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도 손미나는 요란한 새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으로 서서히 여명이 스며들어 방안의 어둠
을 몰아내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두 번 다시 구경하기 어려운 정글의 해돋이를 지켜보기 위해 대
부분의 숙박객들이 좁은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사진작가 레이나도 벌써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
치해놓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풀숲을 헤치고 강가로 나가자 간밤에 내린 폭우로 강물은
더욱 짙은 황토색으로 넘칠 듯 흐르고 있다. 강 하류 쪽 수평선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불타오르고 있
다. 눈부신 광선 한 줄기가 뻗혀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강과 숲이 환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지구
의 허파 아마존 밀림을 감싸고 있던 물안개가 서둘러 나뭇잎 뒤로 몸을 숨기고, 비에 젖은 거대한 숲
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손미나는 장장 2페이지에 달하는 일출광경을 마무리하면서, ‘나 자신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
으로 위대한 신의 창조물임을 깨닫는 놀라운 순간이었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잘못 깨달았다. 인간
은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 ‘위대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표현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을! 해가 중천
에 떠올랐는데도 시간은 오전 6시. 정글의 일출은 그만큼 빠르다.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대부
분 정글에서 나는 과일로 만든 음식이다. 시장이 멀기 때문이다. 심지어 빵 맛이 나는 빵나무 열매도
있어 매우 신기했다. 손미나는 친절하게 각종 과일의 이름과 모양과 맛을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식당
풍경을 묘사하는 가운데 비로소 사진작가를 ‘나와 함께 수년째 지구 곳곳을 다니고 있는 일본 아가
씨’라고 신분을 밝혀놓았다.
잉카테라의 정글 탐험 프로젝트에는 반드시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한 원주민 출신을 탐험대장으로 삼
아야 한다는 안전규칙이 있다. 탐험대장은 정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비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
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탐험대장을 따라 캐노피 워크에 나섰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캐노
피란 자생하는 식물들이 20~30미터 높이에 그물처럼 형성해놓은 나뭇가지들을 말한다. 여기서는 곳
곳에 30미터 높이의 망루를 설치해놓고 그 사이를 출렁다리로 건너다니며 위에서 정글을 관찰하는
코스다. 캐노피는 원래 건축용어로서 신과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제단이나 옥좌 위에 기둥으로
떠받쳐 매달아놓은 덮개를 의미한다.
손미나는 고소공포증이 심하다. 그래서 레이나에게 너만 올라가서 멋진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다. 레
이나는 쉽게 동의하더니,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너도 기념사진은 몇 장 찍어야하지 않겠느냐며 출렁
다리 쪽으로 몇 걸음만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 손미나도 그럴싸하여 무심결에 뒷걸음질로 몇 발자국
떼놓았다. 레이나는 열심히 앵글을 맞추더니 한 발짝만 더, 한 발짝만 더 하면서 손미나에게 계속 뒷
걸음질을 치도록 교묘하게 사주했다. 레이나는 그제야 셔터를 누르더니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오
므려 OK 사인을 보냈다. 손미나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앗, 출렁다리를 절
반가량 건너오지 않았는가! 레이나를 쳐다보니 빙그레 웃고 있었다. 손미나는 하는 수 없이 가까이
다가온 레이나의 팔을 잡고 망루까지 걸어갔고, 기왕 버린 몸, 50미터짜리 출렁다리 7개를 모두 건너
잉카테라의 캐노피 워크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쳤다. 덕분에 손미나는 고소공포증까지 어느 정도 극
복했다고.
캐노피에서 내려다보는 정글은 전혀 다른 낙원이다. 사방으로 눈길이 닿는 곳까지 온통 초록 융단에
뒤덮여 있고, 사람보다 더 큰 나뭇잎들이 빼곡히 땅을 가리고 있다. 바람이 불 때면 초록빛 카펫이 끝
없이 물결쳐 일렁였다. 레이나의 꼬임에 빠져 출렁다리를 건너다니며, 참 잘 올라왔다는 생각에 황홀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전히 겁이 많아 손가락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양쪽 난간을 힘껏 잡은 채 출
렁다리를 건너면서, 손미나는 여기서 떨어지면 금세 맹수들이 달려들어 뼈도 안 남기고 뜯어먹겠지
하는 생각에 잠깐씩 아찔해지곤 했다.
그날 안내를 맡은 탐험대장은 토박이 청년 띠또였다. 메스티소인 띠또는 가이드라는 직분에 구애되
지 않고 친구처럼 일행을 안내했다. 그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정글 사이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었다. 그는 진기한 꽃이나 열매가 나타날 때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을 뽑아 꽃을 따서 모
자에 꽂아주거나 식용 열매를 따서 맛을 보여주었다. 그는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었
지만, 수다를 떠는 가운데도 누가 나뭇잎으로 가려진 웅덩이에 걸음을 내디디려고 하면 어푼 다가와
팔을 잡아 제지했다. 장화를 신고도 물이 넘쳐들 정도로 정글은 진창이었는데, 띠또 덕분에 한 사람
도 진창에 빠지지 않고 탐험을 마쳤다.
앞서 걷던 띠또가 각중에 걸음을 멈추고 검지를 세워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곧
이어 낯선 새소리가 들려오자 띠또는 똑같은 소리로 화답했고, 그 소리를 들은 여러 새들이 여기저기
서 반가이 지저귀었다. 이후에도 띠또는 새나 짐승의 소리를 흉내 내어 한참씩 대화를 나누곤 했다.
손미나에게는 정글만큼이나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일행을 가장 괴롭힌 것은 장화가 푹푹 잠기는 진
흙탕보다 징그러운 모기떼였다. 계속 움직이는데도 새까맣게 달라붙어 뜯어먹곤 했다. 맨살이 드러
난 곳마다 발라둔 모기약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오던 길을 되짚어 리조트로 돌아올 때는 모두 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흙과 나뭇잎 부스러기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진홍색 노을이 황토빛 강물을 물들인다 싶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폭우가 쏟
아지기 시작했다. 연평균 강우량 2000㎜를 상회하는 열대우림기후의 특징이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
자 손미나는 방갈로로 뛰어들어 옷부터 벗어재낀다. 1초라도 빨리 종일 강한 햇볕에 거슬리고 모기
에게 뜯기고 진흙범벅이 되어 있는 피부와 머리를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샤워를 마치고 약을 발라도
모기에게 물린 자리는 여전히 따끔거렸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종종 자고 일어나면 목이 말라있고 칼칼한게 입을 벌리고 잔 탓으로 여겨 일회용 마스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더니 괜찮아 졌습니다. 입을 벌리고 주무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이것 역시 노화로 여기며 한결 편해진 마스크로 해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