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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05월16일(토요일)~05월17일(일요일) [세종특별자치시&공주시] 여행일정
5월17일 포천 아트밸리 회비 27,517원 국민은행 578601-01-308843 노블레스 클럽 계좌로 3월23일 송금한 걸 4월13일 취소하고 5월16일~17일 세종낙화여행 신청(차액 71,999원 국민은행 578601-01-339852 노블레스 클럽 계좌로 송금 완료), 2열3번 좌석 예약
2026년05월16일(토요일) 세종특별자치시 여행일정
08:10~10:1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교대역 13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수목원로 136 번지에 있는 국립세종수목원으로 이동 [2시간, 128.3km]
탐방지 : 세종특별자치시 [국립세종수목원&세종전통시장&영평사&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대통령기록전시관&세종호수공원&세종낙화축제]
탐방일 : 2026년05월16일(토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11시간20분 소요)
10:10~11:20 국립세종수목원 탐방
[국립세종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형 수목원이다. 세종정부청사와 인접한 위치에 있으며, 도심 속에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이 수목원은 기후 및 식생대별 수목유전자원의 보존과 자원화를 위한 국가수목원 확충계획에 따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2017년 5월 개원)에 이어 2020년 7월에 설립된 두 번째 국립수목원이다. 국립세종수목원은 크게 정원전시관람지구, 식물교육체험지구, 커뮤니티참여활동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정원전시관람지구는 총 9개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전통의 미를 담은 한국전통정원을 비롯하여 분재원, 야생화원, 단풍정원, 양서류관찰원, 습지형 생태숲, 청류지원, 붓꽃원, 담장정원이 포함되어 있다. 식물교육체험지구는 총 11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물에 대한 이해와 체험을 목적으로 한다. 민속식물원, 사계절전시원, 희귀·특산식물원, 숲정원, 정원식물가늠터, 치산녹화원, 치유정원, 무궁화원, 유아숲체험원, 폴리네이터가든, IFLA 세계조경가대회 기념정원이 포함된다. 커뮤니티참여활동지구는 시민 참여와 여가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어린이정원, 축제마당, 생활정원, 후계목정원, 감각정원, 공유정원 등 6개소로 구성되어 있다. 국립세종수목원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식물과 정원을 관람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00)[동절기(11월~2월)]- 09:00~17:00 (입장 마감 16:00)
쉬는날 : 매주 월요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 1월 1일 / 명절 당일
주차시설 : 가능
문의및안내 : 044-251-0001
관련 홈페이지 : https://www.sjna.or.kr
상세정보
입장료
[개인]-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
[단체(20명 이상)]-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무료] : 만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참전용사, 기초수급자 등
※ 자세한 대상자는 홈페이지 참조
[할인대상자] : 지역 주민(세종특별자치시), 다문화가정,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간회원 등(입장료 50% 할인)
※ 할인 및 무료대상자는 신분증 등 증명자료 필수(미지참시 정상입장료 발생)]
11:20~11:4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국립세종수목원을 출발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조치원로 26 번지에 있는 세종전통시장으로 이동 [25분, 14.5km]
11:45~13:00 세종전통시장에서 점심식사 후 세종전통시장 탐방
[세종전통시장
1931년에 개설된 세종전통시장은 90여 년의 전통을 지닌 시장이다.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한 후, 2013년 4월에 조치원시장, 우리시장, 재래시장이 하나로 통합되어 지금의 세종전통시장이 되었다. 이곳은 평소에는 상설시장으로 운영되며, 매월 4일과 9일에는 오일장이 열려 더욱 활기를 띤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천안, 공주, 대전 등지에서 상인들이 몰려오고, 지역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신선한 채소와 과일, 싱싱한 수산물, 공산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시장 안에는 50년 전통의 수제 만두를 비롯해 저렴한 자장면, 줄을 서서 먹는 씨앗호떡 등 다양한 먹거리도 즐길 수 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세종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지역 특산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한 ‘조치원 테마 거리’도 있어 풍부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3:00~13:27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세종전통시장을 출발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영평사길 124 번지에 있는 영평사로 이동
[27분, 21.2km]
13:27~14:30 영평사 탐방
[영평사
영평사는 세종시 장군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 말사로서 전통 건물과 3동의 토굴을 갖춘 대한민국 전통 사찰이다. 영평사를 창건한 환성 큰스님은 도량에서 추구해야 할 일이 바로 중생 행복 세계평화라 하여 이 도량에 상주하는 대중은 물론 한 번 무심코 다녀가거나 절 이름을 듣거나 생각만 해도 불멸의 행복을 얻도록 하고, 이 도량에 사는 미물은 물론 공중을 지나간 날짐승조차도 평안을 얻는 도량을 만들겠다는 서원을 담아 영평사라 명명하였다. 영평사는 겹벚꽃의 명소이기도 하며 가을이면 절 안팎과 산야가 온통 하얀 구절초꽃 무리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매년 10월 열리는 장군산 구절초꽃 축제는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를 굳히고 있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이다. 영평사에서는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통문화축제인 낙화놀이와 연계한 템플스테이 등 특별한 프로그램이 열리기도 한다.]
14:30~14:5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영평사를 출발하여 세종특별자치시 도움6로 11 6동 종합안내동에 있는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으로 이동 [20분, 10.1km]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政府世宗廳舍 屋上庭園)
영어공식명칭 : The Largest Rooftop Garden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도움6로 11[어진동 560]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옥상에 있는 정원.
[개설]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은 2016년 2월 29일 국내기록으로 인증 받고, 6월 25일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Largest rooftop garden)’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10월 17일 기네스북 등재를 기념하는 표지석의 제막행사가 있었다.
[건립 경위]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은 정부세종청사의 건립 계획 당시 탈권위적이고 탈중심적인 도시공간구조를 만들기 위해 옥상에 정원과 휴게시설을 두고자 하는 목적에서 건립되었다.
[변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은 2013년 정부세종청사 2동에서 6동까지의 옥상 1.6㎞를 개방하였다. 2013년 세종 축제 당시 세종시 주민에게 한시적으로 개방되었다가 2014년 3월 10일부터 견학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일부 개방되었다.
2019년 9월 옥상정원이 일반인들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1동에서 6동까지의 옥상 1.7㎞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구성]
면적은 79,194㎡이며 전체 길이는 3.6㎞이다. 허브원 1개소, 약용원 2개소, 유실수·베리원 2개소, 넝쿨터널 8개소가 있으며, 식재수량은 교목류 2,302본(둥근소나무 등 40종), 관목류 169,430본(화살나무 등 43종), 지피, 초화류 1,002,120본(구절초 등 135종) 등 총 1,173,852본이다.
현재 개방된 옥상정원은 억새길, 들풀길, 너른길이라는 3가지 주제로 길이 만들어져 있고, 옥상카페, 파고라, 미술작품, 디자인의자 등이 마련되어 있다.
[현황]
평일과 주말 정해진 시간(10시·11시·14시·15시·16시)에 관람할 수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청 홈페이지 또는 정부청사관리본부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프로그램 예약을 신청할 수 있다. 혹한기(1~2월)와 혹서기(8월)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입장할 수 있다. 관람 소요 시간은 약 50분이다. 6동 종합안내동 1층에서 안내원의 인솔 하에 출발하여 보안검색을 거친 후 옥상정원 6동에서 1동으로 나가는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8월 기준 73,751명이 방문하였다. 보안검색에 응하지 않는 경우 옥상정원을 관람할 수 없다.]
14:50~15:30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3회차 탐방 대기
['26년 상반기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관람 예약이 확정되었습니다
예약번호 1209768454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관람 예약 시간 : 2026.05.16. (토) 오후 3:30
- 신분증(여권, 모바일 신분증 가능) 지참 필수
- 관람회차 30분 전부터 관람 접수처 개방(자세한 사항은 예약창 확인요청)
- 정부세종청사는 '가'급 보안기관으로 자유관람이 어려우며, 옥상정원 담당 근무자들과 함께하는 인솔관람으로, 관람시간을 반드시 준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음주 시 출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입구와 출구가 다른 단방향 관람이므로, 주차장위치를 잘 확인하시어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관람 소요시간 : 약 60~90분
관람료 : 무료
문의사항 : 044-200-1580 (평일 09:30~16:00, 주말 09:00~16:00)]
15:30~16:30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3회차 3코스 탐방
[3회차 3코스 탐방 정보
3회차 3코스(15:30~17:00) : 11동에서 15동(1.4km)
해설 : (주말) 3회차 문화관광해설사
3코스 11동 고용노동부 내 접수처 (어진동581)
*정문으로 진입하여 약 100m 직진
문의처: 044-200-1580 (옥상정원 접수처)
ㅇ 전화응대 : (평일) 09:30부터 16:00까지, (주말) 09:00부터 16:00까지
(부재) 12:00~13:00]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 도시의 풍경과 어우러진 푸른 산책길
세종 어진동에 자리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은 한때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녹색 공간이었다. 널찍한 규모를 자랑하며 잘 가꿔진 산책로와 다채로운 식물들이 계절의 변화를 담아냈고,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조망과 휴식을 제공했다. 이곳은 현재 관람 및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재정비를 진행 중이다. 미래에는 더욱 개선된 모습으로 대중에게 개방되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6:30~16:55 대통령기록전시관으로 이동 [25분, 1.6km]
16:55~17:40 대통령기록전시관 관람
[대통령기록전시관
대통령기록전시관은 역대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물을 보존하고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2016년에 개관한 전시 공간이다. 이곳은 대통령의 재임 기록, 정책 결정 과정, 주요 행사 자료 등 국가의 중요한 역사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건물은 국새 보관함을 형상화한 정육면체 큐브 디자인으로 대통령 기록물의 완전성과 영구성을 상징한다. 전시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은 1층에서 시작해 4층으로 올라간 뒤 한 층씩 내려오는 방식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사용된 대통령 의전차량이 전시되어 있다. 이 차량은 여러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상징적인 유산으로 멋진 포토존으로도 활용된다. 전시관 내부에는 역대 대통령의 얼굴을 표현한 대형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은 각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추출한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어, 시대별 철학과 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대통령 공간은 청와대의 집무실, 접견실, 춘추관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공간이다. 관람객은 대통령 의자에 앉아보거나 연설 단상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만 5세 이상~13세 이하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체험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대통령 선거 포스터 만들기, 취임 우표 제작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체험관은 개인 및 단체 모두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주소 세종특별자치시 다솜로 250 (어진동)
문의 044-211-2000
휴무일 매주 월요일 / 법정공휴일 (단, 어린이날은 개관) / 대통령기록관장이 지정하는 날
이용시간 10:00~18:00 (입장 마감 17:30)
이용요금 무료]
17:40~17:47 대통령 기록전시관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1201 번지에 있는 세종호수공원 중앙광장으로 이동 [7분, 458m]
17:47~19:07 세종호수공원 전체(도보 약 1시간 - 수상무대섬 경유시 약 1시간 20분 소요)를 탐방
[세종호수공원
위치 : 세종특별자치시 다솜로 216 (세종동)
개요
세종호수공원은 세종시 중심에 위치한 호수로서 세종시 및 인근주민들에게 휴식 및 문화의 공간이다. 호수공원에는 금강의 물결에 의해 다듬어진 조약돌을 형상화한 672석 규모의 수상무대섬, 공원의 활성화를 위해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는 독립된 구조의 축제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물놀이시설과 반짝이는 모래해변이 있는 물놀이섬, 데크길 따라 가득히 채워진 다양한 수생식물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물꽃섬,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과 수생태계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는 습지섬, 총 5개의 테마섬이 있다. 다양한 테마의 시설을 갖춘 5개의 주요 테마섬을 비롯하여,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제공함으로써 주민의 심신과 안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며, 테마산책로는 소나무길, 벚나무길, 은행나무길, 이팝나무길, 들풀길, 나들숲, 가을단풍숲, 살구나무길 등 다양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다양한 주제별 산책길을 제공한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 05:00~23:00
쉬는날 : 연중무휴
주차시설 : 가능 (총 1,244대)
문의및안내 : 044-850-4370
관련 홈페이지 ; 세종특별자치시 시설관리공단 https://www.sjfmc.or.kr/sjpark.do
상세정보
관광코스 안내
[A코스] 중앙광장 - 무대섬 - 물놀이섬 - 물꽃섬 - 수변전통정원 - 중앙광장(도보 약 30분 / 자전거 약 15분)
[B코스] 중앙광장 - 무대섬 - 푸른들판 - 습지섬 - 청음지 - 축제섬 - 중앙광장(도보 약 45분 / 자전거 약 20분)
[C코스] 호수공원 전체(도보 약 1시간 - 수상무대섬 경유시 약 1시간 20분 / 자전거 약 30분 - 무대섬 경유시 약 35분)
입 장 료 : 무료
이용가능 시설 : 수상무대섬 / 축제섬 / 물놀이섬 / 물꽃섬 / 습지섬
화장실 : 있음(남/녀 구분)]
19:07~19:30 저녁식사
19:30~21:30 세종호수공원과 세종중앙공원에서 세종낙화축제를 관람
[세종낙화축제
축제기간 : 2026.05.16. (토) ~ 2026.05.16. (토)
시간 : 19:30 ~ 21:30
장소 : 세종호수공원, 세종중앙공원
주최 : 세종특별자치시
주관 :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 불교낙화법보존회
요금 : 무료
축제 소개
세종낙화축제는 우리 시 무형유산인 ‘세종 불교 낙화법(2024.2.13. 지정)’을 바탕으로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축제로, 도심 속 호수공원의 자연과 도시경관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야간 관광 축제이다. 낙화봉을 나뭇가지나 장대, 줄에 매달아 불을 붙이면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함께 불씨가 꽃잎처럼 흩날리며 밤의 숲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낙화는 불교 연등회와 정월대보름, 단오, 칠월 보름 등에서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행해지던 우리 고유의 전통 의식에서 유래했다. 소나무에 매달린 낙화봉의 불씨가 흩날리는 장면을 멈춘 자리에서 ‘불멍’으로 즐기거나,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감상하는 등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세종중앙공원
세종중앙공원은 약 138만㎡ 규모로 조성된 대형 공원으로, 다양한 식물과 테마형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휴식 및 여가 공간이다. 2020년 11월 개방된 1단계 구역(약 52만㎡)에는 장남들광장, 복합체육시설, 가족여가숲, 가족예술숲 등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곳곳에는 여름연못, 구름연못, 물빛연못, 음악분수, 쿨링포그 등 다양한 수경시설이 설치되어 자연과 어우러진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공원중심센터, 도시전망대, 스포츠지원시설 등 주요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 등 12여 종의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시민들의 건강한 여가 활동을 지원한다.]
21:30~22: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세종호수공원을 출발하여 숙소로 이동 []
22:00~23:00 객실로 입실하여 샤워 후 휴식
23:00~ 객실에서 취침
2026년05월17일(일요일) 여행일정
07:30~08:30 객실에서 기상하여 샤워 후 짐정리
08:30~09:30 아침식사
09:30~10: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숙소를 출발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29-111 번지에 있는 세종 이응다리로 이동
[세종 이응다리
금강 북측의 중앙녹지공간과 남측의 3생활권 수변공원을 연결하여 만든 이응다리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1446년을 기념하여 둘레를 1446m로 정하였다. 복층으로 구성되어 상부층은 보행전용, 하부층은 자전거 전용으로 이용된다. 세종의 환상형 도시구조를 형상화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국내에서 가장 긴 보행 전용 교량으로 세종시의 또 다른 랜드마크이다.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29-111
연락처 : 044-868-9127 (이응다리 관리사무소)]
탐방지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 이응다리(금강보행교)]
탐방일 : 2026년05월17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1시간 소요)
10:00~11:00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1446년을 기념하여 둘레를 1446m로 만든 세종 이응다리(금강보행교)를 탐방
[세종 가볼 만한 곳, 강변을 따라 걷는 물의 도시 여행
기자명 이영선 기자
기사 입력 2026.04.09. 16:07
[중앙이코노미뉴스 이영선] 세종은 대한민국의 행정 중심 도시이자, 금강의 물길이 감싸 안은 자연과 현대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넓은 공원과 수변 공간이 도심 곳곳에 자리해 여유로운 휴식을 선사하며, 다양한 테마로 가득한 세종은 가볼 만한 곳이 풍성하다.
금강보행교(이응다리) — 강 위를 걷는 독창적인 시간 여행
세종의 랜드마크인 금강보행교는 국내 최초 복층 강관트러스교로, 환상적인 도시 구조를 형상화한 독창적인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교량 상부는 휴게 시설과 이벤트 공간이 있는 녹지 보행로로 조성되어 있으며, 하부에는 쾌적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어진다. 강바람을 맞으며 다리 위를 걷다 보면 금강의 물줄기와 세종의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다리의 아름다운 곡선과 강변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세종호수공원 — 5개 테마섬이 선사하는 도심 속 휴식처
세종시 중심부에 위치한 호수공원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문화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금강의 물결을 닮은 조약돌 형상의 수상무대섬을 비롯해 축제섬, 물놀이섬, 물꽃섬, 습지섬 등 5개의 테마섬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소나무길, 벚나무길, 이팝나무길 등 다양한 주제로 조성된 테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잔잔한 호수 위로 비치는 햇살과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종중앙공원 — 자연과 체육 시설이 어우러진 대규모 공원
약 138만㎡ 규모로 조성된 세종중앙공원은 다양한 식물과 테마형 정원을 감상하며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대형 공원이다. 장남들광장, 복합체육시설, 가족여가숲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공원 곳곳에 여름연못, 구름연못, 음악분수 등 다양한 수경시설이 자연의 소리를 더한다. 넓은 잔디밭과 푸른 나무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온전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야구장, 축구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도 마련되어 건강한 야외 활동을 지원한다.
돈스 — 수작업으로 만든 바삭하고 고소한 수제 돈가스
세종 조치원읍에 자리한 돈스는 2006년부터 이어진 전통을 자랑하는 수제 돈가스 전문점이다. 양식 전문 요리사가 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특제 소스를 매일 끓여 사용하며, 주문 즉시 돈가스를 묻혀 튀겨내는 방식으로 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유지한다. 최고급 임실 치즈를 올린 치즈돈가스와 돈스만의 특별한 양념이 더해진 까르보나라가 대표 메뉴이다.]
11:00~11:48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세종 이응다리를 출발하여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731-2 번지에 있는 마곡사 주차장으로 이동 [48분, 38.0km]
탐방지 : 공주시 [마곡사&공주산성시장&공산성&공주 미르섬&공주 무령왕릉&국립공주박물관&갑사]
탐방일 : 2026년05월17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7시간12분 소요)
11:48~12:50 마곡사 탐방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자장이 충청남도 공주에 창건한 사찰.
집필 2023년 김용태 (동국대학교 교수, 지역불교 및 불교사 연구(조선시대 불교사) 최종수정 2024년 09월 28일
마곡사는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자장이 충청남도 공주에 창건한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성주산문의 개창자 무염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고려 후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했다고 전하며 보물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마곡사를 비롯한 7개의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건립경위
충청남도 공주시 태화산(泰華山)에 있는 1000년 고찰주1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의 본사이다. 절의 창건주와 시기, 마곡사라는 사찰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고승 자장(慈藏)이 선덕여왕이 하사한 전(田) 200결주2로 절을 짓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通度寺) · 월정사(月精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다는 설이 전한다. 이때 낙성식주3을 할 때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시대의 백제 땅에 신라의 고승 자장이 와서 절을 건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무염(無染)이 당에서 돌아와 절을 지을 때 중국의 스승인 마곡 보철(麻谷普徹)의 이름을 따서 마곡사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염은 공주 성주사(聖住寺)를 근거지로 하여 뒤에 구산선문주4이 되는 성주산문주5을 열어 활동하고 교화했다. 한편 절이 들어서기 전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했다는 설도 있다.
변천
나말여초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고려 전기에 200년 가까이 황폐화되어 도적 떼의 소굴로 이용되던 것을 12세기 후반에 보조 지눌(普照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중창했다고주6 전한다. 보조 지눌이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적들에게 물러가라고 했지만 도적들이 오히려 해치려 하자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이한 술수로 많은 호랑이들을 만들어 도적들에게 달려들게 했더니 도적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에 지눌은 중창불사를 하여 대가람주7을 이루었는데, 임진왜란 때 전각의 대부분이 불타 버렸다고 한다. 그 뒤 1651년(효종 2)에 각순(覺淳)이 대웅보전과 영산전 · 대적광전 등을 중수했다는주8 기록이 전한다.
2층의 대웅 보전주9은 조선 중기의 사원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건물이다. 기둥을 안으며 한바퀴 돌면 6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현판은 김생(金生)의 글씨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영산전의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金時習)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 전해진 것이다.
구한말주10에는 동학 농민 운동주11과 의병 부대에 가담했던 김구(金九)가 마곡사에 머문 인연이 있다. 명성황후 시해주12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스치다 조스케(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1898년 마곡사에 와서 머리를 깎고 법명주13을 원종(圓宗)이라 했다. 마곡사에 오래 있지는 않았고 1899년 봄에 금강산으로 떠났는데, 해방 후 1946년에 다시 들려 대광보전 기둥의 주련에 새겨진 “돌아와 세상을 보니 꿈속 일과 같구나.”라는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심은 향나무가 지금도 남아있다. 마곡사는 일제강점기 31본산(本山)의 하나로서 충청남도 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사였다.
형태와 특징
현존하는 전각으로는 극락교(極樂橋)를 넘어 대웅보전(大雄寶殿)과 영산전(靈山殿), 천장의 무늬가 아름다운 대광보전(大光寶殿),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興聖樓), 해탈문(解脫門), 천왕문(天王門), 16나한상과 2구의 신장을 모신 응진전(應眞殿), 명부전(冥府殿)이 있으며, 응진전 맞은편에는 요사채주14인 심검당(尋劍堂)이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영산전 옆에는 벽안당(碧眼堂)과 매화당(梅花堂) 등이 있고, 그 밖에도 염화당(拈花堂) · 연화당(蓮華堂) · 매화당(梅花堂) 등 요사채가 즐비하다. 마곡사에는 오층석탑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주15, 석가모니불 괘불탱 등 다양한 유형의 문화유산이 있다.
이 중 오층석탑은 풍마동다보탑(風磨洞多寶塔)이라고도 하는데, 형태상 원나라주16 탑의 영향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탑이 무너져서 안에 든 보물이 도난당했으나, 1972년에 수리할 때 동제 은입사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절의 부속 암자로는 심정암(深淨庵) · 부용암(芙蓉庵) · 북가섭암(北迦葉庵) · 토굴암(土窟庵) · 백련암(白蓮庵) · 영은암(靈隱庵) · 대원암(大願庵) · 은적암(隱寂庵) 등이 있다.
한편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주17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한 앉은뱅이가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님께 백일기도주18를 드렸다. 그는 장애를 고치기 위해 백일기도하는 동안 틈틈이 삿자리를 짰다. 이 삿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 줄로 완성한 것인데, 그는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다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했다. 100일 뒤 작업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 문을 걸어나갔다.
의의 및 평가
마곡사는 ‘춘마곡 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봄의 경치가 매우 빼어나다. 2018년 6월에 마곡사를 비롯한 한국의 7개 산사주19가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주20에 등재되었다. 중요 문화유산으로는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1과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6이 1963년에 보물이 되었고, 1984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과 영산전, 대광보전, 오층석탑, 그리고 1997년에 보물이 된 석가모니불 괘불탱이 있다. 또 대웅보전 목조 삼세불상, 영산회상도와 영산전 목조 칠불좌상 및 복장 유물, 동제 은입사 향로와 동종, 포교당 범종, 명부전, 응진전, 천왕문, 해탈문, 국사당, 심검당 및 고방과 같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12:50~13:2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마곡사를 출발하여 충남 공주시 용당길 20 번지에 있는 공주 산성시장으로 이동
[30분, 21.6km]
[공주 산성시장
1937년에 개설된 공주산성시장은 백제의 왕궁터인 공산성 성곽 아래 있어 역사적, 문화적 전통성을 지닌 시장이다. 2011년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에서 선정한 가고 싶은 전통시장 50선에 선정되었으며, 2012년 특성화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인근의 역사문화유적지와 관광지를 연계한 이력이 있는 문화관광형 시장이다. 상인들로 구성된 라디오 방송국 소리마루는 시장 활성화에 큰 몫을 해내고 있으며, 가래떡 나눔 행사, 씨름대회 등의 축제로 일 년 내내 다채롭다.]
13:20~14:20 점심식사
14:20~14:22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공주 산성시장을 출발하여 충남 공주시 금성동 17-1 번지에 있는 공산성 주차장으로 이동
[2분, 0.6km]
14:22~15:30 공산성 탐방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
이칭 : 고마성(固麻城), 공산산성(公山山城), 공주산성(公州山城), 쌍수산성(雙樹山城), 웅진성(熊津城)
높이 : 3~4m
둘레 : 2,500m
면적 : 218,717㎡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산성동 2번지
웹페이지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400120000
종목 :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지정기관 : 국가유산청
집필 및 수정
집필 2022년 서정석 (공주대학교) 최종수정 2024년 02월 21일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발굴 경위 및 결과
공산성은 웅진기 백제의 왕성(王城)이자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적이다. 1970년대 말부터 진행된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계기로 공산성에 대해 관심을 받게 되었다. 당시 정밀 조사를 통해 성벽의 둘레와 성내 시설물의 현황이 확인되었고, 특히 백제 때에는 토성주4이었던 것을 조선시대에 석성주5으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1985년과 1986년에는 추정 왕궁지에 대한 시 ·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뒤이어 백제 때 축조된 토성벽과 통일신라 때 조성된 28칸 건물지, 그리고 광복루 주변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서서도 12각 건물지를 조사하는 등 대체로 공산성 내 동쪽 산봉(山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서는 2005년에 성안마을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성안마을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성안마을에 중군영지(中軍營址)를 포함한 조선시대 유적이 자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부터는 조선시대층을 제거하고 그 아래쪽에 자리하는 백제 유적을 본격적으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 2016년까지 다양한 백제 유적과 통일신라 유적이 확인되었다. 그중 2011년에는 작은 연못 안에서 옻칠 갑옷과 철 찰갑주6이 각각 1령씩 출토되었으며, 마갑(馬甲)주1과 각종의 마구도 다양하게 출토되어 공산성의 역사적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건립 경위
공산성은 백제 웅진기의 왕성인 만큼 웅진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다. 웅진기 왕궁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문헌 기록과 발굴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공산성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변천
공산성이 웅진기 백제 왕성이지만, 축조 시기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성왕 4년(526)에 공산성을 수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축조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비기에는 5방성 중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그 때문에 660년에 나당연합군주2이 사비도성을 공격할 때 의자왕이 공산성으로 피난 오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때에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治所城)이었는데, 그 때문에 822년(헌덕왕 14)에 김헌창이 공산성을 기반으로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충주에 있던 충청 감영(監營)이 공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공산성이 대대적으로 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감영이 공주로 옮겨질 때 처음에는 공산성 안에 감영이 자리하였지만, 출입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공산성 밖으로 옮겨지기도 하였다. 이괄의 난 때에는 인조가 공산성으로 피난 오기도 하였다.
형태와 특징
공산성은 금강 남안(南岸)의 공산(公山)에 자리하고 있다. 성곽이 자리한 공산은 해발 110m의 동쪽 산봉과 해발 85m의 서쪽 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두 산봉을 에워싸면서 축조되었다. 성벽은 동쪽 일부만이 토성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석성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던 것을 조선시대 때 현재와 같이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발굴 조사 결과 조선시대 이전에 석성으로 축조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이미 석성으로 소개되어 있는 만큼 충청 감영이 오기 이전에 석성으로 개축된 것은 틀림없다. 성내에는 많은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쌍수정 앞 광장은 왕궁지로 추정되고 있고, 북문지 안쪽의 평탄면에도 많은 백제시대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내에는 많은 기와편과 와당주7, 그리고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백제 웅진기의 왕성인 만큼 웅진기 백제 도읍지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아울러 한성기와 사비기의 도읍지 구조 및 백제 도성의 변천 과정을 이해할 때에도 큰 도움을 준다. 통일신라 때와 조선시대에는 공산성을 중심으로 지방 통치가 이루어졌던 만큼 치소성의 구조와 특징을 파악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15:30~15:3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공산성을 출발하여 충남 공주시 금벽로 368 번지에 있는 공주 미르섬으로 이동
[5분, 2.3km]
15:35~16:10 공주 미르섬 꽃밭 탐방
[공주 미르섬
공주에 위치한 미르섬은 금강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이 섬 전체를 화사하게 물들이는 자연 속 힐링 명소이다.
봄이면 양귀비와 장미, 여름이면 보랏빛 물결을 이루는 코끼리 마늘꽃, 가을과 겨울에는 해바라기와 핑크 뮬리 등 사계절 아름다운 꽃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담을 수 있다.
특히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핑크뮬리, 댑싸리, 수크렁 등 다채로운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섬을 따라 조성된 핑크뮬리 길이 인기를 끌며, 연분홍빛 물결이 금강의 풍경과 어우러져 인생샷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꽃밭을 가로지르는 산책로는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이어지며, 강가를 걷는 내내 공주철교와 뒷산의 녹음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을 즐길 수 있다. 길은 잘 포장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산책할 수 있으며, 특히 공주대교 방면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한층 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가족 단위 관광객은 물론,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16:10~16:16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공주 미르섬을 출발하여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 5-19 번지에 있는 공주 왕릉원으로 이동
[6분, 2.3km]
16:16~17:40 공주 무령왕릉과 국립공주박물관을 탐방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적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 웅진시기(475~538년)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금강의 남쪽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호분과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 강점기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호분과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1~5호분은 백제의 대표적 무덤 양식인 돌로 만든 굴식돌방무덤이고, 6호분과 무령왕릉은 당시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던 무덤 양식인 벽돌무덤이다. 벽돌무덤은 백제에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양식의 무덤으로, 이는 백제가 중국 남조 양나라와 활발히 교류를 했다는 증거이다. 특히 무령왕릉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석수와 도자기를 비롯하여 일본산 금송으로 만든 목관, 태국 및 인도와의 교류를 의미하는 장신구 등이 발견되어 백제의 수준 높은 국제적 문화교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문의 및 안내 041-856-3151
홈페이지 https://www.gongju.go.kr/tour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37 (웅진동)
이용시간
[하절기(3월~10월)]
- 09:00~18:00
- 입장마감 17:30
[동절기(11월~2월)]
- 09:00~17:00
- 입장마감 16:30
휴일 : 1월 1일 / 설· 추석 당일
주차 : 가능
지정현황 : 사적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963.01.21 지정)
화장실 있음
주차요금 : 무료
입장료
[개인]
- 어른 3,000원
- 청소년 2,0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20인 이상)]
- 어른 2,5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500원
※ 무료 : 만 65세 이상, 장애인, 미취학아동
※ 매달 마지막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 입장]
[국립공주박물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연락처 : 041-850-6300
백제 웅진 시대를 한눈에, 국립공주박물관
공주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테마 박물관으로 백제 제25대 무령왕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무령왕릉실과 충남지역의 구석기시대 ~ 통일신라의 역사문화가 있는 선사고대문화실이 있다.
공주시 일원에서 출토된 불교유물인 대통사지출토 석조와 서혈사지 출토 석불좌상 등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사마왕 둘레길(박물관 뒷길)로 오르면 웅진백제 시대 제사공간인 정지산유적지가 있으며, 이곳에 서면 공산성과 금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주요시설물 운영 안내
· 이용시간 :
- 평일 : 오전 10시~ 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 오전 10시 ~ 오후 7시
- 휴관일 : 매년 1월 1일,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평일[「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제2조 ])
· 이용요금 :
- 무료 (단, 기획전시는 경우에 따라 유료 가능)
- 무료 관람이라도 관람질서 유지 및 이용객 안전 등을 위해 '무료 관람권'을 발행하므로 표 받는 곳에서 무료 관람권을 발급받아 입장하셔야 합니다.
· 주요시설 : 전시실 및 우리문화체험실, 강당, 야외공연장, 문화상품판매점, 주차장, 수유실 등]
[국립공주박물관 주요 소장품(국보 12종 17점)
국보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은 불상과 글이 새겨진 비석 모양의 석상이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총 높이 91cm. 조치원읍내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산기슭의 서광암에서 1961년에 발견·조사되었다. 상·하 2석으로 연화대석과 신부가 1석이며 정상부에 얽힌 2단형 천개가 별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석상은 단판의 앙화원형 대좌 위에 세워졌는데 연판의 조각은 측면에서 그쳤다. 신부는 장방형 비신형을 이루고 그 하부중앙에 삼존상을 조각하였으며, 그 양측에는 각 4행의 명문을 음각하였다. 그리고 삼존과 명문 이상의 전면을 10단으로 나누었는데 상9단에는 각 20위의 작은 여래좌상을 조각하였다. 이 같은 소형불상의 배치는 측면 각 14단에 각 8위씩 후면 16단에 각 12위씩으로 4면 전체에 720위의 소불이 조각되어 공간을 남기지 않았다. 전면 삼존상에서의 본존은 방형 대좌에 결가부좌하였으며 무릎 밑과 하단에 연화좌가 있고 그 사이에는 상현좌의 양식을 조각하였다. 두부는 부서져 없어졌으며 통견의 가슴에는 만자가 보인다. 수인은 오른손을 올려서 현장하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선장하였다. 좌·우 양 협시 보살은 둥근 양연좌에 섰으며 상부는 나체인데 하반신은 상의가 X자로 교차된 천의가 있으며 연화와 주문으로 원형두광을 갖추고 있다. 옥개석은 장방형 2단을 이루고 1석 조성으로서 상·하단 4면과 뒷면에도 신부와 동일한 소형여래상대가 있어 전체 약 200위에 달한다. 이와 같이 전면에 새겨진 소불상대는 천불신앙에 따르는 천불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바, 석상에 조성된 천불의 유례로서는 최고의 작품일 것이다.
국보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公州 儀堂 金銅菩薩立像)은 1974년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 절터에서 출토된 보살상이다. 1989년 4월 10일 대한민국 국보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1974년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의 한 절터에서 출토된 보살상으로, 높이는 25cm이며,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는데, 가운데에 작은 부처가 표현되어 있어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마는 머리카락이 반쯤 내려와 덮고 있으며, 양 옆으로 땋은 머리는 귀를 덮고 어깨까지 길게 내려왔다. 4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눈·코·입을 큼직하고 시원스럽게 표현했으며,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목에는 긴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그 목걸이에 연결된 구슬띠가 가슴 아래로 내려오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양쪽 무릎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체에 밀착된 얇은 옷은 넓은 양 어깨로부터 내려와 배 아래부근에서 X자로 교차되었다. 팔에 걸친 옷자락은 양 옆으로 내려와 대좌(臺座)를 덮으면서 돌출되었다. 옷자락에 표현된 주름은 조각이 깊고 힘차게 되어있어 평온한 얼굴 표정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양 손에는 팔찌를 끼고 있는데, 오른손은 가슴부분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연꽃봉오리를 잡고 있으며, 아래로 내린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보살이 서 있는 대좌는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표면에는 엎어놓은 8장의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튀어나온 부분의 도금이 일부 벗겨졌을 뿐 금색이 우수하고 출토된 곳이 확실한 보살상으로 안정된 표현기법과 배꼽부분에서 교차된 구슬장식, 둥근 연꽃무늬 대좌 양식 등에서 7세기 백제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국보 무령왕 금귀걸이
무령왕 금귀걸이(武寧王 金製耳飾)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금 귀고리 한 쌍으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금 귀고리 한 쌍으로 길이는 8.3cm이다. 왕의 널(관)안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호화로운 장식이 달려있다.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2가닥의 장식을 길게 늘어뜨렸다. 하나는 속이 빈 원통형의 중간 장식 끝에 금판으로 된 커다란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이 장식은 무늬가 없어 간소하지만 앞·뒷면에 타원형의 작은 잎을 하나씩 붙여 변화를 주었다. 옆으로 보면 안이 굽은 모습을 하고 있다. 원통형의 중간 장식에는 금선과 금구슬을 이용해 장식한 마개가 있고, 서로 마주보게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둘렀다. 다른 한 가닥은 여러 개의 작은 고리로 이루어진 구슬 모양의 장식에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연결하고, 끝에는 금모자를 씌운 푸른 곱은 옥을 매달아 금색과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이런 2줄의 귀고리는 경주 금령총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국보 무령왕 금제 관식
무령왕 금제관식(武寧王 金製冠飾)은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의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이다.
높이는 각각 30.7cm, 29.2cm이고, 너비는 각각 14cm, 13.6cm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조사되었을 때, 왕의 널(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금판을 뚫어서 덩굴 무늬를 장식했으며, 밑으로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좌우로 벌어진 줄기 중간에는 꽃 무늬를 배치하였으며, 줄기가 길게 연장되면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두 가닥은 아래로 향하게 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앞면에는 전체에 걸쳐 구슬모양 꾸미개를 금실로 꼬아서 달았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2)과 왕비의 무덤으로, 벽돌을 이용해서 만든 벽돌무덤(전축분)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6세기 전반 백제 문화의 수준과 묘제,사장 등의 일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중 지석(誌石)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최초로 무덤에 묻힌 주인과 만든 시기를 확실히 밝혀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국보 무령왕 금제 뒤꽂이
금제 뒤꽂이(武寧王 金製釵)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다. 무령왕릉 나무널(목관) 안 왕의 머리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는 18.4cm, 상단의 폭은 6.8cm이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삼각형 모양이며, 밑은 세가닥의 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머리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삼각형의 윗부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3가닥으로 갈라진 꽂이 부분은 긴 꼬리처럼 되어 있어 마치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 날개쪽 좌우에는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찍었고, 그 아래는 서로 대칭으로 덩굴무늬를 빈틈없이 메꿔 놓았다. 새의 머리와 날개 부분의 테두리는 끌 끝으로 찍은 작은 점들이 열지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문양은 모두 뒤에서 두들겨 솟아 나오게 한 타출법(打出法)을 사용하였고, 세부 표현에는 선으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왕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고, 끝이 3개로 갈라진 점으로 보아 의례 때 쓰인 머리 장식품으로 보인다.
국보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武寧王陵 銅鏡一括)은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로 청동신수경, 손명수대경, 수대경 3점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무령왕릉의 청동거울은 널방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왕쪽에서는 방격규구신수문경과 의자손수대경이, 왕비쪽에서는 수문경이 나왔다. 같은 틀에서 만들어져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거울들이 우리나라와 일본 고분에서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거울이 국가간의 교류를 통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요
신수문경
방격규구신수문경은 뒷면의 거울걸이를 중심으로 4각의 구획이 있고 그 주위에 신수를 표현하였다. 거울에 묘사된 사람은 신선을 표현하듯,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반나체에 삼각하의만 입은 모습이며 손에는 창을 들고 4마리의 큼직한 짐승들을 사냥하는 모습이다. 손잡이 주위에는 4각형의 윤곽을 만들고 작은 돌기들을 배열한 다음 그 사이에 12간지의 글씨를 새겨 놓았다. 청동신수경은 ‘방격규구문경’이라는 중국 후한의 거울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거울 내부에는 반나체 인물상과 글은 한나라의 거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손수대경
의자손수대경은 가죽끈이 끼워져 있는 거울걸이 아래에 의자손이라는 글씨와 짐승모양이 새겨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돌기가 있고, 안에는 크고 작은 원과 7개의 돌기가 솟아있다. 내부 주위의 테두리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선명하지 못하여 알아볼 수 없다. 중국 한대의 수대경을 본떠 만든 복제품이다.
수대문경
수대문경은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작은 돌기가 있다. 안쪽에는 크고 작은 원이 있고 그 사이에 7개의 둥근 돌기와 네 명의 신선, 세 마리의 상서로운 동물무늬가 가는 선으로 새겨져있다. 수대경 역시 한나라 때 동물 문양을 새겨 넣은 수대경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 거울에 비해 선이 굵고 무늬가 정교하지 못하다.
세부 목록
번호 명칭 소재지 관리자
161-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신수문경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武寧王陵 銅鏡一括 - 神獸文鏡)
1974년 7월 9일 국보 지정
161-2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의자손명 수대문경
(武寧王陵 銅鏡一括 - 宜子孫銘 獸帶文鏡)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1974년 7월 9일 국보 지정
161-3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수대문경
(武寧王陵 銅鏡一括 - 獸帶文鏡)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1974년 7월 9일 국보 지정
국보 무령왕 발받침
무령왕 발받침(武寧王 足座)은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으로 왕의 발 받침대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의 발을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이다.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은 사다리꼴 통나무의 중앙을 W자로 깊게 파서 양 발을 올려놓게 만들었다. 전면에 검은색 옻칠을 하고 폭 0.7㎝정도의 금판을 오려 거북등 무늬를 만들었으나 일부는 떨어져 없어졌다. 6잎의 금꽃을 거북등 무늬 모서리와 중앙에 장식하고, 꽃판 가운데에 옛날 부인의 머리장식 중 하나인 보요(步搖)를 매달아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국보 무령왕비 금귀걸이
무령왕비 금귀걸이 (武寧王妃 金製耳飾)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귀고리 2쌍으로 길이는 각각 11.8cm, 8.8cm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귀고리 2쌍으로 길이는 11.8cm, 8.8cm이다. 왕비의 귀고리로,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작은 장식들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한 쌍은 복잡한 형식으로 길고 짧은 2줄의 장식이 달려 있고, 다른 한 쌍은 1줄로만 되어있다. 앞의 귀고리 중 긴 가닥은 금 철사를 꼬아서 만든 사슬에 둥근 장식을 많이 연결하였으며, 맨 밑에는 작은 고리를 연결하여 8개의 둥근 장식을 달고 그 아래 탄환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짧은 줄의 수식은 다른 한 쌍의 것과 거의 같은 수법이나 탄환 장식은 달지 않고, 잎사귀 모양의 장식과 담록색의 둥근 옥을 달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 각 1쌍씩 보관되어 있다.
국보 무령왕비 금목걸이
무령왕비 금목걸이(武寧王妃 金製頸飾)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무령왕비의 목걸이로, 길이는 각각 14cm, 16cm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무령왕비의 목걸이로, 길이는 각각 14cm, 16cm이다. 9마디로 된 것과 7마디로 된 것 2종류가 있는데, 발굴 당시 7마디 목걸이가 9마디 목걸이 밑에 겹쳐져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활 모양으로 약간 휘어진 육각의 금막대를 끝으로 갈수록 가늘게 하여 고리를 만들고 다른 것과 연결시켰다. 고리를 만들고 남은 부분을 짧은 목걸이의 경우 10∼11회, 긴 목걸이는 6∼8회 감아서 풀리지 않게 하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연결된 금막대마다 고리를 만들고 마무리를 한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2개의 목걸이 모두 한쪽 끝에 몸에 걸기 위한 작은 고리가 끼워져 있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은 간단한 구조를 하고있다. 현대적 감각과 함께 매우 세련되어 보이는 작품이다.
국보 무령왕비 베개
무령왕비 베개(武寧王妃 頭枕) 혹은 무령왕대부인 베개(武寧王大夫人 頭枕)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장의용 나무 머리 받침으로 왕비의 머리 받침대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비의 머리를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베개로, 위가 넓은 사다리꼴의 나무토막 가운데를 U자형으로 파내어 머리를 받치도록 하였다. 표면에는 붉은색 칠(朱述)을 하고 금박을 붙여 거북등 무늬를 만든 다음, 그 무늬 내부마다 흑색·백색·적색 금선을 사용하여 비천상이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봉황, 어룡(魚龍), 연꽃, 덩굴무늬 등을 그려 넣었다.
베개의 양 옆 윗면에는 암수 한 쌍으로 만들어진 목제 봉황머리가 놓여 있는데, 발굴 당시에는 두침 앞에 떨어져 있었던 것을 부착하였다.
왕의 머리 받침은 거의 부식되어 두 토막만이 남아 있어 형체를 알 수 없다.
국보 무령왕비 은팔찌
무령왕비 은팔찌(武寧王妃 銀製釧) 혹은 무령왕대부인 은팔찌(武寧王大夫人 銀製釧)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왕비의 나무널(목관)내 왼쪽 팔 부근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은제 팔찌로 바깥지름 8cm, 고리지름 1.1cm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0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 왕비의 나무널(목관)내 왼쪽 팔 부근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은제 팔찌로, 바깥지름 8cm, 고리지름 1.1cm이다. 팔찌 안쪽에는 왕후나 왕비가 아닌 대부인(大夫人)이라 기록되어 있어, 팔찌 주인이 생전에 무령왕의 정식 왕비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며, 왕비나 왕후로 책봉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520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대부인이라는 칭호를 보아 성왕 즉위 이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팔목이 닿는 안쪽에는 톱니 모양을 촘촘히 새겼고, 둥근 바깥면에는 발이 셋 달린 2마리의 용을 새겼다. 용의 조각은 세밀하지는 않으나 힘에 넘친 모습이며 팔찌의 외관을 감싸고 조각되었다.
한 개의 팔찌 안쪽에 새긴 명문에 의하면 왕비가 죽기 6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이견의 여지가 있다. 그밖에 팔찌에는 주인의 칭호 외에 만든 사람의 이름과 무게 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인의 묘지석에는 백제국 왕태비(百濟國 王太妃)라 기록되었으나, 생전 착용했을 은팔찌에는 대부인이라는 칭호가 새겨졌다. 생전 팔찌의 주인은 왕비, 왕후, 왕태후의 신분이 아니었으나 사후 왕태비로 추존된 것이다. 용의 조각이 웅건하면서 만든시기와 작가, 중량까지 기록된 삼국시대의 유일한 팔찌로서 고대 금속공예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국보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만들어진 석수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로 짐작되며,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발굴보고서에 재료가 응회암이라고 나오나, 확인이 필요하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만들어진 석수이다.
석수(石獸)란 좁게는 궁전이나 무덤 앞에 세워두거나 무덤 안에 놓아두는 돌로 된 동물상을 말한다.
무령왕릉 석수는 높이 30.8cm, 길이 49cm, 너비 22cm로 통로 중앙에서 밖을 향하여 놓여 있었다. 입은 뭉뚝하며 입술에 붉게 칠한 흔적이 있고, 콧구멍 없는 큰 코에 눈과 귀가 있다. 머리 위엔 나뭇가지 형태의 철제 뿔이 붙어있다. 몸통 좌우, 앞·뒤 다리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날개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꼬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배설 구멍이 달려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무덤 수호의 관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국보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으로 2매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3호 지석(誌石)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이 지석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으로 2매이다. 이 2매의 지석은 왕과 왕비의 장례를 지낼 때 땅의 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사들인다는 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넣은 매지권으로,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될 때 함께 출토되었다.
왕의 지석은 가로 41.5cm, 세로 35cm이며, 표면에 5∼6cm의 선을 만들고 그 안에 6행에 걸쳐 새겼다. 왕의 기록은『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뒷면에는 주위에 네모나게 구획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12방위를 표시하였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쪽 부분은 표시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왕비의 지석인데 가로 41.5cm, 세로 35cm이며, 2.5∼2.8cm 폭으로 선을 긋고 4행에 걸쳐 새겼다. 선을 그은 부분은 13행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공백으로 그대로 남겨 두었다. 뒷면에는 매지문(買地文:땅을 샀다는 문서)을 새겼다. 원래 매지권은 무령왕을 장사지낼 때 만들어진 것인데 그 후 왕비를 합장하였을 때 이 매지권의 뒷면을 이용하여 왕비에 관한 묘지문을 새겼던 것이다.
이 지석은 삼국시대의 능에서 발견된 유일한 매지권으로서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게 한 것으로, 여기에는 당시 백제인들의 매장풍습이 담겨져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6세기 초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보물 공주 반죽동 석조
공주 반죽동 석조(公州 班竹洞 石槽)는 충청남도 공주시,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의 석조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 중동 석조(보물 제148호)와 같이 대통사터에 있었던 백제의 유물로, 절에서 주로 연꽃을 담아 장식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940년에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공주 중동 석조와는 규모만 다를 뿐 양식이나 조각수법이 거의 같아서, 두 석조는 어느 한 건물 앞에 한 쌍으로 두려고 동시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조는 굽이 높은 사발을 확대한 모양으로 네모난 바닥돌 이외에는 거의 동그란 구조이다. 바닥돌 위에 원기둥으로 된 받침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둥글고 큰 석조를 얹었는데, 석조는 화강암의 안을 파내어 만든 것이다.
받침 기둥에는 전형적인 백제 수법으로 12개의 잎을 가진 연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 두었는데, 이 무늬는 공주지방에서 나온 기와무늬와도 같은 모양이다. 그 위로 놓여있는 석조는 입구 가장자리에 굽처럼 넓적한 띠를 돌리고, 중앙에는 2줄의 띠를 돌렸으며 띠에는 8개의 연꽃잎을 가진 꽃송이를 사방에 도드라지게 새겨 장식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직사각형 석조와는 달리 연꽃잎을 장식한 받침기둥 위에 놓인 이 석조는 바깥 면에도 풍만한 연잎과 단아한 띠를 돌려 귀족적인 느낌을 준다. 현재 비바람에 의하여 장식무늬가 많이 닳아 있다.
보물 공주 중동 석조
공주 중동 석조(公州 中洞 石槽)는 충청남도 공주시,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석조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8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조는 돌을 파서 만든 큰 그릇으로, 절에서 큰 행사가 끝난 뒤 그릇을 씻을 때 또는 물을 담아두거나 연꽃 등을 기르는 데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꽃잎을 장식한 받침기둥 위에 놓인 이 석조는 바깥 면에도 풍만한 연잎과 단아한 띠를 돌려 귀족적인 느낌을 준다.
개요
국립공주박물관 정원에 있는 백제시대 석조로, 사찰에서 연꽃을 담아 장식했던 것이다.
원래는 공주시 반죽동의 대통사 터에 공주 반죽동 석조(보물 제149호)와 함께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말구유로 쓰기 위해 옮겨가 제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1940년 이 곳으로 옮겨올 당시 중동초등학교에서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중동석조’라 부르게 되었다.
규모에 있어서 반죽동 석조보다 약간 작을 뿐 양식이나 조각 수법이 동일하여, 어느 한 건물 앞에 한 쌍으로 두기 위하여 동시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믿어진다.
석조를 받치고 있는 받침 기둥은 일본군에 의해 깨어져 없어지고, 이후 반죽동 석조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원기둥에 연꽃을 둘러 새긴 모습이다. 석조는 굽이 높은 사발 모양으로 입구 가장자리에 굵은 돌기를 돌렸다. 바깥 면에는 2줄의 작은 띠를 돌려 새기고, 띠 위에 일정하게 연꽃을 장식하였는데 반죽동 석조에 비하여 많이 닳지 않아 문양이 훨씬 뚜렷하다.
대통사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성왕 7년(529)에 창건된 사찰이므로, 이 석조는 그 제작년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백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석조의 형태나 연꽃무늬는 백제의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그 가치는 반죽동석조와 아울러 높이 평가되고 있다.
보물 공주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公州 西穴寺址 石造如來坐像)
공주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公州 西穴寺址 石造如來坐像)은 충청남도 공주시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불상이다.
1989년 4월 15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979호 공주서혈사석불좌상(公州西穴寺石佛坐像)로 지정[1]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서혈사터에서 출토된 3구의 불상 중 하나이다. 서혈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작은 규모로 운영되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본격적인 사찰로 운영되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얼굴은 약간 길고 눈·코·입 등은 아주 작게 표현되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두께가 얇아보인다. 옷주름은 배부분에서 곡선을 그리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규칙적인 가는 평행선이 약한 느낌을 준다. 앉은 자세는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하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아래로 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되어있는데, 상대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하대에는 연꽃을 엎어놓은 모양을 새겨 넣고 있다.
활기차고 생동적인 면이 사라지고, 세부조각, 특히 옷주름의 표현에 있어 도식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현지 안내문
공주시 웅진동 서혈사터에서 발견된 부처상이다.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하여 다리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린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여덟 잎의 연꽃을 표현하였으며, 대좌를 받치는 지대석에는 극락의 천사인 천인(天人)과 인간의 얼굴을 한 상상의 새 가릉빈가(迦陵頻伽)를 새겼다. 전체적인 자세와 세부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웅진 백제 문화 역사관
웅진 백제 문화 역사관은 공주시 웅진동 무령왕릉, 송산리 고분군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원래 2013년에 개관했다가 2020년에 전시실을 전면 개선하여 재개관하였다. 전반적으로 웅진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방향으로 꾸며졌으며, 백제의 공주 천도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담겼다. 크게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었으며, 1실은 왕도 웅진을 주제로 왕도 웅진이 건설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만화영상과 웅진도읍기 왕들의 초상화, 그리고 그들의 업적을 보여준다. 2실은 갱위강국을 주제로 웅진에 도읍하고 다시금 강국으로 부활한 백제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3실은 문화강국을 주제로 백제의 활발했던 국제 교류와 이를 바탕으로 피어난 화려한 백제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 외에는 북카페와 휴게공간을 마련하고, 로비와 복도 곳곳에 웅진 백제의 문화를 반영한 콘텐츠들을 배치하였다.
웅진백제역사관은 국도 40호선 왕릉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고, 주변에는 또한 공주문예회관, 황새바위성지, 공산성 등이 있다.]
[백제오감체험관
백제오감체험관은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인 고마나루 명승길에 자리하고 있다. 인근의 송산리고분군,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눈과 귀로 배운 역사를 손끝으 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갖췄다. 지하 1층과 지상 1·2층에 8개의 테마관을 갖춘 이곳 체험관은 탁본문양체험, 야광스탬프 등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형 놀이 및 게임 프로그램을 설계해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웅진백제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주목할 만한 공간은 1층 로비에 자리한 ‘공감의 창’으로 소리와 터치로 색상이 변하는 2층 높이의 압도적인 규모의 패널이다. 이 패널에는 관람객이 체험 관에서 찍은 사진을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린 콘텐츠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또 한 같은 층에 자리한 ‘창조의 창’에서는 백제시대 유물을 크레파스로 예쁘게 채색한 후 스캐너로 통해 그래픽 맵핑 영상으로 벽면에 띄울 수 있어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17:40~18:13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공주 왕릉원을 출발하여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138 번지에 있는 갑사 제1주차장으로 이동 [33분, 24.6km]
18:13~19:00 갑사(甲寺) 탐방
[갑사(甲寺)
갑사는 공주시 계룡산국립공원 내 계룡산 북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던 명찰이다.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예로부터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자랑한다. 백제 구이신왕 원년인 420년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이 이 절의 시초이다. 갑사는 계룡갑사, 갑사, 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었으며, 그중 갑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甲)고 해서 갑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에서도 열외가 되고 오히려 왕실의 비호를 받아 ‘월인석보’를 판각하기도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소되다가 1604년(선조 37)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 덕분에 지금도 사찰 내부에 각종 귀중한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있다. 사찰 주위에는 용문폭포, 수정봉, 천진보탑, 군자대 등 수려한 경치의 명소들이 줄지어 있으며 특히 남쪽 계곡은 이른바 9곡을 이루어 절경으로 소문나 있다. 일반인은 사찰에서 열리는 법회와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수 있다.]
19:00~21:0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갑사를 출발하여 서울 교대역으로 이동 [2시간, 146.7km]
[국립공주박물관&무령왕릉&웅진백제역사관] 지도
[세종호수공원&국립세종수목원&세종중앙공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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