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면 백제에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궁남지에 여름 연꽃과 함께 애틋하게 피어나면서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린다. 서동왕자가 무왕이 되고 무왕의 장자가 바로 의자왕이다. 의자왕이 태자였을 때는 해동증자로 불릴 만큼 총명하였다. 왕위에 올라 고구려와 화친하고 신라의 대야성(합천)을 함락하는 등 40개 성을 빼앗을 만큼 성군이었다. 그러나 말년에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하고 멸망해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된 비운의 군주가 되었다. 여색에 빠져 국정을 소홀하게 한 군주로 낙화암과 3천 궁녀가 회자 된다. 부소산성은 표고 백 미터에 불과한 야산으로 성의 둘레도 2.2 킬로미터 남짓한 작은 성이다. 그 성내에 궁궐이며 궁녀 3천 명이 기거할 만한 곳이 없으며 낙화암이 절벽으로 백마강에 이어졌어도 그만한 장소가 못 된다.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지었다는 백화정은 불과 백 년도 못 되어 전면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백제 여인의 혼백이라도 담겼는지 죄인 같은 심성에 저만큼 숨어 피어난 듯 하얀 구절초가 가을바람에 안쓰럽게만 보인다. 그럴듯한 전설이 없는 역사가 어디 있으며 그만큼 포장하지 않은 역사가 있으랴 싶다. 백제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지 싶다. 우두커니 백마강을 바라보면서 씁쓸하기만 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는 산자의 것이고 그 역사는 승자인 정복자가 기록한다. 점령을 합법화하고 패망 민족의 민심을 수습하며 다독거려 화합하려다 보면 없는 죄도 입맛대로 만들어 덮어씌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허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독거리며 민심을 돌리고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노력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패한 자가 무슨 낯으로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으랴. 그러다 보면 곳곳에서 왜곡, 과장이 많아진다. 작금의 현실을 조금만 눈여겨봐도 그렇다. 보수세력이니 진보세력이니 자신의 이념대로 사사건건 뒤틀리지 않는가. 하물며 나라가 흥망 하는데 두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