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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게 기업이란, 한국 외의 국가에게 기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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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음료 전문 회사의 아시아부문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사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 회사의 아시아 본사는 생산설비와 물류기지를 겸하고 있어 중국의 한 도시 외곽 멀리 위치해 있다. 그런데 시장과 인프라 상황이 변하면서 더 좋은 입지가 나타나기 시작 했고, 동시에 중국도 지방마다 기업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어 사업 조건이 더 좋은 곳이 생겨났다. 그에 이 회사도 본사 이전을 검토하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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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사 이전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를 지방정부에 전달한 당일, 지방정부로부터 회사 계좌에 삼천만달러, 한화로 약 삼백오십억원쯤 되는 돈이 갑작스레 현금으로 입금되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무슨 실수인가 싶어 지방정부에 전화를 했더니 돌아온 답은 놀랍게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달라, 회사만 옮기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였다. 새로 정부와 딜을 한 회사는 그 곳에 그냥 남기로 했다. 협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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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일화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업유치경쟁의 치열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쟁은 이제 국가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방정부와 도시들도 서로 기업 유치를 위해 싸운다.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애쓰고, 기업을 빼앗긴 도시나 국가는 소송도 불사한다. 애플의 본사는 미국과 아일랜드 두 곳에 위치해 있는데, 아일랜드는 애플에 2% 미만이라는 파격적인 법인세를 징수하고 있고 애플은 회사의 재무적 결정과 운영의 상당부분을 아일랜드에서 처리하는 방법으로 그에 보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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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거의 모든 나라는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명목법인세를 15%로 낮추고 1회에 한해 해외 자산을 미국으로 반입 시에 법인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영국은 유럽에서 법인세가 가장 낮은 나라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마크롱이 이끄는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법인세 인하를 실행 중이거나 계획 중이며, 중국마저 미국의 법인세 인하로 인한 경제적 압박 앞에 법인세 인하를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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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삼성전자 수원본사는 규모가 커 사옥에서 정문 밖까지 왕복하는데만 40분을 사용해야 한다. 점심시간 60분중 이동에 40분을 사용해야 한다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삼성측은 대부분의 대형 사업장이 그렇듯 구내에 식당을 구비해놓고 사원들이 사먹을 수 있게 한다. 그러자 인근 식당은 ‘상생’ 을 하라며 삼성측에 식당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한겨레’ 의 보도에 등장한 “굴짬뽕 철이다 하면 굴을 구내식당에 쌓아 놓고 맘대로 먹게 하는데 누가 밖으로 나오겠어.” 라는 인터뷰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구내식당이 외부식당보다 훨씬 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상인들은 그저 불평 뿐이다. “이재용이 그렇게 해서 돈 벌었다” 며 삼성이 구내식당 운영해서 돈을 벌기라도 한다는 듯, 마치 지역사회에 빚을 지고 있기라도 한 듯한 태도다. 지난 48년간 사실상 수원을 먹여 살렸다는 기업에 대한 고마움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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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방문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멀리 있는 호텔을 이용하자 수원시는 삼성전자에 “협조공문” 을 보낸다. 상생의 일환으로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고객(사업차 방문하는 사람)들이 수원시 관내 숙소를 이용하게 “협조” 하라는 내용이다. 말은 협조지만, 사실은 삼성전자가 협력업체 직원들이 자의로 선택하는 호텔을 ‘금지’ 하기라도 하라는 요구다. 삼성전자는 지정된 복수의 호텔에 국내 출장자를 묵게 하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경비처리를 해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수원 관내 호텔을 두고 더 멀리 있는 숙소를 이용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이를 두고 삼성전자의 탓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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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기업지원과장이라는 최광열씨는 인터뷰에서 기업 “지원” 과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수원은 삼성전자의 모태 도시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지역의 공익적 사업과 인프라 구축 등을 함께 해 나가는 삼성전자를 기대한다’ 며, 마치 수원이 삼성전자를 키워 내기라도 했다는 듯한 대단한 채권의식을 보여준다. 공익적 사업과 인프라 구축을 “함께” 하자는 말은 달리 말하면 그냥 돈을 내놓으라는 요구다. 인프라 구축은 삼성을 갈취해서 할 것이 아니라 수원시가 자체 예산을 가지고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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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한 수원시 관계자는 삼성에 행사에 쓸 버스를 지원해달라 요구했다가 삼성측으로부터 거절 당하자 "최순실한테는 수십억씩 쏟아부으면서 너무 한다" 고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대체 얼마나 기업에서 돈을 뜯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에 지원을 요청하는 인간의 입에서 이따위 소리가 튀어 나오는지, 정상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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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성이 평택에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라는 고덕단지 공장을 건설할 때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었다. 공장이 세워져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인구유입이 생기며 일자리가 생길 것을 양팔을 벌려 환영해도 모자랄 판에, 평택시민 일부는 “평택시민 지역경제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 라는 단체를 세워 삼성전자 측에 평택지역 자재/장비/인력/식자재 100% 사용, 인력을 ‘평택인력협의회’ 를 통해 고용, 평택지역 건설기계 100% 사용 등, 이미 공개입찰로 여러 업체를 선정해 공사를 진행중인 삼성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해댔다.
그리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진행중인 현장에서 오물을 던지거나 공사현장 진입을 막는 등 공사를 지연시켰다. 심지어 삼성의 건설장비 안전기준이 높아 자신들이 맞출 수 없다며 안전기준을 낮추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대단한 갑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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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에서 기업은 갈취의 대상이고 기피의 대상이다. 마치 ‘여기서 장사를 하려면 자릿세를 내라’ 는 폭력배의 요구처럼, 한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정해진 세금 외에도 셀 수 없는 “자릿세” 를 내야한다. 세계의 흐름과 완벽하게 역행하는 일이며, 중국보다도 한참 뒤쳐진 인식이다. 세계가 인하경쟁중인 법인세도 어쩐 일인지 한국에서는 기업의 수익이 없어지는 시점까지 올려야 마땅한, 일종의 징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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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번 정부는 복지를 엄청난 폭으로 확대하면서 그 재원마련의 수단으로 “핀셋증세” 를 들고 나왔다. 핀셋증세는 그 자체로 구역질이 나는 단어다. “증세를 하는데, 너는 절대로 내지 않는다. 다른 부자들만 낸다” 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을 더 쥐어짜서 현금으로 나눠주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지정책의 전부다. 다른 나라는 기업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데, 한국은 오히려 그걸 못하게 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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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기업은 주주의 것이며, 기업의 ‘국적’ 이 주주이익을 심하게 해칠때 주주들은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까? 그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모두 기업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그제서야 미국을, 영국을, 아일랜드를, 중국의 지방정부를 이해하게 될까.
언제쯤 우리가 실수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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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애플의 현금 280조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법인세율 인하의 의미"
https://www.facebook.com/CarlFLee/posts/1595243880508874
첫댓글 극히 단편적인 사실 한가지로 전체를 논하면 갈등이 생겨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장하성 교수의 "한국의 자본주의" 일독을 추천합니다.
법인세율 인하를 너무 당연히 논하고 있는 논조는 편파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