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4: 1-12
당시에 시날 왕
14장 전체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롯의 탐심으로 택한 땅에 침략을 받습니다(1-12).
2. 아브람이 포로 되어간 롯을 구출합니다(13-16).
3. 아브람이 승전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된 일들이 있습니다(17-24).
(1)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합니다(17-20).
(2) 아브람이 소돔 왕의 제공하는 물품을 받지 않습니다(21-24).
1. 본문 1-9절은
“①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②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③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④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⑤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 을 함에서 수스족속을 사웨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⑥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⑦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⑧소돔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⑨ 곧 그 다섯 왕이 엘람 왕 그돌라 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입니다.
1) 이 장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주로 우리가 기억해 둘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롯이 점잖은 책망으로 소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되어 버렸으며 그들의 죄악으로 절망적으로 외곡되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이런 채찍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그 이유는 땅의 풍요함에 현혹되어 잘못 생각한 그가 더럽고 사악한 사람들과 함께 혼합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롯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브람을 일으켜 롯의 복수자로 그리고 그가 원수들의 손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에 구출해 내는 구원자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지극하신 선하심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한 사람을 위하여 철저하게 무가치한 많은 사람들을 보존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셋째로, 아브람은 현저한 승리로써 거룩하고 명예로운 위치에 올랐으며 멜기세덱의 입으로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경 말씀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로 이 멜기세덱의 인격 안에는 앞에 나타날 그림자로서 그리스도의 왕국과 제사장 직능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종합해 보면 이것은 인간의 탐욕과 교만 이 두 가지에 대한 무서운 묘사입니다.
2) 인류는 아직도 셈과 함과 야벳이 세 조상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들 가운데 인류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충고를 받은 분의 시야에는 모든 인류가 한가족, 한 방주에서 나온 것입니다.더욱이 그들의 공통적인 기원에 대한 기억은 형제적인 관계에 대한 신성한 언약이었으며 그것이 상호간의 선한 임무로 서로 돕는 접착제가 되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든 측면에서 칼과 갑옷으로 서로 공격하여 서로 나머지 사람을 항복시키려는 야망이 너무도 팽배하게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많은 군왕들이 격노를 발하며 자기들의 권세를 최고로 발휘하여 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그런 죄악이 바로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전 세기를 통하여 통치력에 대한 욕망이 사람들 가운데 너무도 만연되어 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교만을 가장 영웅적인 자세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돌라오멜의 야망의 결론은 전체 전쟁의 횃불이었습니다. 승리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가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적개심에 불탄 음모를 꾸몄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소돔 사람들과 그들의 연합국들을 충동시켜 그 멍에를 떨어버릴 목적으로 무장을 하게 했습니다.
3) 그러나 모세는 셈이 아직 살아 있는데 그렇게 많은 왕들의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는 사실은 비록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이 건설적인 이름들이라고 조롱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런 인류의 굉장한 번식이 하나님이 괄목할 만한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식하여’ 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과정에서 일어날 것보다 훨씬 더 월등한 회복에 대한 소망을 그들에게 부여해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특별한 효능이 그때에 나타나야 했었으니 그것은 이 초기의 조상들이 새로운 세계가 방주 안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보존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의 비참한 마음이 하나님의 진리를 떠날 때에 필연적으로 그런 조작된 말로 기만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하나님의 기적의 진실성을 불신하게 할 목적으로 이와 같이 간교한 짓들을 이용해 오고 있습니다.
홍수에 대한 기억과 새로운 세계의 비상한 인구 번식은 그렇게 쉽사리 지워질 수가 없기 때문에 사단은 계속하여 연막작전을 벌이면서 분명히 전에 일어났던 사실을 하나의 우화로 여기도록 어린애 같은 유치한 착상을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우리가 관찰해야 되리니 모세에 의하여 여기서 어느 지방에서나 어떤 인간들의 모임에서도 우선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왕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다음의 질문이 제기되고 있으니, 그돌라오멜을 따랐던 왕들이 멀리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티달이 ‘민족들의 왕인가?’ 라고 불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마치 그가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인 것처럼 광대 지역에 걸쳐서 여러 민족들을 다스리고 있었다고 상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 이름의 진정한 이유는 그 사람이 고향을 떠난 자들이 자기에게 찾아온 사막의 유랑인들과 유랑자들로 구성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그들 각자가 고향이 같은 한 지체가 아니고 뒤죽박죽 혼합된 무리들 가운데서 구성되었으므로 그와 같이 ‘민족들의 왕’이라고 티달을 부르고 있었을 것이 당연합니다. 모세가 기록한 때에 염해가 되었던 공지에서나 싯딤골짜기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언급하는 가운데서 사해나 아스팔티테 호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모세는 자기가 누구에게 말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언제나 청중들인 그 당시의 백성들의 역량에 맞춰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모세는 그 지역의 거주인들이 부분적으로 굴복을 당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 왕들이 그들에게 훈련된 군대를 거느리고 진군하기 전에는 그들이 명령을 받아 전투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이제 그돌라오멜은 합법적인 권위로가 아니라 폭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조공을 바치게 했지만 그리고 그것으로 그의 야망이 반드시 정죄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그의 통치를 받고 있는 자들은 반역했다는 죄로 용서 없이 처벌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자유가 절대로 멸시를 받아서는 안되지만 일단 우리에게 지워진 피복종(被服)從)의 상태를 절대로 벗어버릴 수가 없으니 그것을 시도하면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반항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처음에 통치욕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롬13:11)고 성경에서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역을 일으키는 자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마치 짐승같이 죽임을 당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비록 갑옷을 입고 반항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도망자가 됩니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행하겠지만 그들은 찬사를 드리는 것을 외고집스럽게 거절하는 종국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해설들을 우리가 잊지 말고 주목하여 무정부를 세우려고 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결과라는 사실을 그 말씀에서 배워야 될 것입니다.
2. 본문 10-11절은
“⑩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⑪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역청의 구덩이에 빠졌다고 주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그 주위의 지역들에 대하여 그렇게 무지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오히려 외국 군대들에게 일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자들은 말하기를 그들은 생명을 보존하려고 그 구덩이 속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자포자기의 순간에 봉착하면 흔히 있는 대로 그들은 여러 가지 죽음 가운데 이 죽음을 택했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것은 마치 모세가 적군들의 칼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가공할 만한 위험을 주기 때문에 전혀 망설이지 않고 이 구덩이에 투신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는 곧 이어 거기서 빠져나간 자들은 산으로 도망쳤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그 구덩이들 속에 빠진 자들은 모두 멸망되었다는 사실을 추론하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그들이 두려움으로 자포자기 한 때문이지 이곳의 지리에 대하여 무지로 인하여 그 구덩이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 본문 12절은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전쟁을 하고 있을 때 롯이 집에 남아 있었는지 그리고 그 집에서 적군에게 포로로 잡혔는지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습니다. 또는 그도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무기를 가지고 싸움터에 징집되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그 도시의 약탈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는 그를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만큼 그 전쟁의 끝판에 집에서 무장도 하지 않은 채로 붙잡혔다는 추측이 그럴듯합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는 악인들이나 선한 사람들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며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그분의 보복을 그 악하고 불경건한 자들에게 부르실 때에 우리가 그들과 밀접하게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더 빨리 채찍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