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재건의대한다양한견해들-2
★결론중에 결론 왜 다 같은 사람의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성전 재건에 다양한 견해들을 주셨을까요!?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놨냐는고 왜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놔두셨는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우리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게끔 기독교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냐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나? 미리 디자인 하셨나? 아하! 이분이 미리 디자인하셨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성전에 대해서도 미리 말씀을 하시고는 신약에 오셔서 또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전혀 상관없는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고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제사를 드릴 것까지도 이천 년 전에 나타나실 것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미리 디자인하신 것입니다. 주후 95년에 요한에게 나타나실 것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왜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판을 치게 하고 이 세상을 낙원화 시키려고 저세상이 진짜 세상이고 이 세상이 창조 목적 학교로 가짜 세상으로 이 세상에 나그네로 와 있는데, 왜 같은 기독교라 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이 세상이 진짜 세상이고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가르치는지?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기에 따라가는지? J 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심지어는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정된 자녀들까지도 여기에 속히여 따라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인데 속혀서 죽음의 시체가 된다고 하셨습니다(마 24:23-38). 선택 받은 자들도 여기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디자인 하셨기에 선택 받은 자들도 빠지지 않도록 할려고 우리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그러면 왜 이렇게 힘들게 가짜들을 온 난리를 치면서 남은 목회를 하게 합니까?
★J님의 재림 전에 복음의 산고 아픔으로 주신 것은 아픔을 통해서 마지막 때에 추수꾼 하나님의 자녀 너희들아!
★이 산고가 있을 때에 너희들이 이 고통을 이겨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산고를 디디고 일어나는 큰 독수리 시각을 가지고서 이 산고를 보라는 것입니다!!
★큰 그림을 보면서 독수리는 큰 그림도 보지만 중간도 보고 밑에 내려가서 아메바까지 보고 이것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윤활유가 되는 독수리 시각 자입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모든 사정을 참새 시각으로도 보고 병아리 시각으로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시각자가 독수리 시각 자로 지혜자입니다.
★복음의 산고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데 우리로 하여금 깨여라고 J님의 재림이 가깝다고 나팔 불어라고 나쁜 가짜들을 풀어놓고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나쁜 것을 디자인 하셔서 그 나쁜놈들이 뛸때에 진짜에 집중하라고 이것이 역기능적 교육방법인 것입니다.
★과거 육 천년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렇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항상 악한 것들이 선한 것과 공존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세력들이 더 강하게 이 세상 육 천년을 괴롭히도록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고향으로 올라 가게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다양하게 있고 사탄의 자녀들도 다양하게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이 설교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일부만 알수 있습니다. 저세상은 계층사회 이기때문에 그 나라를 가면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세상에서 살면서 독수리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큰 일을 맡을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큰 일 맡은 후에 그 다음에 저세상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똑같은 시각을 주면 안되니깐 어떤 사람은 조금만한 시각을 주고 했는데,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에 모양을 다르게 만들고 모습도 다르게 만들고 크기도 다르게 만들고 동물를 봐도 소리가 다 달라요. 색깔도 다르게 하였고, 또 모든 피조물들이 성품들도 다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다르고 초식과 육식으로 나눠지고 취미도 다 다르고, 인간을 봐도 개인의 모습이 다 다르고 황인, 백인, 흑인, 혼혈인 까지 다르고 손금이 다 다르고 한 어머니 밑에서 열명의 자녀가 나와도 생긴 것과 성품이 다 다르고 족적들도 다 다르기 때문에 J님께서 다양하게 창조를 하셨습니다.
다양함 속에 조화롭게 독수리 시각을 가지면은 위에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가서 가까이도 보니깐 그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같은 기독인중에서도 다 다르고 각 나라를 돌아 다녀 봐도 다른데,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12장에서 주후 32년에 개종을해서 22년만에 많은 경험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 무언인가? 하면은 (롬12:1절에서15장까지) 전체를 보면은 서론과 본론을(롬12:1-2) 내린 것을 보게 됩니다.
★비기독인들아!
하나님이 선하게 생각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뜻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합당한 영적 예배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 서론이면서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이냐? 이것은 기독교인들 끼리보면서 말한 내용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지만, 은사가 다 다르게 만들었단다. 하나님의 자녀지만, 은혜의 분량도 다 다르게 만들었단다. 믿음의 분량도 다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있는 모습그대로 인정해 주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도 은혜의 분량도 은사의 분량도 있는대로 받아 주라는 것입니다. 비교하지말고 이것은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것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으로 영적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예배라 하면서 할렐루야 아멘하고 찬양하고 하는 정도는 영적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하나님의 큰 다양성 속에서 우리가 뽑힘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 안에서 다양하게 은혜를 주시고 분량이 다르도록 믿음을 주시고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9가지 은사를 다 주셨기 때문에 이분들은 잘 조화롭게 하는 사람으로 바울이 얘들아!
하나님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줘라! 다양함을 깨달은 사람은 조화의 파워를 깨달은 사람은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을 해줘라는 것입니다.
또 같은 교인인데 나를 위해서 핍박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축복하고 네가 잘났다고 교만하지 말아라! 뭐 아는체하고 악으로 대하면 악으로 갖지 말아라!! 이 큰 그림을 본 사람은 이것이 가능하지만 큰그림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나에게 불만족을 주면 그냥 씹어버리는 거예요. 확 씹는 사람들 그냥 그대로 놔둬야 돼요. 그릇이 그 정도니깐~
그릇이 크고 작은 것이 내 눈에는 보이는 거예요. 놔두다 보면 때가 되면 많이 크지는 거예요.
항상 남을 지적하는사람들 실수를 보고는 끝까지 지적하고 잊지 않고서 씹어 되는 사람들 그런사람들 보면 주여! 하고 기다리다 보면 때가 되면 크지는거예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에요. 원수가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주고 그것을 해주면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의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놓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사람들은 때가 되면 주님이 다 해주겠지 하고 사랑으로 안아 주는 것입니다.
★결론중에 결론 왜 다 같은 사람의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성전 재건에 다양한 견해들을 주셨을까요!?
아하!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믿음의 분량도 은사의 분량과 은혜의 분량이 다르구나!
그저 교회 시대 전반을 보면은 무천년 주의가 대세를 이루었어요. 이스라엘은 저주받은 민족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에요. 반유대주의라고 믿는 것이 교회 시대에 전반적입니다.
★왜 무천년주의가 반유대주의가 그랬을까!? 왜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반유대주의를 허락하셨을까!?
유대인이 죽어야 되는 것이고 이방인 추수를 위해서는 예수님께서는 반유대주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와서 친유대주의가 들어 왔습니다. 친유대주의가 이단이고 하는 것입니다. 큰그름을 보지 못하니깐~~
반유대주의를 하든가 친유대주의가 나타나는 것은 무슨 싸인 일까요!?
★왜 20세기 들어와서 예수님께서 친유대주의를 세우실까!?
1.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 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2. 십사만 사천 메시아닉 주 유대인이 일어나야만 하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친 유대주의를 등장시키는 거예요.
오늘날 친 유대주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거예요. 이방인의 숫자가 그이 차고 있고 유대인 숫자도 점점 더 차고 있음을 보여 주는 거예요.
그럼,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해요!?
저와 다른 사람을 주안에서 그저 안아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항상 성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항상 주안에서 한 가족이 된 사람들 항상 서로 위로해 주고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고 자라게 만들어 주고 절대로 비평하거나 비교하거나 미워하거나 비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퍽하면 비평 잘하고 하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보여요. 아하! 한참 가야겠구나!! 이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냥 가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아픔으로 훈련시키세요. 대가를 지불하게 하시고 고집 센 사람들은 대가가 강해 가지고 돈을 많이 지불해야지만 정신 차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지혜롭게 한 푼도 안 내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푼도 내지 않는 지혜자가 되시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없어요. 스트레스가 없으면 웬만한 병에도 안 걸려요. 항상 평강 가운데 있게 되어 있고 주 안에서요.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강하게 변화를 시키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https://youtu.be/T-iiUgVIJeQ?si=lK9dA-CKhEXImW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