021.07.30 15:39 댓글 1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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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를 보면 조신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의 승려 조신은 고을의 유력자 김흔의 딸을 사모하여 관음보살께 그녀와 혼인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으나 그녀에게 배필이 정해지자 법당에 관음보살을 원망하며 선잠이 든다. 조신이 원하던 세속적 욕망이 이루어지고 남녀 간의 정욕을 통해 자식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사는 듯 하였으나 지독한 궁핍과 가난에 자식을 잃고 김흔의 딸과도 헤어지는 대목에서 꿈을 깨고 만다. 김흔의 딸을 사모하여 맺어진 세속에서의 삶은 매우 힘들고 비참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꿈 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조신은 세속적 욕망은 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욕망에서 벗어난 삶을 꿈꾸며 수행에 힘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꿈결과 같은 인생, 일장춘몽처럼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한바탕 꿈과 같다고들 한다. 선인들의 문집이나 어록을 보면 한결같이 인생에 대하여 ‘꿈결과 같다’는 기록을 남긴다. 선종불교인 조계종 소의경전 ‘금강경’에도 이러한 구절이 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일체 제법의 고함과 무상을 꿈(夢), 허깨비(幻), 물거품(泡), 그림자(影), 이슬(露), 번개(電) 등 여섯 가지 비유를 든 것이다. 일생을 좌복에서 정진하면서 수행에만 몰두하시던 큰스님네의 법문(法門)에도 일체 제법이 꿈과 같이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 모든 번뇌와 집착과 분별심을 버리라는 요지의 가르침을 주신다.
노장철학에서 장자의 꿈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꾸었는데 자신의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니며 너무도 기분이 좋아진 장자는 자신이 본인인지 나비인지도 잃어버린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나비가 아니라 장자 자신이었지 않은가? 장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나는 정말 장자 본인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나는 나고 나비는 나비인데 어찌된 일인가?’.
나 역시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시뮬레이션이 된 가상의 현실인지, 그 메커니즘을 모를 때가 있다.
미리 짜놓은 현실, 치밀하게 계산된 현실을 ‘가상현실(假想現實)’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 손에 닿지 않는 제도, 어떠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가상의 세계가 아닌지? 요즘 미래기술로 각광받는 디지털 가상현실(VR) 기술은 경험을 체험으로 대체하려는 오랜 시도의 결정만은 아닌가 싶다.
두 눈에 장치 하나만 걸치면 3차원으로 재현된 세계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급격하게 빠르고 정교하며 계산된 시각으로, 가상현실(假想現實)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시야에서 펼쳐보여 준다. 꿈인 듯 꿈이 아니고, 꿈이 아닌 듯 꿈만 같은 세상살이가 되어 간다.
‘장자’란 책도 90% 이상이 우화이다. 우화는 현실의 스토리를 꾸며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의 말로 시뮬레이션 처리된 가상의 현실이다.
장자의 꿈 이야기는 영화 매트릭스(matrix)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결국 오늘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가상의 세계인가? 아니 가상의 현실이다.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하겠지만 미국의 투자사 메릴린치의 최근 보고서 내용이라면 믿음을 가지게 될지 모르겠다.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얼마 전 메릴린치 투자자들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하여 ‘매트릭스가 실제 현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얼마 전에 보도했다. 또 이 보고서에는 “우리가 ‘진짜’로 경험하는 세계가 실제로는 우리의 후손인 미래세대가 만든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매릴린치는 스웨덴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2003년 논문과 테슬러모터스의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 천문학자 닐 더그래스 타이슨의 발언 등을 근거로 “우리가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을 확률이 20~50%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여러 번 자신에게 묻는다. 꿈결과 같은 인생(人生)이구나 하고 되뇌어 보게 된다.
밤 늦도록 친한 이들과 술을 마시며 즐겁게 보내었는데 다음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면 어제와 다른 통곡하는 일이 생겼다. 간밤에 꿈속에서 괴로워 슬퍼하며 통곡을 하였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꿈이었다. 꿈속에서도 슬퍼하고 기뻐하고 걱정하고 아침이 되어보니 꿈이었더라.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가 꿈이던가? 어제 밤의 꿈만이 꿈이던가?
우리네 인생살이는 다 꿈속에서 깨지 못한 존재이다. 꿈을 꾸며 잠들었을 때에는 꿈인 줄 모르다 깨어보니 꿈이더라. 어리석은 중생은 꿈에서 깨어나 완전히 깨어난 줄 알겠지만, 모두가 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한심한 중생 노릇이다. 대통령 각하, 장·차관, 판·검사 영감, 국회의원 나리, 고위층, 권력을 쫓고 허영심에 들뜬 세인들, 중생 노릇 하는 너나 없는 모든 이들, 꿈속에 살면서도 꿈인 줄 모르는 것이다.
세상은 가상공간, 인공공간 이라는 사이버 세상이 되어 ‘클릭’ 한 번이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먹고 마시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원하는 것에 대한 정보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홈쇼핑, 홈뱅킹, 재택수업, 재택근무, 안방극장, 노래방, 오락실이 각 가정에서 해결할 수 있다.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안방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니 꿈의 세계가 현실이 되고 사이버 세계는 더욱 진화하여 안방의 컴퓨터에서 휴대용 소형 PC또는 휴대폰을 통하여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실재는 없고 광속만 흐르는 오늘의 세계는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당 100만 회의 ‘메가’에서 초당 10억 회로 확장된 컴퓨터의 연산처리 능력은 이제 초당 1000억 회의 ‘테라’의 시대로 진화되고 있다.
이제 더, 끝없이, 계속,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다. 도대체 이 사이버 세계는 어떤 세상인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사이버’란 용어 자체는 인공(人工)과 가상(假想)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사이버 세상에서의 진실된 나는 누구인가?
불교 진리의 핵심요체인 반야심경(般若心經)에 그 정답이 있다. 오온개공(五蘊皆空), 제법공상(諸法空想),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본래 인간의 몸과 마음이 실재하지 않으며 이 세상 제법 또한 비워 있으며, 물질이 곧 비워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불변의 실체인 양 믿고 있는 우리 인간은 파도와 물거품 같은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想),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수시로 변하며 변하는 것은 겉모습일 뿐 실재가 아니다. 오감(五感)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현상세계 또는 사이버 세계를 통하여 보고 느끼는 가상세계나 다를 것이 없다. 사이버 세계뿐 아니라 모든 세상만사와 물질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물(H2O)을 얼리면 고체요, 녹으면 액체가 되고, 증발하면 기체가 되듯 인간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 또한 그림자처럼 실체가 아닌 허상이고 가상이며 비워 있으므로 시공(時空)도 그와 같은 것이다.
이 세계는 무시무공(無時無空)이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며, 불변불천(不變不遷)이다. 시간도 공간도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으며 변하는 것도 옮기는 것도 없으며 현실이든 사이버세계든 결국은 무아(無我)일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허무하고 덧없는 노릇에 올인하는 중생의 삶은 ‘여몽환포영’이다. 꿈결과 같은 인생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