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문수산 삼나무 숲
한송주칼럼
삼나무 숲 속에서
이 고장 장성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 있다. 장성군 서삼면 문수산 250ha에 펼쳐진 삼나무 숲이다. 이 숲은 지난해 '22세기를 위해 지켜야 할 아름다운 숲' 제1호로 선정되었다.
이 숲에 들어서면 쭉쭉 뻗어올라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거대한 상록수의 위용에 누구나 새파랗게 질리게 된다. 진초록의 바다, 거대하게 물결쳐오는 수해(樹海)의 장엄에 티끌인간의 왜소함이 절로 사무쳐온다. 잡답과 소음으로 들끓었던 저자의 세상을 저만치 끊어주는 별세계가 펼쳐진다.
'큰 나무 인간' 임종국
이미 온 몸은 초록폭포를 둘러써 흥건히 젖었고 다시 오염된 귀를 씻어 들어오는 저 산새소리 솔바람소리 계곡물소리. 그리고 이 향기. 허파를 헹구고 창자를 헹구고 머릿 속까지 시원하게 헹구어주는 이 쌉쓰름하고 그윽하고 서늘한 안식향!
그러나 이 숲길을 거닐면서 하게 되는 마음공부가 따로 있다. 서삼면에서 북하면 쪽으로 난 십리 못미치는 오솔길을 걷다보면 이 삼나무 편백숲이 일러주는 가르침에 누구나 자연히 눈뜨게 된다.
한 치의 뒤틀림이 없이 한일자로 올곧게 뻗쳐나간 절조(節操)의 수형(樹型), 풍상 상관없이 한결로 늘 푸른 상록의 감개, 반세기 넘도록 그냥 그 자리에 생울을 이루고 있는 상생의 정의(情宜)... 이런 교훈을 절로 깨치게 된다.
이쯤해서 우리는 이 숲의 내력에 대해 궁금해지게 된다. 이 숲은 자연스레 생긴 천연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선각자가 평생을 기울여 이룩한 대역사다. 강원도의 광릉숲이 한국의 대표적인 천연림이라면 이 장성숲은 우리나라 유일 최대의 인공림이다.
그 선각자는 춘원(春園) 임종국(林鐘國 1915-1987)선생. 본래 장성의 토박이 농사꾼인 춘원은 한국전쟁 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산을 보고 나무를 심지 않으면 나라의 앞날이 없다고 깨달았다. 논을 팔아 40ha의 산을 사서 그 중 1ha에 당시 최상의 목재목인 삼나무 편백 등을 심었다.
시험재배가 성공을 거두자 산을 넓히고 나무를 늘려 대규모 조림에 들어갔으며 아예 산 속에 살림을 차렸다. 당시로는 아무도 이해를 못했으며 나라에서도 본 체 만 체 했다. 그는 이 외로운 짓을 이후 20년 동안 한결같이 밀고 나갔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삼림이 무려 570ha, 250만 그루에 달했다.
그 오달진 역사는 또한 천신만고의 역사였을 것이다. 언젠가 조림 당시를 회고하면서 춘원선생은 "67년 큰 가뭄으로 묘목들이 말라 죽어갈 때 험산에 물지게로 지하수를 져날랐던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樹恩'을 모르는 세태
그러나 이 '큰나무 인간'의 업적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못한 채 되레 험악한 세태에 의해 배신을 당한다. 수입 원목에 기대는 정부의 한심한 임업정책 탓에 춘원은 20년 투자를 모두 빚더미로 앉히고 파산하고 만다. 애써 가꾼 560ha의 보림은 송두리째 남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그 한이 고황이 되어 그는 87년에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제 뒤늦게 나라에서는 춘원선생의 뜻을 헤아려 동상을 세우고 '아름다운 숲' 선정도 하는 등 부산을 떨지만 정작 춘원이 바라고 있을 올바른 산림정책 수립에는 손을 놓고 있다. 우리 땅덩이의 7할을 차지하는 산에 대한 마스터플랜 없이 한국 농림업의 미래는 없다.
장성의 삼나무 숲에 가서 향긋한 피톤치트로 삼림욕을 하면서 생각해 보라. 몇 년동안 나라 살림을 맡길 대통령 골라 심는 게 더 중요한 일인지, 백년을 두고 우리 산하를 푸르게 지킬 나무 한 그루 골라 심는 게 더 중요한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