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30년 전 일이다
한 때 나는 낚시에 미쳤고 , 또 소문난
강태공이었다
그 때 , 어느날 여름 ,
잔짜루 장마비가 하늘이 뚫린듯 퍼 부었다
그러자 춘천의 소양호 땜 문을 왕창 열었다
그 때 그러니까 몇백년 만에 땜 문을 왕창 열 일이 있으나 말까한 그 광경을 보려고
전국에서 개미떼 처럼 몰려 들었다
그리고 친구 형이 춘천 엔비티 기자 였는데 지방 기자라 하는일이 별로 없어
맨날 아는 사무실에 모여 고스톱이나 때리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땜문을 열자 그 형님 땜밑에서
마이크 잡고 그것도 중앙 엔비티 9 시 뉘우스에서 지른 댓가로 난중에 국장에 자리까지 오른다
그 동생 내 친구는 몇년전 골부장에서 공을 치다 ~
사장님 나니스 샷 소리에 기분이 좋았는지 그 자리서 심장마비로 즉사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각설하고 ,
그 때 , 땜문을 왕창 열자 그 밑에 있던
송어 양어장이 작살이 났다
그러자 증말 최소 50cm가 넘는 송어들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강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낚싯꾼이 우연히 낚싯대를 던졌는데 허벅다리 만한 송어가 물었던 것이다
그것이 소문이 전국에 퍼졌다
그래서 춘천땜 낚싯꾼 의암땜 청평땜
심지어 한강 낚싯꾼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를 했다
그 때 낚싯대 이름은 바로 견지 낚시이다
파리채 처럼 생긴 낚싯대에 구더기를 꿰어 강물에 떠내려 보내고 얼레질을 하는 것이다
아마 그 때 수백명이 새까맣게 일렬로 서서 얼레질을 했었다
나도 두어마리 잡아 회를 떠서 먹었던 기억과 견지낚시로 잡는 그 손맛을 지금껏 잊을수가 없다
그러면 모두 잡았는가 ?
아니다
단 몇명만 그 손맛을 보았던 것이다
나머지는 ?
개고생만 했고 좃 됐다
그리고 ?
양어장 주인은 망하고 말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송어들은 주위를
맴돌다 그 곳을 떠나 북한강 또는 한강
어딘가로 떠나버렸고 송어가 더이상 나오지 않자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던 강태공들은 자기 낚싯터로 떠나고 소양강 밑은
유유히 물만 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송어가 그 곳에 머무른 시간은 잠시였고
강태공도 잠꽌이었다 ....
첫댓글 그 때 좃된 놈이 또 있었다
청평호 의암호 춘천땜 한강 낚싯터 주위
낚시점은 파리만 왱왱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조선 낚싯터 낚시점도 파리만 졸라 잡고있냐 ?
아우님들 복두 졸라 많다
이런글도 읽고 말야 ~^^
그 때 ,
저 밑에서 눈먼 눈치 한마리 잡고
좋아서 설치던 사랑이 시키의 웃음소리가 지금까지 내 귓떼기를 때린다
히 히 히 ~^
이제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