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할 때에는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고 너도나도 쉽게 말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장기투자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떤 투자가 장기투자인지를 명확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장기투자를 논하는 대다수 는 섣부른 단기매매를 하다 손실을 본 사람들이 손실의 이유를 단지 ‘장기투자를 하지
않아서’로 치부해버리는 경우이다. 즉 장기투자를 손쉬운 변명으로 삼아 면피하는 것이다.
개중에 주식을 좀 연구했다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기는 한다. 시장의 고점에서 주식을 사더라도 10년 이상을 기다리면 수익이 난 다든가, 경제는 장기적으로 좋아지게 마련이라든가,
복리의 마술이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의견 역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코스피는 1989년 1000포인트를 찍은 이후
2005년까지 무려 16년간 박스권을 탈출하지 못했다. 2007년에 달성한 2000포인트 고점을 유의미하게 돌파하지 못한 지도 7년째다. 코스닥
지수도 2000년의 283포인트(현재의 2830포인트)에 비해 14년이 지난 현재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타이완의 가권지수나 일본의
니케이지수 역시 10년 넘게 횡보한 이력이 있다.
그래도 그 이상의 기간을 기다리면 결국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나,
장기간 제국의 흥망성쇠를 고려하면 이 또한 환상이다. 전 유럽을 호령하던 로마 제국은 3세기 중반 군인 황제 시대 이후 5세기 서로마 멸망까지
200년간 쇠퇴기를 거쳤다. 17세기 튤립 버블 시기에 튤립뿌리 한 근을 당시의 최고가였던 4000만원 정도에 샀다면,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손실은 회복되지 않는다.
혹자는 복리의 마술을 거론한다.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들도 복리의 마술을 이야기한다. 월 10%만
수익을 내도 1년이면 원금이 세 배로 불어난다고 말이다. 이 투자가 실패하는 이유는 월 10%를 꾸준히 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장기투자를
해야만 복리의 마술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장기투자 해야 하는 진짜 이유
장기투자에 대한
수많은 환상을 제쳐두고 나면,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투자포인트와 투자기간을 일치시키기 위함이다.
한 교실에
고등학생들을 쭉 앉혀놓고 1년 후의 수능시험 성적이 가장 좋을 것 같은 학생을 고른다고 상상해보자.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할 것 인가? 그 동안의
시험 성적, 수업 태도, 교우 관계, 집안 환경, 과외 학습의 양과 질, 체력, 끈기,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긴장감에 대한 내성 등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럼 그 결정을 변경할 때는 언제인가? 내가 세운 그 기준에 따른 평가 결과가 달라질 때이다. (물론 평가 기준이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논외로 하자.) 예를 들어, 체력이 좋아서 장시간 공부할 수 있는 점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는데, 해당 학생이 갑자기
잔병치레가 많아지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이다. 실제 투자자들의 행태는 이와 전혀 달라서, 마치 체력이 좋은 학생을 선택해놓고는 그
학생이 바로 다음날 휴일에 낮잠을 많이 잤다고 선택을 철회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루 이틀 사이에 단기적인 주가의 변동을 예상하기는
힘들다. 물론 예상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그에 따라 단기 투자를 하면 된다. 대부분 은 투자아이디어는 기업의 본질적인 부분, 즉 신사업의
성장이라든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 재평가된다든가 하는 것들에 대한 전망이다. 기업 의 본질적인 부분의 변화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 전망이 옳았는지를 검증하는 것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린다.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식형 펀드에 돈을
맡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한 가지다. 나보다 주식투자를 더 잘 할 수 있는 펀드매 니저에게 돈을 맡기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펀드
투자의 기준은 믿을 만한 펀드매니저가 좋은 환경에서 운용을 잘 하느냐이다. 그러나 실제 펀드 투자자들은 ‘최근 가장 인기 좋은 펀드’에
가입하고, ‘5% 수익이 나면’ 환매하고 다른 펀드로 갈아탄다. 아니면 몇 년 간 손해를 본 채로 ‘물려’있다가 원금을 회복하자마자 환매하고
추가수익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는 이도 있다.
주식투자자와 펀드투자자 모두 투자포인트와 투자기간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행태가
만연하며, 이런 식으로는 지속적인 수익을 낼 가능성이매우 낮다. 행여 수익이 난다 하더라도 그저 운이 좋아서일 뿐이다.
나머지 함정을 피하는 법
그럼 투자포인트를 잘 반영하여 투자기간을 길게 잡았다고 해서 투자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전혀 아니다. 성공투자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충족시켰을 뿐이다. 다음 단계는 투자포인트의 지속적인 검증이다. 앞의
사례로 비유하자면, 수능일이 오기까지 막연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해당 학생이 목표한 진도는 잘 나가고 있는지, 컨디션은 괜찮은지 등 시험 준비
과정을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장기투자는 ‘비자발적 장기투자’이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주가가 빠졌다. 기업의 본질은 변하지않아, 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그러면 결국 기업이 상장폐지될 때까지 운명을 함께할
뿐이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나의 투자포인트가 틀리지 않았는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악재가 있지 않는지, 내가 보았던 투자포인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 끊임 없이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내가 틀렸다고 판단했을 때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투자를 철회할 수 있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펀드의 장기투 자도 마찬가지다. 장기투자를 주장하는 객장 직원들의 본심은 결국, ‘펀드에서 돈을 빼면 회사에 떨어지는 수수료가 줄어드니까 그냥
이대로 버티세요.’이다. 여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자 스스로 해당 펀드에 돈을 맡겼던 이유, 즉 ‘믿을 만한 펀드매니저가 여전히 자신의
역량을 잘 유지하며 운용에 임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장기투자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장기투자는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아주
기초적인 방편일 뿐, 그것만이 정답도 아니고, 그것만으로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