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톤치드 (클리앙)
2024-03-10 04:06:01 수정일 : 2024-03-10 04:06:22
나는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을 긍정하고 또 부정한다. 이미 지나간 일의 기록인 역사에는 만약이란 가정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만약을 수없이 가정하고 상상하고 복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그 '만약'을 가정하려는 것은 이것이다. 2019년 8월부터 발발한 '조국 사태' 당시, 만약 문재인정부가 대대적으로 윤석열검찰에게 반격을 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먼저, 검찰총장이 자신을 임명한 정권에 대대적인 하극상을 벌였을 때 그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무부장관 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검찰청법 제8조에 명시된 법무부장관의 검찰 지휘 감독권이다. 법무부장관이 아닌 다른 누구도 검찰총장에게 지시, 지휘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 총장이 공격한 대상이 법무부장관 후보자, 이어서 장관이 된 조국이라는 것이 이 법 조항으로 인해 발생한 외통수 상황이 된 이유다. 다른 어떤 장관, 총리, 심지어 대통령을 공격했더라도 법무부장관이 검찰을 제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검찰총장이 직속 상관인 법무부장관을 수사대상으로 삼았을 때는 도리어 제어가 불가능해지고 막장 판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조국 장관이 당시 자신에 대한 무도하고 턱 없는 누명의 혐의들에 정면으로 반발해 검찰 수사를 차단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무력화 하려 했다면? 그래서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사사건건 막아서면서 임기를 계속 이어나갔다면?
그 2019년 하반기 당시 언론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검찰의 주장들을 줄기차게 받아썼는지는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그런데 대대 수사의 대상인 법무부장관이 자신에 대한 수사를 계속 막아섰다면 이 언론들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너무도 뻔하다. 장관이 자신의 불법 행위를 숨기기 위해 국가권력을 남용한다는 주장의 일치된 보도들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즉각적으로 조국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 문재인정권의 문제로 확대되며 일이 커져버린다. 언론들로서는 문재인정부 전체의 부패로 몰아가며 대대적으로 보도들을 쏟아낼 것이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었던 사모펀드의 진실은 도리어 파묻히고 '대선자금', '권력형 비리'라는 검찰과 언론의 주장이 엉뚱하게도 기정사실화 되었을 것이 뻔하다.
검찰 수사가 차단되었으니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도 못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되고, 문재인정부 전반을 부패정권으로 낙인 찍는 보도들이 판을 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제어가 안되는 상황이 된다. 정권 중반에 접어든 마당에 문재인 탄핵론이 난무할 것은 물론이고.
그리고 이 문제가 몇개월 앞으로 다가오는 2020년 총선에 정면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확인할 수도 없게 된 조국 의혹들이 언론들의 합창 아래 기정사실화 되고, 결국 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대패로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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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는 조국사태에 이어 윤석열검찰이 벌인 또 하나의 특수 수사가 있다. '울산 선거개입 사건'이다. 청와대가 수사 하명을 하는 등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프레임이다. 윤검찰이 왜 이 수사를 한 달여만에 후다닥 해치우고 기소를 했을까? 기소 후에 재판을 멈춰놓고 1년 3개월이나 추가 수사까지 했는데.
그 울산사건 수사는 어떻게 봐도 아예 문재인 탄핵을 위한 포석이었다. 그래서 총선을 3개월 앞둔 2020년 1월에 후다닥 기소부터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21대 국회가 열리면, 문재인 탄핵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수사 자체를 차단해 법무부장관이 살아남았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퍼진 상황에서는, 민주당에서조차 반란표가 대거 나왔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문재인 탄핵 의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의석 수 문제로 아슬아슬하게 탄핵 의결은 막아냈더라도, 문재인정부는 임기 절반을 갓 넘긴 그 시점부터 완전한 레임덕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무슨 수로도 정권의 리더십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 권력을 이용해 스스로의 부패 수사를 차단해버린 최악의 정권이라 몰아붙여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결과는 지금의 실제 상황보다도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역사에서는 문재인정부는 임기 말까지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고 2022년 대선에서는 박빙으로 패배했지만, 만약 이 가정대로 조국 법무부장관의 정면 맞대결로 탄핵이 이루어졌거나 정권의 지지율이 폭락한 후라면 이후 대선 결과는 보나마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라면 '부패한 문재인정권의 최대 희생자'인 윤석열이 더욱 영웅으로 부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힘에 다른 경쟁할 후보가 전혀 없음은 실제 역사보다 더했을 것이고, 박빙이 아닌 큰 표차로 윤석열이 당선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총선 대패로 민주당의 의석수가 쪼그라들어 지금의 실제 역사처럼 민주당이 윤정권을 제대로 견제할 수조차 없다.
당연히 차기 대선주자 이재명을 보호할 수도 없게 된다. 민주당이 180석 갖고 뭘 했냐는 비난을 듣지만 만약 2020년 총선에서 대패해서 의석 수가 크게 쪼그라들었다면 과연 이재명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조국 부부 재판들에서 드러났듯이 현재의 법원은 언론들의 압박에 매우 취약하다. 언론들이 재판부를 집중 공격하면 재판부를 갈아치울 수 있고, 재판장이 매도당하지 않으려면 명백한 증거도 무시하는 왜곡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패해 의석수가 쪼그라들었더라면,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은 검찰이 원하는 대로 발부되었을 것이다. 영장 발부를 안해주면 언론들이 죽어라 떼로 공격했을 것이므로. 만약 발부가 안되면 정경심 재판에서처럼 언론들이 떼로 달려들어 영장판사를 쥐어 팼을 것이고, 그에 힘 입은 검찰이 다시 청구하면 다음 영장판사는 힘없이 발부해줬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말도 안되게 기울어진 언론지형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영장 발부를 막아준 유일한 힘이 바로 압도적 다수 의석, 180석의 힘이었다.
만약 조국 장관이 부당한 공격 좌시 못하겠다며 검찰 수사에 정면으로 맞대응을 했더라면, 그래서 민주당의 의석이 쪼그라들었다면, 지금의 상황보다 모든 것이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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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되기 전 중앙지검장 시절에 몰래 조선일보 방상훈과 중앙일보 홍석현과 회동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술 마시며 덕남이나 나눴을까. 상식적인 상상은, 박근혜 탄핵 이후로 붕괴된 보수진영을 재건하고 정권을 되찾을 아이디어들을 나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홍석현과 회동한 시기는 2018년 11월 20일. 그 직후에 특감반 사태가 터졌다. 이 사건의 얼개가 특감반원 김태우의 개인비리 적발이었고 그에 대한 김태우의 대대적인 반발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과연 일개 검찰 수사관 출신의 말단 특감반원이 자신의 심각한 비리들 적발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결심과 행동으로 온갖 사실, 허위가 섞인 감찰 자료들을 마구 떠벌였을까? 그 장면의 비현실성에 의아해 했던 것이 나 혼자였을까.
이 김태우를 윤석열은 대선 캠프 때부터 착실히 챙겼다. 공무상비밀누설이라는 심각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인 김태우를 자신의 대선 캠프에 유의미한 직책으로 받아줬고, 대통령 취임한 직후 지방선거에서는 이미 1심 유죄 선고를 받은 김태우가 무려 강서구청장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김태우가 2심에 이어 3심에서도 유죄로 집행유예가 확정되자, 불과 2달만에 정체불명의 국힘 내부 세력으로부터 '김태우 사면해야' 운운이 떠돌기 시작하더니 3달만에 윤석열이 사면해줌으로써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 다시 나가게 길을 열어줬다. 김태우가 세운 공이 얼마나 대단했길래 이렇게까지 극진히 챙겼단 말인가?
나는 2018년 말의 김태우 특감반 사태로 청와대를 들었다놨다 한 배경에 윤석열이 있었을 것이라고 심각하게 의심한다. 윤석열과 김태우는 옛 중수부에서 같은 부서에 2년 가까이 함께 근무했고, 근무지가 달라진 후에도 김태우는 막히는 일이 있으면 윤석열을 찾아가 부탁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둘 사이의 인연이 그만큼 막역했던 것이다.
특감반 사태의 배후에 대한 의심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 시기는 윤석열-홍석현 회동 직후였다. 모든 일이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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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장관이 자신의 장관 지휘권을 이용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압하지 않은 데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비공개 사실을 하나 공개하자면, 2020년 초 당시 조국 전 장관은 문재인 탄핵 가능성을 진지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나는 조국 혼자만의 우려가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금에 와서 입 털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이 조국 대표를 가리키며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게 한 잘못이 있다는 기가 막히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치를 떨 수밖에 없다.
만약 조국 전 장관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려 했다면, 그는 법무부장관으로서 능히 그럴 수 있었다. 윤석열이 하려는 모든 일에 일일이 개입해 다 차단해버릴 수 있었다. 그게 법무부장관만이 가진 막강한 권능이다. 추미애 장관이 했던 그대로나 그 이상도 할 수 있었다. 온가족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상황에서 자기보호와 가족보호의 감정에 휘둘려버린 사람은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다.
그가 학자이고 양반이어서 참아냈을 거라는 무책임한 추정은, 그의 처자식과 노모, 동생, 처남에 이미 이혼한 제수씨까지 온 일가족이 도륙당하고 있었던 상황을 기억한다면, 천생 양반이니까 하는 말은 감히 입 밖에 내놓아서는 안될 패륜적인 발상이다.
청문회 도중에 부인이 아무런 증거 하나 없이 기소되고, 검찰이 보여주지도 않은 PC 증거라는 것들로 부인이 구속되었을 때(이후 포렌식으로 확인한 바 전부 조작 과장된 증거였다), 딸의 생활기록부가 유출되는 등 자식들마저도 죽일놈을 만들어버린 상황에서, 그가 과연 법무부장관의 지휘권을 매섭게 휘둘러 밟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안했을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조국 사태 이후 결과적으로는 정권을 뺏기고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선 것이 사실이지만, 조국이 자신과 가족을 우선해 내키는 대로 검찰과 맞싸웠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상황이 몇배로 더 악화됐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재명 대표는 구속된 채로 지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재판을 받았을 것이고, 쪼그라든 민주당에는 나설 리더조차 없어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이명박 당선 이후 오랫동안 대표와 비대위원장을 계속 갈아치우며 삽질에 삽질을 반복하던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더욱 최악의 상황이 됐을 것이다.
나는 그 지옥같은 몇년 동안 폭발하는 감정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이성을 찾으려 안간힘을 다하곤 하던 조국을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조국이란 사람을 어떤 경우에도 믿는 것이다.
조국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함부로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허리 숙여 부탁드리건대 제발 그러지 마시라. 충분하고도 넘치도록, 아니 너무도 지나치도록 희생해온 사람이다. 혼자만이 아닌 온가족이.
(조국 대표님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몇가지 비공개 사실들을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hare/T4YPRpXstgxi7wbf/?mibextid=oFDknk
첫댓글 댓글 중---
공감과공존
'조국 전 장관이 자신의 장관 지휘권을 이용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압하지 않은 데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비공개 사실을 하나 공개하자면, 2020년 초 당시 조국 전 장관은 문재인 탄핵 가능성을 진지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나는 조국 혼자만의 우려가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헐.. 조 전장관이 이런 심각성 까지 고려하고 있었군요. 하기야 그때 당시 검찰과 언론은(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광기로 날뛰고 있었으니...
박지훈 작가에 대해 예전 이재명 대표에 대해 썼던 글 때문에 좀 비판적으로 보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적 사실이 있는 글이니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