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신
上帝는 고대 중국에서 하늘의 신으로서 최고신이다. 상제에 비하면 토지신은 미미하다. 물론 농경신으로서, 봄철에 농사를 시작할 때 토지신에게 의례를 올렸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서는 토지신보다 황허의 역할이 더 크다. 황허의 신 하백에게 제사를 지내므로 농경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토지신은 社에서 모셨다. 토지신을 모시는 社는 흙을 조금 높이 쌓아 臺를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국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로 모신 나무는 소나무, 회나무, 잣나무, 밤나무, 가래나무가 대표적이다. 社의 주변은 숲이다.(뽕나무도 그 중의 하나이다.)
토지신은 본래 영토신이기도 하였다.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 큰 고을에서는 성황당에 토지신을 모시고 고을의 수장이 직접 제사를 집전했다. 이때는 고을을 지켜주십사 하는 영토신의 개념이 강했다. 영토는 곧 땅이고, 토지이니,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을 위한 기원을 하면서 풍년도 기원했다.
고대 중국에서 풍년을 바라는 의례에는 황허에 제사를 지낸 기록이 더 많다. 황허의 신은 하백이다. 일반적으로 토지신은 잔인한 면모가 있어서 제사의례에 땅에 피를 뿌리는 것도 있다. 황허의 신인 하백도 잔인한 면모가 있어서 산 사람을 제물료 요구했다.(서문교 이야기에 나온다) 그런 면에서 토지신은 고대 중국의 평민에게는 가장 가까운 신이었다.
토지신은 평민들에게는 아주 가까운 신이다. 도교에 들어와서 평민들의 곁에서 민속신이 되었다. 지금 중국에서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토지신 신앙은 성황당이 되어서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성황당은 거의 고을마다 있다. 고을 원님이 제주가 되어서 제를 지낸다.
그러나 우리의 토속신앙인 서낭당과는 성격이 다르다. 서낭당에서는 관이 아니고 마을 사람이 제사를 올린다.
첫댓글 사직과 성황당에 대해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