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단감이 흔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단감나무 있는 집은 두어집 정도, 종류만 다를 뿐 집집이 떫은 감나무 일색이었다.
예전 단감은 요즘 단감과 달리 씨가 많고 과육에 검정 입자가 촘촘했는데
요즘도 시골장에서 때깔은 좀 못해도 그런 토종단감을 더러 볼 수 있다.
육종 개량으로 달고 맛있는 단감은 진영 아닌 지방에서도 많이 생산돼 이즈음 도시의 거리나 시장엔
크고 붉은 단감을 실은 트럭이나 감무더기 앞에 두고 파는 상인들을 쉬이 볼 수 있다.
문득 어릴 적 추석이나 가을 운동회때 친정어머니가 삭혀 주시던 감 생각이 났다.
해걸이 한 번 안 하는 크다란 감이 주렁주렁 달리던 사랑채 옆 우물가의 우리 감나무.
한 항아리 삭혀서 떫은 맛 가신 붉은 감을 껍질 째 베 먹으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곶감이나, 홍시, 말랭이를 만들지 요새는 아무도 안 삭혀 먹는 감.
농장의 감나무에 연등같은 청도반시가 주렁주렁하니 단감 사 먹을 것 없이
지천인 떫은 감 삭혀서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노하우를 전수 받으려 친정집에 전화를 거니 올케가 받았다.
"언니, 예전엔 감 많이 삭혀 먹었잖아요?"
내 말에 올케가 웃기부터 했다.
걸핏하면 전화해서 농사나 살림에 대해 물어대는 시누이에 이력이 난 게다.
"감 한 번 삭혀 볼라는데 항아리에 감을 넣고 뜨거운 물 부어 이불 덮어 두면 되죠?"
"맹물이 아니고 소금물을 끓여 부었을낀데...... 오래 돼서 잘 모르겄네, 어무이 바꿀게."
올케언니가 아리까리 해 하면서 전화기를 친정어머니께 넘겼다.
그리고 경험치 높으신 친정 어머니의 명쾌한 구두 레시피.
"단지에 감을 넣고, 물을 팔팔 낄이서 손을 넣어 휘휘 저어도 안 뜨거울 때
부으면 된다. 감이파리로 감을 덮고 단지뚜껑 덮고는 이불로 싸서 돌시만이면 삭니라."
햐! 무형 문화재로 지정돼야 할 우리의 살림마이스터들!
'맨손을 넣어 휘휘 저어도 될 정도'의 온도 측정법에 혀가 내둘러지면서 엄마 아니면 어디서
이런 빛나는 삶의 기술과 표현법을 들으랴 싶었다.
'돌시'는 어느 한 때부터 온 하루가 되는 때이니, 오늘 저녁에 감을 담갔으므로
내일 저녁 이맘 때 꺼내면 된다.
더러 떫은 게 있으면 항아리에서 건진 감을 잠시 이불 속에 두면 된다는 어머니의 부언 설명.
물을 팔팔 끓여 손을 넣어 휘휘 저어도 될 정도의 온도일 때 감항아리에 부었다.
따뜻한 아랫목 대신에 정형외과용 온열 매트에 감항아리를 놓고 이불을 덮었다.
돌시만에 꺼내 먹어 보니 신기하게 떫은 맛이 싹 가셨다.
그런데, 예전의 그 맛은 아니었다. 떫은 맛 적고 과육 무른 청도반시인데다,
입도 예전의 그 입이 아니었으며, 물이나 온돌방 등 여러가지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요즘의 달고 아삭아삭한 단감 맛에 길들여진 혓바닥 문제가 컸을지도.
그래도 수십년만에 경험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감 삭히기였다.
누군가 감 삭히는 법을 물으면 물리 훤한 어머니 흉내 내면서 알려 줄 수 있겠다.
첫댓글 거 참..... 저렇게 귀한 것에 우리 입맛이 놀라지 않다니요???
하긴 지난 수십년간 수천년의 입맛레벨을 싹 바꿔놓았으니.....
세상따라 변한 우리의 입맛이라.....
갑자기 입안이 까끌까끌해집니다.
사실, 입맛만 문제겠습니까?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이 불과 20년 전에 비하면 꿈같은 세상을 살지만
그때의 행복감은 죄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간소 소박 근검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가치로 회복하지 않으면
나도 나이들기가 편지 않을낀데......
만약 빠르게 디플레이션이나 공황이 온다면
가장 소중한 무기가 바로 그런 정신자세인데.....
그건 훈련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얻을 수 없는 경지니.....
세계 경제 지형도에 디플레이션이나 공황 조짐이 있다는 빠른 통신라인이라도 있나봅니다.^^
일 만들어서 하는데는 자타가 인정하는 기질이라 놀이하듯 해본 떨감 삭히기.
본 바대로 간명하니 한 번 해 보십시오. 작금의 과도한 물질적 풍요의 종착역이 도래할 때(언제인지 알 수 없을 뿐 반드시 올) 유용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