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과협(平地過峽)
평평하게 낮았다가 갑자기 되솟아 오른 지세를 이르는 말이다. 과협은 높은 데로부터 차츰 낮아져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일어선 곳을 말한다.
平 : 평평할 평(干/2)
地 : 땅 지(土/3)
過 : 지날 과(辶/8)
峽 : 골짜기 협(山/7)
송순(宋純)이 담양 제월봉 아래 면앙정을 짓고 '면앙정가'를 남겼다. 첫 부분은 언제 읽어도 흥취가 거나하다. 마치 천지창조의 광경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무등산 한 활기 뫼히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쳐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무변대야(無邊大野)에 무슨 짐작 하느라, 일곱 굽이 한데 움쳐 무득무득 벌였는 듯. 가운데 굽이는 굼긔 든 늙은 용이 선잠을 갓 깨어 머리를 앉혔으니, 너럭바위 위에 송죽을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 탄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벌였는 듯."
면앙정이 차지하고 앉은 지세를 노래했다. 우뚝 솟은 무등산이 한 줄기를 쭉 내뻗어 한참을 가다가, 넓은 들판 앞에서 심심했던지 지맥을 불끈 일으켜 일곱 굽이의 제월봉을 만들었다.
그중에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숨어 잠자던 용이 이제 그만 깨볼까 하고 고개를 슬며시 들었는데, 그 머리 위 너럭바위를 타고 앉은 정자가 바로 면앙정이란 말씀이다.
그런데 그 형세가 마치 장차 천리를 날려는 청학이 두 날개를 쭉 뻗은 형국이라고 했다. 장쾌하고 시원스럽다.
풍수가의 용어에 과협(過峽)이란 말이 있다. 과협은 높은 데로부터 차츰 낮아져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일어선 곳이다.
지관들은 말한다. 산세가 너무 가파르면 그 아래에 좋은 자리가 없다.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지다 평평해진 곳이라야 좋다. 과협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평평하게 낮아졌다가 갑자기 되솟아 오른 평지과협(平地過峽)이다. 면앙정의 지세가 꼭 이렇다.
불쑥 솟아 뚝 끊어진 곳은 근사해도 이어질 복이 없다. 기복 없이 곧장 쭉 뻗어 내리면 시원스럽기는 하나 생룡(生龍) 아닌 죽은 뱀이다.
어찌 지세만 그렇겠는가? 사람의 인생도 다를 것이 없다. 죽을 때까지 안일과 즐거움 속에서만 살고, 환난과 수고를 멀리하는 삶은 쭉 뻗은 죽은 뱀이다. 한때 우뚝 솟아 만장의 기염을 토하다 제풀에 꺾여 나자빠지는 것은 불쑥 솟았다가 뚝 끊어진 혈이다.
너무 험하기만 해도 안 되고, 내처 순탄해도 못쓴다. 그래도 종내는 평평해진다. 사람이 윗자리로 올라가는 일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어쩌면 이런 굴곡의 반복에서 힘을 얻어야 가능하다.
단박에 이룬 로또는 절대로 오래 못 간다. 어쩌다 운이 좋아 성취한 허장성세는 잠깐 만에 무너져 버린다.
▶️ 平(평평할 평, 다스릴 편)은 ❶상형문자로 물 위에 뜬 물풀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수면이 고르고 평평(平平)하다는 뜻이다. ❷지사문자로 平자는 ‘평평하다’나 ‘고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平자는 干(방패 간)자와 八(여덟 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平자는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또 사물의 모습을 본뜬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平자는 악기 소리의 울림이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뜻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平자는 소리가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의미에서 고르거나 평평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후에 ‘안정되다’나 ‘화목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平(평, 편)은 (1)일정한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평범(平凡)한, 평평(平平)한의 뜻을 나타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평평하다, 바닥이 고르고 판판하다 ②고르다, 고르게 하다 ③정리되다, 가지런하게 되다 ④편안하다, 무사하다 ⑤평정하다 ⑥정하다, 제정하다 ⑦이루어지다 ⑧바르다 ⑨갖추어지다 ⑩사사로움이 없다 ⑪화목하다, 화친하다 ⑫쉽다, 손쉽다 ⑬표준(標準) ⑭들판, 평원(平原) ⑮산제(山祭: 산에 지내는 제사) ⑯보통(普通) 때, 평상시(平常時) ⑰보통, 보통의 수준 ⑱평성(平聲), 사성(四聲)의 하나 그리고 ⓐ다스리다, 관리하다(편) ⓑ나누다, 골고루 다스려지다(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평탄할 탄(坦), 편안할 녕(寧), 편안 강(康), 클 태(泰)이다. 용례로는 어떤 가정 밑에서 많은 수나 같은 종류의 양의 중간의 값을 갖는 수를 평균(平均), 평온하고 화목함을 평화(平和), 평상시를 평소(平素), 뛰어난 점이 없이 보통임을 평범(平凡), 평상시의 소식을 평신(平信), 차별이 없이 동등한 등급을 평등(平等),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지표면이 평평한 넓은 들을 평야(平野), 무사히 잘 있음을 평안(平安), 벼슬이 없는 일반민을 평민(平民), 평평한 표면을 평면(平面), 평탄한 들판 평야를 평원(平原), 난리를 평온하게 진정시킴을 평정(平定), 까다롭지 않고 쉬움을 평이(平易), 어느 한 쪽에 기울이지 않고 공정함을 공평(公平), 마음에 들거나 차지 않아 못마땅히 여김을 불평(不平), 균형이 잡혀 있는 일을 형평(衡平), 대지의 평면을 지평(地平),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을 화평(和平), 넓고 평평함을 편평(扁平),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평롱망촉(平隴望蜀),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마음을 평이담백(平易淡白), 엎드려 땅에 머리를 댄다는 뜻으로 공경하여 두려워하는 모습을 평신저두(平身低頭), 고요한 땅에 바람과 물결을 일으킨다는 평지풍파(平地風波), 마음을 평온하고 순화롭게 함을 평심서기(平心舒氣) 등에 쓰인다.
▶️ 地(땅 지)는 ❶회의문자로 埅(지), 埊(지), 墬(지), 嶳(지)가 고자(古字)이다. 온누리(也; 큰 뱀의 형상)에 잇달아 흙(土)이 깔려 있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땅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地자는 ‘땅’이나 ‘대지’, ‘장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地자는 土(흙 토)자와 也(어조사 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也자는 주전자를 그린 것이다. 地자는 이렇게 물을 담는 주전자를 그린 也자에 土자를 결합한 것으로 흙과 물이 있는 ‘땅’을 표현하고 있다. 地자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뱀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지(土)와 뱀(也)’을 함께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地(지)는 (1)일부 명사(名詞)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곳임을 나타내는 말 (2)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 옷의 감을 나타냄 (3)사대종(四大種)의 하나 견고를 성(性)으로 하고, 능지(能持)를 용(用)으로 함 등의 뜻으로 ①땅, 대지(大地) ②곳, 장소(場所) ③노정(路程: 목적지까지의 거리) ④논밭 ⑤뭍, 육지(陸地) ⑥영토(領土), 국토(國土) ⑦토지(土地)의 신(神) ⑧처지(處地), 처해 있는 형편 ⑨바탕, 본래(本來)의 성질(性質) ⑩신분(身分), 자리, 문벌(門閥), 지위(地位) ⑪분별(分別), 구별(區別) ⑫다만, 뿐 ⑬살다, 거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곤(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천(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땅의 구역을 지역(地域), 어느 방면의 땅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地方), 사람이 살고 있는 땅 덩어리를 지구(地球), 땅의 경계 또는 어떠한 처지나 형편을 지경(地境),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지위(地位), 마을이나 산천이나 지역 따위의 이름을 지명(地名),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각 변동 현상을 지진(地震),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땅의 표면을 지반(地盤), 집터로 집을 지을 땅을 택지(宅地), 건축물이나 도로에 쓰이는 땅을 부지(敷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남은 땅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여지(餘地), 토지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매겨 놓은 땅의 번호를 번지(番地), 하늘과 땅을 천지(天地), 주택이나 공장 등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을 단지(團地), 어떤 일이 벌어진 바로 그 곳을 현지(現地),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자기 집을 멀리 떠나 있는 곳을 객지(客地),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역지사지(易地思之),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천방지방(天方地方),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감격무지(感激無地) 등에 쓰인다.
▶️ 過(지날 과, 재앙 화)는 ❶형성문자로 过(과)는 간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咼(와, 과; 입이 삐뚤어짐)의 뜻이 합(合)하여 바른 길을 지나쳤다는 데서 지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過자는 ‘지나다’나 ‘경과하다’, ‘지나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過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咼(가를 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咼자는 ‘뼈’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過자는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가 지나갔음을 뜻하기 때문에 길을 걷는 모습을 그린 辶자가 ‘지나가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過자는 ‘초과하다’나 ‘넘치다’와 같이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 확대되어 있다. 그래서 過(과)는 지나치는 일, 통과하다, 도를 넘치다, 과오(過誤) 따위의 뜻으로 ①지나다 ②지나는 길에 들르다 ③경과하다 ④왕래하다, 교제하다 ⑤초과하다 ⑥지나치다 ⑦분수에 넘치다 ⑧넘다 ⑨나무라다 ⑩보다, 돌이켜 보다 ⑪옮기다 ⑫허물 ⑬잘못 ⑭괘(卦)의 이름 ⑮예전 그리고 ⓐ재앙(災殃)(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날 력/역(歷), 지날 경(經), 그릇될 와(訛), 그르칠 오(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 공(功)이다. 용례로는 일이 되어 가는 경로를 과정(過程), 지나간 때를 과거(過去), 예정한 수량이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음을 과잉(過剩), 지나치게 격렬함을 과격(過激),정도에 넘침을 과도(過度),지나치게 뜨거워지는 것을 과열(過熱), 잘못이나 그릇된 짓을 과오(過誤), 지나간 일을 과거사(過去事), 조심을 하지 않거나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과실(過失),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빎을 사과(謝過), 통하여 지나가거나 옴을 통과(通過),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사물의 한도를 넘어섬을 초과(超過), 공로와 과오를 공과(功過), 대강 보아 넘기다 빠뜨림을 간과(看過), 때의 지나감이나 시간이 지나감을 경과(經過), 모르는 체 넘겨 버림을 묵과(默過),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한다는 교왕과직(矯枉過直),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개과천선(改過遷善),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관과지인(觀過知仁), 공로와 허물이 반반이라는 공과상반(功過相半) 등에 쓰인다.
▶️ 峽(골짜기 협)은 형성문자로 峡(협)의 본자(本字), 峡(협)은 통자(通字), 峡(협)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뫼 산(山; 산봉우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끼다의 뜻도 나타내는 夾(협)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峽(협)은 두메, 산에 끼인 곳, 골짜기의 뜻으로 ①골짜기 ②시내 ③땅의 이름 ④띠 모양의 바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골 학(壑), 골 곡(谷)이다. 용례로는 험하고 좁은 골짜기를 협곡(峽谷), 골짜기의 속을 협리(峽裏), 깊은 산골 마을의 풍속을 협속(峽俗), 깊은 산골에 있는 현을 협현(峽縣), 골짜기를 협간(峽間), 두메에서 짓는 농사를 협농(峽農), 산 속으로 통한 좁은 길을 협로(峽路),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개울을 협류(峽流), 골짜기에 오는 비를 협우(峽雨), 도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나 깊은 곳을 협중(峽中), 두메 마을을 협촌(峽村), 육지 깊숙이 들어간 좁고 긴 만을 협만(峽灣), 두메에 사는 농사꾼을 협맹(峽氓), 깊고 험한 산골을 궁협(窮峽), 그윽한 골짜기를 유협(幽峽), 육지 사이에 끼여서 양쪽의 넓은 바다로 통하는 좁고 긴 바다를 해협(海峽), 두메나 산 속의 골짜기를 산협(山峽), 깊은 골짜기를 심협(深峽), 입안과 목구멍을 구협(口峽), 깊숙하고 험한 두메를 절협(絶峽), 커다란 두 육지를 연결한 좁고 잘록한 땅을 지협(地峽), 하천에 양쪽으로부터 육지가 내리 덮여 좁고 길게 된 부분을 하협(河峽)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