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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먹는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선술집. 그 이름이 정겹다. 나라마다 있을 이런 류의 술집을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 이름이 분위기에 딱 맞다 싶다. 비싸지 않은 술에 가벼운 안주를 곁들인 선술집은 호주머니가 썰렁한 사람들에겐 카타르시스를 위한 최상의 장소다. 이는 동서양에 차이 없고 시대도 초월할 성 싶다. 세계 여러 나라의 선술집 순례 길에 나서보자. 여기서 말하는 고대 오리엔트는 지중해의 동쪽 유프라테스강 하류에서 번영을 누린 바빌로니아제국이 있었던 지역을 말한다. 지금의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이다. 이곳에는 기원전 18세기부터 선술집이 존재했다. 당시에도 선술집엔 하층민들만 출입했으며 귀족들로부터 멸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대신 선술집은 대부분 무료였기 대문에 서민들은 귀족들의 무시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다가 유료인 경우엔 보리로 지불했으며 선술집에선 어떠한 계략모의행위나 여자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조항이 함무라비 법전에 규정되어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와인, 맥주 및 증류주가 유행했다. 주점의 시작은 종교에 크게 힘입었다. 특히 유대교와 초대 기독교는 음주를 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종교가 전파되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주점이 발달하게 되었다.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로 전파되어 주점이 숙박소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따라서 그리스 주점에는 그리스인 외에 외국상인, 순례자, 폭력배, 방랑자, 노예출신 뱃사람, 그리고 일반노동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매춘과 도적떼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로마에 주점이 생긴 것은 기원전 2세기 들어서였다. 로마 주점도 주로 하층민이 즐겨 찾는 곳이었지만 2대 황제 티베리우스, 3대 카리구라, 4대 클라우디우스, 5대 네로 등 황제들도 드나들며 낭만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로마제국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선술집도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농노들의 토지경영이 가능해지면서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상호 교류가 활발해지고 때마침 십자군전쟁으로 순례자들의 내왕이 활발해진 것이 선술집 등장의 중요 이유가 되었다. 영업권을 주었기 때문에 지방의 호족이나 교회와 수도원이 앞 다투어 주점 개설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자 금방 나라 안이 술집으로 넘치게 되어 일반 백성의 주점 개설을 규제하는 주점 영업 금지 규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켈트인들이 페니키아인들로부터 맥주 양조 기술을 배웠으며 11세기 선술집이 생겼다. 당시 맥주는 알코올이 포함되지 않은 non 알코올이었다. 켈트인들은 맥주를 ‘에일(ale)’이라고 불렀으며 주점을 ‘에일 하우스’ 라고 했다. 처음엔 주로 신분이 낮은 모직물 직조나 피혁업자들이 선술집을 경영했으며 주점이 면허에 의한 전문업으로 인가된 것은 16세기 중엽부터이다. 옥스포드대사전은 퍼브를 “술을 마시고 친구를 만나는 장소”로, 그리고 중세 영어인 태번(tavern)은 오두막을 뜻하는 헛(hut) 또는 부스(booth) 라고 정의하고 이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옥스포드대학이 1167년에 설립되었으니 이 퍼브(pub)는 긴 연륜을 감안하면 대학과 형, 아우 사이라 해도 무방할 듯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기원 전 1세기 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으며 시저가 갈리아지방을 점령한 후 로마인들이 와인을 전수하면서 오늘날 와인왕국이 되었다. 포도 재배는 처음 남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며 10세기부터는 왕과 가까운 교회와 수도원이 세느강과 르와르강 유역으로 재배지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다 11세기 들어 바이킹의 침공을 계기로 브르고뉴지방이 포도 재배 중심지가 되었고 이어 재배 지역이 급속도로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당시의 선술집은 오베르쥬와 호텔로 불린 숙박을 겸한 것과 대중성 주점으로 춤도 추는 카바레의 두 종류가 있었다. 이 시기부터 포도주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선술집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프랑스 전체로 1789년에 10 만개 정도였던 선술집이 1830년대에 28만개, 1914년대에는 50만개가 넘었다. 초기 선술집은 노동자들의 집회 장소와 직업 알선 및 노동쟁의 협의 장소 등으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독일의 선술집도 교회와 수도원이 순례자들에게 술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독일에서는 선술집을 아예 ‘수도원 선술집’이라고 불렀다. 독일의 주류는 맥주가 위주였다. 수도원이 11세기 초에 세운 바이엔 슈테판 맥주양조장은 세계 최초의 맥주 공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독일의 선술집은 16세기 중엽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선술집은 단순한 주점 형식을 떠나 농민들의 집회소와 잡화 및 식료품 판매에다 재판정소와 은행 그리고 군인 모집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역할을 담당했다. 나치스가 등장하면서 다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치스 통치 기간 중에서도 나치 지지 기반인 중산층이 이용한 뮌헨의 '호프브로이 하우스' 와 같은 거대한 카페 형식의 주점은 계속 번영을 누렸다. 히틀러가 국민사회주의 국민노동자당을 결성한 장소가 이 '호프브로이 하우스'였다. 하기 시작하여 말엽에는 미국 전역에 30여만 개소에 이르렀으나 1919년의 금주법에 따라 주류 판매가 중단됨에 따라 위축되었다가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어 그 주점수가 급속히 늘어났다. ‘하누트’라는 이름의 선술집이 성행했다. 술의 종류도 지역에 따라 달라 예멘에서는 벌꿀로 만든 술이 그리고 북부지방에는 와인과 맥주가 주종을 이루었다. 지금은 주류가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으나 권력층의 음주는 중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선술집 역사는 16세기의 에도막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일본 이름 그대로 이자카야 (居酒屋)라는 간판을 내건 선술집이 쉽게 눈에 뜨이지만 이 이름은 1980년대에 들어와 이자카야의 체인이 생기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자카야라는 말은 사카야(酒屋)에서 계속해서 마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전에는 사카바(酒場)라고 했다. 긴 나무대에 술잔을 올려놓는 이른바 목로주점이었으며 이는 6.25 전쟁 전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성업중인 대폿집은 해방 후에 생겨난 선술집이다. 이름대로라면 포장마차가 가장 선술집에 가까운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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