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문화축제 ...역사의 뒤안길을 걷다.
■ 함께한 사람들...가은비 가을내음 꽃안개 문경새재 언제나나는 하나우마 한솔 햇별 첼시 유정...
이같또로따(사진 순서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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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행렬의 인파를 보고있는 고양이. 혹시 짝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 90세가 넘는 어머니와 딸.
▲ 이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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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은...
덕수궁의 별전(別殿)이다. 대지 727평, 건평 236평 규모이며, 덕수궁 본궁과는 돌담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앞당긴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원래는 수옥헌(漱玉軒)이라는 도서관 건물이었다. 수옥헌은 1898년(광무 2)경에 건립되었으나, 1901년(광무 5) 화재로
소실된 뒤 다시 재건되었다. 이후 1904년(광무 8) 2월 29일 발생한 경운궁 화재 당시 고종이 약 2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정전 또는 편전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 무렵 중명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헤이그 특사가 이곳에서 파견되었으며, 대한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 평가된다.
중명(重眀)은 《주역(周易)》의 이괘(離卦)에서 따온 것으로,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다' 또는 '거듭하여 밝다'는
뜻이다. 현재 현판은 2010년 8월에 복원한 것이다.
특이하게 '明'이 아닌 '眀'으로 썼다('眀'은 '明'과 모양만 다른 같은 글자이며, '밝게 볼 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를 두고
여러 설이 있다. 그중 일제가 '明'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眀'을 대신썼다는 주장과, 반대로 일본(日本)을 싫어한
대한제국 정부에서 '日'이 들어간 '明'대신 '眀'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론을 말하면 둘 다 낭설이다. '眀'은 '朙'의 이체자
이며 엄연히 대한제국 이전부터 쓰던 한자이다. 진짜로 '明'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창경궁에 있는 명정전은 물론 다른
전각들의 편액에 들어간 '明'을 모조리 갈아치웠을 것이다.
처음 이름은 수옥헌이었다. 수옥헌에서 중명전으로 이름을 바꾼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중명전이 공식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는 시기가 1906년(광무 10년) 11월(음력 9월) 이후인 것을 보아 그 무렵에 바꾼 듯하다.
//출처:나무위키
▲ 우리도 나섰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푯돌의 취지문에는 “… 독립투쟁에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항일여성들은 의병, 의열단, 조선의
용대, 광복군으로 무장투쟁에 가담했습니다. 일본관헌을 저격하고 반민족 행위자에게 사형선고문을 인쇄해 보내는 심리전
을 벌였으며 밀정을 암살하고 일제 통치기구 시설을 폭파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군자금 모금, 군수물자 운반, 전단지 배포,
정보 수집, 연락책·수배자 침식 제공 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 항일여성들은 자주독립 의지를 일깨우는 교육사업과
계몽운동, 문화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1938년에 일본이 덕수궁 석조전 서관을 미술관 용도로 건립하였고, 광복 이후 1946년에는 '이왕가 미술관'에서 덕수궁미술관으로 바뀌었다.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 1973년 현재의 덕수궁미술관으로 이전하였다. 1986년 과천관으로 본관을 옮긴 이후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재개관하였다.
1938년에 일본이 덕수궁 석조전 서관을 미술관 용도로 건립하였고, 광복 이후 1946년에는 '이왕가 미술관'에서 덕수궁미술관으로 바뀌었다.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 1973년 현재의 덕수궁미술관으로 이전하였다. 1986년 과천관으로 본관을 옮긴 이후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재개관하였다.//나무위키
▲ 유영국 화가(1918-2002).
김환기(金煥基)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다. 일본 유학시절(1935∼1945)에는 구성주의에 가까운
추상미술을 시도하여 1938년에는 일본의 대표적 전위미술가 단체전인 자유미술가협회전(自由美術家協會展)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광복 후에는 신사실파(新事實派), 모던아트협회 창립멤버로서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을 리드
하면서 ‘산’을 모티브로 하여 선, 면, 색채로 구성된 비구상적 형태로서의 자연을 탐구하였다.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패턴의 면 분할, 구축적이고 절제된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유영국의 기하학적 추상화에는 장대한 자연의 숭고미가
응축되어 있다.//나무위키
▲ ''줄을 서시오''
60년 전통의 유림면 식당 앞...25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30분 넘게 기다리다가 식사...
덕수궁 관람을 마치면 꼭~ 찾는 맛집이다.
▲저녁식사 후 커피 타임을 갖고 뒤늣게 달려갔으나...그럼에도 거리 축제를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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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 앞 광장 음악회
첫댓글 어릴때 추억이 많은 덕수궁돌담길 정동길 ~
100세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면서 길거리버스킹을 하는 70대의 따님은 감동~
젊은국악인들의 흥겨운국악공연도 감동~
우리님들에게 감동을 선사해주신 로따님 감사드립니다
와우~왕년의 추억이 깃듯 정동길였군요.
함께하시어 더욱 빛난 역사문화 나들이였지요.
돌담길 고종길을 우리길님들과 함께
걷고 웃고 하면서 가을의 정취도 느끼고
옛 추억도 회상 시켜준 로따님 감사합니다
리딩 하시면서 사진도 예쁘게 담아주셨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고종 임금의 말년은 고난의 시대였지요.
고종의 길을 걸으며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돌아보았구요.
가을에 걷는 정동길은 다른
계절과는 다른 맛이 있다.
우리님들과 함께 해서 더
좋았고, 깊어가는 가을 밤에
흥겨운 국악 공연에 어깨도
들섞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담 대면 매년 정동문화축제가 열립니다.
내년에도 진행할가합니다. 이번에 못간 곳도 걸으려고 합니다.
친근하고 반가운 정동길에서 기분좋은 시립미술관 , 울컥했던 버스킹, 마음아픈 고종의길, 멋진 우리가락, 시청광장의 무대까지 깋벗님과 함께하니 더 즐거웠습니다 저희를 이끌어 주신 로따님 감사드립니다 ~~👍
와우~ 우리는 함께 끝장(시청광장)을 보았지요.
그 바람에 귀가가 좀 늦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서촌 답사 후 멀지 않은 곳이라 함께하며 우리 길님들과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기님~
깜짝~ 등장하신 유정님이 함께해 든든했지요.
커피타임 바람에 거리 공연을 처음부터 못봐서 ㅜㅜㅜ
지난 역사에 대하여 곳곳에서 잘 기억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언제나나는님~전보다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군요.
짬나는 대로 예전 처럼 자주 뵈옵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고운길 가서
리딩분과.고운길 회원님 얼굴 보고 즐거운시간 . 역사공부.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