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의 홀리테크] 난임·불임 치료 패러다임이 바뀐다.
정자·난자 없이 만든 ‘인간 합성 배아’
受精 이후의 ‘神의 비밀’ 풀리나
정자와 수정한 인간의 난자는 200개의 세포로 구성된 속이 빈 공 모양으로 발달하면서 자궁벽에 착상합니다. 이후 수주에 걸쳐 사람을 구성하는 개별 조직으로 분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겁니다. 임신의 30%는 첫 주에 실패하고, 다른 30%는 착상 중에 실패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계속 연구해 왔지만 뚜렷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불임·난임 연구가 실험실의 동물 모델이 아니라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연례 회의에서 발표된 연구 성과가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마그달레나 제르니카-괴츠 교수 연구팀과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제이콥 한나 박사 연구팀이 각각 “정자와 난자 없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간 합성 배아’를 만들어냈다”고 했습니다. 생명 탄생의 신비를 밝히려는 노력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실제 인간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아직 없다고 해도 인공 배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과학연구소(WIS)의 제이컵 해너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초기 인간 배아와 흡사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줄기세포를 합성했다. WIS가 줄기세포를 합성하는 과정을 영상화했더니 ①, ②, ③ 순서로 구조와 모양이 달라졌다.
/와이즈만과학연구소
줄기세포 이용한 합성 배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인간 합성 배아를 만들어낸 것은 두 연구팀뿐만이 아닙니다. 중국 쿤밍과학기술대,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배아를 만들었습니다. 모두 줄기세포를 이용했습니다.
제르니카-괴츠 연구팀과 한나 연구팀은 지난해 쥐의 배아 줄기세포를 사용해 쥐 합성 배아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생쥐 합성 배아를 뇌와 장기 발달 단계까지 진행시켰습니다. 뇌가 발달하고 심장이 뛰는 마우스 배아를 실제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인간 합성 배아는 발달을 중간에 멈췄지만 만든 원리는 같습니다. 배아는 자궁에 착상할 때쯤 세포가 여러 유형으로 갈라집니다. 어떤 종류는 몸의 세포를 생성하고, 다른 유형은 태반처럼 발달 중에 배아를 둘러싸는 조직을 생성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세포 유형 중 일부를 모방하도록 줄기세포를 각기 유도한 뒤 섞었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배아 줄기세포는 불임 클리닉 환자에게서 기증받았습니다. 세포들은 무리를 이루며 조직화하기 시작했고, 배아가 될 세포는 가운데에 모였습니다. 다른 유형은 배아 바깥으로 자연스럽게 밀려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치 배아 같은 모델이 만들어졌습니다. 각 연구팀은 각종 장기가 생겨나기 직전인 배엽 형성 단계로, 자연적으로 착상한 배아의 6일에서 14일 정도 시기를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것 가운데 가장 진보한 인간 배아 모델입니다.
그래픽=김의균
난임·불임 치료의 전환점
물론 인공 합성 배아가 실제 인간 배아의 모든 특징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계속 실험실에서 키운다고 해도 인간이 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블랙박스’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수정 이후 배아 형성까지의 비밀을 연구하는 목적으로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공 배아 모델이 실제 배아와 발달 과정이 동일하다는 점이 확인되면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신한 여성이 어떤 약물을 복용하거나 특정한 음식을 섭취했을 때 배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바이러스 감염이나 유전적 돌연변이 같은 잠재적 난임·불임 요소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대규모 실험이 가능해집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번 배아 모델은 현재 과학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인간 배아 발달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난임·불임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획기적인 연구인 만큼 논란도 거셉니다. 특히 기술적인 차원보다는 법·윤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 연구가 계속 발전한다면 실제 장기가 형성되는 ‘생명’ 단계의 무언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배아를 배양할 수 있는 기한을 14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인간 생명체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가 있는 셈입니다. 반면 줄기세포로 만들어진 합성 배아의 경우 생성이나 처리를 규제하는 법률이나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물론 합성 배아가 단기간에 실제 인간을 만드는 데 활용될 가능성은 없고, 기술도 충분치 않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이 만든 배반포 유사체(blastoid). 인간 배아 줄기세포로 만들었다.
/미국 텍사스대
논란 끊이지 않는 생명공학
연구자들은 연구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는 방식으로 논란을 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제르니카-괴츠 교수는 “우리 연구 목적은 생명 창조가 아니라, 배아 수정과 착상에서 일어나는 손실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임신이 왜 실패하는지를 발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험”이라고 했습니다. BBC는 “과학자들은 합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실험의 시작은 전통적인 배아에서 배양된 세포”라며 “줄기세포 합성 배아 역시 인간 배아와 더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사용 방법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지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비롯한 첨단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의학·생명공학계에서는 이 같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에는 중국의 한 교수가 배아 상태의 쌍둥이 유전자를 편집해 엄마의 자궁에 착상시켜 세계 최초의 맞춤형 아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2015년 세계 과학계가 “유전자를 편집한 인간 배아를 착상시키는 것은 비윤리적 행위”라고 합의했지만 어디까지나 선언에 불과했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항상 두 얼굴이었습니다.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고 발전을 이끌었는가 하면, 누군가는 이를 악용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이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인공 배아 연구자들의 포부도 언제 누구에 의해 변질될지 모릅니다. 참사를 막기 위한 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 조선일보 2023.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