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웜 (The Swarm)
1978년 미국영화
제작, 감독 : 어윈 알렌
음악 : 제리 골드스미스
출연 : 마이클 케인, 캐서린 로스, 리처드 위드마크
헨리 폰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프레드 맥머레이
브래드포드 딜먼, 벤 존슨, 리처드 챔벌레인
패티 듀크, 리 그랜트, 카메론 미첼
호세 페러
70년대는 재난영화가 본격 부흥한 시기였는데 이 계기가 된 작품들이 몇 있었습니다. '에어포트'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워링' 등의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었죠. 특히 '포세이돈 어드벤처'와 '타워링'의 제작자인 어윈 알렌은 두 편이 크게 성공하자 아마 크게 고무되었던 모양입니다. 어윈 알렌은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감독을 겸하던 인물이었는데 1960년대 초반까지 주로 SF 판타지 장르를 연출하다가 TV로 옮겨서 활동했고, 그러다가 제작자로 참여한 두 편의 재난영화가 히트하며 70년대를 대표하는 대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손을 댄 재난영화가 바로 공포의 벌떼를 다룬 '스웜'이었습니다.
'스웜'은 '포세이돈 어드벤처'와 '타워링'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어윈 알렌이 굉장히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우선 공동제작이 아닌 단독제작으로 참여했고 아예 직접 감독으로 나섰습니다. 그가 극장용 영화에 직접 연출을 하게 된 건 1962년 '5주간의 풍선여행' 이후 16년 만이었습니다. 많은 재난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캐스팅이 아주 화려했지요. 주인공인 마이클 케인을 필두로 '졸업' '내일을 향해 쏴라'로 알려진 캐서린 로스, 40-50년대를 풍미한 대스타 리처드 위드마크, 아카데미 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명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역시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배우인 호세 페러, '황야의 결투' '분노의 포도' '미스터 로버츠' 등 숱한 작품을 남기며 미국 영화계의 상징같은 존재가 된 헨리 폰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타워링' '삼총사'의 리처드 챔벌레인, 서부극, 보안관역 등에 잘 어울리는 컨츄리형 명 조연배우 벤 존슨, '케인호의 반란' '이중배상'으로 알려진 40-50년대 명배우 프레드 맥머레이, 뒤늦게 조연배우로 맹활약하는 리 그랜트, 헬렌켈러 역으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최연소 수상했던 패티 듀크, 50년대 많이 활약한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회전목마'의 카메론 미첼 등이 캐스팅되었습니다. 특히 마이클 케인은 이런 쟁쟁한 캐스팅의 영화에 자신이 무려 원톱주연으로 나선것에 대단히 영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음악도 제리 골드스미스라는 명망있는 인물을 기용했습니다.
하지만 배우만 쟁쟁하다고, 의욕만 앞선다고 영화가 잘 되는 것은 아닌 것, 특히 아무리 과거에 한가닥 했다고 하지만 주로 한물간 배우들을 얼굴마담처럼 우르르 줄세워서 찍은 영화는 늘 불길하기 마련입니다.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꽤 높은 2천만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투입했음에도 참담하게 흥행에 실패하는데 그쳐 어윈 알렌의 고개를 떨구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79년 봄에 개봉했는데 서울 극도극장에서 42일 상영하며 14만명을 조금 웃도는 흥행에 그쳤습니다. 쫄딱 망한건 아니지만 '타워링'과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잇는 대작으로 명맥을 이으려면 최소 30만명은 동원했어야 합니다. 같은 해 국도극장 개봉한 취권이 해를 넘어가면서 79만명을 동원한것과 역시 같은 극장에서 당해년도 상영한 '서스페리아2' '오멘2' 보다 밑도는 성적이었고 같은 국도극장 개봉작인 '26x365=0' '청춘의 덫' 등 한국영화들보다도 낮은 흥행이었습니다. 특히 '스웜'과 같은 날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슈퍼맨'의 25만명에 절반에 불과한 성적표였습니다. 당시 외화가 몇 편 개봉 안되던 시기라 마케팅만 그럴싸하게 하면 20만명은 쉽게 넘는 시대였던 걸 감안하면 기대이하의 성적이지요. 심지어 역시 같은 해 개봉되었지만 기대를 밑돌았다는 '747 절대위기' 보다도 낮았습니다. 부산에서는 제일극장에서 개봉하여 12만명을 웃도는 동원으로 나름 서울보다는 꽤 선전했다고 할 수 있는게 위안이었습니다.
많은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흥행 실패도 충격이었을테지만 평단의 혹평은 더 나빴습니다. 대부분의 평단에서 크게 혹평을 받았고, 무비가이드의 레너드 말틴은 이 영화에 빵점인 'BOMB'를 주었습니다. 마이클 케인도 훗날 이 영화의 선택이 큰 실수였다고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알려진 영화였고 극장 개봉 7년뒤인 86년에 TV 로 한차례 방영된 뒤 소리없이 잊혀진 영화였습니다. 그랬던 이 작품이 1시간 56분에서 2시간 35분으로 무려 40여분이 늘어난 확장판으로 출시가 되었고 그래서 극장개봉 버전보다는 훨씬 디테일한 작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40여분이 늘어나다 보니 내용이 많이 촘촘해졌고 등장인물도 골고루 활용되긴 합니다. 그래도 역시 진부한 재난영화라는 건 바뀌지 않지만.
내용인즉, 미국 텍사스주의 어느 미사일 기지의 직원들이 의문의 공격을 받고 대량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공군 지휘관인 슬레이터 장군(리처드 위드마크)이 급히 출동하지만 외부의 침입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민간인 한 명이 그 기지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곤충학자 브래드 크레인(마이클 케인) 이었습니다. 크레인은 벌떼들이 이동하는 걸 보고 이쪽으로 왔다가 문이 열려있어 들어왔다고 하며 사람을 살상한 건 벌떼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황당한 주장에 슬레이터 장군은 처음에는 의심하지만 정찰하던 헬기가 벌떼들의 공격을 받아 추락하고 생존자 4명을 치료하던 군의관 헬레나 대위(캐서린 로스)가 가세하자 결국 아프리카 살인 벌떼들의 소행이라는 게 밝혀집니다. 크레인은 대통령의 임명으로 이 사건의 총 책임자가 되고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크림 박사(헨리 폰다)와 허바드 박사(리처드 챔벌레인) 등 여럿을 초빙하여 벌떼소탕 작전에 돌입합니다. 이후 벌떼는 인근 지역 메리스빌 마을을 습격하여 마을과 학교가 아수라장이 되고 이후 휴스턴지역까지 공포에 휩싸이며 대재앙을 초래합니다.
영화의 진부한 포인트가 여럿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인 크레인 박사는 굉장히 아는척을 하고 거만한 느낌이지만 정작 벌떼들의 습격을 상대로 아무런 역할을 사실상 못합니다. 2시간 반 동안의 영화에서 2시간 20분 동안은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피해는 빌딩 하나 불타는 '타워링'이나 거대한 유람선 하나 전복되는 '포세이돈 어드벤처'에 비할바가 아닌 도시 몇개가 대피해야 하고 휴스턴이라는 대도시를 불태우고 수백만명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원전이 폭발하는 등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모든 사고에도 불구하고 크레인 박사가 세우는 대책은 계속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가 초빙한 최고 전문가라는 의사들의 쓰임새도 허무합니다. 한 명은 벌떼의 습격을 경고하러 발전소에 갔다가 비참하게 죽고, 또 한명은 백신 실험을 자기몸에 하다가 죽고....
그리고 벌떼가 습격하는 와중에 두 가지 로맨스를 스토리라인에 넣는 것도 진부합니다. 크레인 박사는 군의관인 헬레나와 사랑에 빠지고, 마을 교장인 모린(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은 시장(프래드 맥머레이)과 퇴역 기술자(벤 존슨) 두 남자에게 연달아 대시를 받습니다. 이 노년 트리오의 삼각관계는 벌떼의 공포속에서 나름 로맨스라는 여유를 갖게 하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을 느리는 진부함도 초래합니다. 그리고 이런 국가 비상사태라는 상황속에서 총 책임자인 크레인은 운전이나 하고 다니고 입원한 아이를 신경쓰는 등 밑의 실무자가 해야 할 일을 한가롭게 하며 거니는 것도 설정이 어설픕니다. (특히 크레인과 헬레나가 나름 옷을 빼입고 느긋하게 야간 산책을 거니는 장면은...) 의사조차 속수무책으로 못 치료하는 아이를 가서 원론적인 말 몇마디를 하여 안정시키는 설정도 우습습니다. 특히 후반부 결정적 역전의 단서를 확보한 상황에서도 빨리 출동하는 게 아니라 헬레나와의 사적인 감정을 우선시하는 것도 그렇고...다른 사람들은 벌떼의 습격에 무너지는데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둘만 멀쩡히 빠져나가는 것도 많이 어설픕니다. 더구나 헬레나는 환자인데.
그래도 베테랑 연기자인 리처드 위드마크와 헨리 폰다가 나름 비중있게 등장하면서 군인 장성과 원로 과학자 역할로 자기 캐리터에 충실한 연기를 합니다. 특히 리처드 위드마크는 주인공 커플 외에는 가장 높은 비중으로 등장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반면 호세 페러나 카메론 미첼 등은 크레딧을 장식하기 위한 등장일뿐 단역입니다. (나오자마자 죽는 호세 페러는 좀...)
주요 출연진의 거의 대다수가 사망하는 꽤 처절한 내용입니다. 벌떼의 습격을 상상이상으로 큰 피해가 가는 설정으로 다루었는데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주인 텍사스가 초토화되는 충격적인 설정입니다. 독 알갱이 미끼로도, 살충제로도, 화염방사기로도 퇴치가 안되는 극악한 아프리카종 살인 벌떼의 거대한 습격을 다루었고 실제 수십만 마리의 벌떼를 독침을 일일이 빼내서 동원하는 등 물량을 많이 투여했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가 실패하고 여전히 재난영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어윈 알렌은 '포세이돈 어드벤처2' 를 다시 감독하고 폴 뉴만 등의 스타들을 동원한 '그레이트 볼카노' 라는 영화를 제작하지만 역시 실패로 끝나서 '재난 영화 실패 3부작'을 완성하고 결국 두 손 들었고 '포세이돈 어드벤처2' 는 그의 감독 은퇴작이 됩니다. 이렇게 어윈 알렌의 야심이 무너지면서 70년대를 풍미했던 재난영화의 흐름도 확 꺾이게 되지요.
망하고 혹평받은 영화지만 많은 명배우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나름 볼거리는 있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케인은 박력이 없어서 이런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 역시 쟁쟁한 배우들이 출동하는 대작 재난영화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한 때 흥분했겠지만 인생의 실패작을 남긴 셈입니다. 더구나 캐서린 로스와의 로맨스에서 단 한번의 키스씬조차도 없었고. 세상일에 결과를 어찌 미리 알 수 있을까요?
ps1 : 1년전 '에어포트 77'에서 함께 등장했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리 그랜트가 다시 1년뒤 재난영화에서 공연한 셈이네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두 노인네에게 집중 대시를 받는 행복한 교장선생님으로 비중있게 출연하는데 리 그랜트는 베테랑 방송 리포터 역으로 비중이 적습니다.
ps2 : 헨리 폰다는 실제로 양봉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캐스팅되었나봐요.
ps3 : CG가 없던 시절이라 벌떼가 습격하는 많은 장면이 실제로 촬영되었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수십만 마리의 벌의 독침을 일일이 빼냈다고 하니. 그래도 몸에 벌떼들이 들어붙는 징그러움을 배우들이 감수해야 했겠죠.
ps4 : 유사한 소재의 영화들이 그 시기에 우연인지 몇 편 만들어졌습니다. 존 색슨 주연의 '공포의 벌떼(The Bees)' 라는 영화가 같은 해인 78년데 등장했고(더 악평인 영화더군요), TV 영화지만 '스웜'보다 2년이나 빨리 등장한 역시 '공포의 벌떼'라고 우리나라에서 방영한 The Savage Bees 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결국 '스웜'은 그 영화의 2년만의 뒷북인 셈이었네요. '스웜'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벤 존슨이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고 홀스트 부크홀츠까지 나오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벌떼를 다룬 3편은 모두 혹평을 받은 작품들이니 벌떼 영화 잘 만들기기 함든가 보네요.
[출처] 스웜 (The Swarm, 78년) 아프리카 살인벌떼의 대습격|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