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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카페 게시글
부모의 사랑과 효 스크랩 눈가에 이슬 "외할머니...... 그런 거 맞제?"
익명 추천 2 조회 649 12.02.26 16:22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외할머니......  그런 거 맞제?"

손 희 경(소설가)

 

국민학교 졸업하고 열아홉에 시집오신 울 엄마.

 

연세 쉰 즈음에 운전면허를 따셨다.

"니 엄마 국가고시에 붙었다. 축하해드려라."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다. 놀라웠다.

쌩쌩 차를 몰며 엄마가 아버지를 운전학원으로 내모셨다.

속으론 가기 싫어도 내색 못하셨을 거다.

아버지가 면허를 따자 엄마는 대부분의 경우 조수석으로 밀려났다.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쉽다. 자동차는 가만히 있어도 넘어지지 않잖아." 

자전거 못타시는 아버지가 자전거 탈 줄 아는 나에게 면허 따고 운전할 것을 권하셨다.

얼마 후 거리에 폭탄 하나가 늘어났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연이어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새끼손가락으로 고추장 찍어 맛보듯 딱 고만큼 대학공부란 것의 맛도 보셨다.

어느날 조그마하게 접힌 쪽지 하나를 은밀히 내미셨다. 수필을 썼다고 하셨다.

목이 콱 매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렇게 엄마의 첫 수필은 내 속에 화인으로 찍혔다.

뭐라고 해야하나, 통문장? 단 하나의 문장으로된 글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고 싶었고 .... 하고 싶은 게 많았고.... 결혼하면서도... 아이를 다섯이나 낳아기르면서도 포기는 해 본 적이 없었고....그랬는데 그때는 그래서 그렇게 되었고...  그거는 그러려고 했지만 저렇게 되었고.... 그래도 그건 그렇게 되어 다행이었고..... 그건 그렇게 하려고 했고....  그건 그렇게 했고......>

그렇게 단 한 문장, 단 한 번의 마침표로 A4용지 한 장에다 당신의 일생을 요약해놓으셨다.

난 맏딸이 되고도 전혀 알지 못했다.

엄마에게도 당신만의 꿈이 있었다는 걸. 

그 꿈을 붙들고 있었기에 대종가 맏며느리로, 오남매 어머니로 살아오신 길이 더 외롭고 힘드셨다는 걸.

 

"엄마, 제대로 한 번 해보자. 내가 도울게."

수필 공부를 시작하셨다.

초고를 쓰고 퇴고하고 퇴고하고 또 하고  하고  하고...  고약한 딸년이 쉽게 '됐다'는 말을 안해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일 년에 한두 편씩 쓰신 것이 너댓 편 모였을 즈음 아버지가 퇴임하셨다.

대구를 떠나 고향에 정착하신 후에도  몇 편 쓰시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그만 쓰겠다고 하셨다.  

"이젠 재미 없다. 신경 쓰는 게 싫다. 요샌 컴퓨터도 잘 못만지겠고...."

나는 업무와 관련 없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카페활동까지 재미나게 하시더니 왜 저러실까 싶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언제부턴가 운전도 덜 하시는 것 같았는데, 그 무렵 크게 사고를 냈다. 전에도 크고 작은 접촉사고를 더러 냈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몹시 속상해 하시고 이상하게도 자존심까지 상해 하시더니 어느날 더 이상 운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엄마의 목소리는 힘도 없고 참 쓸쓸하게 들렸다. 우리 형제들은 전화로, '그러시는 게 좋겠다'고, 엄마가 '먼저 포기하셔서 다행'이라는 얘길 나누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형언할 수 없는 연민이 끓어올라왔다. 그때 이미 단순 노화와는 약간 다른 길로 방향이 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2010년 동생네 가족 대신 처음으로, 아들아이와 함께 부모님 모시고 부산으로 여름휴가를 가서 며칠 함께 지내게 되었다.

혼자서는 때맞춰 약 드시는 게 힘들어 아버지가 일일이 챙기셨다. 그래도 그 약이 평소 드시는 혈압약 천식약 등인 줄로만 알았다. 평생 엄마가 누군가를 챙기는 것만 익숙하게 봐 왔는데...... 아무 말 못하고  두 분이 하시는 걸 계속 지켜만 봤다. 모든 게 의심스럽고, 가방에 넣었다는 물건이 없고, 지갑에 있던 돈이 없다며 자꾸 아버지께 내놓으라고 하셨다.

"당신이 가져간 거 맞잖아요, 그만 주소."

"엄마 돈을 왜 아버지가 가져가셨다고 그래?"

"요새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잃어버릴까 봐 가져가셨다." 

외손자한테 용돈도 주고 싶고 모자도 사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슬쩍 엄마의 증세 상태 등을 귀띔해주셨다.

해운대 백사장이 바로 코앞에 있었지만 호텔에 들어온 후엔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온 젊디젊은 아들아이도 밤 백사장의 열기를 외면한 채 내내 외할머니 곁에 있었다.

"내가 요새 하도 정신이 없어가 돈이고 통장이고 모든 거 다 니 아버지한테 넘겼다. 이 정도 정신이라도 있을 때 손떼야겠다 싶어서......마음이....... 많이 허전하다. 동생들한테는 카지 마래이."

연세 일흔셋, 평생 졍제권을 쥐고 큰 살림 도맡아오신 엄마가, 멀쩡한 정신으로 말씀하셨다. 

 

 

"엄마, 외할머니...... 그런 거 맞제?"

아들아이도 그 증세에 대해선 좀 안다. 3대가 한집에 살았는데, 드물게도 조부 젖을 만지며 자란 아이다. 드러나는 증세는 달랐지만 제 조부도 그 병 앓으셨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으니 이해하기 힘었들고, 때로는 무서웠던 기억이 생생하게 있을 테니까.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셨다.

"너희들한테 얘기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나, 걱정만 시키지. 내가 있으니 너무 걱정 마라."

노인성 치매 초기.

아버지도 동생들도 엄마의 증세를 치매로 인정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꾸준한 치료 덕인지 심하진 않다. 아니 멀쩡해보일 때가 훨씬 더 많다.

아버진 그동안 해오시던 사회활동들을 모두 정리하시고 엄마와 나들이를 하는 등 많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 공유하려하신다. 그것이 최상의 보살핌이란 걸 알고 계신다.

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한 여자로서, 내 아버지가 너무나 안쓰럽고 감사하다. 죄스럽다. 참으로 고마운 남편이다.

 

부모님 애간장을 많이도 녹인 난 엄마가 쓰신 글들을 찾아서 정리하기로 한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엄마의 글이란 것만으로 충분히 귀하다.

엄마의 '미완의 꿈'을 안아드리고 싶다.

소설집에 싣기는 어색하겠지만 수필집 낼 때 함께 실을 생각이다.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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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익명
    12.02.26 18:21

    첫댓글 南 無 阿 彌 陀 佛 _()_

  • 익명
    12.03.03 10:22

    왜 눈물이 날까요...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 익명
    작성자 12.03.03 22:14

    마음이........ 많이 ...... 아픕니다..

  • 익명
    12.03.04 15:06

    눈물이 핑~~~~도네요 어머니의삶이 결코 남의 애기가 아니고 나의 미래가 될수도 있으니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익명
    12.03.08 15:33

    나무아미타불()()()

  • 익명
    12.03.12 23:01

    ㅜ.ㅜ

  • 익명
    12.03.24 15:08

    어머니의 일생이란 무엇일까요? 나무지장보살마하살........()()()

  • 익명
    작성자 12.03.26 16:38

    어머니란 이름,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가슴 뭉클하고 애틋한 이름..... 나의 어머니...... 나..... 언젠가 내 딸도 어머니가 되겠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익명
    12.11.17 21:40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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