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곤드레나물밥
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그러께, 우리 논 코앞에다 새 건물을 짓더니 통째로 음식점을 개업했다. 이름이 ‘곤드레에 반하다’이다. 주인은 얼마나 곤드레나물밥이 맛있으면 그렇게 지었을까? 코로나19로 곤드레에 반한 손님들은 덜할 것이다. 논에 갈 때면 곤드레나물밥을 한 번 먹어본다면서도 마음뿐이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 첫날이었다. 강원도 홍천에 사는 제자 유아柔雅에게서생물을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한참 뒤에 ‘생물, 취급주의’라는 경고를 매단 택배가 뒤따라 왔다. 생물이니까 싱싱한 생선이 아닐까? 다칠까 봐 조심스레 열었다. 산나물인 곰취였다. 아내도 곰취라며 기뻐했다. 산에 가서 뜯은 큰 취를 닮아 삼겹살이 떠올랐다. 불판에 삼겹살을 노릇노릇 구워서 곰취 잎에다 된장과 마늘이랑 싸서 먹을 걸 생각하니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사람은 서로 오가는 정이 있어야 살맛이 난다. 나는 유아에게 잘 해준 걸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유아는 시골 어린 시절, 6학년 때 선생님한테 받은 은혜는 도저히 잊을 수 없다며 나에게 정을 베풀고 있다. 내 이모작 인생을 살맛나게 하고 있어 자랑스럽다.
곧바로 유아에게 전화를 했다. 싱싱한 곰취를 보내주어 …, 깔깔 웃으며 ‘곤드레’라고 했다. 그저 고맙다고만 말할 일이지, 아는 체하다 무식이 탄로 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손수 재배한 나물이라 선생님 생각이 나 조금 나누어 보낸 거라고 했다. 삶아서 무쳐먹거나 곤드레밥을 지어 먹으면 좋다고 했다. 내년에는 곰취도 재배해야겠다고 했다. 곤드레는 청청지역인 산골에서 자란 거라 잎과 줄기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뿌리는 땅속의 물과 양분을 먹었을 것이다. 또 유아부부가 땀 흘려 베푼 사랑도 독차지 했을 것이다. 잎이 크며 부드럽고 윤기가 넘친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여름, 강원도에서 전국장로대회가 열릴 때였다. 둘째 날은 정선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가 곤드레나물밥과 산채비빔밥이었다. 나는 곤드레나물밥을 택했다. 향이 깊고 밥맛도 괜찮았다. 산채비빔밥은 밥에 여러 종류의 산채 나물을 얹어 양념고추장에 비벼 먹는다. 그런데 곤드레나물밥은 재료가 곤드레 뿐이고, 쌀과 함께 안쳐 짓는 게 다르다.
옛날 강원도 정선 화전민들은 춘궁기에 쌀보리를 대신해 곤드레로 끼니를 이어갔다고 했다. 정선아리랑 가사에도 ‘곤드레나물밥’이 나올 정도였다. 곤드레는 탄수화물, 섬유질, 무기질, 비타민 등의 함유량이 많고 생리활성 물질도 포함하고 있어 건강 유지에 필요한 식품이었을 것이다. 동의보감에도 곤드레는 출혈을 멎게 하고 어혈瘀血을 없애는 한약재 성분이 많다고 하였으니, 오늘날 사람들도 곤드레에 반할만한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인터넷에서 곤드레와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곤드레를 뜨거운 물에 1분이 넘게 데쳤다. 몇 번을 나누어 데쳤다. 생 곤드레나물밥을 지으려고 데친 곤드레 일부를 찬물에 30 분쯤 넣어 쓴 맛을 뽑아냈다. 나머지는 햇볕에 말려두고 곤드레나물밥을 지어 먹는다고 했다.
저녁밥상은 곤드레나물밥이었다. 반찬으로 찰떡궁합인 양념장을 데리고 나왔다. 양념장은 간장에다 송송 썬 쪽파와 대파, 잘게 썬 부추, 다진 마늘, 볶은 참깨를 넣어 만들었다. 달래도 같이 했더라면 맛을 더 돋우었을 텐데. 아내는 곤드레 ㄱ자도 모르는 데 밥 짓기는 더 그랬다. 그래도 조리에 눈썰미가 있어 여러 단계를 따라 밥을 지었다. 고슬고슬한 밥과 곤드레가 골고루 섞어졌다. 마치 가루 김밥처럼 하얀 밥에 크고 작은 곤드레 점을 찍어 놓은 것 같아 먹음직스러웠다.
곤드레나물밥에 양념장을 쳐서 한 숟갈 입에 넣었다. 향긋한 냄새가 입안에 가득 찼다. 강원도의 봄이 내 몸에 스며들었다. 밥을 한 숟갈씩 떠 넣으면 네댓 번 씹기도 전에 넘어가 버렸다. 사람들은 게장간장을 비롯해 각자 식품 기호에 따라 밥도둑을 자랑한다. 그러나 곤드레가 제일 큰 밥도둑임에 틀림없다. 아내는 곤드레나물밥을 좋아해 한 주간 저녁식단으로 짤 것 같은 눈치였다. 싫지는 않았다.
곤드레는 몸이 새까맣게 될 때까지 햇볕에 몇 날을 뒤척거려도 참았다. 어버이날 앞두고 순창 처가에 가기로 했다. 말린 곤드레를 조금 가지고 가자고 했다. 장모님은 곤드레나물밥을 별미로 좋아하실 테니까. 아내가 시큰둥해 안타까웠다. 같은 말을 또 했다. 용돈을 드리니까 괜찮다는 게다. 처가에 가는 날, 한 번 더 부탁했다. 우리 먹기도 작다며 다른 걸 가지고 가자고 했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듯 곤드레 맛도 그럴 텐데. 아내는 그 걸 모를 리가 없다. 곤드레나물밥을 친정어머니 보다 더 좋아한 딸이라는 내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마 곤드레 맛에 반해서일 게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각박하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려 만남조차 단절시키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속마음에는 서로 주고받는 정만은 무너지지 않고 돈독해 지는 사회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사람은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는 데서 정이 깊어진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돕고 살았다. 요즈음은 IT시대라 거리관계 없이 주고받는 인연공동체로 산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속담의 속뜻을 곱씹어 서로 나누고 어우러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곤드레를 보내준 유아의 정성과 사랑이 이른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유아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야겠다. 아내가 지을 곤드레나물밥이 기다려진다.
(2021.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