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강-1(47-53)
http://yumhwasil.linkone.co.kr/sb-v/200903201법화경(보).wmv
우리 불자님들은 그 불교의 경전이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아주 많은 경전이 있어서 공부할꺼리가 대단히 많습니다. 우선은 이제 한글로 번역되거나 한글로 설명을 잘한 그런 것들부터 한 권씩 한 권씩 이렇게 읽고 읽으면서 이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은 이제 메모도 하고 노트에 이렇게 여러번 반복해서 써보기도 하고 소리를 내서 읽어보기도 하고, 처음에 소리내서 읽기가 경전같은거 읽기가 좀 쑥스럽죠. 속으로 뭐 혼자‘이와같이 내가 들었다.’이런 식으로 혼자 쭉 중얼거리다가 그 익숙해지면은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소리가 나옵니다.
그 참 사람의 행위 소위 그 업(業)이라고 하는 것이 참 정말 불가사의한데 그게 또 좋은 점이죠. 한 번 읽어보고 두 번 읽어보고, 처음에는 소리내기가 쑥스럽다가도 나중에는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이 내 흥에 겨워서 소리내서 막 읽게됩니다. 그래서 소리내서 읽으면은 내 소리를 내가 또 듣거든요.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게 이제 우리들의 어떤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가?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 두더라도, 하여튼 그렇게 해보면은 내가 낸 소리를 내가 들으면은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흥이 나요. 자기 노래를 자기가 들으면서 흥에 겨우듯이 경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쓰는 것도 그래요. 내가 특히 이제 경전공부는 이『법화경』에서 저 뒤에 가면 밝혔듯이 오종법사(五種法師) 다섯 가지 법사를 이야기합니다. 그게 이제 읽고 그 다음에, 첫째는 가지고 다니는 거. 경전만 가지고 다녀도 이제 오종법사중에 한 법사가 돼요. 그 다음에 이제 독(讀) 가지고 다니게 되면은 한 구절이라도 읽게 돼요. 읽고 그 다음에 읽다보면은 외우게 되죠. 송(誦) 그 다음에 이제 사경하는 거. 서사(書寫) 그리고 이제 경전에 있는 이야기 하나라도 딴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은 그 해설(解說)이라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受持 讀 誦 書寫 解說 이렇게 이제 다섯 가지를 오종법사라고 이『법화경』에서 분명히 밝혔어요. 그 다른 경전에서도 그런 말 많이합니다만은, 오종법사라고 이렇게 분명히 밝힌 것은『법화경』뿐이에요.『금강경』에도 수지 독송 서사 해설하면 공덕이 얼마나 많다. 무량하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들을 불자님들이 많이 접했을 것입니다만은, 특히 이제『법화경』에서는 그것을 오종법사다.
지니고 다니기만 해도 법사에요. 법사가 뭐 꼭 법문만 해서 법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여튼 불자는 그 핸드백속에 작은 경전 하나, 자기가 좋아하는『금강경』도 좋고『천수경』도 좋고 뭐 저기 저「관세음보살보문품」도 좋고『법화경』이면 더 좋고, 어쨌든 경전 하나씩은 지니고 다닙니다. 이걸 습관화하세요. 그것만으로도 법사가 되고 그것만으로도 공덕이 됩니다. 가지고 다니는 것만해도
그래 이제 그러다 보면 이제 잠깐 짜투리 시간 있잖아요. 심심한 시간. 누구를 가서 약속했는데 얼른 안나와서 잠깐 이제 기다리게된다든지 그럴때 책 꺼내가지고 1분만이라도 좋아. 1분동안 한 구절만 읽어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 작은 아주 짧은 시간을 그렇게 경전 한 구절로 때운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한 구절만 가지고 입에 자꾸 이제 읊조리는 거야. 혼자서‘여시아문(如是我聞)’그것만으로도 좋아요.“여시아문 여시아문 여시아문 여시아문”그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그 하나의 수행입니다.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쓰는 것도 처음에는 뭐 그야말로 참 쓰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죠. 그렇지만 이제 한 번 써보고 두 번 써보고 그렇게 자꾸 써보다 보면은, 처음에 이제 같은걸 반복해서 쓰는거야.‘관세음보살’한 백 번 써본다든지.‘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한 백 번을 이렇게 써본다든지. 그러면 백 번 쓰면 익숙해지거든요. 그러면 그『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하는 그것만 익숙해지면은 그 다음부터는 뭐 다른 글자도 역시 익숙해집니다. 그 안에 획이 다 들어있으니까.『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하는 그 한 구절속에 다른 한자의 글자 획수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에서 멀리 가 있지 않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그 쓰는 것들도 그렇게 익숙하게, 뭐 잘 쓰는 것도 좋지만은 아주 서툰 솜씨라도 그저 한 번 써보고 두 번 써보고 자꾸 써보는 그런 습관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그 아주 익숙하게 써지게 되고 또 한 구절씩 써놓고 이렇게 감상도 하고 음미도 해보고 하면은‘아 이 참 뜻이 깊구나! 스님도 설명못한 뜻이 이 속에 이러이러한 뜻이 있구나!’하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뭐『법화경』을 내가 강설하지만은 내가 미처 깨닫지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그런 내용들이 뭐 무수히 많죠.
그건 이제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자기 인생에서 느끼고 깨달으신 그런 것을 가지고 서로 연결시키고 맞춰서 보면은 정말 그 아주 참 기가막힌 그런 지침이 경전속에 있구나 하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됩니다.
제가 콩나물법문을 해가지고 유명하게됐는데, 우리가 콩나물을 키울때 물을 주잖아요. 그러면 물이 다 새나가버립니다. 다 새나가버려요. 그래도 그 물을 아침에 주고 저녁에 주고 하루 주고 이틀 주고 하다보면 어느새 거기에 움이 트고 나중에 차츰차츰 자라가지고 나중에는 이만치 자라지 않습니까? 뽑아 먹을만치 그렇게 자라게 돼요.
그 물이 다 새나가버리는데 어디서 자라겠어요? 참 신기하잖습니까? 그와같이 우리가 염불을 하는 일, 경전을 읽는 일 또 이렇게 사경을 하는 일 이런 것들도 몇 번 써봐도 아무 뭐 표도 없고 늘지도 않는다. 깝깝하거든요. 도대체 늘지를 않는다.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은, 물 그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이틀 주고 삼일 줘도 도대체 이게 움틀 생각을 안하고 자랄 생각을 안하는것 같은데 어느새 서서히 자라고 있듯이 우리가 읽는, 경전을 읽는 일, 경전을 쓰는 일도 이게 도대체 늘줄 모르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자기도 모른 사이에 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헛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어디에 그게 축적이 돼도 축적이 되고 쌓이게 되고 늘게 돼있다는 것 그걸 믿어야 돼요. 콩나물 자라는 거 믿을 줄 아는 사람은, 우리가 경전을 읽고 쓰고 하는 것이 아무리 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게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나도 모른 사이에, 뭐 쓰다보니까 더 못할 수도 있어요. 그전보다 더 못할수도 있는 거야. 그게 이제 더 못하는 게 정상이야. 더 못하다가 더 잘될려고 그렇게 뒷걸음질 한 번 치는거야.
권투하는 사람들이 힘차게 때릴려고 하면은 팔을 꼭 뒤로 빼더라구요. 뒤로 싹 빼가지고 때리면 그게 이제 쎄게 맞는거야. 그와같이 잘 되다가도 더 못써지고 잘 안되는 것은 더 그 틀림없이 그거는 이제 더 잘될 그런 그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는 그런 그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꼭 그렇게 믿으시고 하나 하나, 인생은 사실 살아보면 길어요. 그러니까 꾸준히 그저 뭐 세월아 가거라 하고 하는 거요. 하루 이틀 사이에 바짝 뭐가 발전되고 눈부시게 보이고 하는 그거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뭐 마라톤하듯이, 나는 늘 그래요.“인생은 마라톤이다.”그저 보통 숨을 쉬면서 그냥 달릴 뿐이야. 그냥, 불교공부도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이제 드립니다.
그동안 공부한 여러 천자들이 자신들이 이제 부처님의 그 말씀을 듣고 거기에 대한 소감을 쭈욱 이제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사리불이 또 부처님께 자신이 공부한 소감을 또 이야기하게 되고 그리고 나니까 부처님이 거기에 대한 답으로써
5.삼계화택의 비유
47 爾時 佛告舍利弗 我先不言 諸佛世尊 以種種因緣 譬喩言辭
이시 불고사리불 아선불언 제불세존 이종종인연 비유언사
方便說法 皆爲阿縟多羅三藐三菩提耶 是諸所說 皆爲化菩薩故
방편설법 개위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시제소설 개위화보살고
然舍利弗 今當復以譬喩 更明此義 諸有智者 以譬喩得解
연사리불 금당부이비유 갱명차위 제유지자 이비유득해
爾時에 佛告舍利弗하사대
그때에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告하사대. 그때에 爾時에‘佛告舍利弗하사대’부처님이, 사리불은 사람이름이니까, 사리불에게 告하사대. 告한다고 하는 것은 말씀하사대
我先不言
내가 먼저 말하지 아니했던가. 왜 不言을 이제, 말하지 아니했던가 하는 것은 저 뒤에 와서 새깁니다만은, 먼저해도 좋아요. 내가 먼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
諸佛世尊이 以種種因緣과 譬喩言辭로
諸佛世尊께서는 갖가지 인연들. 우리 불교 믿기시작하면 因緣이라고 하는 낱말부터 배워요. 그 참 인연도리라는 게 참 묘하거든요. 그리고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그 내용중에 가장 아주 그 훌륭한 그런 그 내용중에
하나가 이 인연도리입니다. 연기의 도리.
그 딴 종교에서는 세상이 맨 처음에 어떻게 생겼느냐? 뭐 하나님이“있으라.” 하니 있게 되었다. 그런 엉터리로 이야기를 해도 그 믿고 사는 사람들 많아요. 있으라 하니 있게 되었다. 어느날 해가 있으라 하니 해가 있게 되었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불교는 모든 존재 이 우주부터 인연의 도리로 됐다. 연기의 법칙으로 되었다. 그럼 이제 우리가 현대과학에서 이 그 지구가 처음에 생기고 그 다음에 생물이 생기고 그 다음에 사람이 생기고 한 그런 그 과정을 보더라도 전부, 예를 들어서 폭발할 인연이 되어서 지구가 폭발한거요. 옛날에 많은 그런 그 지금도 끊임없이 이 큰~ 우주공간안에서는 끊임없이 별들이 부딪히고 또 폭발하고 그러면서 또 결합을 하고 그러면 하나씩 하나씩 모이고 모여서 지구같은 이제 별이 생기잖아요.
그랬을때 별이 생겨서 처음에는 이제 불덩어리같은 그런 그 부딪히면서 서로 만나면서 불이 나거든요. 먼지와 먼지가 만나도 불이 나. 처음에, 그러면서 거기에 인력이 또 생겨.
그 주변에 있는 먼지가 하나씩 하나씩 계속 끊임없이 모이기 시작하는 거. 그 전부 인연이야. 그게, 연기라구요. 인연의 법칙이라 그게. 그래서 이제 나중에 지구만한 크기로 커지고 그래서 이제 부딪히면서 또 흡입하면서, 흡입할 때 부딪히거든요. 그러면서 또 깨지기도 하면서 열이 난다구요. 그래서 그 열이 나중에 식기 시작하잖아. 세월이 오래 가서 식기 시작하고
시간이 가면은, 시간도 이제 시절인연이라 그런것입니다. 시간이 가는 것도 시절인연이에요. 시절인연이 경과함으로 해서, 예를 들어서 이 지구가 서서히 식기 시작하지않습니까? 전부 인연도리로 설명합니다. 불교는, 그래서 기가막힌 발견이라고 그렇게 보는거요. 그러니까 현대과학이 발전할수록 불교의 이론에 접근하고 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모든 존재를‘그 본질은 공이다.’라고 보는 것도 지금 현대물리학에서도 다 이미 알아낸 일이고요. 그걸 3000년전에 부처님은 이미 다 설파를 했다 하는데대해서 정말 이제 똑똑한 사람들, 그 유럽 사람들 얼마나 그 자기들 지식과 또 어떤 그 문명의 발전에 얼마나 높고 높은 자존심을 가졌는지 말도 못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불교를 요즘 얼마나 좋아합니까? 불교이론이 너무나도 과학적인데 이렇게 이 시대에 말하자면은, 우리는 인류의 그 소위 5,6000년의 역사를 경과하면서 쌓아간 어떤 그런 그 과학적인 발견과 이론인데, 아 부처님은 3000년전에 그런 말씀을 경전에서 다 했거든요. 뭐 요즘 사람들처럼 실험은 하지 안했어요. 실험은 하지 안했지만은 다 말씀으로 팔만대장경안에 했으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알게된 유럽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들의 그 현대문명을 이끌어간 그런 그 과학발전에, 콧대높은 그런 그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교이론앞에는 그만 머리를 숙이는 거요.
그래서 이제 여기 이제 種種因緣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하게 인연도리를 이야기하는데, 심지어 이 지구가 처음 생긴것도 인연이고 그래서 식고 나서는 거기에 이제 말하자면 수증기가 생기게 되고 그래서 이제 수증기가 생기면 습기가 있게 되고 습기가 많아지면 물이 생기게 되고 물이 생기면 그 다음에 거기에 뭐가 미생물이 생기게 되고 미생물이 이제 시간이 경과하면은 그야말로 식물같은게 생기게 되고 꼼지락거리는 벌레가 생기게 되고 그게 자꾸 인연세월이 경과함으로해서 시절인연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시절인연이 플러스가 되거든요. 시절인연이 플러스가 되니까 그 봄에 싹도 트잖아요.
싹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야. 거기 시절인연이 플러스가 되야 그게 싹이 트고 잎이 피는 거여. 요즘 잎이 피는 걸 다 보지 않습니까? 그 참 묘한 거여. 나무가 살아있다고 잎이 피는게 아니여. 거기 시절인연이 거기에 만나져야,
인연이 만나져야 이제 잎이 피는거여. 그게 시절인연이거든요. 그 또 시절인연이 또 되면은 잎이 지기도하고, 그 인연으로 파악한 참 부처님의 아주 뛰어난 견해가 참 놀랍다고 지금 찬사가 보통이 아닙니다. 지금
그래서 이『법화경』에서도 여러번 나오지만은 種種因緣 가지가지 인연들 뭐 지구가 생긴 인연, 사람이 생
긴 인연, 우리가 뭐 불법을 만나게 된 인연 모든게 다 인연이다.
지금 뭐 경제시장이 어렵게 돌아가는 것도 다 그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인연이 다 있습니다. 그걸 이제 현명한 사람들은 알고 있죠. 그리고 또 그 인연도리뿐만아니라 비유와 말씀, 言辭로써
方便說法은 皆爲阿縟多羅三藐三菩提耶아
방편으로 설법하신 것은 다 이것을 위해서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阿縟多羅三藐三菩提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했더냐 이 말이여. 그것을 위한 거라고 말하지 아니했더냐. 不言을 거기다 갖다 새기는 거죠. 그러니까 阿縟多羅三藐三菩提 자주 말씀드리지만은 최상의 깨달음,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최상의 그 깨달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내가 가르치고 있는 불교 최상의 가르침이다 이런 말입니다.
내가 그 사리불에게 그전에 그런 이야기 실컷했는데, 이 사리불은 참 똑똑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아 저것은 자기보다도 더 수준높은 보살경지에 간 사람들이나 해당되는 것이고 우리에겐 해당되는게 아니다.’하는 그런 그 조그만한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가지고 귀담아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렇게 열을 내서 말씀을 드려도 귀담아 듣지 못하고 엉뚱하게 집에가서 일하다가 그게 터지는 거여.“아 이거 참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바로 내가 오늘 저지른 이 실수하고 딱 맞아 떨어졌구나.”어느 날 딴데가서 그걸 깨닫게 된다고
사리불도 마찬가지야. 과거에 부처님 수없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와서『법화경』공부하는데 와가지고 비로소 사리불이 깨닫게 되는겁니다.
사리불아 내가 먼저 諸佛世尊이 種種因緣과 譬喩言辭로써 方便으로 說法한 것은 전부 모든 사람들이 다 阿縟多羅三藐三菩提 최상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했던가?
是諸所說이 皆爲化菩薩故니라
이 모든 설한 것들이, 설한 바가 다 보살들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그래 우리 모두 보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菩薩 여러분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설한 거에요. 그 이제『법화경』은 말하자면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가장 수준높은 경전을 가르치니까 이『법화경』을 인연으로해서 불교에 처음 들어왔던지, 오늘 불교에 처음왔던지 뭐 10년만에『법화경』을 공부하게 되던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법화경』과 인연이 된 사람들은 모두가 다 보살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최고수준의 엉겹결에, 불교안에서 최고수준에 이른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게,
뭐 이 일이 무슨 이력서에 경력을 조사해가지고“네는『법화경』공부할 자격이 있다. 없다.”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그건 아무 소용없는 거에요. 이게 인연이 돼야『법화경』을 공부하게 되는 것이고『법화경』을 공부하게 된 그 인연은 오늘 불교에 처음 입문한 사람도 다 보살이야.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기, 교화하기 위해서 내가 설한 것이다. 이런 말이여.
然舍利弗아 今當復以譬喩로 更明此義호리니
그러나 사리불아, 그거 내용은 사실 그래요. 여기까지야. 부처님이 일생동안 우리들에게 가르친 전말의 그런 그 내용은 여기까지인데, 그 말가지고 얼른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이거지. 그러니까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알아들었지만은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해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비유를 하나 들겠다.
지금에 마땅히 다시 비유로써 이 도리, 이 뜻을 다시 밝히리라.
諸有智者는 以譬喩得解니라
이게 유명한 말이요. 모든 지혜있는 사람들은 비유로써 이해를 얻느니라. 得解 이해를 얻는다 그 말이여. 모든 지혜있는 사람들은 비유로써 지혜를 얻느니라.
뭐 이 책은 우리가 친절하게 음을 다 달아놔서 조금만 이렇게 정신차려서 강의를 들으면은 그게 글 새기는 순서, 글 새기는 것까지도 다 알아듣게되고 결국 익숙해질겁니다. 한문에도 익숙해질거에요. 그래 우리 불자들은 조금만 이제 정신차리고 절에 다니면은 아주 소득이 많아.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불교공부도 하고 복도 짓고 그 다음에 한문도 터득하게 되는거여. 얼마나 좋아요. 어느 종교에서 한문가르치는 종교가 어딨어? 없어요.
근데 이게 우리나라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옛날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중국하고 맞붙어있으니까 그 영향을 받아가지고 한문을 먼저 도입하고 나중에 이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를 했어. 그렇지만 그게 선조들이 공부한 한문이 쉽게 그냥 없어지나요? 그 지금까지 이렇게 내려온거야. 일본도 마찬가지고 일본도 마찬가지고, 저 남쪽으로 월남이라든지 뭐 인도네시아라든지 말레이시아라든지 중국밑으로 있는 그런 나라 태국이라든지 이런데도 마찬가지야. 우리만 그렇게 한문영향 받은게 아니에요. 중국 주변국가들은 다 그렇습니다. 그 발음이 좀 달라서 그렇지. 음이 달라서 그렇지 거의 다 한문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쩔수없이 우리는 한문으로 된 경전을 선조들이 다 공부해왔고 지금 이 세대까지 한문으로 된 경전을 이렇게 공부하게 되는데 또 좋은점이 많아요. 덕택에 한문알게 되잖아요. 한문알게 돼. 중국여행가서 어지간한 한문 다 읽는다고요. 조금만 정신차리고 공부를 하면은, 그 아주 그 소득이 많습니다. 그 덮어놓고 이게 복된다 하니까 가가지고 그냥 냅다 관세음보살만 부르면서 10년, 20년세월 그렇게 보낼게 아니고 불교안에 과연 어떤 상품들이 있는가? 백화점에 들어갔으면은 그 쭈욱 한 번 구경삼아 돌아봐야 될거 아뇨. 뭐 백화점 새로 생겼다고 내가 선전하는 것이 아니고 아 좀 구경부터 해야될거 아뇨.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 자기가 필요한 물건 그거 딱 거기가서 꼭 집어서 사면 되는 거라.
마찬가지로 불교도 불교에 입문하면은 불교에 그 저기 상품들이 어떤게 있는가 쭈욱 살펴봐야 될거 아뇨. 이게 10년이 가도 안 살피고 20년이 가도 안 살펴본다. 그만, 참 갑갑해죽겠어. 참 답답한 사람들 많아요. 아 1, 2년 같으면 내가 말도 안해. 10년, 20년 다니면서 불교안에 어떤 상품이 있는가를 좀 눈여겨보고 살펴보고 정말 뭐가 나한테 유익하고 가정에 어떤것이 좋고 내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좋은 영향을 미칠꺼리가 있느냐? 백화점에 가면 우리식구 뭐 사다줄거 선물 사다줄거 그거 눈여겨 잘 보잖습니까? 불교안에도 다 있어요. 다
그래 좀 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 여러 가지로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말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그런그 가르침들에 눈을 떠서 공부를 하면은 정말 아주 그 아주 간절하게 드린 정성과 그 노력으로 뭐 얼마나 참 지혜있고 지식도 많이 쌓이고 참 훌륭한 그런 불자가 될 수 있었을텐데 시간을 그렇게 이제 뭐 그야말로 전혀 헛소비는 아니지만은 그러나 좀 이제 발전이 더디다 하는것입니다. 발전이 너무 더디다. 그래서 이제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 지혜로써, 지혜있는 사람들은 비유로써 이혜를 얻는다. 여기서부터 이제 비유에요. 여러분들이 다 잘아는 화택비유입니다.‘화택비유(火宅譬喩) 삼계화택(三界火宅)’이 세상은 불난집과 같다.‘불난집에서 무슨 그 어린아이들처럼 장난이나 하고 있을게 아니라 부처님의 그 올곧은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정말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눈뜨도록 하라.’하는 그런 내용이에요.
여기는 이제 그야말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비유를 아주 자상하게 하고 또 이 사바세계 이 세상의 고통과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서 아주 그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48 舍利弗 若國邑聚落 有大長者 其年衰邁 財富無量 多有田宅
사리불 약국읍취락 유대장자 기년쇠매 재부무량 다유전택
及諸僮僕
급제동복
舍利弗아 若國邑聚落에 有大長者하니
사리불아 만약 國邑 나라의 어떤 읍과 어느 그 마을에 聚落에, 어느 마을에 대장자가 있다고 하자.
其年衰邁하대 財富無量하고 多有田宅과 及諸僮僕하며
그의 나이는 衰邁해. 아주 늙었다 이 말입니다. 늙었으대 그런데 재산과 그 부가 한량이 없어. 집도 한 두 채 있는 것도 아니고 논밭도 무수히 많아. 그렇게 많이 전택과 그리고 이제 종들도 무수히 많다.
인도의 지금부터 2500년 내지 2000년 이전의 사회사정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감안하고 들어야지요.
49 其家廣大 唯有一門 多諸人衆 一百二百 乃至五百人 止住其中
기가광대 유유일문 다제인중 일백이백 내지오백인 지주기중
堂閣朽故 牆壁隤落 柱根腐敗 梁棟傾危 周帀俱時 欻然火起
당각후고 장벽퇴락 주근부패 양동경위 주잡구시 훌연화기
焚燒舍宅
분소사택
其家廣大하대 唯有一門하고
그 집은 광대해. 아주 넓어. 근데 이건 비유니까, 오직 한 문만 있었다. 뒷문도 있고 옆문도 있고 앞문도 있고 그런것이 아니고 오직 앞문 하나만 있었다. 그런데
多諸人衆하대
많이 人衆이 많아. 사람무리들이 그 속에 많이 살아. 워낙 집이 넓고 큰~ 부자집이니까. 집이 뭐 그 안에 수백 채가 있다 이거지.
一百二百으로 乃至五百人이 止住其中이러니
일백, 이백 내지 오백명이 그 가운데, 그 집속에 살고 있었는데
堂閣朽故하고
堂閣 집 당(堂)자입니다. 집하고 전각들이 다 이지러지고 오래돼서, 그게 이제 연고 고(故)자를 쓴 것은 다 이제 연고가 생겼다. 이런 말은 전부 이제 기울어지고 뭐 틈이 가고 넘어지고 그저 정말 뭐 집이 허물어질 그런 상황이다 그말여. 朽故하고
牆壁隤落하며
집을 이제 받치고 있는 담이라든지 뭐 벽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전부 隤落이라. 무너지고 자빠지고 그런 상황이다.
柱根腐敗하고 梁棟傾危라
기둥과 기둥뿌리는 전부 오래돼가지고 부패했어. 기둥과 서까래나 이런 것들이 전부 이제 기울어지고 위험하게 그렇게 된 상황이다. 그런데
周帀俱時에 欻然火起커늘
두루두루 동시에 俱時에, 俱時라고 하는 건 동시에 훌연히 훌훌 홀연히해도 돼요. 홀연히 그 불이 타. 일어났어. 불이 일어나가지고서
焚燒舍宅커늘
舍宅을 焚燒하는 거요. 집을 막 태우기 시작하고 있다.
50 長者諸子 若十二十 或至三十 在此宅中
장자제자 약십이십 혹지삼십 재차택중
長者諸子도 若十二十으로 或至三十히 在此宅中하니라
장자의 여러 아들들도 20명 내지 30명이, 아들들도 또 이렇게 30명이나 되요. 또 많아.
이거 다 숫자가 또 이제 그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저 안에 또 5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었다.’하는 것도 또 5자란 숫자를 많이써요. 그게 왜 그런 이야기가 돼 있는고 하면은, 부처님의 그 가르침이 차츰차츰 발전해가지고 대승불교에 와가지고서 이런 대승경전으로까지 발전을 해서 이『법화경』이 한 500년경에,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한 500년경에 이게 결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5자를 잘 써요. 그래서 뭐 후오백년해가지고 500년씩 500년씩 끊어서 한 단위로 계산하는 그런 그 말세론도 있기도하고 그렇죠.
그래서 30명이나 되는 그 아들들이 그 집에 있었다.
51 長者 見是大火從四面起 卽大驚怖
장자 견시대화종사면기 즉대경포
長者가 見是大火從四面起하고 卽大驚怖하야
장자가 이 큰 불이 사면으로 쫓아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곧 驚怖 아주 크게 놀랬다 이 말이요.
아버지 입장에서 얼마나 놀래겠어. 아들이 30명이나 되는, 그것도 어린 아들이 30명이나 되는 숫자가 그 안에서 장난치고 놀고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요.
52 而作是念 我雖能於此所燒之門 安隱得出 而諸子等 於火宅內 樂著
이작시념 아수능어차소소지문 안은득출 이제자등 어화택내 낙착
嬉戱 不覺不知 不驚不怖 火來逼身 苦痛切已 心不厭患 無求出意
희희 불각부지 불경불포 화래핍신 고통절이 심불염환 무구출의
而作是念하대 我雖能於此所燒之門에 安隱得出이나
이런 생각을 하대. 내가 비록 능히 이 불타고 있는 이 문에서, 나야 뭐 어른이고 또 어디든지 나갈 수있고 담을 뛰어서 나갈 수도 있고 그래서 편안하게 나갈 수가 있어. 그런데 그러나
而諸子等이 於火宅內에 樂著嬉戱하야
여러 아들등이 火宅내에서 아주 즐겁게 집착해가지고 희희낙거리고 논다. 장난치고 노는 것을 嬉戱라고 그래요. 즐거움에 집착해서 嬉戱 놀이를 하면서 그렇게 즐기면서
不覺不知하고 不驚不怖하며
뭐 불이 났으면 얼마나 절실하고 급박하겠습니까? 그런 것 전혀 모르는 거야.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 못하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해. 어린 아이들은 불나면 불장난하기 좋아서 더 아주 신나하고 재밌어하는거야.
그러니까 광경을 큰~ 마을같은 그런 그 한 저택, 거대한 저택 그 안에 마당도 물론 많고 못도 있고 뭐 별별 나무도 있고 집도 수백 채나 되고 그런데 쭈욱 담이 둘러쳐져가지고 집에 문이 한 쪽으로만 딱 나있다. 이렇게 이제 한 번 상상을 해 보세요. 그래서 이제 그 안에서 이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제 놀래.
火來逼身하야 苦痛切已라도
불이 막 나가지고서 몸을 핍박해. 핍박해서 고통이 切已야. 고통이 아주 절실하고 심하다 이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心不厭患하고 無求出意로다
마음에는 厭患 마음에는 불을 싫어하거나 근심스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거기서 이제 求出할 생각도 없더라. 이런 말입니다. 나갈 생각도 없어.
53 舍利弗 是長者作是思惟 我身手有力 當以衣裓 若以几案
사리불 시장자작시사유 아신수유력 당이의극 약이궤안
從舍出之 復更思惟 是舍唯有一門 而復狹小
종사출지 부갱사유 시사유유일문 이부협소
舍利弗아 長者作是思惟하대 我身手有力이라
사리불아 이 장자가 이러한 생각을 다시하대. 나는 몸에 힘이 있다. 어른이니까 몸과 손에 힘이 있음이라.
當以衣裓이나 若以几案으로
마땅히 옷, 이 衣裓이라 하는 것은 큰 바구니입니다. 궤로 짠 아주 그 옷담는 큰 바누니라. 그거나 아니면 저기 아주 그 책상같은 거, 서랍같은 거. 큰 책상서랍같은 거 이런 것으로써
從舍出之호리라
그런 걸 이제 아이들을 거기다 담아가지고 나갈 수도 있다 이거여. 그래봤자 몇이 못 담잖아요. 한 번 하나에 그 한 사람이나 두 사람밖에 더 담겠어요? 그런 생각도 했다. 또다시 이런 생각도 하는 거야.
復更思惟하대 是舍唯有一門하고 而復狹小어늘
다시 또 이런 생각을 하대. 이 집에는 오직 이 한 문만 있고 협소야. 집이 이제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가기가 아주 협소해. 너무 좁아.
#감상곡;하이든의 현악4중주 Op.64-5 "종달새"
https://www.youtube.com/watch?v=Uzdlm5Rlw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