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성도의 풍성한 교제가 있는 주일이 되게 하옵소서.
오후 연합회 모임 위에도 은혜 내려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본문 주해)
1절 :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과 집안간으로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이다.”(새번역)
장차 보아스는 텅 비어 소망이 끊긴 나오미에게 소망의 빛이 되는 존재가 된다.
2~3절 :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와 룻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때 며느리 룻이 먼저 이삭줍기를 제안하고 나오미는 수동적으로 허락한다.
이삭을 줍는 행위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한 자의 노동이다.
밭에서 이삭을 줍는 여자들은 추수하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단에서 빠져 땅에 떨어진 이삭만을 줍는 것이 상례였다.
율법에는 이삭 처리에 관한 법이 있다.(레19:9; 23:22; 신24:19~20)
첫째, 곡식을 벨 때 밭 주인은 모퉁이까지 다 거두어서는 안 된다.
둘째, 밭에 떨어진 이삭은 밭 주인이 주워서는 안 된다.
셋째, 주인이라도 잊어버리고 가져가지 못한 단은 다시 가져갈 수 없다. 밭에 그대로 두어서 이삭을 줍는 이가 줍게 해야 한다.
이러한 법은 가난한 자와 외국인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기 위함이었다.
그때 룻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가게 된다.
나오미는 룻이 이삭줍기하러 간다고 했을 때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되었다.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지만, 하나님께는 이것이 필연이었다.
4~7절 : 보아스가 등장한다. 그는 곡식 베는 자들과 통상적인 인사를 나눈 뒤, 그의 눈에 띈 젊은 여자에 대해 사환에게 묻는다.
베는 자를 인솔하는 사환이, 그녀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온 소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곡식 베는 자를 따라 이삭줍기를 간청했고, 아침부터 와서 부지런히 일했다고 말한다.
(나의 묵상)
룻이 이삭줍기하러 간 밭이 하필이면 보아스의 밭이었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우연히’(3절)라고 표현한다.
또 그 룻을 보아스가 보게 되는데 본문에는 ‘마침’(4절, 그때에-새번역)이라고 표현한다.
‘우연히’ ‘마침' 이런 단어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우연으로 보이는 사건이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섭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섭리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누구나 돌이켜보면 그러하듯, 내 삶에도 예수님을 믿게 된 하나님의 섭리가 뚜렷하다.
졸업 후 교사 자리가 대구에는 없었고, 경주, 울산, 상주 등에 자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상주를 택하였던 것이다. 상주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일 뿐만 아니라, 내가 갈 학교는 당시 다른 선택지에 있는 학교에 비해 가장 후진 시골 학교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수 믿는 동료 교사로 남편을 만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남편의 믿음은 이제 막 시작하는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나는 신앙의 대선배나 되는 줄 알고 약간의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인도함을 받았다.
그것은 함께 나란히 신앙의 여정을 가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렇게 함께 30여 년을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던 우리 부부를 하나님께서는 평신도 선교사로 불러주셨고, 하고많은 곳 중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들이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곳에서 생명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증거하는 뜨거운 마음이 되게 하신 것이다.
상주, 마다가스카르가 바로 내게는 보아스의 밭이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날 수 있도록 보아스의 밭에 그녀를 들이신 하나님께서 내가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상주로, 마다가스카르로 인도하신 것이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분명히 확신하기에 장차의 모든 시간이 다 기대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선은 영생을 알고 누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알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7:3)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환경과 상황을 사용하셔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나는 기쁜 일에 기뻐하지만 날뛰지는 않고, 슬픈 일에 슬퍼하지만 눌리지는 않는다.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여행하는 동안 달리는 차 안에서 능통하지 못한 영어지만 함께 벅찬 감동으로 목이 터져라 불렀던 <주님의 선하심> 찬양이 떠오른다.
Cause all my life You have been faithful
내 모든 삶에서 주님은 신실하셨기 때문에
All my life You have been so, so good
내 모든 삶에서 주님은 너무나도 좋은 분이셨기 때문에
With every breath that I am able
나의 모든 호흡으로
I'm gonna sing of the goodness of God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할 것입니다
Your goodness is running after, it’s running after me
주님의 선하심이 날 인도하시네
(묵상 기도)
주님,
룻의 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의 걸음을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주의 백성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선하신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