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날밤 이후 나에게는 미묘한 변화가 시작 되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 .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상에서 실낱같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자의 무한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나에게도 살아야겠다는 본능적인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그것은 육체적으로부터 오는 삶의 갈망이 아닌
진실한 영혼의 부름에 화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기도 했다.
저 사람은 나를 위해 살아주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며 돌아보는 물음에 대해 답을 찾았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 이제 미안해 하지않고 체념하지도 않고 않을래. 그리고 당신한테 더 다가가고 싶어 . 정현씨 . 사랑해 . 미안해 ....'
심오한 삶의 철학도 아니고 현자의 득도한 길도 아니며. 오직 이 남자와 함께 삶을 길게 연장하면서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행복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평범한 길이었다.
" 정희씨. 요즘 얼굴빛이 너무 좋아졌어요"
" 정말 ?"
" 그럼 .내 맘이 너무 기뻐요. 사랑해 "
그일이 있은 후, 남자는 틈만나면 나에게 키스를 퍼붓는다던지 손을 잡거나 허리를 안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
연애 시절에도 감히 하지 못하던 그런 과감한 행동이었다 .
완연하게 바뀐 봄햇살은 산등성이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일요일은 그에게 무척 바쁜 날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서 요일이 주는 의미도 없는 산골짜기지만, 그는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읍내로 다녀왔다.
그가 없는 시간은 허전하면서도 어떤때는 혼자임을 만끽하는 자유스러운 시간이었다.
마치 남편을 출근시킨 아내의 기분이랄까 ?
텅빈 집에서 혼자 음악을 듣거나 남자가 남겨둔
자잘한 일들을 해보고는 하였다 .
하지만 금방 지칠때가 더 많았다.
체력이 떨어진 내게는 마음만 앞서고 힘은 부칠수 밖에 없었다 .
그래도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함에 빠져들 수 있었다
" 정현씨 ! . 나도 따라 갈까 ?"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가 매번 일요일이면 읍내로 가는 까닭은 어릴 때부터 지켜온 그의 신앙의 원천인 성당으로 주일 미사를 참석하는 일 이었다.
그는 한번도 성당에 같이 가자는 말을 한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남에게 강요할 줄 모르는 남자의 성격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탓이라 생각했다.
" 그래요 , 마침 오일장이니 오는 길에 시장 구경도 합시다 "
그는 그 한 마디에 어린 아이처럼 환한 얼굴로 들떠 있었다 .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오래 전 둘이 쏘다녔던 기억이 살아났다.
" 어머 그렇게 좋아요 ? "
" 그럼 , 내가 얼마나 바라던 일이었는지 모르지요 ? 아마 촌동네 아저씨들이 당신 쫒아 다니겠어요 "
그의 농담에 나의 마음도 설레기만 했다
옷을 갈아 입다가 거울 앞에 섰다
내 얼굴과 몸은 이미 과거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곳에 와서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전의 내 모습은 아니었다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수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 드리고 싶었지만 자꾸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팽팽하던 피부는 사라지고 부석거리며 메마른
초로의 할머니가 거울 속에 마주 서 있었다.
여기저기 굵고 잔 주름이 고랑을 내고 . 쳐진 눈매와 목덜미. 언제 생겼는지 흰머리가 서리처럼 내린 거울 속의 여인.
이것도 운명이라면 나는 받아 드릴 것이다
여지껏 한번도 쓰지 않은 화운데이션의 뚜껑을 열다가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로션만 바르고 연홍빛 립스틱을 정성껏 그려 넣었다
" 정희씨 . 이것 받아요 "
화장대 앞에 앉은 나를 보고 그는 슬며시 문을 열고 무언가를 놓고 갔다
레이스가 곱게 달린 핑크빛 브레이저였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벨을 눌렀다 .
" 도대체 왜 이런걸 나한테 줘요 . 나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안갈거예요 "
순간 그는 너무 당황하고 있었다
조금 전 그렇게 기뻐하던 얼굴이었는데 그만 막 울상이 되어 버렸다
" 줬으면 입혀 줘야지 , 그냥 놓고 가면 어떻해요 ! "
나는 얇은 속옷을 벗었다
" 어서 입혀줘요 "
거울 속에 있는 나의 가슴은 검은 흉터가 길게 그어져있고 울퉁불퉁하게 황폐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어둠 속에서 . 병실에서가 아닌 환한 아침의 햇살아래서 드러난 나의 가슴은 흉한 모습으로 거울 건너편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모든 것이 멈춰서 있었다
그가 뒤로 다가와 부드러운 손으로 가슴을 안았다.
" 이렇게 벗고 있으면 감기들어요 .난 당신이 가슴이 없다고해도 변한건 없어요 .
다만 당신의 생각까지 읽어 내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
그는 여성의 상징인 가슴에 브래지어를 덮어
주었다 .
" 당신 마음 이해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때로는 바깥 구경도 지루한 생활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거예요 "
남자는 나의 입술을 살포시 덥었다
" 안돼 . 화장 지워져요 "
나는 남자의 등을 살짝 꼬집었다 .
수시로 변하는 나의 감정을 그는 해면처럼 모조리 흡수하고 있었다
그것 조차도 그에게는 진실로 즐거움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오묘한 빛깔이 은은하게 비추며 성당안을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중앙에는 예수가 처참한 모습으로 못에 박힌채로 십자가에 걸려 있었다.
하얗게 차려진 제대가 있었고 보라색 초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양쪽 벽으로는 예수의 고난을 새겨 놓은 부조가 붙어 있었다
여고 시절에 살던 동네에서 친구를 따라 성당에 가본적이 있지만 성당 안을 들어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얀 미사보를 쓴 여자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많은 군인들이 있었다.
성가와 함께 신부가 입장하면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생소하기만 한 미사 전례에 신경을 쏟다보니 무엇이 무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한번도 본적 없는 성가책을 보여 주었다.
나는 악보를 보며 그저 입만 벙긋거리며 따라하는 시늉만 하였다.
성체를 영하는 시간이었다
'저것이 무얼까 ?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 저 동전만한 하얀 밀빵이 예수의 몸이라니 ! 저걸 먹는다고 달라지는게 무언지 ? 혹시 저거 나도 먹으면 내 몸이 나아질까 ?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되면 이이에게 물어봐야지.'
그는 미사시간 내내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손을 빼내곤 하였지만 어느새 다시 나의 손은 그이의 손에 쥐어지고 따스한 온기는 내몸과 영혼까지 화사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시끌벅쩍한 성당 마당을 벗어났다
" 정희씨 . 당신 뭐 먹고 싶은 것 없어요 ?
장날이라 벼라별게 다 있어요 "
사실 나는 시골의 오일장을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 이 사람과 딱 한번 가본것을 빼고는 말이다 .
세상에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오일장 .
나는 소풍온 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남자의 손을 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
지루한 병원 생활과 산골에서의 갖혀있던 시간을 벗어나 실로 오랫만에 사람들 틈에서 서있었다
시골 장날의 풍경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몇해 전 그이와 함께 했던 정선장에서의 기억이 솟아났다
좌판에 쌓인 수구레를 보고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 이 동네 별미를 먹어 볼까요 ?"
그이는 배추전과 온면을 하는 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
" 기억나우 ? 예전에 수수부꾸미며. 감자전 한개씩 사서 둘이 나눠먹던일 ?"
" 호호호 . 그래요 . 꽈배기집 아저씨가 꽤나 툴툴거렸죠 .호호호 "
심통스러웠던 꽈배기집 남자의 표정을 흉내내는 그를 보고 허리가 꺽어지게 웃었다.
따듯한 육수에 담백한 메밀국수. 그리고 무슨 맛일까 궁금했던 배추전. 나는 그 배추전 한접시를 기꺼이 먹어 주었다
" 여보 , 나 다음에도 오고 싶어 "
앗차 ! 내가 왜 이런 실수를 ..... 뱉고 난 말은 주어 담을수가 없었다 .
" 괜찮아요 . 우리는 이미 남남이 아니잖아요 "
붉어지는 내 얼굴을 보며 남자는 말했다.
" 당신을 처음 보던 날부터 당신을 내 아내로 내 평생의 벗으로 생각했어요. 이제는 편안하게 불러도 좋을거예요 ."
그러면서 남자는 남은 배추전을 찢어 돌돌 말아 내 앞에 놓았다.
" 당신이 건강해질 수 있다면 매일이라도 오고 싶어요 ."
첫번째 나의 읍내 외출은 그동안의 갑갑했던 생활의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는 작은 활력소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 안의 병마와 싸워 이겨야겠다는 각오가 솟아 올랐다
" 우리 나온 김에 장도 보고 가요"
이번에도 내가 앞장을 섰다
" 아이구 . 곱기도 하시네. 서울서 오셨수 ?"
생선을 파는 어물전 할머니의 칭찬같은 입담에 자반고등어와 동태를 사들고야 말았지만 우리는 한쌍의 원앙처럼 장터를 쏘다니고 있었다
" 그것봐요 . 이 동네에서 당신이 최고 미인일거라고 했지 "
" 참 . 이쁜건 알아가지고 . 호호호 "
생활에 필요한 물건 몇가지를 더 사고 나는 마지막으로 정육점으로 향했다.
그이를 위해서 맛난 찌개를 끓여주고 싶었다 .
사방을 둘러 싼 산과 작은 밭과 응달에는 아직도 하얗게 눈이 남아 있었다.
그가 운전하는 차는 읍내를 벗어나 굽은 산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양지녘에는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며 봄을 유혹하고 있었다.
내게도 새로운 태양이 뜰것이다
새로운 봄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운전하는 남자의 옆모습이 든든하기만 하였다
눈이 쌓인 겨울은 꼼짝도 못하고 집에만 박혀 있었다 . 기껏해야 산골선배 집으로 가는 길에 눈을 치우며 왕래를 했을뿐 .겨울의 추위가 서울에서 겪었던 추위와는 차원이 다른 글자 그대로의 겨울왕국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햇볕은 종일 담장 아래 양지바른 곳에 핧으며 봄을 기다리는 생명의 숨결이 숨어 들었고. 구름에 걸렸던 앙상한 가지끝에는 봄을 준비하는 우렁찬 생명의 소리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
겨울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예전에 긁적거리던 습작 노트를 열고 한 줄 한 줄 백지를 메우는 일뿐이었다.
내용이래야 기껏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시한 글이었지만 소위 글빨이 먹히면 밤을 새워서라도 써줄 용기도 내 보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저지시켰다
또 , 가끔씩 나를 염려해 주는 사람들과의 통화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어머니와 딸 .
이제는 무심한 관계가 되어버린 아들.
생각하면 눈물과 답답함 뿐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피붙이라 간절한 마음만 속으로 삼키고 누구인지 모를 존재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나의 희망이 그들에게도 희망임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 정희씨 , 저것 좀 보세요"
그가 가르키는 곳에는 청솔모 두 마리가
건너편 잣나무를 오르고 내리고 있었다.
" 어머 . 다람쥐예요 ?"
" 아니요. 청솔모라고 부르는 녀석이예요"
도망도 치지않고 꼬리를 세우며 우리를 빤히 바라 보았다.
" 이젠 슬슬 산에도 다녀야겠어요 ."
" 저도 따라 갈까요 ?"
그는 웃으며 되물었다
" 그래요 같이 가요 . 대신 당신을 업고 다닐거예요 "
" 피 ~이 "
둘은 그렇게 웃고 말았다
< 엄마. 이번에도 안 불러주면 나 엄마 원망할거야 . 할머니도 엄마 너무 보고 싶어해.
정말 내 엄마 맞어 ! 엄마 할머니 친딸 맞어 ?
보고 싶어 . 엄마 >
몇번이고 찾아 온다는 말을 할 때마다 오지 말라고 모질게 딱 짤랐던 수연과의 통화였다 .
나도 보고 싶었다 .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누구도 몰랐으리라 .
곧 죽을 목숨이라는 나의 모습을 어머니와 딸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삶에 대한 가느다란 빛이 비치면서 그 그리움은 더해져 갔다 .
" 할머니는 어떠시니 ? "
" 맨날 엄마 걱정만 하시지 "
말을 제대로 이어 갈수 없었다
" 아저씨가 전화 자주 해주셨어 . 엄마 많이 좋아지셨다고 하셨어 . 보고 싶어 "
자주 통화도 못했던 딸과의 대화였는데도
몇 마디 말도 못하고 서러움에 전화를 마쳤다
모처럼 날씨도 맑고 따듯했다.
어머니와 수연이 그리고 남동생 내외 식구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
어머니는 나를 보고 눈물부터 지었다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이 예전보다 더 늙어 보였다
" 어서 들어 가세요 "
등을 떠밀어 집안으로 들어 왔다 .
" 그래 몸은 좀 어떠냐 ?"
" 좋아졌잖아요.이렇게 "
나는 미소와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엄마를 꼬옥 껴안았다 .
" 오 서방 . 고맙네 . 우리 딸을 살려냈어 고마워 , 고마워 "
어머니 곁에 앉은 그이의 손을 잡고 연신 쓰다듬으며 놓아 주지 않았다.
둘만이 살던 허전했던 집에 모처럼 많은 식구들로 붐비는 날이었다
올케와 수연이 만들어온 음식과 이곳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
그 사이 집 주위와 방들을 들러 보면서도 엄마는 내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누운 침대는 나를 그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
엄마를 품에 안았다 .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엄마와의 모든 기억이 솔솔 피었났다
' 이제 다시 엄마 품에서 이렇게 잠을 잘 때가 있을까 ? '
' 혹시 나 먼저 가면 엄마는 얼마나 슬퍼할까 '
못난 딸 때문에 긴긴 세월 마음고생하던 엄마를 생각하니 서러움이 북받혔다 .
엄마도 내 마음 같으신지 잠을 못자고
돌아 누우셨다.
' 꼭 다시 뵐거예요. 엄마 . 건강하게 지내세요
저도 다시 일어날게요 '
모녀는 그렇게 뒤척이다 늦게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후 남자는 여늬 때처럼 소리죽여 아침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 오 서방 . 오 서방이라고 부르겠네 .
우리 수연에미 살려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네
여기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지내면서 저 못난 아이 잘 부탁하네 ."
엄마에게 그이는 절대 구세주의 위치였고 神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만 ' 염려 마시라 ' 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그의 심정을 나는 알수 있었다 .
짧은 하루가 지났다
아쉬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큰 선물이 되었으리라 ..
가는 길에 내가 할수 있는것은 그동안 산에서 채취해온 약초와 장날 사다놓은 참기름과 들기름이 전부였다 .
그이는 어머니와 실랑이 끝에 끝내 봉투 하나를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다
나는 식구들이 떠난 길을 하염없이 바라다 보았다
" 추워요 . 들어 갑시다 "
그이는 그들이 다리께를 지날때까지 나의 어깨를 감싸주고 있었다 .
식구들이 가고 난 후. 나는 더 살아야겠다는 ,
엄마를 앞서는 일만은 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누군가에게 빌고 또 빌었다.
계절이 천지를 봄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 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거실
바닥을 흟으며 앉아 있었다.
햇살은 나른하게 내려도 이곳은 깊은 산중이라 쌀쌀한 바람은 간간히 계절을 잊게 하였다.
유난히 햇살이 눈부신 날 우리는 산중턱까지 땀을 흘리며 올라갔다
꽃들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서대로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로 피어났다 .
얼음이 남아있던 개울가에는 늦장을 부리며 피어있던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지고 게으른 산수유마저 노란 꽃망울을 떨구었다
산벚꽃이 바람에 날리면 뒤질새라 개복숭아며 살구꽃이 화려하게 천지를 수놓았다 .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라일락은 없었다 .
꽃들은 쉼없이 피고지어 초여름이 올때 쯤에는 야릇한 밤꽃향이 바람따라 집 마당을 휘돌아 갈 것이다
계절은 우리가 깨닫지도 못할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절따라 산나물을 뜯어다 말렸다 .
곰취며 고사리 .고비.머위. 병풍초 .곤드레.두릅 이름도 처음듣고 처음보는 나물들과 야생표고며 영지. 운지버섯들을 찌거나 말려 놓았다.
가마솥에 삶은 산나물을 햇빛 좋은 마당가에 펼치다보면 그 향기에 나의 온몸이 물들어가고 이제 나도 이곳 산골아지매가 다 되어 가는 것 같았다 .
몸으로 하는 일이야 그 사람이 다 하지만
어미 닭 쫒아 다니는 병아리처럼 나의 일상은
나름 한몫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일들은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의식인지도 몰랐다.
물론 우리의 생활에 커다란 도움이 된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이는 약초와 나물을 담아 친지들에게 우편으로 판매하였다.
내가 병원과 요양일을 할 적의 어르신들이 소중한
고객이 되었던 것도 한몫을 차지했다.
작은 차의 트렁크와 뒷자리를 가득 채운 나물 상자들은 보낸 다음 날이면 우리의 땀과 숨결이 고스란히 그들에게 전해졌다 .
우체국을 나오면서 그이는 내게 통장을 보여 주었다.
" 여기부터가 우리가 일한 땀의 열매들이예요"
통장엔 켜켜이 쌓여서 제법 많은 금액이 찍혀 있었다 .
지난 겨울 추위 속에서 산속을 헤맸던 노력의 결실들이었다
어쩌다 얻어 걸린 산삼이야 거의 내 차지였지만 그것을 먹을 때마다 미안하기만 하였다
" 정희씨 . 난 산에가면 금방 캔 더덕을 통째로 먹고 오잖아요 . 그리고 중요한건 산삼은 여자한테 그 효과가 딱 맞는거예요 . 그러니 산삼은 의당 당신 차례예요 "
가끔 뚱딴지 같은 말로 나를 위로하는 궤변을 털어 놓으며 헛웃음과 함께 미안한 내 마음을 풀어지게 하였다.
연애 기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였다 .
가끔은 아버지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일요일 아침 그이를 따라 나서 성당을 다녀 오면서 장터를 둘러 멥쌀가루를 사왔다.
늦은 봄에 캐온 쑥으로 쑥버무리를 만들었다
남자가 지펴준 화덕에서 김과 함께 쑥향은 피어나 집안 곳곳까지 잠기면서 봄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
" 여보 . 향이 너무 좋다 . 그치 ?"
나는 뜨거운 솥에서 한접시를 꺼내어 그이 앞에 내어 놓았다 .
" 응 . 쑥향이 이렇게 향긋한 줄 몰랐어요 "
남자는 한접시의 음식을 한숨에 해치울듯 입에 넣었다 .
뜨거운 것을 불어가면 먹어 주는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 줄때의 그 행복은 진심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곳에서의 짧은 생활에서 나도 저 남자의 삶에 물들어 살고 있고 그 행복의 의미를 나누고 있었다
이른 새벽 .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시원한 우물물의 맛처럼 행복이라는 것은 일상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에서 오고 있었다
나의 눈은 그이의 눈
나의 생각은 그이의 생각
나의 손과 발길 모두 그이의 것으로
바꿔 생각할 때 , 사랑은 바위 등을 덮은 파란 이끼처럼 마르지 않고 영원히 숨쉬고 있을 것이다.
' 정현씨 . 사랑해요 . '
우리의 이런 일상이 영원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 정희씨 . 한 접시 담아줘요 . 형님댁에 맛 보시라고 해야죠 "
" 네 . 지당한 말씀이지요. 낭군님 "
🍀
정희가 아침부터 안절부절 어쩔줄 몰라했다
" 여보님 . 나 화장 할까 ?"
" 정현씨 . 이 옷 괜찮아 ? 촌티 날것 같아 "
" 여보 , 나 정말 이뻐보여 ?"
나는 그녀가 소녀처럼 들떠있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
" 헤어스타일이 안 맞아요 "
나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 갔다
" 어디 봐요 "
나는 그녀를 만나고 처음으로 정희의 숨김없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
비록 꾸미지 못한 촌아낙의 모습이었지만
거짓없는 순수의 알갱이처럼 살아 번득이는 생명의 빛을 볼수 있었다
오래 된 친구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진실로 말하지만 지금 당신은 열 다섯 소녀의 밝고 티없는 모습 그대로야 . "
" 정말 ? "
"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 봤어요 ?"
" 그럼 뽀뽀해줘 "
아무튼 여자들의 오랜 우정은 나이가 들어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 어머 . 정희야 "
하얀색 K 7 은 우리들 집 입구까지 잘도 찾아 왔다 .
" 어서와 . 얘들아 "
" 어머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
차에서 내린 그녀의 벗들은 그녀를 에워싸고
그리웠던 정들을 쏟아내었다
그 중에 엘리는 애잔한 시선으로 정희를 바라보았다.
" 엘리씨 . 잘 지내셨어요 ?"
" 네. 정희가 많이 좋아 보이네요. 고마워요 . 제 친구를 잘 보살펴주셔서 "
" 별말씀을요. 저 사람이 살려는 의지를 보여주니 제가 감사할 뿐이지요 "
" 어머 . 엘리야 "
친구들은 뜨겁게 포옹을 하였다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돌아 와준 벗에 대한 반가움과 오랫동안 궁금했던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친구들을 데리고 집주변의 산과 한창 물이 차오른 개울과 제법 자라난 우리들의 부식창고인 텃밭과 비닐하우스를 구경시켰다.
하우스 안에서 자라는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와 약을 안쳐서 꼬부라진 오이와 들깨.
키작은 부추며 대파 . 얼갈이배추등 손님들은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기쁨과 동경의 환호를 질러댔다
그리고 산골 선배집까지 올라가 인사를 나누고 돌아 왔다 .
산골 선배는 모처럼 귀한 손님들에게 대접 한다고 애지중지 아끼던 거위 한마리까지 잡아 손수 들고 내려 왔다
일년 내내 한적한 산골 오지 마을에 손님으로 찾아 오는 일은 쉬운 걸음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전부터 그녀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대한의 준비를 하였다 .
거창한 행사나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이 동네가 아니면 맛볼수 없는 민물고기를 잡아
특별한 음식을 만들었다.
살이 제법 오른 쏘가리와 바위틈에 숨어있던 장어와 산메기로 닭과 함께 백숙을 끓였다
물론 산에서 채취한 약초를 담뿍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
황토로 만든 훈연실에는 참나무 연기의 열기로 거위가 익어가고 있었다 .
나는 정희의 정을 잘 알고 있다
나에게는 쌀쌀맞게 굴면서도 친구들에게는 최고의 좋은 조언자로서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어렵고 힘든 나날 중에서 그녀는 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며 봄비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우정의 자리를 마련하여 주고 싶었다.
정희의 눈높이대로 그녀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 나의 몫이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지도록 이어졌다
나의 분주함과 눈치가 밤의 시간을 여유있게 만들어 주었다 .
그네들이 돌아가고 정희는 더 삶에 대한 희망을 더 키워가고 있었다 .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욕망보다도, 예전의 자신의 모습이라 착시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다
나의 등산길에 동행 하려는 것을 억지로 떼어 놓는 일부터, 힘에 겨운 일을 해보려 하는 시골 생활과 밤이면 늦게까지 노트위에 자신의 산중 생활을 일기로 적어 넣고 그녀는 쉬지 않고 매일의 빈 공간을 채워 넣었다
긴 장마에 발이 묶이면 종일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시를 지어 산골선배와 제이에게 보이고는 하였다.
이곳 생활에 자신을 묻어 가면서 한 줄 한 글자
희망을 지어내는 글들이었다
그것은 모두 삶에 대한 절박하고 간절함이 가득 채워 있었고 자연과 벗들에 관한 감사의 글들이었다.
그때는 서울의 어머니와 수연이와의 통화도 길어졌다 .
맑은 목소리가 화단의 키작은 꽃잎을 깨우고
대추나무 푸른 열매도 춤을 추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위험에 나는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여자의 상징인 두 가슴을 도려낸 아픔조차 잊은듯 여름 햇살처럼 강열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우뚝 서서있었다.
그래 , 이대로만 가자.
거침없이 이대로만 함께 가자
" 여보 . 당신 술 한잔 하시려우 ?"
몸을 섞을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한 이불속에서 생활을 하고 난 후부터 그녀는 나에 대한 호칭이 ' 여보. 당신.' 으로 바뀌었다.
처음과 비해서 달라진 대표적인 변화였다
" 어인 술을 ?"
" 응 . 여기와서 우리 둘이 술 한잔 같이한 적이 없는것 같아. 또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
그녀는 작년 가을에 담가둔 머루로 만든 와인병을 들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의 계절은 물러가고 그 자리엔 밤이면 서늘한 공기가 계곡을 따라 내려와 산골 마을을 메우고 있었다 .
베짱이며 여치. 풀벌레들은 쉼없이 구애의
비명을 높이고 있었다.
나는 화로에 장작을 얹고 불을 붙혔다.
" 쌀쌀하지요 ? 여긴 여름이 빨리 지나가요 "
" 여름에도 밤엔 긴팔을 걸쳐야 하는데요 "
그녀는 예전에 자주 입던 꽃무늬 원피스에 하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
" 나 술이 무척 마시고 싶었어요 "
" 알아요 . 당신이 그토록 참아온 것"
정희는 와인 잔에 피빛같은 외인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 .
" 여보 . 우리 건배해요 "
" 그래요 . 건배사는 뭐라고 할까요 ? "
빙긋이 웃는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기가 하겠다고 하였다
" 삼십여 성상이 지난 먼훗날, 어느 여름밤에 오늘을 회상하며 그날도 이밤처럼 당신과 와인 한잔을 마주하고 싶은게 내 소망이야 "
나는 지긋한 눈빛으로 정희를 보며 술잔을 들었다
" 그날까지 "
" 그날까지 "
정말 간절한 건배사였다
" 당신 나 얼마나 사랑해 ?"
갑자기 그녀는 내게 물었다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지금 정희가 내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은 결코 가벼운 대화가 아니었다
" 글쎄 . 사랑이란건 길이를 재거나 무게를 달아 볼 수 없는 것이지만 . 난 당신이 지금 어떤 답을 듣고 싶어하는지 알아."
와인 잔을 들어 한모금을 더 마셨다.
"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긴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어 .
처음 헤어지자 했을 때, 이유야 어쨋든 죽고 싶을만큼 괴로웠어
하루가 지옥이었고 절망이었지.
그때 . 당신도 같은 심정이었을거야
사랑한다고 하면서 헤어지자고 하는, 그 말도 안되고 황당했던 순간에도 당신 말대로
그렇게 헤어져 주는 것도 사랑이라 생각했어
물론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당신은 말했지
'나 때문에 당신이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고 .....
처음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신의 마음 안에 내가 없었다면, 사랑이 없었다면 그런 말조차 꺼낼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화염이 잦아진 잔불에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정희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사랑에 확인이나 약속이 필요할 때는 벌써 지나갔다고 생각해.
이대로 지금처럼 영원히 함께 할 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어 "
그녀는 처음으로 진지하고 깊은 속내를 고백하고 있었다.
" 나는 당신이 어서 병의 고통과 내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을 뿐이야
내 바램과 당신의 소망이 하나인것처럼
그것은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거야.
사랑이란건 우리 앞에 와있고 우리는 그것을 잘 받아 드리고 있잖아요.
우리 삶이 우리의 나날들이 모두 사랑을 확인하고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정희의 연약한 손을 잡아 주었다
" 당신 , 아무것도 의심하거나 두려워말아요 .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은 당신이 건강해지는 일 뿐이예요"
잔가지 몇개를 올려 놓았다
타닥타닥 환호를 지르면 불길이 살아났다
" 정현씨 . 고마워요 . "
그녀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난 여기와서도 불안했어요 .
처음엔 병앞에 그저 무너져버리는 생각만 했어요.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거부와 반항의 생각도 못했어요.
어떤 년인지 팔자가 기구하고, 더럽게 지지리도 못나서 즐겁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가야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어머니와 수연이 . 그리고 제 애비를 쫒아 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어요.
당신이 이곳으로 오자고 했을때 긴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말에는 하나 거절할 이유조차도 없게 하였으니까요.
또 저의 죽어가는 추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두렵고 싫었어요.
당신의 사랑을 믿지 못한 것읕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당신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요
아무리 사랑한다지만 내 죽음의 길을 옆에서 지켜 달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생각했어요..
정말 당신은 자신의 길로 가기를 바랬어요 .
하지만 , 또 한편에서는 당신과,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강열한 욕망도 있었어요.
간절하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저의 욕심이란걸 잘 알지만 그래도 당신이라면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흉한 꼴로 변해버린 내 몸 하나는 잘 보내 줄거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변함은 없어요. 그만큼 당신은 제게 믿음이니까요 "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이어갔다.
" 결국 현실 앞에서 당신을 따라 나서긴 했지만 잊고 지냈던 당신의 사랑을 한번 더 받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당신 품에 안겨서 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렇게 이곳에 왔어요.
처음엔 언제나 헌신적인 당신의 모습에 그저 따라가는 시늉만 했는지 몰라요 .
오늘일까 ? 내일일까 ?
쓰러저 내 삶이 끝나는 모습만 상상했어요
당신이 내게 다가와 나를 보듬어 주는 모든 것들에도 진실로 행복하지는 못했어요 .
죽음 . 현대의학에서도 손을 놓아버린 환자가 생각할 수 있는건 그것 뿐이었죠 .
절망 !! 절망 뿐인 사람이 할 수 있는건 조용히 바라보며 당신의 주위를 서성거리는 것 뿐이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정희에게 나의 겉옷을 벗어 씌어 주었다
꺼져가는 화로에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 넣었다
정희의 잔에는 와인이 아직 남아 있었다
" 그러다 나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가슴을 도려내고도 잘 살아가는 여자들이 있지만 나도 그렇게 이겨낼 수 있을까 ?
슬그머니 일어나는 삶의 욕심도 욕심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
나는 정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 죽고 사는것 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신을 위해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명제였어요 ."
" 이제 ,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내 몸보다 내 영혼이 먼저 죽어 버릴거예요 ."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
그 침묵에 대답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 정희씨 . 이제도 먼 훗날에도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은 한결 같을 거예요 ."
그녀의 손은 따듯했다 .
" 내 영혼은 이미 당신 안에서 숨쉬고 있어요 "
그녀의 메마른 머릿카락이 내 뺨에 흘러 내렸다 .
" 정현씨. 나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
" 서울 한 번 데려다 줘요 . "
" 그래요 . 고마워요 "
"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어요 . 오래오래 살면서 당신이 나한테 투정부리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요 "
이밤은 사랑을 고백하는 밤이었고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산골의 가을밤은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든다 .
닫혔던 마음을 열고 . 식었던 열정도 불붙게 한다
나는 정희를 번쩍 안아 들고서 그녀와 나의 침실로 들어갔다
정희의 가녀린 팔이 나의 목을 감았다
" 사랑해 . 나 안아줘요 "
불을 끈 방안에는 아직도 울어대는 풀벌레소리가 나직히 들려오고 있었다
내 품을 파고드는 정희의 얼굴이 젖어 있었다
나는 밋밋한 그녀의 가슴을 정성껏 쓰다듬었다
나의 손길에도 아내는 이제 움추리지 않았다
눈물이 마른 얼굴.
그녀는 밤새 나의 품속을 파고 들었다.
살며시 팔을 빼면 마치 영원히 떨어질까봐
다시 내 가슴을 비비며 파고 들었다.
놓치기라도 한다면 영원히 떨어지기라도 할 것 처럼 ......
앙상해진 팔과 다리. 떨고 있는 작은 새 처럼 ,
두 몸이 엉키어 기도하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새 비가 내리고 그친 아침.
안개가 산기슭을 타고 오른 자리에는 숲의 향기가 상큼하게 내려온다
맑은 숲과 나무와 시끄러운 새소리. 그리고 따가운 가을 햇살이 우리들의 문지방 앞에서 인사를 한다
" 하느님 . 감사합니다 .
당신의 딸을 당신 뜻대로 맡깁니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시간에도 당신의 자비는 저희를 잊지 않으십니다 "
창문 넘어로 밤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새벽이 부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장작 한 개를 던져 넣고 잔 숯불 사이에 고구마 몇 개를 심었다
" 최박사님이세요 ? "
닥터 최가 출근 하기를 기다려 전화를 했다.
최박사는 크게 반겨 주었다.
우리의 사랑의 역사를 알고부터 정희를 대하는
태도가 남다랐던 그녀였다 .
" 그래요 . 사흘 후에 병실을 잡아 놓을게요.
입원해서 이 삼일 정도 검사를 받아야 하니까 준비 잘 하고 오세요 . 환자에게 스트레스 주는 일 없이 하시구요 "
" 감사합니다 "
🍀
나는 이제 무지막한 괴물과 싸워야 할 것이다
갖고 있는 무기는 사랑과 희망이라는 어찌보면 비현실적인 해답이지만 나는 그 무기의 힘을 믿는다
간절한 바램은 하늘도 움직일것을 또한 믿는다
그외의 어떤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
다시 도회지의 며칠간의 생활을 위해서 나는 소홀함 없이 준비를 하였다.
사랑을 위해서 나를 아낌없이 태워야 한다
정희의 희망을 위해서 나를 모두 다 태워야 한다.
첫댓글 60넘은 남녀가 힘도 좋습니다....
산골오지에서 몸에 좋은 산나물,버섯등을 먹고 맑은 공기 쐬니...ㅎㅎ
소소한 스킨쉽
세상과 안 바꿀 확인된 사랑
비온뒤님 야관문 끓인 물 쫌 드려야겠네요 ㅋㅋㅋ
삼지구엽초 ㅡㅎㅎㅎ
몸은 비록 아프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함께 하는게
행복해보여요~~
속이야 불안해도 그마저 잊고 살만큼 ..... 정말 꿈날이겠지요
살아있는 동안 저런 기쁨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ㅎㅎ🍊
어쩌면~
지금 우리들 모두가
원하고 꿈꾸는 사랑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고..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꿈일지라도,,,,,,,,,,,행복하기를..
꿈은 언제나 황홀하고 가슴 떨리지요 ....
^^*
돌아온 아침은
또 다른 세상이라 ...
꿈 처럼 살아가는 길 ....
우리는
처음에 정신적인 사랑을 하다가,
그다음에는 육체에 끌리다가
그다음에는 또 정신적인 사랑을 하고.
그래서 이제 몸과 마음이
합쳐지나 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성심껏 해 주었을때..
내 마음이 더 행복해 지겠지요.
서로 살아온 내력이 달라도
마음을 일치시키고
가꾸는 시간이
보기 좋습니다.
육체는 한갖 정신의 부속물 ....
육체의 쾌락 . 희열은 짧으나
그 만족감은 순간이나
영혼이 마주 잡은 손은 끝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