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제1독서
<홍해에 마른땅이 나타나자 그들은 어린양들처럼 뛰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18,14-16; 19,6-9
14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15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16 그는 당신의 단호한 명령을 날카로운 칼처럼 차고 우뚝 서서
만물을 죽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가 땅 위에 서니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19,6 당신의 명령에 따라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당신의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7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8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9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
지혜서 저자는 하느님께서 이집트를 탈출해서 광야로 향하던 그들을 가로 막던 홍해를
건너게 해 주신 하느님의 도우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으로만 여겼던 바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맥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이 홍해 바다를 향해 뻗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면 마른 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서 저자는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지혜 18,7-9)
이 세상에는 항상 정의로운 것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힘들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억울함’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닌데
왜곡되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 당하는 것입니다.
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의 주제 중에 하나가 이 ‘억울함’을 밝히려는 약한 주인공의
끊질긴 추적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바로 정의가 세상을 재는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다수와 통치자인 왕 앞에서 끊임없이 외치는 것은 ‘하느님 만은
나의 변호자’라는 말마디입니다.
세상은 이해관계로 아니며 판단의 착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재판관에서 요구되는 것은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정성입니다. 거기에는 약자라 해서,
강자라 해서 그 잣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끊임 없이 하느님께 청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 고을의 못된 재판관과 한 과부에 대한 비유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한 재판관에 과부는 끊임없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조릅니다.
그 못된 재판관은 처음에는 들어주려 하지 않다가 그 과부가 끊임없이 졸라대니까 혼잣말로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루카 18,4-5)
이 비유의 말씀을 들으시며 주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6-7절)
주님 말씀 의도는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끊임없는 청원에 하는 수 없이 재판을 해주는데
하물며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청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늘 기도하고 우리의 청원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마무리하시며 하시는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이 말씀은 하느님을 전적으로 믿고 청하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는 뜻으로
풀어 볼 수 있지요.
홍해를 앞에 두고 파라오의 육백 대에 이른 정예부대와 군관이 이끄는 병거가 이스라엘
백성을 뒤를 쫒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습 두려워하며 모세에게 항의하며 부르짖습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짜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탈출 14,11)
모세는 그러한 백성들의 기세에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13절)
그리고 모세는 바다 위로 손을 뻗습니다. 하느님께서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십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도 적시지 않고 홍해를 건네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집트 군대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들은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모세에게 대들며 떠드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성은 사실 듣기에 좋은 소리가 아닙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원망을 기적으로 갚아 주십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을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세상사는 이야기에 불평도 섞고 때로는
원망도 섞어 하느님 앞에 떠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평을 구원으로 바꾸어 주시듯 우리의 시원치 않은
기도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쫑알대는 자녀의 불평들이 부모에게는 사랑의 표현으로 들리 듯,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느님께 청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제 하느님 앞에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우리의 기도도 끊임 없이 바칩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