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뷔페 / 임근희

<공짜 뷔페 >2011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여름호 당선임근희 “나도 뷔페 가고 싶다.”  동생이 힘없이 혼잣말을 하며 벽으로 가 기대앉는다. 텔레비전을 보며 빨래를 개키던 형이 안 된 마음에 동생을 돌아본다. 담임선생님 결혼식장 뷔페에 간 거라, 동생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넌 뭐 먹었어?”  “참치김밥.”  대답하는 동생의 표정이 이내 일그러진다.  “형, 나 이제 김밥왕국 안 갈래.”  “왜?”  “계산하는데 어떤 아줌마가 어머, 얘는 무슨 애가 벌써 카드를 긁고 다니니! 이랬다. 그랬더니, 주인아줌마가 공짜 밥! 나라에서 주는 거! 이러면서   웃었어.”  동생의 말을 들은 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꿈나무 카드(*무료급식 카드로 학기 중엔 주말에 하루 한 끼 3,500원까지 결제 가능)인 줄도 모르고 계산할 때마다 옆에서 신기한 듯 지켜보던 사람들을 형도 여러 번 경험했다.  “알았어. 우리 다신 거기 가지 말자.”  형이 제 편에 서주자, 동생은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싱긋 웃어 보인다.  “우리 내일 탕수육 먹으러 갈까?”  “정말? 근데, 어떻게? 탕수육은 비싸잖아.”  “오늘 내 카드 안 썼잖아. 탕짜면하고 짜장면 한 그릇 사먹을 수 있어.”  “우와, 신난다. 형, 우리 내일 눈 뜨자마자 가자.”  어찌나 좋은지 벌떡 일어서 콩콩콩 뛰는 동생 모습을 형이 귀여운 듯 쳐다본다.   “맛있어?”  동생이 허겁지겁 탕수육을 입에 넣으며 왼손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린다. 형은 자장면을 집어 올리던 젓가락질도 멈춘 채 한참을 동생 모습만 보고 있다.  형은 엄마가 원망스럽다. 곧 돌아오겠다는 쪽지 한 장 남겨두고 집을 나간 게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휴대전화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형, 내 생일 때도 엄마한테 여기 오자고 하자.”  어느새 동생은 탕수육을 거의 다 먹어간다.  “네 생일 때는 더 좋은데 가야지.”  형은 짐짓 큰소리를 친다. 형은 엄마가 동생 생일 때엔 틀림없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동생에게도 엄마가 그렇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자, 형도 먹어.”  동생이 남은 탕수육을 형에게 밀어준다. 정신없이 먹더니,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난 어제 많이 먹었어. 너 다 먹어.”  형이 다시 동생에게 탕수육을 밀어준다.  지난 수요일이 동생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여직 전화 한 통도 없다. 동생은 생일 이후, 매일 풀죽은 모습이다.   “형, 배고파.”  형이 부스스 눈을 뜬다. 먼저 일어난 동생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어제 비가 많이 내린 탓에 형제네 지하방은 늪지대마냥 습기로 눅눅하다.  형제는 대충 씻고 집을 나선다. 꿈나무 카드를 쓸 수 있는 ‘가족마트’로 향한다. 가족마트 출입문에 한 시간 자리 비웁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백 이라고 써진 메모가 붙어있다. 김밥 친구들도 문이 닫혀 있다. 이제 형제가 갈만한 곳은 북경반점과 김밥왕국 뿐이다.  ‘김밥왕국? 안 돼. 다신 안 가기로 했잖아. 그럼, 북경반점에 가서 볶음밥  하나만 시킬까?’  형은 속으로 고민한다.  “형, 저기 봐.”  골똘히 고민 중인데 동생이 손짓으로 찻길을 가리킨다. 예쁘게 빨간색 꽃장식을 한 흰색 자동차가 지나고 있다. 형제는 신기한 듯 자동차를 길게 바라본다. 자동차가 행복 웨딩홀 건물로 들어간다.  “형, 가보자.”  동생이 잔뜩 호기심에 찬 얼굴로 형을 바라본다. 형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동생이 달리기 시작한다. 형도 달린다.  웨딩홀 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형제는 웨딩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동생은 바쁘게 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무척 들뜨고 신난 표정이다. 한편, 형은 한곳만 바라본다. 형의 시선이 가있는 곳은 축의금 접수 책상이다.  “형, 저 아저씨가 사람들한테 주는 게 뭐야?”  어느새 동생이 다가와 묻는다.  “식권. 사람들이 축의금을 주면 밥 먹고 가라고 식권 주는 거야.”  “축의금이 뭐야?”  “결혼 축하한다고 주는 돈.”  “그럼, 형도 저번에 선생님 결혼식장 가서 돈 냈어?”  “아니, 우린 그냥 축하편지 써서 냈어.”  “아아…….”  동생은 잠시 뭔가를 생각한다.  “형, 식권만 있으면 우리도 뷔페 먹을 수 있는 거야?”  “아마도.”  “형, 우리도 식권 받자.”  형은 어안이 벙벙하다.  “축하편지 쓰면 되잖아. 진짜 진짜 많이 축하한다고 쓰자.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으라고. 응?”  형은 너무 황당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땐 우리 담임선생님이니까 그랬던 거고. 지금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잖아.”  “모르는 사람도 축하해주면 안 돼?”  “안 될 거야 없지만…….”  “빨리…….”  동생은 막무가내로 형의 팔을 잡아당긴다.  동생은 아무나 쓰도록 흰색 봉투와 볼펜을 놓아둔 탁자 앞으로 다가간다. 형은 제자리에 그대로 서있다. 동생은 사람들이 보든지 말든지, 가리지도 않고 흰색 봉투에 다짜고짜 뭐라고 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형은 후닥닥 동생 곁으로 뛰어간다. 동생 손목을 낚아채서 건물 밖으로 나온다. 인적이 뜸한 곳으로 동생을 이끈다.  “뭐야, 빨갛게 자국 났잖아.”  동생이 형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며 투덜거린다.  “너, 진짜 편지 쓰려구?”  “응.”  “그렇게 뷔페에 가고 싶어?”  “어. 나도 뷔페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형은 한참을 고민한다. 그러더니,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 한 장을 동생에게 내민다.  “이것도 봉투에 넣어. 그럼, 더 많이 먹어도 돼.”  동생은 입을 헤벌린 채 형이 준 천 원짜리를 흰색 봉투에 넣는다. 봉투 겉면에 <결혼을 진짜진짜 축하합니다. 구민준>이라고 이름까지 당당히 써넣는다. 형도 똑같이 한다. ‘구민성’ 봉투에 쓴 이름만 다르다.  형은 자꾸만 빠져나가려 꼼지락거리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축의금 접수 책상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서서 눈치를 본다. 마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책상 앞에 모여 북적거린다. 형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끼어들어 흰색 봉투를 건넨다. 형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룩 흐른다. 축의금 접수를 받는 아저씨는 거의 기계적으로 봉투를 받고 식권을 내준다. 받은 봉투도 옆에 둔 쇼핑백에 바로바로 넣어버린다. 형제는 생각보다 쉽게 식권을 손안에 넣는다.    “형, 많이 아파?”  “어. 말 시키지 마.”  형은 어젯밤부터 설사를 열 번도 넘게 했다. 방금 전까지 네 번이나 부엌 바닥에 토했다. 기다시피해서 겨우 이부자리에 누웠다. 동생은 옆에서 그런 형을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한다.  “형, 우리 병원 가자. 이러다 형 죽겠어. 응?”  “됐어.”  “왜 돈 없어서 그래?”  형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대꾸가 없다. 동생은 앉은뱅이책상 서랍에 든 형의 지갑을 꺼내온다. 이불 위에 지갑에서 꺼낸 천 원짜리와 동전을 늘어놓는다.  “형, 여기 돈 있잖아. 이걸로 빨리 병원 가자.”  “너 자꾸 귀찮게 이럴래? 주사 맞기 싫단 말야. 당장 도로 넣어놔.”  형은 없는 힘을 겨우 짜내서 버럭 소리를 친다. 그러곤 다시 눈을 감는다.  이불 위 돈을 다시 지갑에 넣으며 동생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소리를 듣고 형이 얼굴을 찌푸린다. 눈은 뜨지 않는다. 동생이 애써 울음을 삼킨다.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벽에 기대 앉아 누워있는 형을 안쓰럽게 지켜본다. 그러면서 오래오래 뭔가를 고민한다.  동생은 행복 웨딩홀 입구에 서서 휘이 주위를 둘러본다. 지난번엔 안 그랬는데 어쩐지 오늘은 떨린다. 어깨에 멘 책가방에서 준비해 온 흰색 편지 봉투를 꺼낸다. 형은 모르는 사람 결혼식엔 딱 한 번만 가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딱 한 번만 더……. 동생은 심호흡을 길게 한 뒤, 뚜벅뚜벅 발걸음을 뗀다.  “네가 내러 온 거야?”  “네? 네.”  축의금 접수 받는 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치자 동생은 순간, 돌처럼 굳는다. 곱슬머리 아저씨가 먼저, 동생 손에 쥐어진 흰색 봉투를 보고 말을 건넨다.  “식권 몇 장 줄까?”  “네? 한 아니, 세 장이요.”  “자 여기. 담부턴 어른들이 오셔서 내시라고 해라.”  곱슬머리 아저씨는 아무 의심 없이 식권 세 장을 동생에게 내준다. 동생은 계단을 오르려다 말고 한쪽에 서서 식권 두 장을 바지 주머니 속 깊이깊이 찔러 넣는다.  ‘한 번 더 형이랑 올 수 있겠다.’  동생은 두 개 더 받은 식권을 지금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는 걸 모른다.  “거기, 꼬마!”  계단을 오르던 동생이 자기도 모르게 홱 돌아본다. 곱슬머리 아저씨다. 동생에게 다가오며 오라고 손짓을 한다.  ‘식권을 너무 많이 받았나?’  “저요? 왜, 왜요?”  계단을 내려온 동생은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곱슬머리 아저씨에게 묻는다.  “어른들은?”  “엄마랑 아빠는 먼저 올라가셨어요.”  “어, 그래?”  곱슬머리 아저씨가 의심쩍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리 데리고 와봐.”  축의금 접수 책상 앞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크게 외친다.  “잠깐 같이 가볼까?”  동생은 곱슬머리 아저씨의 손에 끌려 축의금 접수 책상 앞으로 간다.  “너, 몇 학년이야?”  빨간 넥타이를 맨 아저씨는 곱슬머리 아저씨보다 무섭게 보인다.  “2학년이요.”  기세에 눌려 동생은 순하게 대답한다.  “너, 누구랑 같이 왔어?”  “어, 엄마 아빠랑요.”  동생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진짜 엄마 아빠랑 같이 왔어? 엄마, 아빠 어딨어?”  빨간 넥타이 아저씨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사람들이 자꾸 힐끗댄다. 동생은 오줌이 나올 것만 같다.  “결혼을 진짜 진짜 축하드립니다. 오늘 온 사람들 중에 제일 많이 축하드려   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구민준!   참나, 네 이름이 구민준이야?”  빨간 넥타이 아저씨가 동생이 흰색 봉투 안에 접어 넣은 편지지를 펼쳐 읽더니,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묻는다.  “네.”  “이름까지 당당히 쓰시고, 그래도 양심은 있네. 천 원짜린 또 하나 넣으셨   어. 어?”  빨간 넥타이 아저씨가 동생을 향해 계속 비아냥거린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워요?”  안경 낀 아저씨가 끼어든다. 곱슬머리 아저씨가 안경 낀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빨간 넥타이 아저씨는 그 사이에도 동생을 추궁한다.   “야, 구민준! 너, 오늘 결혼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축하한다는 거야?”  빨간 넥타이 아저씨가 더 무서워진 목소리로 묻는다. 동생은 이제 아무 말도 못한다. 역시, 형 말대로 모르는 사람 결혼식엔 딱 한 번만 가야하나 봐!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아는 사람이냐고?”  동생은 아저씨가 책상을 ‘탕’ 치는 바람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모, 몰라요.”  “허, 요놈 봐라.”  빨간 넥타이 아저씨가 헛웃음을 지을 때다.  “혼자 왔니?”  곱슬머리 아저씨의 얘기를 다 들은 안경 낀 아저씨가 동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묻는다. 안경 낀 아저씨의 목소리는 빨간 넥타이 아저씨와는 상대적으로 부드럽다. 동생은 그래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아저씨랑 저쪽 가서 얘기 좀 할까?”  “왜, 뭐하게?”  빨간 넥타이 아저씨가 가로막는다.  “형 바쁘잖아요. 얜 제가 데리고 가서 얘기 좀 할게요.”  안경 낀 아저씨가 넉살스레 대꾸한다. 동생은 안경 낀 아저씨와 빨간 넥타이 아저씨를 겁먹은 눈으로 번갈아 바라본다.  “별 거 아냐. 그냥 아저씨가 뭐 좀 물어보고 싶어서. 우리 식당 가서 얘기   할까?”  식당 가서! 라는 말이 동생의 마음을 확 잡아끈다. 빨간 넥타이 아저씨에게서 얼른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동생은 못 이기는 척 안경 낀 아저씨를 따라나선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형, 괜찮아?”  동생은 오후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안경 낀 아저씨와의 얘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제 설사도 안 하고 토도 안 해. 밥은 먹었어?”  “어.”  동생이 대답하며 형의 눈치를 살핀다.  “참치김밥?”  “어? 아니…….”  형이 힘없이 묻는 말에 동생은 말끝을 흐린다. 어쩐지 뷔페에 다녀왔다는 얘기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럼, 편의점 갔어?”  “저기 그게…… 형, 이거 먹어.”  동생은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가방에서 반찬통을 꺼낸다. 형은 동그래진 눈으로 보다, 가만 반찬통을 열어본다. 큰 반찬통 안에 치킨이며 잡채, 새우, 탕수육 등등 갖가지 음식들이 들어있다. 형의 눈이 전보다 더 커진다.  “이거 어디서 났어?”  “아저씨가 싸가도 된다고 했어.”  형이 부릅뜨며 묻자, 동생이 얼른 변명하듯 대답한다.  “아저씨라니? 무슨 아저씨?”  형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기자 아저씨.”  동생의 목소리가 잔뜩 주눅 들어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이 끝내 꽥 하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 오늘 아홉시 뉴스에 나온대?”  동생이 눈을 치뜨고 형을 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아저씨가 뉴스 보고 어쩌면, 엄마가 올지도 모른다고…….”`  동생의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형은 생각한다. 우리가 엄마 없이 지내는 걸 아무도 모르는데. 이제 만천하에 다 알려지겠지? 그래도 엄마만 돌아온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너, 실내화 빨았어?”  “지금 빨게.”  “지난번처럼 세숫비누 쓰지 말고 빨랫비누로 깨끗이 빨아.”  형이 말끝에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알았어. 박박 문질러서 빨게. 오늘은 형 것도 내가 빨아줄게.”  형이 기분을 푼 것 같아 동생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잽싸게 부엌으로 나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는다. 형은 방바닥에 놓인 반찬통을 짠하게 내려다본다.  형제는 동생이 뷔페에서 싸온 음식들로 저녁 끼니를 해결했다. 연방 벽시계만 쳐다보며 아홉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아홉시 뉴스가 시작한다. 아홉시 삼십분을 넘어서도록 동생은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정말 오늘 아홉시 뉴스에 나온댔어?”  “응.”  “확실히 kbc맞고?”  “그렇다니까. 여기 아저씨가 준 명함도 있단 말야.”  동생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바지 속 명함을 꺼내려는 때다.  “서울의 한 웨딩홀에 이색 축하객이 등장해 취재했습니다. 한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순간, 앵커의 말에 형제는 눈과 귀를 집중한다.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남학생이 혼자서 이곳 웨딩홀을 찾았습니다.”  “아까 그 기자 아저씨다.”  화면 속 안경 낀 아저씨를 보자, 동생은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든다.  “조용히 좀 해봐.”  형은 괜스레 긴장이 된다.  “그 학생이 내민 축의금 봉투에는 이렇게 결혼을 진짜 진짜 축하한다는 편   지와 함께 천 원짜리 한 장이 들어있습니다……”  기자가 동생에게 웨딩홀을 혼자 찾은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동생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뒷모습이다.  “형이 많이 아파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아서……”  동생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조되어 나온다.   “어린 형제만을 두고 집을 나간 어머니는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고    합니다. 집에는 먹을거리가 떨어지고 생활비마저 바닥난 지 오랩니다. 허기   져 기다리는 이들 형제에게 어머니가 하루속히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입니   다. kbc뉴스 한만영입니다.”  입이 한 뼘은 나온 동생이 투덜거린다.  “난지 아무도 몰라보겠다.”  동생은 아예 텔레비전을 등지고 홱 돌아앉는다.  형이 텔레비전을 끈다. 동생은 잔뜩 삐져서 벽에 가 기대앉는다.  “목소리도 이상하고 얼굴도 하나도 안 나오고……. 어떻게 엄마가 난지 알   아. 그치?”  동생이 화가 난 이유를 형은 그제야 알아차린다. 자기도 같은 이유로 실망스럽다.  “그래도 엄마는 알아볼 거야.”  형은 그렇게 말하며 동생과 제 마음을 다독거린다.  “이불 펴게 옷 갈아입어.”  형이 한쪽에 개켜놓은 이부자리를 가져온다. 동생이 서서 바지를 벗으려다 멈칫한다.  “아, 맞다!”  갑자기 구겨져 있던 동생의 얼굴이 환해진다. 허겁지겁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형이 그런 동생을 올려다본다.  “형, 이거!”  동생이 내민 종이표를 형이 받아든다. 뷔페 식권이다.  “웨딩홀에서 세 장 받았는데 한 장만 쓰고 두 장이 남은 걸 깜빡했어. 히히   우리 또 갈 수 있겠지?”  동생이 헤벌쭉 웃는다. 형도 씨익 미소 짓는다. 형이 식권 두 장을 지갑에 고이 집어넣는다.  “형, 나 오줌. 같이 가자.”  “잠깐만. 이것만 펴고.”  동생이 먼저 신발을 신고 형을 기다린다. 형이 다 편 이부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고는 일어선다. 형이 막 한쪽 발을 운동화에 집어넣을 때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로는 한 번도 울지 않던 전화벨이다. 형도 동생도 그대로 얼음이 된다. 형제는 커진 두 눈을 마주본다. 조용한 집안에 전화벨이 연속 울린다. 형제는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엄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