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맥라렌 세나(Sena)가 미국 라구나 세카(Laguna Seca) 서킷에서 랩타임 신기록을 세웠다. 1분27.62초 만에 한 바퀴를 돌며 기존 1위였던 포르쉐 911 GT2 RS를 약 0.7초 차이로 앞섰다. 그런데 최근, 미국 출신의 낯선 수퍼카가 세나의 기록을 2초 이상 앞당긴 1분 25.44초를 기록했다. 이름은 징어(Czinger) 21C. 최고출력 800마력의 세나를 이긴 비결은 뭘까?
6년 전, 징어의 창립자 케빈 징어(Kevin Czinger)는 첫 번째 수퍼카 콘셉트 블레이드(Blade)를 공개했다. 당시에는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3D 프린팅 회사였다. 케빈 징어는 금속 3D 프린팅 기술로 블레이드의 뼈대를 만들고, 최고출력 700마력으로 조율한 미쓰비시 엔진을 얹었다. 그가 주장한 0→시속 100㎞까지 가속 시간은 단 2초. 포르쉐 918 스파이더보다 빠르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종 프로토타입은 지난해에, 양산형 모델은 올해 6월에 등장했다. 회사 이름은 징어로, 차의 이름은 21C로 바꿨다. 성능도 업그레이드했다. 자체 개발한 V8 2.9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과 앞바퀴를 굴릴 전기 모터 2개를 엮었다. 합산 최고출력은 1,250마력. 최고속도는 시속 405㎞며,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1.9초다. 변속기는 7단 시퀀셜. 2㎾h 용량 리튬 티타네이트 배터리는 양쪽 문 아래에 넣어 무게중심을 내렸다.
핵심은 ‘금속 3D 프린팅’ 기술이다. 레이저로 금속 분말을 녹여서 만드는 ‘SLM(Selective Laser Melting)’ 방식을 쓴다. 장단점은 분명하다. 속을 비울 수 있어 주조로 만든 부품보다 가볍다. 주조는 모양을 바꿀 때 틀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지만, 3D 프린터는 컴퓨터로 도면을 수정해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대신 제작 속도가 느려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승용차가 아닌 수제작 수퍼카라면 경우가 다르다. 21C는 3D 프린터의 장점만 흡수했다. 가령, 각 서스펜션의 암과 너클은 여느 스포츠카와 달리 유연한 형태를 띠고 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 남겼기 때문이다. 앞 더블위시본의 위쪽 암은 경량화를 위해 속을 비웠다. 차체 맨 앞에 자리한 커다란 부품 속은 사고 시 충격을 흡수하도록 복잡한 구조물로 채웠다. 배기 파이프에는 열을 내뿜는 구멍을 빼곡하게 뚫었다.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보닛에서 엔진룸까지 이르는 지붕과 탑승 공간 바닥 전체를 탄소섬유로 빚었다. 프론트 스플리터와 리어 윙, 사이드미러 커버, 도어 스커트도 마찬가지. 그 결과 몸무게를 최고출력과 똑같은 1,250㎏로 묶을 수 있었다.
한편, 징어는 ‘2021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 21C를 전시할 계획이다. 전 세계 80대 한정 생산할 예정이며, 가격은 약 200만 달러(한화 약 23억4,000만 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