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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인터넷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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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김해김씨 삼현파 김극일선생의 "모암재"
김영광 추천 0 조회 197 13.11.26 12: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청도에서 제일가는 좋은땅은 어디인가? 청도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말에의하면 "일(1등)은 나부실이요.이(2등)는 화산이다" 아니면 "일은 화산이요 이는 나부실이다" 라고 한다.

 

이만큼 두곳이 명당이라는것이다.  화산은 창녕과 달성에 인접한  풍각면에 위치하고 있고 나부실은 북쪽으로 가창,동쪽으로는 이서면과 인접해 있다. 나부실은 각북면 명대리 안쪽 자연부락이다. 지금은 3농가 들이 촌락을 유지하고 있다.

 

나부실에는 바로 김극일선생의 호를 딴 모암재가 있고 모암재위로 내려오는 내룡에는 김해김씨 삼현파 웃대어른의 산소가 있다. 나부실 일대는 토지 대부분은 깁극일선생의 사시호를 딴 절효문종의 종답들이다. 이같이 김해김씨 삼현파 절효문중이 청도제일의 터를 차치하고 있다.

 

모내기가 한창인 6월 나부실(행정명칭: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찾았다. 나부실로 들어가는 마을진입로는 나즈막한 야산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바쳐주면서 무척 조용하기만하다. 모암제로 내려오는 내룡역시 온화하고 차분함이 느껴진다.

 

 김극일(克一)선생의 자는 용협(用協)이고 호는 모암(慕庵)이며 사시호는 절효(節孝)로 본관은 김해(金海)로서 의홍현감 김서(金서)선생의 아들이며 1382년 (고려 우랑 8년)에 태어나고 야은 길재(治隱 吉再)선생의 문인이다.

모암선생은 탁영 김일손 선생의 할아버지이고 삼족당 김대유 선생의 증조부이다. 세분을 삼현선생이라 일컫는다.

 

모암재 전경이다. 선생은 어릴 때 부터 총명하여 야은 길 재 (治隱 吉 再)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장에 능통하여 학문이 매우 깊었다. 선생이 태어나기전 하루는 아버지인 현감 김 서 (熙監 金 서)선생의 광에 주자(朱子)가 현몽하여 말하기를 소학 책 한권을 건내주며 아들이 출생한 후에 이 책을 읽고 깨달어면 출천지 효자를 들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날부터 태기가 있어 14개월만에 선생이 태어났다고 한다.

 

모암재의 대문 행원문이다.선생은 벼슬이 통덕랑 (通德郎) 사힌부지평 (司憲府持平)을 지내고 후에 향리에서 아들 육형제의 교육은 물론 후학들의 계도에 힘써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선생이 1456년 (이조 세조 2년 丙予)에 돌아가시니 향년 75세였다. 집의 (執義 )가 증직되고 생전의 출전지효를 칭송하고 후세의 귀감을 삼고저 향리유림과 제자들이 사시호를 절효(節孝)라 하였고 청도군 이서면 서원동에 있는 자계서원 (紫溪書際)에 봉안하고 향사 되었다.

모암제 좌향은 정남향이다. 건물을 정남향에 앉히기위해 뒤에서 내려오는 내룡에 비켜서 있다. 풍수에서는 내룡이 내려오는곳에 등을 지는것이 일반론이다. 내룡내려오는 방향으로 모암제를 앉힌다면 좌향은 남서향이 된다.

 

서쪽별당채이다.사랑채역시 팔작지붕으로 아주 고풍스러운 멋을 부리고 있다. 기단도 2단으로 대청마루에 앉으면 마상에 선사람과 어굴을 마주할수 있다.

동쪽 별당채이다,우측은 화장실이다.  

모암제 본채에서 밖으로 바라본 행원문이다.

우측은 행랑채이고 좌측은  도장채이다. 맨위층은 맞배지붕이고 아래층은 팔작지붕으로 되었다.

담모퉁이 핀 아름다운꽃이다.

 

모암제 마루이다.

 

호랑이 문양

 

용문양

 

 

 

석가래가 이중으로 되어있다.

 

별당채의 청마루

모암재 우측 산길위에서 바라본 모암재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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