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말씀입니다.
파리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활을 쏘는 청년들과 나하고는 친척도 아니며 같은 교회 청년들도 아닙니다. 하다못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청년들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내가 긴장이 되고, 10점 과녁에 화살이 꽂힐 때마다 희열이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요? 같은 나라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양궁뿐만 아니라 모든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의 경기는, 나의 경기이며, 선수들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며, 선수들의 실망은 나의 실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먼 나라에 속한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본향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속한 나라의 말씀이기에 말씀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되고, 말씀이 울게 되면 나 역시도 울게 됩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또한 그런 생각으로, 시편 백십오 편, 13절, 14절, 15절 말씀을 받겠습니다.
13절 :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4절 :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5절 :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아멘
자녀들이 번창할 수 있는 방법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합니다.
시편에서는 경외라는 말씀을 많이 보게됩니다. 경외는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 경외할 대상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경외할 대상이 되시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경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함에 대해 피조물인 인간이 공경하는 마음에서 갖게 되는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 하여 공포심을 갖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을 대면했을 때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경외함입니다.
고넬료 백부장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고넬료 백부장을 "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건함과 경외함은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고자 한다면, 마음 씀씀이도 행동도 말까지도 함부로 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면으로 경건은 엄숙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건함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다 복을 주신다 " 라고 하였습니다. 천하고 귀한 자를 가리지 않고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자들에게 다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되, 그 한 사람에게 복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사람과 그리고 자손들까지도 더욱 번창하도록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땅하고 당연함에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약속하셨으며, 더욱더 감사한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사람의 후손들에게도 번창케되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복과 은혜가 우리들의 것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경외하는 자와 그 후손들에게까지 복 주시되 번창한 복을 주신다 하셨으니, 우리 모두가 이 복과 은혜를 누리도록 은혜 주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