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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15] 대승불교 교단의 형성과 발전/ 정병조
불탑지를 중심으로 앞에서 대승불교의 물결이 남인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중북부를 석권하였다. 그러면 이 대승불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교단을 형성하고 있었는지 알아보자. 우선 현존하는 자료 가운데 대승불교의 교단 형성을 밝혀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역대 중국 스님들의 기행문이다. 그 대부분이 구법승이었는데, 그들이 인도를 다녀와서 남긴 여행 기록이다. 그 자료들이 시대에 따라 각기 상이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인도불교 상황을 소상하게 밝혀 주는 기록 이다.
현재 가장 오래된 인도 기행문은 법현의 불국기이다. 지금까지는 법현스님이 해로로 중국에서부터 인도를 다녀온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이 책은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의 인도 불교에 대한 소상한 자료집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로 가장 주목되는 자료는 현장스님이 남긴 대당서역기이다. 이 기록은 법현의 불국기와는 달리, 육로로 출발해 육로로 돌아온 매우 진기한 기록이다. 쓰여진 배경은 7세기 초중반, 640~650년경이다. 그 10여 년간 의 인도의 여러 모습들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또 신라의 고승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매우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그 책 원문의 일부분은 유실되어 전모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비교적 자세하게 9세기 초중반의기록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위의 세 가지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해 4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인도불교의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당서역기가 문헌 및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어 있다. 필자는 인도를 여행하거나 인도에서 살았을 때, 늘 대당서역기와 왕오천축국전을 가지고 다니며 그 내용과 비교해 보곤 하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실제와 얼마나 합치하는지 참으로 놀라웠다. 보드 가야에 관한 설명을 들어보자. 보드가야에 가면 큰 대탑이 서 있다. 그 대탑의 동쪽 문에서 15보정도 걸어가면 부처님이 깨달았다고 하는 보리수가 있다. 그런데 그대 로 걸어가 보면 꼭 15보가 된다. 또 대당서역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또 그 보리수 곁에 무엇이 있고...ㆍ 거기에는 어떤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흙으로 벌써 반 정도가 묻혀 있다. 옛 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 보살이 땅 속으로 완전히 묻혀버리면, 인도에서 불교는 자취를 감추게 되리라는 전설을 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 보니, 벌써 반쯤 묻혀 있더라......이것은 이미 6세기 초중반이 되면 인도의 중북부 지역에서부터 인도불교가 쇠퇴의 기미를 보인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여하튼, 이러한 기록들에 의하면 현장스님이 매우 자상하고 정확한 기록을 남긴 것을 알 수 있다. 현장스님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은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녹야원) 에 갔다. 그곳에는 대승 사원이 몇 개, 소승 사원이 몇 개 있었다는 등의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기원 전후에서 부터 시작하여 6세기경까 지는 인도에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가 공존 했으리라고 추리할 수 있다. 그들도 집단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그에 따른 경제적인 후원도 반드시 있어야 했을 것이다. 또 그들 나름의 규율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분율, 오분율, 마하승기율 등의 율장이 있었다. 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그러한 율장이 대부분 부파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대승 재율, 즉 나중에 '보살계'라 부르는 대승의 독특한 윤리에 합당한 규율 조항도 필요했을 것이다.
현존의 사료로서 대승불교 교단의 밑거름이 되었으리라고 여겨지는 곳은 불탑지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탑파가 형성된 곳, 바로 이곳이 실제적으로 대승불교 교단의 중심지 역할을 하지 않았겠는가 보고 있다. 인도의 탑은 복발탑이라 부른다. 탑의 형태가 마치 발우를 엎어놓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금, 은 구리 등의 함에 넣고 봉안하였는데,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기에 겉에다 외벽을 치고 흙으로 무덤같이 만들었다. 또 비가 오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큰 돌 등을 쌓아 놓고 아름다운 조각을 하여 장식하였다. 이렇게 하여 탑들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후대에 이 불탑지를 참배하는 이들이 생기며 인도 전역에 세워진 불탑지는 새로운 불교의 명소가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의 탄생, 열반, 성도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일생에 관련된 곳만 성지가 된 것이 아니라 불탑지도 성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불탑지를 중심으로 하여 자연 스럽게 보시되어지는 물건들이 생겨나고, 그 불탑지를 중심으로 분향하고 수도하는 출가인의 그룹들도 생겨나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불탑지는 명백히 부파불교 교단의 통솔 영역 밖에 있었다. 왜냐하면 불탑이 세워진 시대가 부파불교가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기원전 3세기 부터였다. 또 기원을 전후한 시기나 기원 이후가 되면서, 탑을 숭배하고 경배하는 의식이 인도 전역에 풍미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파불교 교단에서 이미 불탑지를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불탑지는 과연 누가 운영하였겠는가? 이 불탑지에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던 순례자 그룹, 그 주변에 모여서 수도하던 수도인 그룹들이 바로 대승불교의 경제적 인 뒷바라지를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하여 불탑지야말로 대승불교 초기의 교단을 형성,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탑숭배 신앙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몹쓸 병에 걸려 있다고 가정하자. 그때 아비달마라는 법의 해석만으로는 병이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간곡하게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인격에 귀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인격에 귀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 귀의자에게 응답해 주는 존재로서 부처님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 응답하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그 부처님은 바로 탑 속에 진신사리로서 존재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종교성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응답하는 부처님을 요구하는, 일반 민중들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지금도 종교사를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종교에서 제시하는 이상은 높고 고귀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종교적인 이상이 제대로 자리를 펴기에는 너무도 더럽고 추악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악과 불의가 상존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과 종교적인 이상이 평행선을 이룬다. 따라서 이 둘을 조화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처님이 위대한 것은 깨달음이 부처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더욱 위대하게 하는 것은 그의 깨달음을 깨닫지 못한 다른 중생들에게 펼치려는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다. 대승불교가 아무리 고매한 이론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실적인 면이 없다고 한다면 이미 죽은 사상이다.
그러기에 대승불교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의타행이라는 그 원대한 노력을 현실 속에 전개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지금 무엇으로 인해 아파하는 가를 알아야 한다. 배가 고픈 이에게는 한 조각의 빵이 필요하다. 서양에도 그런 속담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빵만으로 살지 못하지만 빵 없이도 살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빵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그런 속담이 가능하리라.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어야 하듯이, 진리의 법음에 애타하는 사람에겐 부처님의 위대한 진실을 펼쳐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실을 바람직스러운 방향으로 고쳐 가는 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주된 목표 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대승불교 초기 교단의 모습을 밝힐 수 있은 완벽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일본인 학자 히라가와가 쓴 대승불교의 초기 교단 형성에 관한 연구라는 저술을 보면, 분명히 대승 교단이 부파불교 교단과는 다른 계율 조항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다.
예를 들어 대승의 교단인 불탑지가 어떠한 기능을 하는 가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 불탑지에서는 남을 위해서 설법을 해야 하며, 병든 이에게 약을 주거나 간호해 주어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부 파불교의 율전에는 사원 자체에서 그러한 일을 해야 된다는 조항은 없다. 반면에 초기의 대승불교 교단인 불탑지의 기능에 그러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불탑지가 그런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대승 교단이 인도 전역에 퍼져 있는 불탑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보다 용이하게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전인도를 풍미할 수 있던 것이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시작되던 대승불교의 물결이 기 원후 3세기가 되면 용수라는 위대한 인물을 맞이하게 된다. 이 용수의 출현으로 대승불교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대승불교의 경전들 대승불교라는 물결은 보살사상을 중심으로 해서 기원후 2~3세기가 되면 전인도를 풍미하는 위대한 가르침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위대한 사상이든지 철학적인 뒷받침이 없었을 때, 그것은 사상누각을 면치 못한다. 대승불교도 그 나름대로의 논리와 실천적인 윤리 의지가 있다 크게 나누어 보면 대승불교의 초기 철학은 용수를 중심으로 하는 중관철학과 세친을 중심으로 하는 유식철학으로 대변될 수 있다. 용수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상세하게 언급하겠지만 그는 종교적인 천재라고 말할 수 있다.
남인도 출신이었던 그(용수)는 대승불교의 철학성을 확립시켰다. 이로써 당시 불교에 대한 외도들의 오해를 불식시켰고, 대승불교의 굳건한 발전을 도모한 위대한 인물이다. 만약에 용수가 없었더라면 아마 대승불교의 모습이 오늘날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의 공헌은 지대하다. 그는 위대한 종교적인 열정과 냉철한 지성을 가졌던 보살이었다. 왜 용수를 중심으로 한 대승사상을 중관철학이라고 하는 가? 그것은 용수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자성, 즉 영 원할 수 없음을 연기의 이론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무자성이기 때문에 공이다. 공이라 하여 이것도 부정하 고 저것도 부정하는 허무적멸의 공일 수는 없다. 공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집착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런 까닭에 공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경지를 용 수는 철저한 중도의 경지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때의 중도란 이것과 저것의 극단을 벗어난, 가운데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마저도 벗어나야 되는 것이 다. 그래서 후대의 사상가들은 용수의 사상을 중관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용수와 쌍벽을 이루는 대승의 위대한 보살 중에 세친이 있다. 용수가 주로 반야, 공관의 철학을 대변한 반면, 세친은 인간 의식의 세밀성을 논구해 들어가는 유식철학 을 이론적으로 완성하였다. 유식철학은 일종의 불교 심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 프로이드 이래로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간 마음의 구조 상태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어 이해한다. 인간이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의식적인 세계에서의 일이지만 이 의식은 사실 무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그 무의식의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로 침잠해서 논구하는 것이 현대 심리학의 특징이다. 프로이드는 그 무의식의 바다를 '리비도(libido)' 즉 성적인 충동으로 해석하여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일치점 같은 것들을 논증해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한편, 불교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안,의, 비 설, 신, 의 등의 육근, 또는 육입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의식적인 작용으로 분류했다. 그 여섯 가지의 감각적인 의식작용을 조절하는 근원적인 무의식의 단계를 제 7마나스, 제8아뢰야라고 심층적인 분석을 한다. 학설이 발달함에 따라 나중에는 제8아뢰야식 다음에 보다 청정한 의식으로서 제9아마라식을 인정하는 학파도 생겨났다. 이런 형태로 인간의 의식구조 자체를 철저히 분석하여 말 그대로 일체유심조, 즉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마음의 작용이 아님이 없다는 위대한 유식철학의 전통을 만든 다.
대승불교의 후기에 들어서면 밀교라는 종파가 일어나게 된다. 밀교란 '비밀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원래 밀교의 배경이란 불교의 깨달음, 오도의 경지를 신비적인 체험으로 이해하려는 경창에서부터 비롯된다. 깨달음이란 다분히 주관적이다. 깨달음의 경지를 증명할 도리는 없다.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그 깨달음을 확인하기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밀교라는 분파에서는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의 경지를 신비의 경지로서 이해한다. 때문에, 그 신비경에 몰입하기 위한 주문 등을 강조한다. 그 깨달음의 신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 하기보다는 신비적 체험을 통하여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후대에 밀교는 순밀, 잡밀 등의 분파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남녀의 교합으로까지 이해하려는 밀교학파도 생기게 된다.
인도의 전통적인 성력 숭배 신앙 가운데 샤크티즘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과 밀교가 결합되어서 인도불교가 멸망을 초래하게 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여하튼, 후기에는 밀교 계통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대승 불교의 사상이 중국 대륙에 전해지면서 독특한 중국적 불교의 산물인 선종을 낳게 된다. 선에서는 마음을 깨치면 부처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 마음을 깨치는 갖가지 수행 방법을 강조하고, 교종에서 말하고 있는 점수, 즉 부처 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인도에도 선의 수행 방법은 있었다 . 그러나 하나의 종파로서 형성, 발전된 것은 중국에서의 일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의 사상을 말하면서 반야, 유 식 그리고 선종을 핵심으로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다.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들은 이러한 세 가지의 중심사상(반야, 유식, 선)을 대변하고 있는 경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반야, 공의 철학을 담고 있는 대승경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반야바라밀다심경, 유마경, 금강경, 마하반야바라 밀다경 등이다. 원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이라고 불리는 600권 분량의 경전이 있다. 이것이 축소되어 마하반야바라밀경, 소품 반야바라밀경, 등이 되었다. 더 나아가 그 사상의 핵심을 앞에 언급한 경론들로 표현하는 일련의 대승경전들이 있다.
반면에 유식 계통의 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는 유식20론, 유식30론, 해심밀경 등이 있다. 이것은 유식철학의 사상을 대변하고 있는 경론들인데, 그 외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들과 무착, 세친의 저술 등 이 있다.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법화경 계통의 사상이다. 물론 법화경은 나중에 중국에서 천태종 같은 종파가 성림되면서 그 소의경전으로 중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으로도 거의 모든 대승사상을 망라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불전이다. 회삼귀일 등이 그 중심 사상이 되어 있으나, 법화경은 법신 상주를 말하는 경전이다.
인격적으로 존재 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하였지만, 그가 깨친 위대한 진리는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불전이다.
또 다른 불전으로는 열반경 계통이 있다. 열반이란 광범 위한 의미로는 탐 .진 .치 삼독을 멸한 위대한 진리의 경지라고 이해되지만, 좁은 의미로는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세속적으로 죽었을 때 열반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큰스님의 타계도 열반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본 죽음의 의미다. 이 열반경 계통으로는 열반경, 대반열반경 등의 중요한 불전이 있다.
또 대승불교의 철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서 여 래장사상이 있다. 여래장,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 명들은 여래의 씨앗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여래장사상을 대변하는 불교경전으로는 앙굴마라경, 부증불감경, 승만경 등이 있다. 여기에서, 가장 발달된 유식사상이 결국은 여래장사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논서 가운데서는 대승기신론 같은 매우 중요한 논서가 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인간의 의식 세계와 내 면의 세계를 분석한다. 동시에 그 내면의 세계가 과연 어떻게 외부의 세계를 향해서 전개되느냐 하는 주관과 객 관의 연관성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또 여래장사상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화엄사상이다. 화엄경만큼 많은 영향을 끼친 불전도 드물 것이다. 특히 한국불교는 선종적인 면모가 강하지만, 그 선종과 더불어 교종을 대변하는 사상이 바로 화엄이다. 원효, 의상과 같은 당대의 고승들로부터 조선의 중. 후기를 수놓았던 벽암 각성, 묵암 지눌이라든지, 거의 모든 역대의 고승들이 화엄에 관해서 매우 중요한 언급들을 하고 있다. 이 화엄 사상은 불교의 우주관을 대변해 주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화엄에서는 이 우주를 이와 사의 걸림이 없는 이사무애, 이사원응무애한 세계로 파악한다. 그 이사원융무애한 세계의 기본적인 섭리를 육상, 즉 총상, 별상 .동상. 이상ㆍ성상ㆍ괴상으로 분류한다. 이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어떤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폭넓게 지시해 주고 있는 탁월한 가르침이다.
마지막으로 대승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보살계사상 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윤리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대승에서 부파불교의 윤리를 비판할 때, 상용하는 구절이 있다. '형식적인 금계 조항의 준수는 무의미하다'는 구절이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이를테면, 마음속은 음흉하지만 겉으로는 도적질을 안하고 살생도 안하는 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위선은 겉으로는 계를 지키는 것 같으나 오히려 그 계를 범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보는 것이다. 대승의 보살계사상에서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청정이다. 우리들 내면의식 속에서 어떻게 선한 의지를 북돋우고 심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보살계사상의 경전으로는 보살지지경, 범망경, 우바새계경, 보살영락본업경 등이 있다. 범망경 등에서 '10중 48경계'라 하여, 10가지의 무거운 죄와 48가지의 가벼운 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계가 설명되고 있는 대승보살계사상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대승불교의 실천 윤리를 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