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에 가끔 바둑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럴때면 직업정신이 발동, 기자는 눈과 귀가 모두 TV에 집중된다.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일요일 밤 리모콘을 돌리다 보이면 잠시 눈여겨 보는 프로그램이있다. 바로 '경제야놀자'라는 프로그램.
1월 두번째주, 경제야놀자에 가수 김장훈이 출연을 했다. 김장훈은 프로에게 2점 접바둑을 둘 정도로 실력이 대단한 애기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항상 눈여겨 보고 있는 가수다. '경제야놀자'는 MBC에서 내놓은 신개념 경제 버라이어티로 돈 모으기에는 관심이 많지만 경제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국민들과 경제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주는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이 꽤나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야놀자'는 늘 하던 순서대로 진행이 됐고, 김장훈은 이것저것 자신의 소중한 보물들을 내놓는다.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은 보관중인 바둑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김장훈은 바둑판을 보여주면서 보물을 다루듯 조심조심한다. 이것이 바둑이라는 심오한 세계를 접해본 사람의 모습이다. 그냥 바둑판이 아닌 세계 타이틀 보유자들의 사인이 적힌 바둑판인 것이다.
프로그램에서도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바둑판을 선정한다. 공중파에서 바둑이 나온다는 것, 그것도 많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에 바둑이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기분이 참 좋다.
김장훈은 바둑판 말고 물고기 화석, 측음기 등 여러가지 물건들을 내놓았다. 김장훈이 내놓은 여러 물건들의 값어치를 알아보는 시간이 돌아왔다. 첫번째 물건은 바로 프로기사들의 친필사인 바둑판. 김장훈은 자신외의 다른 사람들이 바둑판을 만지는 것을 보면서 걱정어린 눈빛을 보낸다. 바둑판이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한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바둑은 잘 모르는데, 저 알까기는 잘해요"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알까기가 유행을 하면서 바둑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하면 참 고마운일이다. 바둑 인구가 점차 줄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날도 어김없이 알까기 등장.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 였는지 알까기를 제안한 MC들. 김장훈은 깜짝 놀라며 이야기한다. 어디 프로기사들이 사인한 바둑판에다가 알까기를…. 이미 대세는 알까기였기 때문에 김장훈의 말이 들릴리 없다.
알까기가 시작. 물론 알까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심오한 바둑 세계를 모르고 바둑의 이미지를 자꾸 알까기로 몰아가는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다.
알까기 시간은 지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바둑판의 값어치를 알아보는 시간. 바둑판 제작에 40년 이상을 쏟아온 전문가가 등장을 했다. 김장훈은 "제가 아는 그 분 맞으시죠?" 라며 반가워한다.
바둑판을 고를 때는 무늬를 잘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고급 바둑판은 시가 1억원이예요, 이런저런 바둑판과 바둑돌에 관한 좋은 정보를 알려준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바둑판 설명이 끝나고 김장훈이 소장한 바둑판의 값어치로 이야기가 옮겨간다.
신이난 김장훈은 "선생님, 박정상 9단 아시죠? 박정상 9단이 선물한 거예요~"라고 거듭 강조한다. 박정상 9단 사진도 화면에 나온다. 그리곤 김장훈의 발길은 바빠진다. 처음부터 강조했던 프로기사들의 사인이 있는 바둑판의 진가를 알아줄 만한 사람이 앞에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여기, 세계 프로기사들 사인도 다 있어요! 이거 한번 봐주세요~"
하지만"사인은 제가 다 받아다 줄 수 있어요, 조훈현이고 서봉수고…." 화면에는 있는 모든 사람들은 웃음이 한가득, 김장훈만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런 다음 김장훈은 작은 목소리로 그거는 선생님이 다 좋은거 만들어 주셔서…… 말끝을 흐린다. (김장훈이 이런 의미로 이야기했는데 정확히는 들리지 않았다. 재방송으로 보고, 다시보기로 확인했지만 정확히 들리지 않는다.) 결국 바둑판과 바둑돌의 값어치는 50만원.
박정상 9단은 한국리그 태국투어에 참가해 이 프로그램을 재방송으로 시청했다고 한다. 시청을 한 뒤 인터넷 카페 프로바둑기사사랑회에 글을 남겼다.
"사실 그 바둑판은 제가 1년간 아끼며 사용하던 바둑판입니다. 그 바둑판 위에서 알까기를…. 알까기도 알까기지만 무엇보다 출연진들의 대화가 저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바둑을 잘 모르는 다수의 시청자들이 프로기사를 어떻게 생각할지. 제가 알기로는 조국수님께서는 부채나 사인지에는 사인을 하셔도 바둑판에는 그냥 써주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40여년간 바둑판 제작을 한 분은 오락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을 무시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바둑판을 제작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내려 50만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첫댓글 아......저기서 조형기 진짜 너무 비호감 맨날 아는척하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