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性)씨, 본관(本貫)"..
즉 '"족보(族譜)"
탄생에 대한 모든 진실.."
=>"15세기 以前
기록이 없다."
■ 남아있는
대표적인 족보는..??
첫째, 안동권씨 "성화보",
1465~1487년
둘째, 문화유씨 "가정보",
1565년~
셋째, 강름김씨 "을축보",
1565년~
넷째, 능성구씨 "만력보",
1576년~
그 이전 "'以外'에는
실존 족보가 없다."
■ 본관은 고려 初부터..
■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부터
=>"공구 -> 공자(B C.
551-479년) "
'子'는 의대한
스승이나 학자에게 붙임
cf.) 조선시대
이황=>"이자",
송시열=>"송자"
■ 조선시대 말 쯤
성씨는 백성
(百性)이하였다.
■ 가장 먼저 기록되고
사용한 성씨는..??
=>'삼국지위지 동이전'
"청주 한씨, 선우씨, 기씨.."
조선왕조실록
"선우씨는 기씨의
후손이다."
=> 왕족 성씨 고구려"고씨",
신라 "박/석/김씨",
백제"부여씨" 가야 "김씨/
허씨"..
cf ) 육촌성,"이/최/손/정/배/
설씨"는..??
=>'신당서'에 신라는
왕은 김(金)씨,
귀인은 '박'씨이다.
■ 왕에게 성씨를 쓴
"북제서의 최초의
기록 등장"
=> 신라 진흥왕은
"김진흥"을 신라와에 책봉
=> 진흥왕 순수비에는
"성(性)이 없고
이름만 기록됨."
cf.) 백제 4C 근초고왕 "여씨"
고구려, 백제는
성씨 단절됨.
=> 문무대왕비에
"김씨, 한씨성"등장
■ 7C 중•후반 경
육두품 중아찬
"김지성" 성씨 사용
=> 이름이 중국식
두글자로 작명 생김.
cf ) 궁복(弓福)
=>장보고(張保皐)다,
■ 신라 하대, 지방유력자들이
=> 성씨를 흔하게 사용
■ 고려초 성씨 확대
=> 왕건이 사성(賜性),
개국공신 4명
"홍유(홍술),
배현경(백옥삼),
신숭겸(능산),
복지검(복사귀)"
■ 고려 初 이후는
=> 토성분정
(태조 24년, 940년),
=> 본관제 시작되고
모든 관료들 성씨가 有..
cf 좋은 性, 나뿐 性..
안동삼태사, 안동김씨,
권씨(=>김), 장씨
충청도 목촌,
"우, 마, 상, 돈, 장"
■ 조선시대에는
=>"양인은 性이 有
천민에게는 性이 無.."
■■"족보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만들었고
성/이름을
가진것은
50%가 안됐다."■■■
■■"그 후손들이
우리다.."■■■
https://youtu.be/-YxpVaBrvgE
첫댓글 삼국유사에 박혁거세를 키뭐준 이는 육부족 동맹의 좌장인 이씨가 박혁거세를 키워줬다고 나와 있더군요.
이, 최, 손, 정, 배, 설 씨등의 6부족 화백회의가 있었고
이때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를 키워서 이씨가 왕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최초의 성운 이/최/손/정/배/설 로 알고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6부족 화백의장이있던 알성촌장 알평공의 후손입니다.
경주이씨의 후손이었지요.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인물이 경주이씨의 시조인 알평공이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는데
요즘엔 제 손자뻘인 천하의 쌍욕쟁이이며 국민들의 돈을 제 쌈지주머니 돈처럼 생각하고 마구 마구 부정한 짓을 저지른
이재명이 경주이씨라는 사실에 회한을 느끼며 반성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