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102 (화) 이낙연 "신당 창당"… 비명 4인방도 '헤어질 결심’
더불어민주당의 계파 갈등이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비주류의 탈당이 잇따를 가능성이 커지면서 자칫 분당 사태로까지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가운데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비명(비이재명)계 4인방도 탈당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이들은 금주 초 이재명 대표를 상대로 통합 비상대책위원회 수용을 촉구하는 최후통첩에 나설 예정이어서 새해 첫 주가 당 내홍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전 대표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 고양시 행주산성에서 이석현 전 의원 및 최성 전 고양시장 등 신당 합류를 선언한 인사들과 지지자들이 참석하는 신년 인사회를 열고 창당 결심을 거듭 강조할 예정이다. 공식 창당 선언을 위한 자리도 조만간 마련할 방침이다. 그는 전날 이재명 대표와 회동을 마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며 탈당을 시사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연말을 시한으로 요구한 '대표직 사퇴 및 통합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이재명 대표가 거절하면서 더는 협상의 여지가 없어졌다는 이유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날 서울 모처에서 측근들과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창당 선언 시점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일단 창당 선언은 1월 4일쯤 하고, 발기인 대회는 1월 중순께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관건은 이낙연 전 대표가 탈당해 신당 깃발을 들었을 때 그를 따라 나갈 인사들이 얼마나 될지다.
일단 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의원 등 비명계 현역 4인방 모임인 '원칙과 상식'은 탈당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이들은 4명 모두 '공동 행동'을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번 주초 최종 논의를 거친 후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원칙과 상식에 소속된 한 의원은 연합뉴스에 "이번 주 초에 통합 비대위를 수용하라는 최후통첩을 할 예정"이라며 "이 제안을 안 받으면 이전에 말씀드렸던 4가지(잔류·탈당·총선 불출마·신당 합류) 중 하나의 결단을 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만약 탈당할 경우 '이낙연 신당'에 당장 합류할 가능성엔 선을 긋고 있지만, 총선이 임박해선 결국 힘을 합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원칙과 상식의 다른 의원은 "현 상황에서 탈당 가능성이 높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이 전 대표의 신당엔 합류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국민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당 내홍의 위기를 맞은 이재명 대표는 총선 정국에서 '분열은 필패'라는 인식 아래 원심력이 더 커지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총선 승리를 위해 하루속히 혼란을 수습하고 본격 선거 체제로 당을 재편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표는 새해 첫날인 다음 달 1월 1일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한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로 민주당 정신의 근간을 되새기며 당내 단합을 다질 방침이다.
이튿날인 1월 2일엔 경남 양산의 평산마을을 방문,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당 상황 대응과 총선 전략 등에 대한 조언을 두루 구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명분 없는 사퇴 요구로 분열을 조장하던 이낙연 전 대표가 탈당하면 오히려 이재명 대표가 '그립'을 더 강하게 잡고 총선을 지휘할 동력이 커질 수 있다"며 "공천 혁신 등 필승 전략 구상에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선우 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관련 질문에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의 (지난번) 만남 이외에 더할 말씀은 없다"며 "민주당 입장은 한결같다. 총선을 위해 단합,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24%, 이재명 22%… 차기 대선주자 순위 첫 역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 즉 장래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나’라는 물음에 응답자의 24%는 한동훈 위원장을, 22%는 이재명 대표를 꼽았다.
두 사람은 갤럽 조사에서 지난해 9월 이후 줄곧 1·2위를 차지했으나, 한동훈 위원장이 앞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밖에 지난해 12월 27일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3%,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은 2%, 김동연 경기지사,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1%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와 똑같은 문항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선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한 위원장의 선호도는 11%(6월)→12%(9월)→14%(10월)→13%(11월)→16%(12월 초)→24%(12월 말)로 약 반년 만에 13%포인트 상승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이재명 대표의 선호도는 22%→19%→22%→21%→19%→22%로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연령별로는 60대(41%)와 70세 이상(39%)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확고한 우위를 보였다. 반면에 이재명 대표는 50대(34%)와 40대(32%)에서 선호도가 높았다. 30대에선 이재명 대표(16%), 한동훈 위원장(11%) 외에도 홍준표 시장(6%), 이준석 전 대표(5%) 등이 높게 나타났다. 18~29세에선 이재명 9%, 한동훈 8%, 홍준표 5%, 이준석 4% 등이었다.
지역별로는 부산·울산·경남(33%)과 대전·세종·충청(31%), 대구·경북(30%) 응답자가 한동훈 위원장을 선호했고, 광주·전라(39%)와 제주(25%)에서 이재명 대표 선호도가 높았다. 서울은 한동훈 24%, 이재명 22%, 인천·경기는 한동훈 24%, 이재명 27%로 수도권은 경합 양상이었다. 이번 조사에선 정치 성향별로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렸다. 보수층은 49%가 한동훈 위원장을 장래 정치 지도자로 꼽았으나, 진보층은 50%가 이재명 대표를 선호했다. 중도층은 한동훈 위원장 17%, 이재명 대표 16%로 엇비슷했다.
전문가들은 한동훈 위원장이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컨벤션 효과’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보수층에서 분산돼 있던 차기 주자 선호도가 확 쏠리기 시작했다”며 “반(反)민주당의 반사 효과가 집중됐다는 측면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입문 당시와 비슷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2021년 3월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직후 같은 조사에서 9%(2021년 2월 2~4일)→24%(3월 9~11일)로 한 달 만에 15%포인트 상승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한동훈 위원장과 이재명 대표의 입지는 결국 100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 결과에 달려 있다고 관측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한동훈 위원장은 새로운 스타일이 장점이지만, 대통령실을 설득해 중도층이 요구하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역시 야당 내 원심력이 커지는 상황에 대해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 1441일 만에 운영 종료
전국 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운영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서울 광진구 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오후 1시가 되자 직원들이 뒷정리를 시작했다. 일상적인 퇴근 같았지만 불을 끄고 선별진료소를 나서는 한 직원의 얼굴에는 시원섭섭함이 남은 듯 보였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전국 보건소에 설치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 506곳이 문을 닫았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해 문을 연 이후 1441일 만이다. 2024년 1월 1일부터는 일반 병·의원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선별진료소 무료 PCR(유전자증폭) 검사 대상자인 60세 이상과 12세 이상의 기저질환자·면역저하자 등은 일반 병·의원에서도 무료로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서울의 봄’ 정병주·김오랑의 진짜 비극은 '12·12 쿠데타' 이후
1000만 관객을 훌쩍 뛰어 넘은 영화 ‘서울의 봄’ 흥행 돌풍으로 1979년 12·12 군사 반란(쿠데타)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 세력과 맞섰던 군인들(진압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장군만큼의 비중은 아니지만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당한 특전사령관 공수혁 장군(정만식 분)과 숨진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오진호 소령(정해인 분)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공수혁과 오진호의 실제 인물이 정병주(1926∼1989) 특전사령관과 김오랑(1944∼1979) 소령이다.
두 사람은 군인 본분을 잊은 반란 세력의 야욕과 오욕의 역사를 부끄럽게 만든 진짜 군인이었지만 본인과 가족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등 비극적인 가족사가 이어진다. 학군(ROTC) 출신 특전사 예비역 대위로 ‘김오랑 중령 추모회’를 이끌어 온 김준철씨가 펴낸 김오랑 평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에는 정병주, 김오랑과 관련한 안타까운 사연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비운의 사령관’으로 기억되는 당시 특전사령관 정병주(육사 9기) 소장은 자신이 끔찍이 아꼈던 부하들의 믿기 힘든 처신에 대해 사태 후 이렇게 분통을 터뜨린다. “부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배신하여 반역하거나 피신한 데 대하여 허망함을 느꼈다.” 특전사령관을 5년간 역임했던 정병주는 특전사로 오면서 ‘정규육사’(육군사관학교가 4년제가 된 11기부터 배출된 육사 장교)’ 11기 전두환·노태우·정호용, 12기 박희도·장기오, 13기 최세창 등 예전 공수특전단에서 근무한 경험자들을 상당수 데려왔다.
이 중 12·12쿠데타 당시 제1공수여단장이었던 박희도는 여단장 선발 과정에서 정병주의 도움을 받았다. 1978년 11월 충남 광천 지역에 침투한 3인조 무장공비 소탕작전의 실패로 예편 위기에 놓였을 때도 정병주가 나서 구원해주기도 했다. 제3공수여단장 최세창은 중령 시절부터 정병주 밑에서 작전참모로 근무하며 대령과 준장 진급 때 큰 도움을 받은 심복 부하나 다름없었다. 제5공수여단장 장기오 역시 동기생 중 마지막으로 준장 진급을 할 때 도와준 정병주에게 충성맹세까지 한 인물이다. 그랬던 이들이 육군 사조직 ‘하나회’를 만든 전두환 주도 쿠데타 세력의 주역으로 활약할 줄은 정병주는 꿈에도 몰랐을 테고 그만큼 충격이 컸다.
두 차례 수술 끝에 회복한 그는 끝까지 12·12 쿠데타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며 역사의 심판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12·12 쿠데타에 대한 단죄를 언급하기 어려웠던 1987년 11월 한 기자회견에서는 “12·12를 하극상이라고 단정하고 지휘책임을 다 못한 책임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을 해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그 무렵 심장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준비를 하고 있던 장태완(영화 속 이태신 모델)에게 편지를 보내 “육신은 자기 의사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역사의 증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그 증언이 끝날 때까지 건강하시라“고 당부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1989년 3월 집을 나간 지 139일 만에 경기도 양주 송추유원지 부근 야산에서 목을 맨 사체로 발견됐는데, 63세 였을 때다. 당국은 신병악화와 사업실패 후유증 등으로 인한 비관자살로 처리했다. 하지만 유서 한 장 없이 사망 현장 주변에는 빈 소주병 3개와 종이컵 등이 나뒹굴 뿐 이어서 많은 의문이 생겼다. 더욱이 그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세례명 요아킴)였다는 사실에 ‘자살을 위장한 타살’이란 의혹도 불거졌다. 이 때문에 정병주가 잠든 서울현충원 묘비는 비문이 없는 백비(白碑)의 한이 서려있기도 했다.
앞서 그는 쿠데타 당시 보안사 요원의 감시로 외부 소식을 차단 당해 뒤늦게 김오랑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김오랑이 큰 부상을 당한 줄로만 알았던 그는 이후 부인과 함께 김오랑의 아내 백영옥을 위로하며 돌보기도 했다. 1년에 한두 번씩 김오랑 묘를 찾아서는 “죽기 전에 반드시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을 규명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겠다”며 부하의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김오랑은 곧바로 현충원에 묻히지 못하고, 시신이 특전사 뒤 야산에 방치돼 있었다는 말도 전한다. 이후 특전사 내에서 장례가 치러지고, 현충원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듬해 2월 28일에서야 안장됐다. 이 과정에서 아내 백영옥은 남편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운명에 오열하다 쓰러져 실신하기도 했다. 그때의 심한 충격으로 가뜩이나 안 좋았던 시력이 더 악화됐다.
그해 5월 친정 부산으로 내려간 그녀는 시신경 마비 증세가 심해지면서 결국 앞도 못 보게 된다. 하지만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의지로 지역 봉사단체를 이끌었고, 1990년에는 야당(평민당) 총재이던 김대중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백영옥의 노력에 힘입어 그해 1월 30일 국방부는 마침내 10년 만에 김오랑의 중령 진급을 추서했다. 그런데 ‘민원인의 요구’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국방부 측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것 같지는 않다고 저자 김준철은 해석한다.
백영옥은 그해 12월, 현직 대통령 노태우와 직전 대통령 전두환을 비롯해 최세창, 박종규(김오랑의 육사 23기 선배로 사이가 각별했던 그는 반란 당시 최세창의 명을 받아 전병주 체포에 앞장섰다.)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에 나선다. 이는 신군부를 향한 최초의 법적 대응으로 상징성이 컸다. 그러자 소송을 바라지 않는 세력의 협박과 압력에 시달렸고, 그 여파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끝내 낯선 남자의 감시를 받으며 입원생활을 하던 중 외압을 견디지 못하고 소송할 기회를 놓친다.
이후 다시 헤어날 수 없는 충격과 절망 속으로 굴러떨어진 백영옥은 1991년 6월28일 새벽, 자신의 봉사단체 건물 아래 주차장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은 사체 부검 후 사인을 실족에 의한 추락사로 결론냈다. 유족들은 성인 허리 높이의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는 게 말이 안 되고, 그토록 한이 많은 사람이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했을 리도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
44살에 남편이 있는 하늘로 간 백영옥의 시신은 화장돼 부산 영락공원 봉안 시설에 안치됐지만 그 후 연고자의 갱신 요청이 없어 무연고자 임시 보관소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9년 부산시립묘지 외곽 무연고자 묘역 안쪽 터에 뿌려졌다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 없이 잊혀지고 있다. 김오랑의 베트남전 파병 시기에 주고 받은 위문 편지를 시작으로 애틋한 사랑을 키우며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부부가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한편, 김오랑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은 그의 성장기와 1965년 육사(25기) 입학 후 훌륭한 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 35세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생생하게 담겼다. 특히 반란군이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러 특전사령부에 들이닥친 후부터 벌어진 상황을 묘사하는 대목은 영화보다 더 긴박하고 극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펼치면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재조명되는 김오랑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2024 갑진년 새해 첫 산행은 단구동 야산 옥녀봉으로....!!!!!!
09:10 옥녀봉 가는 길.......
충주로 이어지는 19번국도.... 남원로
천매봉길.......
하양어린이공원........
남원주중학교.......
단구근린공원 시벽(詩壁).......
시청로........
옥녀봉 오름길 81계단......
옥녀봉 쉼터........
안개 속에 가려진 명봉산 - 배부른산......
희미한 백운산......
안개로 흐릿한 치악재........
09:45 옥녀봉 230m 정상에......
지난 연말에 내린 눈이 녹지않은 옥녀봉 능선길.......
옥녀봉 둘레길.......
단구공원 보행육교........
구곡사거리......
10:00 여성가족공원으로 하산.......
원주 아트갤러리........
원주 구곡초등학교
원주시립중앙도서관.......
강원지방우정청 / 원주우체국
시네마 11번가........
남원로.......
10:27 삼성으로.......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