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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4일(월)
* 시작 기도
(민 11:34)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주님...
출애굽을 한 자들 중에 이방 잡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행하는 줄 맨 끝에서 불평불만 세력이 되었습니다.
불평의 주된 이유는 맨날 먹는 것이 만나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이것저것 많이 먹었는데 이제는 먹을 것이 만나 외에는 없다면서 고기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고기를 주십니다.
무려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도록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비 같이 내리십니다.
이를 먹은 자들은 탐욕으로 인하여 죽어갔으며 이들이 묻힌 곳을 가리켜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이를 보면서 내가 묻혀야 할 탐욕의 무덤을 봅니다.
이곳에 나의 탐욕을 묻기 원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우리 주님과 함께 묻힌 십자가요 장사된 무덤이어야 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오늘은 주일 이후 첫 월요일입니다.
우리의 삶의 예배 역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룻 2:8-16
제목 :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 나의 묵상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을 본 보아스는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다.
그 은혜라 함은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다른 여종들과 함께 내 밭에서 줍도록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보리를 베는 남자들에게도 명령해서 이삭을 줍는 룻을 건들지 말도록 하였으며 이삭을 줍다가 목이 마르거든 비록 남자들이 떠온 물일지라도 그 물을 마셔도 된다고 허락하였다.
이에 대하여 룻은 자신은 이방 여인에 불과한데 어찌하여 자기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고 돌봐주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보아스가 대답하기를 비록 너의 남편이 죽었지만 너의 시어머니를 모신 일이나 네 친정과 너의 고국을 떠나 전혀 새로운 낯선 곳에 와서 사는 일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가 행한 모든 일에 보답하실 것과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그에게 하나님의 상이 임하기를 축복한다.
룻은 보아스를 향하여 내가 당신에게 은혜 입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비록 보아스의 하녀 만도 못하지만 당신이 이 못난 하녀를 위로하고 기쁘게 하였다고 말한다.
추수하는 이들이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을 불러서 함께 식사하도록 초청한다.
룻이 와서 앉을 때 보아스가 볶은 곡식을 주므로 룻이 그것을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식사를 마치고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갈 때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명령한다.
룻이 그의 곡식단 사이에서 줍도록 하고 책망하지 말 것과 오히려 룻을 위하여 곡식단에서 보리 이삭을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녀로 하여금 줍는 것을 도와 주고 그녀를 절대로 꾸짖지 못하도록 하였다.
룻에게 있어서 보아스는 정말이지 너무도 귀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보리를 베는 뒤에서 이삭을 줍게 허락해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일 것인데,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계속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허락한다.
뿐만 아니라 물도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하였으며 일꾼들이 식사할 때에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게다가 일꾼들에게 말하여 룻을 위해서 곡식단에서 이삭을 조금씩 빼서 버리도록 하였으며 그 뒤에서 이삭을 줍는 룻에게 부담이 되는 말이나 눈치를 주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는 이방인이자 유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천한 종들보다 더 천한 자 곧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주께서 용납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과 동일하다.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그의 시어머니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봉양하는 아름답고도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여인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이 죄요, 말하는 것이 죄이며, 행하는 것마다 죄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사실 룻에 대하여 보아스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쳐도 무관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최선을 다하여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나 같은 존재는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이 없는 자이나 주님께서는 이런 날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주님의 전부를 나에게 주신 것이다.
당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셔서 그 생명으로 살게 하신 것이니 말이다.
나는 처음부터 범죄한 아담의 생명으로 살던 자였다.
어떠한 경우라도 아담의 생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수도 영생을 누릴 수도 없다.
아담의 생명은 만들어진 생명이다.
이는 이 땅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이 가지는 자연적인 생명을 말한다.
비록 만들어진 아담의 생명일지라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거의 완전하게 지음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관계적인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하여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보다 가장 귀한 존재가 바로 아담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이처럼 아담의 범죄는 아담 이후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하였다.
이런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가 범죄한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아담의 생명이란, 자기중심적인 생명이요 이기적인 생명이며 남을 해치고 죽이는 생명으로서 무엇보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생명은 이 세상 만물 안에서 살아갈 때는 재미(fun)를 추구하면서 끊임없는 쾌락과 정욕 그리고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다가 결국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할 뿐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 이후에 그의 후손인 아담의 생명으로 사는 이들은 더더욱 파괴에 가담할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처럼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지만 그들이 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어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담의 생명, 모태로부터 태어난 자연적인 생명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어 영생을 얻는 것, 곧 아들의 생명을 얻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태어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태어난) 자들이니라.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태어난 자(born of God)란 거듭난 자를 의미한다.
거듭남이란 아담의 생명으로 살던 자가 아들의 생명으로 생명 자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날 것을 천명하신다.
(요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 태어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며, 이는 곧 말씀과 성령을 의미한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거듭남은 썩지 아니할 씨 곧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세상의 감동적인 말, 은혜로운 말, 귀에 듣기에 좋은 말, 위로와 격려의 말은 사람이 듣기에 좋다.
그러나 그런 말은 듣기에는 좋고 마음에는 위로가 될지 모르나 그 이상의 은혜는 없다.
그 이상의 은혜란 다름 아닌 생명, 영생을 말한다.
그래서 오직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항상성의 말씀인 복음을 통해서만 거듭난 생명인 아들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 복음을 듣고 전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신다.
(요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이와 같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인 복음과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거듭난 생명인 아들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나를 비롯하여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떠나서 사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이시다.
그런데 그런 말씀은 외면한 채 어떤 기적적인 은사만을 구하거나 그런 것을 쫓아다니는 경우를 본다.
그나마 이런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저 관념적으로 예수를 믿는다.
믿는다는 것의 아무런 실제가 없이 그저 지식적 관념적으로만 믿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바로 그런 모습의 산 증인임을 고백한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마음으로만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좀 정직하고 남들에 비해서 착하게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 것도 삶의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의 덕목이 아니라 적어도 나름대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다 이런 덕목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윤리적 도덕적인 정직과 착한 삶의 덕목이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생명이다.
아담의 생명으로 살면서 얼마든지 노력하여 그런 도덕적인 삶은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담의 생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인데, 여기서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님과 내가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다.
연합의 가장 기본은 말씀이다.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기에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떠나서는 어떤 사람도 영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교제를 하고 이 교제를 통해서 주님과 더 가까운 영생의 실제를 누리는 것이다.
믿음은 결코 지식이나 관념이 아니다.
믿음은 실제이다.
믿음은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의 삶 그 자체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생명 없이 예수의 주변부에서 비슷하게 즐겼던 나는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아들의 생명을 얻어 날마다 주님과 교제를 한다.
무언가 얻어내려고 하는 부담스런 바이어(Buyer)들의 만남이 아니라 그저 만남 그 자체가 좋은 교제와 사귐이 주님과의 교제이다.
오늘도 그 만남 속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영생, 은혜와 평강이 넘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방인으로 났으나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이런 구원의 은혜를 주심은 어찜인지요?
룻에게 마실 물을 준 보아스는 곧 목이 말라 허덕이며 끊임없이 야곱의 우물을 찾아 헤매는 나에게 생수를 주신 주님이셨습니다.
나의 의로 똘똘 뭉쳐져 있고 날마다 죄를 먹고 마시는 나에게 합당한 처소는 지옥입니다.
하지만 나를 그 불구덩이에서 건지시고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셨으며 나의 모든 죄를 주님이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것이요 또한 그 주님을 믿어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아들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되 내 삶의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게 하옵소서.
날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