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동의대사건’ 등에 대해 재심(再審)을 추진하는 법안을 준비해 온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한 여성으로부터 기습 폭행을 당했다.
전 의원은 왼쪽 눈 각막과 결막이 크게 손상돼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다. 또 온몸에 타박상을 입어 현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 입원해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법률 이해당사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의원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45분경 전 의원이 국회 본청 출입구 쪽으로 나서는 순간 한 여성이 달려들었고 20∼60대 여성 5, 6명도 가세했다. 제일 먼저 달려든 여성은 전 의원의 머리채를 잡은 채 주먹으로 얼굴과 가슴을 마구 때렸다고 한다.
전 의원은 이 여성이 “네가 뭔데 동의대사건을 재심해.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 “너 같은 ×은 눈을 뽑아버려야 돼”라며 손가락으로 왼쪽 눈을 깊게 찌르기도 했다고 전 의원은 말했다.
전 의원은 국회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구급차로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주치의인 이 병원 장재칠 신경외과 과장은 “왼쪽 눈 각막과 결막이 찢겨 출혈이 있었고, 뇌진탕 증세도 있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국회 밖으로 나가려던 가해 여성을 국회 주차장에서 붙잡아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 여성은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대표인 이모 씨(69)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전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민주화운동국민연대가 주최한 ‘동의대사건 재심 철회’ 요청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 국회로 가 전 의원을 폭행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동료 의원들 부축받으며 병원으로 27일 국회에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동료 의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국회 의무실을 나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국회 안에서 무자비한 폭행 믿기지 않아
대한민국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울음
국회에서 폭행당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을 27일 오후 8시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병실에서 만났다. 병실 주변에는 사복 경찰들이 배치돼 있었다.
전 의원은 왼쪽 눈에 안대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수액과 함께 안정제와 진통제를 맞고 있었다.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다치지 않은 오른쪽 눈도 뜨지 못했다.
병원 측이 “몸을 돌리기가 힘들 정도로 타박상을 여러 곳에 입었다.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극도로 불안한 상태다. 인터뷰는 짧게 해 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전 의원은 기자에게 “아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작았다.
전 의원은 “갑자기 한 여자가 달려들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하는데 공황상태에서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참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동의대 사건에서 정당한 공권력을 집행하던 경찰 7명이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불타 죽었는데 적어도 가해자들은 재심이 추진되는 것을 감수할 것으로 믿었다”며 “아무리 생각이 다르다고 이렇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느냐. 폭력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분들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의대 사건 재심 추진 관련 법안과 관련해 전 의원은 “이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법안은 예정대로 2일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