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살행론28 보리심 계약을 파기하는 위약금
중생은 사적 이익을 추구합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중생에게 지상목적은 ‘자아’의 생존이기에, 이기의 추구는 합당합니다. 불자는 마찬가지로 사적 이익을 추구합니다. 다만 이 추구의 방식에서 반칙을 하지 않고 도덕적이기를 권고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계율입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똑똑한 이기심을 발휘합니다. 이타심이 더해질 때 이익의 효율이 높아지기에 불자는 이기를 위한 이타를 실천합니다.
중생 그리고 불자와 달리 보살은 공적 이익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보리심이 만들어내는 삶의 전환입니다. 보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짧은 문장인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하나로 통일한 보살의 삶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생을 구하기 위해 깨달음을 추구한다.”
보살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합니다. 불자는 자신의 열반을 위해 이타심을 추구합니다. 중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통의 원인인 이기심에 사로잡힙니다. 세 가지 삶의 유형의 차이를 구분하실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모든 중생들을 속이는 것이 되는데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의 눈 밝은 이들이 보살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를 명심해야 합니다. 중생의 삶은 개인이지만, 보살의 삶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닙니다. 사회 나아가 일체 중생의 이익을 대변하는 삶입니다. 보살에게는 이제 개인의 행복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의 무수한 중생 중 1인이 바로 자신입니다.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 모두가 자신을 포함하는 일체 중생의 이익을 증장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이 중생이라는 백성의 삶과 보살이라는 법왕자의 삶의 무게 차이입니다.
개인은 원하는 목적을 추구하다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습니다. 계약을 위반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보살이 보리심 계약을 파기하는 손해는 막심합니다. 일체중생 모두를 포함하는 광대한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고, 일체중생의 열반이라는 이익을 포기하는 제일의 손해입니다. 논전 속에서 보리심을 버리는 업장을 무섭게 표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마음속으로 ‘주겠다’고 생각하고서도 그것을 보시하지 않으면 그는 아귀로 태어난다고 [경전에] 설하셨다네. 위없는 최고의 행복으로 인도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선취(善趣)에 날 수 있겠는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항목을 계산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다수에게 피해를 끼쳤는지와 각각 얼마나 큰 손해를 끼쳤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보리심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일체중생을 대상으로 피해를 끼칩니다. 더불어 사소한 손해가 아니라 열반으로 나아가는 위없는 행복에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 손해의 양과 질이 모두 무한하니, 논전에서 언급되는 불이익들은 절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보리심을 버리고도 해탈에 이르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 전지하신 부처님만이 아시는 일이라네.”
다시 말하지만 이기심의 추구 속에서 목표를 포기하는 것과 보리심을 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작심삼일을 아무리 반복해도 자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며, 그 결과 거지의 마음가짐인 중생상이 강력하게 습관화 됩니다. 물론 이도 개인적으로 볼 때는 큰 문제이겠으나, 일체중생의 차원에서 본다면 보편적이고 사소한 문제입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순간 윤회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무력하고 불쌍한 중생일지라도 보살 즉, 법왕자라고 불리며 격이 높아지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무거운 왕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경 받고 사랑 받는 만큼 그 책임이 막중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원보리심을 넘어 행보리심을 약속하는 것은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당연히 용기내서 빨리 선택해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런 어려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보리심에 마음을 물들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한 선택은 변덕이 죽끓듯 하는 내가 변화하면 그 생명력을 다합니다. 보리심이 일어나는 ‘조건’을 형성하여 생겨난 보리심은 ‘내’ 마음의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속되는 보리심의 비결입니다. 내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보살의 삶에 꾸준함이 더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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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붓다 스쿨에서 스님의 가르침대로 배우고 실천하면 꺼지지 않는 보리심을 키워 나갈수 있는 길임을 알고 지속 가능하게 행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스님
보리심을 일으키고 유지할 수있는 조건…
선스승의 선호념, 선부촉
거기에 도반들과의 함께 나아가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둘을 구족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살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합니다. 불자는 자신의 열반을 위해 이타심을 추구합니다. 중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통의 원인인 이기심에 사로잡힙니다.
보살은 중생을 구하기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합니다
이 구절에서 나는 어떠한가?
반문해보며 종지같은 저의 마음을 다시 알게되었습니다
큰 자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_()()()_
스스로에게 어디에 목표를 두고 수행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스스로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는지도 되돌아 보게 됩니다.
...보리심에 마음을 물들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보리심이 일어나는 '조건'을 형성하여 생겨난 보리심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언제나 바른 길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스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밝게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
"보리심을 일으키는순간 윤회의 감옥속에 갇힌 무력하고 불쌍한 중생일지라도 부처님 가문에 새로태어나 보살 즉 법왕자로 불리운다. 그 이유는 그만큼 책임이 무거운 왕관을 쓰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 잘 명심하겠습니다.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위해 깨달음을 추구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본래 하나인 우리 모든 중생들의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보리심을 잘 키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