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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체코 경제는 1989년 직후 발생한 사회적 격동, 1997~1998년의 금융위기, 2008~2009년의 경제위기를 차례로 겪은 이후 상대적 안정기에 진입한 상태였으나, 2020년을 전후한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국내총생산(GDP) 감소와 재정적자 심화라는 문제에 새로이 직면하게 되었다. 한편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분쟁이 유럽에 미치는 여파 또한 원자재 및 에너지 수급의 차질과 물가 상승이라는 형태로 체코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체코는 공급이 제한된 러시아산 천연가스 및 석유를 대체할 신규 수입원이나 에너지원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에 더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던 체코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 또한 주요 우려요소 중 하나이다. 현재 체코가 안고 있는 거시경제 문제의 대표 사례로는 ▲고물가 ▲연료 및 에너지 가격 급등 ▲국가부채 증가 ▲무역수지 악화 등이 있으며, 이들 문제는 대러 제재, 인플레이션,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결부된 특성상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체코의 고물가 문제 : 배경과 동향
2023년 1월을 기준으로 유럽연합(EU)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10%를 기록해 2개월 연속으로 하락했고, 27개 EU 회원국 중 18개국에서도 물가상승률이 전월 대비 하락하며 인플레이션이 다소 진정세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1990년대에 발생했던 고물가 사태의 재현을 겪고 있는 체코의 물가상승률은 2022년 12월에 일시적으로 내려간 후 2023년 1월에는 19.1%로 다시 상승했는데, EU 통계청(Eurostat) 자료에 따르면 이는 EU 회원국 중 헝가리(26.2%)와 라트비아(21.4%)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체코에서 고물가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은 ▲세계 상품 수요 상승(반도체 등) ▲가계 소비 반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 공급이 제한되며 발생한 에너지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전부터 이어진 방만한 통화·예산 정책 등으로 다양하다. 코로나19 시기 경제활동의 축소로 비자발적 긴축에 들어갔던 체코의 가계는 포스트코로나19 시대의 도래와 함께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했지만, 아직 체코의 생산 역량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데다가 원자재 수송 지연, 인력 및 핵심 부품 부족(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자동차 생산 차질 등) 문제도 겹치면서 일부 상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전력과 천연가스,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여타 상품 및 서비스 가격 상승을 부추긴 점도 인플레이션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 체코의 2022년 평균 물가상승률은 1993년 이래 최고치인 15.1%를 기록했고, 상품 가격은 16.8%, 서비스 가격은 12.3%의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 2009~2021년간 누적 물가상승률이 27.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15.1%라는 수치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2015~2021년 동안의 물가 추이를 나타내는 <그림 1>과 2018~2023년간 월별 소비자물가지수(CPI) 동향을 나타내는 <그림 2>를 비교해 보면 체코가 겪고 있는 고물가 현상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 2015~2021년 헝가리, 체코, 폴란드의 연간 물가상승률 추이(단위: %)
자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2)
체코의 연간 CPI 상승률은 2022년 12월에 전월 대비 0.4%p 감소한 15.8%를 보였는데, 당시 CPI 상승세가 일시적으로나마 둔화된 것은 ▲약 2% 정도의 물가상승률 감소 효과를 가진 에너지 요금 인하책 시행 ▲자동차 가격 급등 현상의 완화 ▲연료·석유 가격상승률 하락(11월 14.5%→12월 4.4%) 등의 요소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2022년 말에 기록된 연간 물가상승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항목에는 식품, 주거비, 에너지 , 난방, 수자원 및 하수 처리비용이 있고, 특히 천연가스 가격이 140.2%나 높아진 점이 주거비 상승을 견인했다 .
해가 바뀌고 난 직후인 2023년 1월의 연간 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17.5%로 , 전월의 15.8%를 상회했다. 이 수치에는 에너지 및 식품 가격 상승세의 지속에 더해 연초에 단행된 물가상승률 통계 취합 대상 갱신도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가계용 에너지 요금 인하를 비롯해 전년도 말 물가상승률 통제에 일조했던 체코 정부의 경제적 개입 조치가 2023년을 기점으로 만료된 점도 인플레이션 심화 원인 중 하나이다. 개별 품목의 가격 변화를 살펴보면 먼저 전월에 21.2%만큼 하락했던 전력 가격이 반등하며 36.4%의 상승율을 보였고, 천연가스 가격 상승률은 87%로 다소 내려갔으며, 식품 가격은 전반적 상승세를 유지했다.
이처럼 고도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체코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먼저 2022년 연말까지 시행되던 에너지 요금 인하 조치는 해가 바뀌면서 전력 및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로 대체되었으며, 이에 따라 2023년 1월부터 대부분의 에너지 기업이 가계, 기업, 공공기관 고객에 상한액 이하의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한다.
<그림 2> 2018~2023년간 체코의 월별 CPI* 추이(기준연도: 2005년)
*유럽 목적별 개인소비 분류법(ECOICOP) 기본 지표
자료: 체코 통계청(Czech Statistical Office, 2023)
체코 정부는 가격 상한제 시행으로 인한 기업의 손실 보전을 위해 2023년 한 해간 1,000억 코루나(한화 약 5조 9,000억 원)의 별도 예산을 편성해 지금까지 83억 코루나(한화 약 4,900억 원)를 집행했고, 이 중 29억 코루나(한화 약 1,700억 원) 상당의 지원금이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부문에서 활동하는 기업에 투입되었다 . 이 밖에 체코에서 활동하는 독일 소재 에너지 기업 이온(E.ON)도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해 가스 공급 가격은 13%, 전력 공급 가격은 18%만큼 인하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체코의 약 100만 가구가 2023년 2월 중순부터 에너지 가격 인하 혜택을 받게 된다.
또한 체코 정부는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을 메꿔주기 위해 최근 국채 매입량을 늘리고 있다. 이외에 판매대상이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으로 한정되는 6년 만기 공화국채(Dluhopisy Republiky)도 출시 이래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으며, 2022년 1월에 시장에 나온 13차 매물은 410억 코루나(한화 약 2조 4,000억 원)라는 기록적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고물가 대응을 위한 체코의 통화 긴축 정책은 지금까지 생각한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중 유통 통화량이 전년 대비 사상 두 번째로 감소한 시기에 있는체코에서는 고유동성 협의통화량(M1)이 줄어들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은 완화되지 않았다. 코호우트(Kohout)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는 ▲에너지 가격 급등 ▲통화정책 시행과 기대효과 발생 간 시차 ▲예산 적자로 인한 악영향 ▲외국 통화가 국내 경제에서 지니는 중요성 증대의 네 가지가 있다(Kohout, 2023). 이러한 상황에서 체코 중앙은행(CNB, Czech National Bank)은 기업이 입는 타격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기존의 긴축 전략을 변경해 금리 인상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현재 환율 측면에서 코루나가 외국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을 주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체코의 일부 기업은 환율 급변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유로 거래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례로 체코 기업이 2022년에 받은 코루나 표기 대출액은 1,020억 코루나(한화 약 6조 원)만큼 줄어든 반면, 동년도 유로 표기 대출액은 1,500억 코루나(한화 약 8조 8,000억 원) 늘어났다.
체코의 재정·무역적자 문제
체코가 현재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는 급속히 늘어나는 국가부채이다. 비록 체코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지금도 EU 내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2021년에는 이 비율이 전년의 37.7%에 비해 크게 늘어난 41.9%까지 올라가며 EU 회원국 중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체코의 국가부채 규모는 2021년 3/4분기에 2조 4,300억 코루나(한화 약 143조 원, GDP 대비 40.4%)를 돌파했고, 이로부터 1년 후인 2022년 3/4분기에는 2조 9,800억 코루나(한화 약 175조 원, GDP 대비 43.8%)를 넘어섰다. 1993년 이래 체코의 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는 ▲1996~1998년간의 안정기(역대 최저치인 9% 내외) ▲1999~2013년간의 상승기(10%→41%) ▲2014~2019년간의 하락기(38%→29%)를 거쳤고, 팬데믹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36%와 40%로 재차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EU와 유로존의 GDP 대비 재정적자가 2022년 3/4분기에 각각 85.1%와 93%로 각각 감소한 것과 달리, 체코는 동시기에 재정적자 비율 증가를 기록한 유일한 EU 회원국이었다(GDP 대비 45.2%). 한편 체코의 2022년 3/4분기 가계부채도 전년 동기 대비 6.1% 늘어난 31억 5,000만 코루나(한화 약 1,850억 원)를 기록했다.
체코의 재정적자가 2022년에 3,604억 코루나(한화 약 21조 원) 수준으로 심화된 것은 팬데믹과 에너지 위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체코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 지원에 GDP의 4%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고,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대량의 보조금도 지급했다. 아울러 체코 정부가 자국 기업의 수익성 강화를 위해 전자거래기록부(EET)를 폐지한 점도 세입 감소라는 부작용을 동반했다. 이러한 문제를 배경으로 나타난 체코의 최근 재정적자 심화 동향은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 1> 2014~2023년간 체코 재정수입·지출액 추이(단위: 10억 코루나)
자료: 체코 재무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체코 정부의 노력은 아직 공공 재정의 장기적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을 모색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 CNB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균형 예산 달성이 필수 달성 목표라는 의견을 개진했고, 체코 정부자문위원회(NERV, National Government Advisory Body)는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제안했다. 이 제안에는 재정수입 증대를 위한 개인소득세율 및 부동산세율 인상 이외에 재정지출 통제를 위한 ▲자녀보육 지원금 지급기간 축소 ▲실업자 지원금 축소 ▲공공요금 할인폭 제한 ▲농업 지원금 축소 ▲주택보유자 예금 국가 지원액 삭감 등이 포함된다. 또한 체코 정부는 240만 명에 달하는 노령 연금수령자에 지급되는 연금액을 조정해 200억 코루나(한화 약 1조 2,0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나, 야당에서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체코 정부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추가 조치로 은행과 에너지 기업이 거둔 엄청난 수익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체코 정부가 과반 지분을 갖고 있는 에너지 기업 체코전력공사(ČEZ)는 2023년 한 해 동안 체코 정부에 1,000억 코루나(한화 약 5조 9,000억 원)를 납부하게 되며, 여타 대형 에너지, 석유, 채광 기업에서 나오는 횡재세 규모도 약 440억 코루나(한화 약 2조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고에서 마지막으로 지적해보고자 하는 체코의 무역적자 문제는 대외 무역액 추이를 나타내는 <표 2>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 표에서는 2022년에 무역적자가 크게 증가한 점이 눈에 띄는데, 체코처럼 수출의존도가 큰 국가에 있어 무역수지 악화는 우려스러운 변화이다.
<표 2> 2014~2022년간 체코의 상품 무역 통계 추이(단위: 100만 코루나, 현재 가격 기준)
자료: 체코 통계청(2023)
결론 및 향후 전망
거시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한 분석에 따르면 체코의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CNB는 2023년도 평균 물가상승률 전망을 기존의 9.1%에서 10.8%로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이에도 불구하고 CNB는 2023년 1월에 17.5%를 기록한 체코의 물가상승률이 2월부터 시작해 봄철을 거쳐 점차 안정되어 하반기에는 10% 이하로 떨어지고, 2024년에는 목표 수치인 2%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체코의 금융 부문에서는 신규 대출이 줄어들고 주택담보대출 시장도 냉각되어 있는데, 이 사실은 향후 물가 통제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해준다.
CNB는 앞으로 2년 안에 체코의 고물가 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여기에는 식품 가격이 여전히 상승세를 지속 중인 점, 그리고 자국 국민과 기업을 위한 체코 정부의 재정 지원책이 인플레이션 심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의 장애물이 존재한다. 회계 감사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체코 기업 중 52%가 2023년 평균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망한 답변에서도 시장의 회의적 전망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전직 CNB 총재 2인은 현재 CNB가 기업이 입게 될 피해나 인건비 상승 영구화를 우려해 점진적 금리 인상 기조를 지속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금리를 지금 수준에서 유지하게 되면 현재의 고물가 현상이 고착화될 위험성이 크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가 급등 통제 노력이 지연될 경우 미래에 체코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더욱 높아지게 되고, 경기 후퇴나 실업 문제와 같은 부작용의 정도가 더욱 심해질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한편 체코 정부는 재정적자 문제 극복을 위해 2023년도 예산안에서 세입을 늘리고 세출을 삭감해 정부 지출을 통제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현재 2,950억 코루나(한화 약 17조 원)에 달하는 적자 예상액을 약 700억 코루나(한화 약 4조 원) 정도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체코 정부는 구조적 적자 규모를 최소한 1% 이상 줄이기 위한 종합 개혁책을 마련해 여·야 합동으로 구체적 조치를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재정적자 통제 조치는 2023년 이후로도 꾸준히 시행될 예정이며, 체코 재무부는 2024년도 재정적자 목표치를 GDP의 3% 이하로 설정했다.
다만 체코 정부는 자국민의 조세 저항이 거셀 수 있는 직접세 인상에는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면서, 대신 부동산세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현재 체코 정부가 추진 중인 총합산임금(super-gross wage) 과세 정책 폐지안이 세입 감소 등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기업 자금의 해외 조세피난처 유출 등 여타 사안에 관심을 집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은 물론 세계에도 각종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향후 체코에 가져올 중기적 파급효과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수 개월간의 에너지 가격이 개전 이전보다 다소 올라간 수준에서 안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계 원자재·에너지 수요가 늘어나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 그리고 생산·운송비용 상승으로 일부 기업이 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 등을 지적하는 비관적 전망, 그리고 반대로 세계 경기 후퇴가 수요를 진정시켜 물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는 낙관적 전망이 혼재해 있다. 따라서 체코는 현재 경제 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각각에 대한 대응책을 사전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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