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연륙교 원통하고 한 맺힌 다리, 영도다리
인기멤버
hanjy9713
2024.05.17. 22:45조회 5
댓글 0URL 복사
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연륙교
원통하고 한 맺힌 다리, 영도다리
요약 1934년 11월, 총 214.63m 길이의 부산항과 영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인 부산대교.
일제는 부산과 영도 사이의 원활히 하기 위해 도개식 다리를 만들어 많은 인구가 구경하러 옴.
다리를 만드는데 동원된 인부들이 산사태에 많이 죽었고 유독 영도다리에 자살자가 많았음.
다리가 올라가면 차량들이 늘어서고, 영도에 상수도를 놓기 위해 1966년 결국 도개교를 고정시킴.
부산항과 영도를 연결하는 부산대교는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 가설된 연륙교다. 원래 이름이 부산대교였지만 사람들은 영도다리라고 해야 금방 알아듣는다.
이 다리가 가설된 건 1934년 11월. 1년 8개월간의 대공사 끝에 준공되었다. 총 길이는 214.63m, 다리 위 너비는 18m, 2차선으로 그중 5.4m는 인도였다.
일제가 이 다리를 놓은 것은 부산항과 영도 사이의 왕래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부산과 유인도인 영도를 오가려면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 다리를 놓는다는 말이 나돌 때부터 여론은 좋지 않았다. 특히 해운업자들은 다리 아래를 통과해야 하는 위험을 지적했으며, 무엇보다 대형 선박은 지날 수 없었으므로 다리 가설은 낭설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압록강 다리가 옆으로 돌면서 열렸다 닫히는 회전식으로 된 점을 아는 사람들은 혹시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설계되어 발표된 것은 위로 치켜올려지는 도개식(跳開式)이었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준공식 날엔 인근 부산·김해·밀양 등지에서 6만이나 되는 인파가 몰려왔다. 당시 부산 인구가 16만이고, 영도 인구가 5만이었으니까 준공식 날 얼마나 붐볐는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리가 올려지는 부분은 부산쪽 31.3m였다. 이 부분이 하루 여섯 차례식 들어올려졌던 것이다. 그러면 1천톤 급 기선이 이때를 이용하여 통과했다.
인파가 몰린 건 바로 그렇게 도개되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고, 부산의 명물이 되었다.
올려진 영도다리
그러나 그런 화제의 뒷전에 피와 눈물이 어려 있다는 사실 또한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바로 다리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 다리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었다.
공사는 먼저 영선초등학교와 해동고등학교 자리의 산을 깎아 양안을 매립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산사태가 나 많은 노무자들이 비명에 갔다. 그래서 다리 공사 내내 밤이면 이곳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풀 길 없는 한이 이 다리에 서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 다리는 세워지고 나서 자살자가 많은 다리로도 유명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 난간 위에서 바다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자는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일제의 수탈에 견디다 못해 죽음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원통해서 죽고, 억울해서 죽는 사람들이었다. 기막히게도 영도다리는 그렇게 죽기에 아주 좋은 장소로 알려진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영도다리는 해방 후, 6·25후에도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유혹한 다리였다.
해방 후, 그곳은 애환의 장소였다. 특히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만약 헤어지게 되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해 실제로 이산가족을 만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바로 이 무렵 영도다리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다리에서 떨어져 죽기도 했다. 다리 위에 떠 있는 초승달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외로워서 죽고, 생활고에 지쳐 죽고, 영도다리는 그 당시에도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로 끝나는 '굳세어라, 금순아'가 한창 유행일 때, 이 다리 양쪽 입구에는 '잠깐만!'이라는 팻말이 나붙은 적이 있었다. 자살 방지용이었다. 잠깐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이 자살자가 속출하자 부산시경에서는 다리에 경찰관을 배치하기까지 했다. 영도다리는 전설이 아니라 생생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전쟁 후 20년도 안 되었을 때 이 다리가 한번 올려지면 차량들이 1km나 늘어섰다. 또 영도에 상수도를 놓기 위해 송수관을 설치하려다 보니 다리를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1966년에 도개교를 고정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연륙교 - 원통하고 한 맺힌 다리, 영도다리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
좋아요0
이 글을 '좋아요'한 멤버 리스트
댓글0
블로그/카페 공유수0
공유
클린봇이 악성 댓글을 감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