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칠 년 동안이나 라반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나자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했고(21절), 라반은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혼인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녁에 첫날밤을 보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와 함께 첫날밤을 함께 보낸 여자는 라헬이 아니라, 라헬의 언니 레아였습니다(23절~25절). 라반이 계획적으로 라헬 대신 레아를 신혼방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지 않으니 이러한 라반의 계획을 레아와 라헬이 모두 미리 알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기가 어려웠던 그 시대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그리 큰 의미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라반의 이러한 행위는 계획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라헬이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로 하고 칠 년 동안 일했는데, 왜 신부가 바뀌었는지 항의하는 야곱에게 라반은 언니보다 아우가 먼저 시집보내는 것은 그 지방에서는 관례가 아니기에 언니인 레아를 먼저 아내로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26절). 그 당시의 혼인잔치는 7일 동안 이어졌는데, 이미 치르고 있는 혼인잔치인 칠 일을 채우면, 작은 딸인 라헬도 아내로 줄 테니, 이를 위해 7년 동안 더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27절). 이것은 라반의 철저한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노동력이 더 필요했을 것이기에 그러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레아를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아내로 맞이하였고, 이것은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의 말대로 칠 일 동안의 혼인잔치를 치렀고, 칠 일이 지난 후에 라헬도 야곱의 아내가 되었으며, 야곱은 라헬을 정말 많이 사랑했기에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위해 일했습니다(28절~30절). 그래서 결국 모두 합하여 14년 동안 라반을 위해 일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수한 것입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야곱은 자신의 외삼촌인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여 졸지에 두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레아를 아내로 맞이한 것은 야곱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던 만큼 아마도 레아에 대한 야곱의 사랑은 심드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31절부터 34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를 위로하시기 위해 계속 아들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을 받는 라헬은 자녀가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 자녀를 잘 낳는 것은 매우 축복된 일이었고, 자랑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레아가 계속 아들을 낳은 것은 자식이 귀한 가문의 야곱에게 있어서는 레아를 무조건 밀어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레아는 장자 르우벤을 비롯하여 시므온과 레위를 낳았습니다.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를 낳을 때까지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서러움이 반영된 이름으로 아들들의 이름을 지었는데, 넷째 아들을 낳았을 땐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의미의 유다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네 번째의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의 사랑이 부족해도 이 아들들로 말미암아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레아는 매우 불쌍한 처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라반도 레아의 이러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아를 보살피신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이 레아와 라헬을 야곱에게 시집보내면서, 레아의 여종인 실바(Zilpah)를 레아에게 주었고(24절), 라헬의 여종인 빌하(Bilhah)를 라헬에게 주었다는(29절) 기록을 남김으로써 앞으로 이 두 여종도 야곱의 아들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示唆)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매들을 한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라반은 자기의 욕심에 따라 야곱에게 이렇게 행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형성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던 야곱은 자기 자신도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거나 역이용당하기도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야곱을 선택하셨고, 야곱을 통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 나가시기 위해 이 모든 상황을 섭리하여 가셨습니다. 야곱은 매우 부족하고, 미성숙한 자였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가시길 원하셨고, 그래서 야곱을 다듬어가신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라반의 꼼수를 통해서 야곱 자신도 자기 뜻과 자기의 계획대로 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을 진행하게 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시는 과정으로 삼으셨을 것입니다.
라헬을 향한 사랑 때문에 결국 14년 동안이나 라반을 위해 기꺼이 일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부족해서 일 경우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사랑한다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속이고, 이용하고, 꼼수를 부리면, 그러한 것을 똑같이 나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꼼수보다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행하는 삶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철저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