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은혜의 시간을 준비하시고 영혼들을 부르시니
저마다의 분주한 삶 가운데 응답하는 자들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양이 되어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되기를 원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오니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진리를 보고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본문 주해)
보아스는 지체하지 않고 구속자가 되기 위한 일을 추진한다.
성문에서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를 부르고 성읍의 장로 열 명도 청하여 앉게 하고서는 기업 무를 일에 대하여 의논을 한다.
보아스는 그 구속자에게 자신들의 친척 엘리멜렉이 소유한 땅을 그의 아내 나오미가 팔려고 한다고 말함으로 룻과의 결혼문제보다 농부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재산 문제를 먼저 거론한다.
그러니 그 구속자는 엘리멜렉의 재산을 사들이겠다고 말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보아스는 구속자의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그와 함께 룻도 포기해야 했다.
그러자 보아스는 그 구속자에게 재산을 사들이는 구속의 권리뿐 아니라 구속의 의무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구속의 의무란, 그가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후사를 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즉시로 구속자의 권리를 철회한다. 그는 오직 경제적인 이득만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속자가 룻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자신의 기업이 아니라 엘리멜렉의 기업을 잇기 때문에 그 재산이 엘리멜렉 가문의 소유로 넘어간다. 결과적으로 나오미의 경작지를 사들인 것보다 훨씬 더 큰 재산상의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재산에만 관심 있는 이 구속자는 결국 구속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음 순위자인 보아스에게 양보한다.
(나의 묵상)
보아스는 룻의 구속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날이 밝자마자 성문에서 행동을 개시한다.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으로 자기보다 더 우선권이 있는 구속자(기업 무를 자)를 부르고, 장로 10명을 증인으로 세운다.
그리고 나오미의 경작지 이야기를 꺼낸다.
그 구속자는 자기 재산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며 냉큼 그 경작지를 자신이 무르겠다고 나선다.
그러자 보아스가, 그것이 끝이 아니라, 룻을 취하여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주어야 한다고 하니 재산상의 손해를 눈치챈 그가 구속자의 권리를 보아스에게 양도한다.
보아스가 룻의 구속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멜렉의 더 가까운 그 친족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처음에 그가 자신이 그 경작지를 무르겠다고 나설 때 보아스의 가슴이 철렁했겠다.
이 일을 위해 힘을 다하는 보아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그가 단지 젊은 여인 룻과 결혼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했다고 볼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 엘리멜렉 친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끊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제 그는 룻과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도 자기 자식이 아니다. 자기 돈을 주고 그 땅을 물러도 자기 땅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지런히 열심을 다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기 때문이요, 또 보아스의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다.
그리고 그 ‘아무개’의 마음을 변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낭패를 당할 일이 없겠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를 죽여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 아무개는 자신을 죽이지 못했다. 재산상의 손해는 생각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아스는 자기 자손에 대한 마음도 죽이고, 재산의 손실에 대한 염려도 죽이고, 자기 이름에 대한 기대도 죽였다.(그러나 후에 룻을 통해 이어진 자손의 계보에는 엘리멜렉의 이름이 아니라 보아스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뜻은 보아스와 룻을 통해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이고, 그 계보를 통해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복음을 알기 전, ‘비전’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는 ‘신앙=나의 비전 이루기’처럼 생각했었다.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멋진 사람이 되고자 꿈을 꾼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신앙적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오직 이 땅의 형통을 바라게 만드는 사단의 철저한 속임수이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자신을 죽이는 보아스의 행보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신다.
보아스의 행함과도 같이 영생을 주시는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나의 행보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방해가 되는 나의 비전-나의 생각과 욕심-을 알아내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한다.
(묵상 기도)
하나님 아버지,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전에는 분명 나의 유익을 위해 ‘아무개’처럼 행동했지만,
이제 그것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는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저 마음에 걸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합니다.
제가 주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보아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