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토요일 오후 한시, 병원 MRI실 앞에 산악반 회원 9명이 모였다.
나를 제외한 의사와 간호사를 뺀 각 부서 직원들.
병원에서 걸어나와 지하철 9호선 흑석에서 동작, 4호선 환승하여 충무로역, 다시 환승하여 구파발역에 도착을 하니까 2시 10분,
내가 구파발역으로 바로 가려고 하였더니 2시라 하였는데 비슷한 시간이다.
다시 버스를 바꾸어 타고
사기막골에 하차하여 첫번 보이는 구씨 종원.
이 동네에는 굿당이 많다.
어릴 적 동네에서 굿을 한다면 모여서 구경을 하고 떡도 먹고 하였는데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만약 굿을 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애들 공부 못한다고, 소란스러워 잠도 못 잔다고 등등.
그러니 굿당이 이런 한적한 교외에 자리를 잡고 밤새워 굿을 하여도 문제가 없다.
다른 이야기로 전에는 아파트에서 "함 사세요, 함."하는 소리가 종종 들렸으나 이것도 잘 안되는 모양이다.
나의 은사 김도진교수의 세딸의 함을 모두 내가 받았는데
삼선교 병원과 붙어있는 가정집에서 한양 아파트로 이사가셔서 막내딸 함들어 올 때
"함 사세요."하였더니 아파트의 창이 열리고 "조용히 해"
함진애비가 머쓱해서 그냥 들어오고 말았다.
우리가 받은 함값도 천차만별이었다.
나의 친구 대구 갑부의 아들이 60년대 후반 결혼을 하였을 때 받은 함값은
당시 내 전공의 월급의 10배가 넘었으니 지금 가치로는 천만원대 정도.
우리 동기 김모씨의 처가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한강변의 민영아파트에 살았을 때
함값 만오천원과 만오천원짜리 지불각서까지 받았으나 청구를 히지 않았다.
나중 동기가 하는 말이 예비 신부가 남자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내려왔더라 하여 웃었는데.
결혼 후 6개월 만에 출산을 한다하여 얼마나 마음을 졸였으나 3.4kg의 건강아 출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맞는 이야기.
또 다른 동기는 처가가 담도 높고 인가도 뜨문뜨문잇는 성북동이라
아무리 "함 사세요"라고 외쳐도 반응이 없어 함잽히고 술이나 먹을까 하고 있던 중
마련한 함값은 고소한 냄새가 나는 뭉치 돈.
후에 알고보니 당시 잘나가던 장인 회사가 그날 세무사찰을 받아 날리가 났고
마련한 함값은 사선교 참기름가게에서 빌려온 돈이었다 고.
밤골에서 시작하려면 원칙은 효자비에서 하차를 하면 오른 쪽 길로 나오는데
사기막골에서 차를 내렸기 때문에 처음 구간은 생략을 하고 여기에서 시작.
둘레길 12코스이다.
조금 가다가 흔들다리에서 "쿵 쿵"굴리며 즐거워 한다.
언덕고개에서 쉬며 내가 가져 온 매실주와 안주들.
육포, 블루베리, 어제 청도에서 보내 온 감 말랭이 등등.
멀리 상장봉 능선이 보인다.
조용한 숲은 적막하다.
가물어 먼지가 날리는 길
솔고개의 정상에는 아래와 같은 표지가 친절하게도 4개 국어로 쓰여있다.
충의길을 끝내고 이 문으로 나왔다.
이 코스는 야트막한 언덕 길에 아기자기한 코스이다.
봄철에 다시 한번 찾고 픈 곳.
내려오니까 이런 조각 작품들이 야외에 설치되어 있다.
우이령 가는 길이다. 오후 2시까지는 들어가야 하고 4시까지는 나와야 하는 곳으로
인터넷예약을 하여여 한다.
단 65세 이상은 전황예약도 가능하다고.
인터넷을 못하니까.
자! 이때 영양과 아줌마가 자기가 가진 석굴암 신도증을 암해어사 출두 마패로 사용하여
석굴암간다며 무사 통과.
모두들 박수 "짝 짝 짝"
며칠 전 온 눈이 다져져서 발아래는 "뽀드득"소리가 가볍다.
상장봉 능선에서 흘러내려온 물들이 얼었다.
왼쪽이 오봉 쪽, 즉 도봉산쪽이고
오른쪽이 상장봉능선 즉, 북한산 쪽으로 그 사이에 난 고개가 우이령.
지금은 상장봉 코스가 폐쇄되었지만 이 능선도 절경이며 양쪽이 깎아지른 암릉.
경사면에 둔 배낭이 굴러서 잡으려다 골로 갈뻔한 무서운 기억이 있다.
날씨는 싸늘하였으나 바람불지 않아 좋았다.
석양에 비친 오봉의 위용.
석굴암 전망대에서 찬 막걸리를 마시며 덜덜덜.
누가 몸에 좋은 것이라 비닐 팩에 든 걸 마셨다.
"그거 언제 효력이 나타나요? 빨리 나타나면 얼른 집에 가야 하는데"
한참 떠들다 보니까 땀이 머리에서 얼음으로 되었다.
갑자기 호르라기 소리에 깜짝 놀라 하산을 하였는데
이 소리는 영양과 아줌마가 시끄러운 주방에서 잘 들리라고 해 놓은 줄도 모르고.
눈으로 포장을 해 놓아 비닐포대를 타고 내려오다 박치기 할 뻔도 하였고.
군대에서 운영하는 절인 모양이다.
왜 무인텔이 필요한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왼쪽의 봉우리가 여성봉, 여성의 무엇처럼 생겼다고.
산행도 즐겁지만 하산하여 식사와 술은 나의 전공이 아닌가.
누가 "메생이 갈비탕 운운"하이에 내가 검증된 곳으로 가자며 버스를 타고 효자리의 "만포면옥"에서 내린다.
이 집은 원래 은평구에서 오랜기간 영업을 하다가
은평구 재개발로 철거되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서울의 냉면 유명한 곳이라면 반드시 손 꼽히는 곳이다.
제육 반접시와 소주 반병도 파는 을지로의 조선면옥,
그냥 매밀 삶은 물이 나오고 제육과 편육이 좋은 필동면옥,
역시 어북쟁반으로 이름난 장충동 평양면옥과 더불어.
물론 우래옥과 한일관이 빠지면 안되지요.
먼저 노릿노릿하게 잘 구워진 빈대떡 두접시는 눈깜짝할 사이에, 사진 찍을 틈도 주지 않고 없어져 버렸고.
나를 아는 아줌마가 슴슴한 김치, 다른 찬들도 부족하면 얼른 보충해 준다.
그러니 단골이 좋은 것.
"요즈음 어북쟁반에 유통이 들어가지 않지요?"
"예, 젊은 사람들이 느끼하다고 좋아하지 않아요."
식사는 어북쟁반에 만두를 넣어 먹었고
여기에 또 추가. 오늘도 체중감량은 물건너 갔다.
냉면 맛을 보아야 한다니까 두 테이블에 냉면 일인분씩 시켜서 맛도 보고.
그날 우리가 마신 술은 얼마나 되었을까?
오늘 음식 평은 영양과 아줌마가 "맛있어요."
한 마디로 끝.
총무가 잽싸게 계산을 하고는 커다란 평양만두 5개들이 일인분씩을 싸준다.
여러분들 잊지 마세요.
"음식의 맛은 기억입니다."
첫댓글 감 말랭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았네요... 만포면옥 음식은 푸짐해 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