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변의 고달초등학교에서 2학년 학생들과 구례 화엄사로 소풍을가서
오늘은 날씨가 겨울을 독촉하는 분위기이다.
구름은 끼어 있고 낙엽은 여기 저기서 떨어져서 딩굴고
국화꽃은 그 아름다운 자태는 어디 갔는지 이제는 겨울의 차가운
온도에 제 모습을 간직하기에는 힘에 겨운 모양이다.
그래도 내가 마련한 아파트 뒤에는 개 짖는 소리도 들리고 야트막한
야산에는 아직도 단풍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아직은 겨울이 완전히는 오지 않았슴을 알려주고 있는것 같다.
오늘은 하루 종일 컴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의 지나간 삶을 반추
해보는 시간이 되고 말었다. 이제 시간이 많으니 자꾸 지나간 삶.
아니면 현재의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곤 한다.
나는 서울생활에서 제일 어려웠던 일 하나가 총각시절에 어머니를
여의었던 일이 나의 삶중에서 하나인 것은 틀림 없다.
그러니까 1970년 가을, 아마 이만 때 쯤 인것 같다. 그러니 내가
서울로 올라와서 공부를 하겠다고 올라 온지가 1966년이니 아마도
그 이후 3~4년 정도후의 일인것 같다.
그때 60 이 넘으신 부모님이 막내 아들 하나 믿고 서울로 올라 오신
것이다. 나이로 보면 학생신분이지만 , 60이 넘은 노부모를 부양하여야
하는 부양의무자 이기도 하다.
그때 마침 인천교육대학교에서 초등학교교사를 모집하는 공고가 났다.
인원수는 200명 모집하는 공고다.
그때는 내가 학교를 다니다가 가정형편도 그렇고 해서 자의반 타의반
학교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참이다.
때마침 내가 초등학교교사는 할수 있는 직업 같었다.
그런데 집안에 돈을 버는 사람이 없으니 생활은 말이 아니다.
어머님은 워낙 생활력이 강하셔서 서울에서 겨울용 쉐타를 사 가지고
가셔서 고향인 나주로 내려 가셔서 많은 쌀과 곡식을 바꿔서
먹고 살것을 가지고 오셨다.
그때 너무 힘겨운 일이셨는지 서울로 오셔서 병환이 나셔서 몸져
누우시다
다음해 돌아가셨다.
그러니 내가 인천교육대학의 초등교육과정을
이수 하는 동안에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가슴 아픔을 겪었다.
문제는 내가 인천교육대학에 합격하기까지 어머니의 병환을 돌봐
가면서 겪은 사연이다.
이때 쯤 날씨는 추워지고 먹을 것은 없고 마포꼭대기 도화동 산8 번지
무허가촌이 집단적으로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연탄은 겨우 하루 한 장 정도씩 쌔끼줄로 매어서 가지고 와서 부엌에다
몇장씩 갔다 놓고 살던 시대였다.
수돗물은 공동수도로 새벽 일찍부터 어깨에 메는 물지게를 지고 차례대로
줄을 서가면서 물을 길러다 먹고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고지대가 되어서 공동수도에 물이 않나오게 되는 날이면
산꼭대기 판자촌의 마을에는 물난리이다.
그려면 불야 불야 구청에서 긴급 음료수를 차량으로 산꼭대기 판자촌에
물 공급을 하여서 해결하곤 하던 시대였다.
나는 어머님이 아프셔서 몸져누워 계시는 그 방에서 책을 붙잡고
시험공부를 하였다. 마포 꼭대기 도화동산8번지는 무허가 판자촌이여서
방안에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시리고 귀가 추울 정도이다.
그 모진 추위와 어머니의 병환을 바라보면서 시험공부를 한다고 하였던
추억이 그리고 먹을 것도 없는 가난 속에서 허덕이면서.............
그래도 다행이 3천명 정도 왔던 수험생 중에서 합격이 되어서 어머니께서
눈을 감으시기 전에 우리 아들이 학교선생님이 된다는 소식을 안고
저 세상으로 가시게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병원한번 모시고 가보지 못한 불효를 저지르고
내 생애에 제일 가슴 아픈 사연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 이야기만 나오면 어머니 생각이 나고 괜시리
눈물이 내 눈가를 젓게 한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면 그때의 생각이 나게 된다. 하두 어렵게
살다보니 조금만 추워도 겨울철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곤 걱정을
하게 된다.
내가 서울시 공직에 있을때도 날씨가 추워지면 춥고 가난한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괜시리 걱정을 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갈망하던 섬마을선생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시공직을
끝내고 초등학교교사로 나의 꿈을 다소 이루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대학교 2학년때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니와 덕수궁에서
첫댓글 공무원의 꿈을 이룬 사연이 감동적입니다.
내내 건강 하이소! 무엇보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어렵사리 인천교육대학을 합격하여 교사의 길을 갈수 있었던 추억은 내생애
잊을수 없는 일입니다. 어려운가정형편에 현실을 이겨나간다는게 그렇게 쉬운일은 아닌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렵고 힘든시기에 어머님까지 보내셨으니 그 아픔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때로는 울컥할것 같습니다 ㅠ
아마도 그 어려운 시기에 시험공부를 하면서 온돌이 있는 아랫목에서 책을보면 졸릴것같아서 꼭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던추억이 납니다. 죽기아니면 살기로 공부를 하니 어떻게 시험에는 합격을 해서 교단에 서게
된것 같았습니다.그때일을 생각하면 아마도 소설도쓸것 같습니다아마도 그때가 내삶의 힘든 시기인걸로
기억이 남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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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아님 안녕하세요? 곡성 고달면에 있는 '고달초등학교'입니다 공직을 정년퇴직후에 고달초등학교에 나갔습니다
제가살고 있는데가 화순전남대병원하고가깝습니다 저의 아들이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관에서 책바자회하는것은 이미알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어렵게 공부하셨네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있고,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도 있지요.
그리고 항상 공부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은,
헛된 짓을 안하거든요. 젊어서 열심히 사신 덕에
만장봉님의 오늘이 있어요.
저런때가 있었구만요~
젊어서부터 효심이 강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