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58]우리집 'VVIP'가 다녀가다
그제 밤 11시 30분, 아내와 아들내외 그리고 열 살배기 유일한 손자가 왔다. 5월 황금연휴인 데다 어버이날이 내일모레이니, 고향(原籍)에 사는 내가 마음에 걸렸으리라. 선물로 받은 멋진 ‘닥스 중년모자’, 고마운 일이다. 5월 초인데도 날씨가 조석으로 추울 정도여서 심란하기 짝이 없는데 비까지 억수로 내렸다. 장시간 운전에 얼른 재웠는데, 아침 6시도 안돼 살그머니 내가 자는 방문을 여는 손자. 반갑기 짝이 없는, 우리집 'VVIP'이다. 세상에 어떤 귀빈(貴賓)도 이만한 귀빈은 없을 듯하다. 할아버지 동네 구경을 가자며 이끌었는데, 이 녀석 하는 말이 재밌다. “나는 아파트먼트보다 트래딕셔널 하우스가 더 좋아” 연이어 “할아버지, 트래딕셔널 하우스가 뭔지 알지?”라고 하더니 “아 참, 할아버지는 영어 잘 하지?” 하는 게 아닌가. 그것 참! 순간 “리얼리?”하고 하니 “그래. 여기서 살면 좋겠어” 하는 손자를 세상에 어느 할아버지인들 예뻐하지 않을 수 있으리. 너무 예뻐서 꼬옥 안아주었다. 언제나 그 야들야들한 피부 감촉이 너무 좋다. “할아버지는 동네 지리를 잘 아냐?”는 질문에 웃으며, 이른 아침 동네 한 바퀴를 함께(열 살 어린왕자) 돌았다.
아침을 먹은 후, 내 뒤를 졸졸 따른다. 검은 비닐로 멀칭한 고랑에 청양고추 5개 심는 방법을 알려줬더니 곧잘 따라한다. 이어서 작두콩 30개를 줄기가 타고 올라가라고 비닐하우스 폴대 주변에 심는데 고사리손으로 거들기까지 한다. 얘는 보이는 쪽쪽 모든 게 신기한 모양이다. 어제 하루, 그 녀석과 같이 한 ‘일’이 10개도 넘는다. 이런 것이 바로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뒷산 저수지 새우망을 걷으러 가는데 데리고 가, 잡혀 있는 새우와 개구리들을 보여주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내려오면서 산취를 뜯고 고사리를 꺾는데, 더덕까지 캐는 행운을 맛보았다. 더덕을 자기가 발견하면 만원을 달라며, 실제로 작은 손가락으로 흙을 헤집고 파내 더덕 뿌리를 확인하는 순간 “대박” 탄성을 지르는데, 얼마나 귀여웠겠는가. 안봤어도 비디오일 것은 불문가지.
비가 멈칫하자 자갈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조금 치다, 때맞춰 열린 오수의견문화제에 데리고 가 ‘반려개 운동회’도 구경시켜줬다. 할아버지가 하는 일은 모두 재밌어하는 손자가 있다는 것은 홍복(洪福) 중의 홍복일 터. 대나무밭에서 대나무 2개를 조선낫으로 쳐오는데, 남의 것을 베면 도둑이 아니냐는 등 질문이 많다. 상추를 제 손으로 뜯어보는 게 재밌는듯 매우 신나라 한다. 애들한테는 이 모든 것이 ‘놀이’인 것을. 흙이 묻네, 다치네, 늘 조마조마, 아이들을 왕자처럼 키우려는 젊은 엄마들은 ‘자연체험(自然體驗)’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 것인지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느리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방학이 되면 여기에서 살겠다는 아이가, 더 나아가 “초등학교가 여기서 얼마나 머냐?” “대학교는 어디에 있냐?” “할아버지는 어떻게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냐?” “출세(出世)가 무슨 말이냐?”는 등 점점 고차원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가족묘지에 가 두 번 절을 시키며, 웃대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니, 아이의 ‘셈법’이 기발했다. ‘왕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왕왕할아버지’란다. 나로서 3대조 할아버지(고조)는 ‘왕왕왕왕 할아버지’라 해 빠앙 터지게 웃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에게는 ‘힘든’ 하루가 지나고, 9시도 안돼 내 품에 안겨 꿀잠에 빠졌다.
다음날 오전 9시, 기다리던 <인간극장 25주년 기념특집-삶의 극장으로의 초대> 재방송을 같이 한자리에서 시청했다. 사연인즉슨, 2016년 11월초 방영된 우리 부모 이야기 <총생들아 잘 살거라>가 25년 동안 방영된 1290편 중에서도 화제작으로 뽑혀, 그 뒷소식이 궁금하다고, 이번 기념특집 촬영을 제안한 것. '방송에 1분 나오려면 평균 1시간 걸린다'며 지난 4월 6일 8시간 동안 아버지와 나를 괴롭혔다. 그 결과가 지난 2일 저녁 11시 40분에 방영된다기에 코를 빠트리며 기다리는데, 이게 웬일인가? 지역방송 자체편성이라며 서울과 경기-경북지역에서만 방영됐다는 것. 4일 오전 9시, 6일 오전 10시, 9일 저녁 7시 40분 재방영된다며 작가가 카톡을 보내왔다. 손자(나의 아들)와 증손자가 내내 신기해했다. 이것도 흔치 않은 기회가 아니던가. 방영 직후, 모두 떠나고 나는 호올로 남아 손자를 생각하며 자판을 토닥거리는데, 불쑥 최근에 읽은 어느 시인(김선태)의 <살아지다와 사라지다>라는 시가 떠올라 전재한다.
살아지다 속에는
비포장길 좌충우돌하며 굴러가는 소달구지처럼
먼 백 리 길 무거운 짐 끌고 가는 청년이 있다
사라지다 속에는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허리 구부정한 강물처럼
해 질 녘 골목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노년이 있다
그렇게 인생은
살아지고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