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사는 김해시 지내동 신어산에있는 유서깊은 고찰로 예로부터 길지로 이름났던성덕사는 좌청룡 우백호터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약사유리광부처님을 주불전으로 모시고 있고 대웅전엔 아미타불과 삼신불을 모시고있으며 현재 혜령큰스님과 법연스님의 원력으로 재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성덕사는 정토종 기도최고도량으로써 누구나가 소원을 빌면 꼭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설화및 실화가 있으며 특히 천도제일도량으로써 많은 불자님들이 오셔서
기도및 천도 그리고 수행을 일삼는 도량입니다.
성덕사는 혜령큰스님 과 법연스님과 그리고 대보살님들이 계신데 현재 깨달음을 이루시고
신통력으로 중생의 길을 제도 하시고 계시며 많은 분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라 일컬고 있읍니다.
성덕사에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자연수석 관세음보살님을 외부에 모시고 있으며 우보처 용왕과 좌보처 남순동자와 그리고 감로수병 , 관음조, 스님얼굴형상,보타낙하산을 자연 수석그대로 모시고 있으며
이 자연수석 관세음보살님은 주지스님께서 산속에서 관음염불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계셨는데
산쪽에서 밝은 방광의 빛이 나서 그곳에 가보니 관세음보살님의 방광하시는 모습을 자연수석에 새겨져 있어서 스님께서 모셔다가 외부 법당에 점안을 하셨습니다.
현재 스님께서 기도중에 늘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계시며 전국 각지에서 자연수석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려 많은 중생들이 모이고 있으며 관세음보살님의 친견 및기도 도량으로써 누구나 소원성취및 견성성불과 극락왕생의 도량으로 손곱히고 있는 사찰입니다.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능으로 납능이라고도 한다.서기 42년 3월3일 구지봉에 탄강하여 9간들의 추대로3월15일 왕위에 올라 199년3월20일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 외형은 원형 봉토분1기는 상석이 길이 1.9m × 폭 1.75m × 두께 0.52m의 소형지석묘인데 상석이 비스듬히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으며 그 아래 지석과 석실이 일부 지상에 노출될 지경에 있는 기반식지석묘(碁盤式支石墓)이다. 나머지 1기는 상석이 길이 4.4m × 폭 3.8m × 두께 1.6m이며 지면과 나란히 하고 있으므로 그 아래의 구조는 알 수 없다. 현재 외형상으로 보아서는개석식지석묘(蓋石式支石墓)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마도 서상동지석묘와 구지봉지석묘와 연결된 하나의 밀집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비교적 양호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고 봉분의 높이는 약 5m이다.신도비에 새겨진 태양문양과 납릉정문의 신어상이 인도와의 문화 교류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의 시조이며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은 알 중에서 맨 처음 나왔다 하여 "수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안내전화 : (055)330-3549(사적지관리소)
주변관광지 : 국립김해박물관, 봉황동유적, 수로왕비능, 구지봉
입 장 료
어른
학생,군인
어린이
개 인
700원
400원
300원
단 체
600원
300언
200원
주차요금 : 시간당 1000원
숙박업소 : 김해관광호텔 (055)335-0101가든장여관 (055)335-8526
수로왕릉내 고인돌 전경1
수로왕릉내 지석묘(首露王陵內 支石墓)유적위치:수로왕릉의 뒷편 공원내에 2기가 위치하고 있다
1기는 상석이 길이 1.9m × 폭 1.75m × 두께 0.52m의 소형지석묘인데 상석이 비스듬히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으며 그 아래 지석과 석실이 일부 지상에 노출될 지경에 있는 기반식지석묘 (碁盤式支石墓)이다. 나머지 1기는 상석이 길이 4.4m × 폭 3.8m × 두께 1.6m이며 지면과 나란히 하고 있으므로 그 아래의 구조는 알 수 없다.현재 외형상으로 보아서는 개석식지석묘(蓋石式支石墓)라고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마도 서상동지석묘와 구지봉지석묘와 연결된 하나의 밀집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비교적 양호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수로왕릉내 고인돌 전경2
김수로 왕비릉
위 치 : 구산동 80번지
김해시가지 북단에 위치한 이 능은 가락국 수로왕비(허황후)의 능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락국의 발상지인 구지봉(龜旨峯)과 진영으로 나가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인접하여 있으며, 이 능의 동쪽 100m 지점에는 구산동고분군(龜山洞古墳群)이 위치하고 있다.조선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정화되었으며, 임진왜란 시에 도굴되었다. 현존 능비와 상석은 인조 25년(1641)에 설치된 것이다. 원형 봉분의 규모는 지름 6m 높이 5m 정도로 길을 봉분을 두르는 호석은 없다. 능 주위는 방형의 돌담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전면에는 낮은 단의 축대가 쌓여 있다. 봉분 앞의 능비에는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지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之陵)'이라 새겨져 있다. 능역내에는 내삼문, 숭선제, 외삼문, 홍전문 등의 건물이 있다. 능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파사석탑(婆娑石塔)이라 전하는 것이 있는데, 김해시 중심에 있었던 호계사(虎溪寺)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호계사는 호계천변에 있었다고 하는데, 호계천은 복개되어 지금의 호계로로 되었다.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조는 48년에 수로왕비가 인도에서 올 때 풍랑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배에 싣고 왔던 것이 파사석탑이라 하고, 이는 우리 나라에 없는 돌로 닭벼슬의 피로 알아 볼 수 있다고 전한다. 김해시의 향토사학자 허명철(김해시 금강병원장)씨는 파사석탑의 돌가루에 닭벼슬 피를 떨구어 응고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안내전화 : (055)330-3549(사적지관리소)
김해박물관
김해박물관은 1998년 7월 29일, 국립김해박물관은 고대국가의 하나인 가야(加耶)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개관되었습니다. 가야의 건국설화(建國說話)가 깃든 김해시 구지봉(龜旨峰)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의 문화재를 집약 전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부산·경남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상과 가야의 성장기반이 된 변한(弁韓)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가야의 역사는 다른 고대 국가들에 비해 역사기록으로 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의 실체는 대부분 발굴조사 등의 고고학적 방법으로 찾아진 고대인들이 남겨놓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복원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은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고고학 중심의 전문박물관 으로 특성화되어 있습니다.
관 람 시 간 관람시간 09:00 - 18:00 (입장시간 09:00 - 17:00) 관람시간 09:00 - 17:00 (입장시간 09:00 - 16:00) *토,일,공휴일 1시간 연장 (3월~10월)*
※ 휴 관 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
전시해설안내제 운영내 용 : 전문안내요원의 전시설명 및 일본어 통역실시
안내시간- 하절기 (3월~10월) : 1일 5회(10시, 11시, 14시, 15시30분, 17시)- 동절기 (11월~2월) : 1일 4회(10시, 11시, 14시, 15시30분
관 람 료어른(25세~64세) : 400원 청소년(19세~24세), 군인 : 200원 18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 무료
위 치 : 대성동 434번지이 고분군은 1990년에서 1991년까지 3차에 걸친 경성대학교 박물관의 학술발굴에 의하여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을 중심으로 한 2 ~ 6C 금관가야의 집단묘역임이 밝혀졌다 특히 금관가야의 지배계층묘인 나무곽무덤에서 풍성한 철기문화와 강력한 기마군단을 가진 가야문화의 실체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과 후한대의 중국제 거울을 비롯하여 일본의 고분에서 보이는 통형동기, 파형동기 등이 출토되어 한.중.일 삼국간의 문물교류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대성동고분군 정비사업· 사업비 : 106억원· 사업지 : 부지 1만8천평· 내용 : 고분전시관, 노출전시관· 완공예정 : 2002년말 안내전화 : (055)330-3549(사적지관리소) 주변관광지 : 구지봉,국립김해박물관
가야랜드
위 치: 김해시 삼방동 산1번지신어산의 수려한 경관속에 위치한 골프장, 수영장을포함한 종합레저 시설로 어린이에게 환상의 모험을 온가족 모두에게 자연의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주변 관광지 : 은하사, 신어산, 장척계곡 안내전화 : 가야랜드 ☎(055)337-0311수 영 장 ☎(055)337-0393
놀이기구 : 회전목마,바이킹,파도타기,하늘자전거등
입장료 : 어린이-1,000 청소년-1,200 어른-1,500
가야골프장
위 치 : 김해시 삼방동 산1번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신어산 자락에 입지한 대규모 골프장으로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시설규모 : 36홀 연락처 : 골프장 안내 ☎(055)333-0091∼4 교 통 - 부산,마산 국도14호선 이용- 남해 고속도로 이용- 김해시외버스터미널4.5㎞(15분소요 대한골프협회 권장 골프 예절
대한골프협회는 2001년 골퍼 에티켓을 담은 소책자를 발간했다. 적절한 골프 예절은 골프의 중요 요소로 스포츠맨십을 구현하는 실제 행동이라는 점에서 이를 소개한다.
뜯겨진 잔디 1. 양잔디의 경우 자기가 만든 디봇(뜯겨진 잔디)은 원 상태로 회복시킨다.2. 국내 금잔디의 경우 뜯겨진 잔디는 버리고 흙을 충분히 사용해 디봇 자국을 메운다.
볼 자국1. 그린 위에서 본인의 볼에 의한 자국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생겨난 볼 자국까지 즉시 수리하는 것은 좋다. 2. 볼 자국을 적절하게 수리하는 방법은 마크 바깥 테두리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티 대신에 그린 수리기로 수선하는 것이 좋다.
벙커1. 벙커에 출입할 때는 측면이 낮은 곳을 이용한다. 2. 상대적으로 높은 곳은 이용을 삼간다.
장유폭포 장유폭포 심천유곡 폭포안내도
장유폭포
위치: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유계곡은 불모산 산자락에 양 갈래로 형성된 약 7km의 긴 계곡으로 이곳에는 장유폭포도 있다. 장유방면에서 창원터널 2km 전에 장유폭포로 갈 수 있는 이정표가 보이며 IC에서 길을 내려 우회전 하면 입구에서 동행료 및 주차료를 받는 곳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산 오솔길을 걸어서 20분 정도 오르면 장유폭포가 보이며 이곳에서 10분쯤 더 산으로 오르면 장유암이 있다. 장유계곡은 밤나무, 잣나무 등으로 삼림이 울창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계곡과 자그마한 폭포가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며, 여름에는 시원한 피서지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우리에게 좋은 휴식을 제공해 준다. 오솔길을 따라 계곡을 오르면 깨끗한 물소리와 한 여름에도 시원한 계곡물을 접할 수 있다. 소단위로 계곡가에 모여 물놀이하기엔 안성 맟춤이다. 장유계곡주위에는 많은 산장 및 음식점이 있으며 특히 오리, 닭백숙의 맛이 일품 이여서 인근 도시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장유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불법을 전파했다고 전하는 장유 회상의 사리탑이 있고, 불모산 용지봉까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편의시설 이용안내입장료: 어른 600원, 청소년 400원 어린이 200원30인 이상 단체는 20%이상 할인되며 주차료는 없음 * 여름철에만 적용 민박안내 : 민박자율협회 0525-338-1983 교통안내 - 남해고속도로 장유 IC에서 창원방면으로 3.6KM 지점에서 장유폭포로 우회전하여 2km쯤 가면 계곡입구가 있다.(창원터널 전에서 우회전)- 김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8KM (20분 소요) - 남해고속도로 서부산 톨게이트에서 20분 소요
장척계곡
위 치 : 김해시 상동면 장척 자연발생유원지로 계곡이 매우 깊고 수려한 경관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가족동반 휴식처로 많이 찾고 있다.토종닭백숙과 꿩요리 맛이 일품이다. 주변관광지: 상동관광농원 ☎(055)323-6556 안내전화: (055)330-3251:문화체육과 연락처 : 상동면사무소 ☎(055)323-6733 교 통- 부산(구포) 17㎞ (40분 소요)- 김해시외버스터미널15㎞(30분소요)
특이사항 : 토종닭 백숙과 꿩요리 맛이 일품
분산성
위치 : 김해시 어방동 산 964 김해시 중심의 분산(330m) 정상부를 둘러싸듯이 돌로 축조된 퇴뫼식 산성이다. 고려말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에 대비하여 옛 산성을 이용하여 돌로 쌓고, 조선말(1871년)에 김해부사 정형석이 개축하였던 것으로 현재 김해시 방면의 경사면에 900m 가량의 산성이 남아 있다. 한편 산성의 정상부에는 지금까지도 신라토기나 가야토기의 파편들이 산재하고 있어 산성의 시축은 통일신라나 가야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분산 정상부의 좁은터에는 약간의 체력단련 시설이 있는데, 학계에 보고되어 있지는 않으나 굴식돌방무덤으로 보이는 유규가 있어 신라 가야토기의 파편들은 여기에서 반출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김해시민들에게는 분산성보다 만장대(萬丈臺)로 알려져 있는데, 조선시대 대원군이 척화의 전진기지로서 칭호를 내렸던 것에 기인하며, 정상부 뒤에 있는 바위에 만장대라는 대원군의 친필 휘호가 새겨져 있다. 만장대 최정상에는 송이버섯 모양의 나무가 서 있어 김해시 일원의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표식이 되고 있으며, 여러 곳의 오르는 길이 있으나 활천고개 정상부에서 올라가는 길이 잘 정비되있고, 가야랜드 앞에서 오르는 길은 소형차도 올라 갈 수 있다. 만장대에 오르면 김해시 김해평야 낙동강 남해가 한눈에 들어와 땀을 흘리며 오른 보람을 느끼게 하며, 가락국의 입지조건을 살피는 최적지이다. 이 산성은 김해시 북동쪽에 있는 분산(盆山, 해발 330m)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에 있는 정상부위를 중심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둥글게 에워산 테뫼식 석축산성(石築山城)이다. 이 분산성은 고려말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倭寇)를 방비할 목적으로 고산성을 수축(修築)하여 사용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허물어졌던 것을 고종(高宗, 1871)에 김해부사 정현석(鄭顯奭)이 개축한 것이다.이 산성의 평면은 장타원형(長楕圓形)으로 둘레는 904m정도이며, 높이는 3∼4m, 성벽폭은 1.12m이다.성문은 동문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성내로 옹성(壅城)과 같은 'ㄱ'자 모양의 꺽임 부분을 나타내고 있다. 성벽이 잘 남아 있는 곳은 동.서.북벽이며, 남쪽은 자연암벽 그대로 이용한 듯하여 북벽의 경우는 기단석(基壇石) 내외에 보축(補築)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편, 성내에는 암자(庵子)가 위치하고 있는데 주위 일부를 개간(開墾)하여 경작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부근에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위築城事蹟碑), 흥선대원군만세불망비(興宣大院君萬世不忘碑), 부사통정대부정현석영불망비(府使通政大夫鄭顯奭永世不忘碑)가 각각 세워져 있던 것을 김해문화협의회 주관으로 충의각을 건립, 비를 한곳에 모았다. 이 분산성은 성내외에 흩어진 토기파편(土器破片)이나 산성의 입지조건 등으로 미루어 보아 가야시대에 축조되었던 것을 고려시대에 와서 보축하여 사용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 중요시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6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나, 더 훼손되기전에 복원이 요망된다. 규모 : 면적 50,721㎡
은하사 경내신어범종신어범종 하대문양신어범종 용뉴조각
은하사
위치 :삼방동 882번지 김해의 영산인 신어산(神魚山 630.4m)의 중복에 위치한 은하사는 역사의 사찰로서 옛 서림사(西林寺)였다. 낙동강의 강바람을 막으며 남해로 달리는 형상의 신어산은 그 이름에서 김해의 신비로운 역사를 머금고 있다.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의 왕비로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온 허후(허황옥)가 전래했다는 서역문화의 이름 신어를 수로왕릉 납릉정문 신어문양과 함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다. 제2 금강산이라 불리울만큼 아름다운 산을 병풍처럼 둘러친 위치에 허왕후를 동행해온 형제 장유화상(허보옥)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장유화상(長遊和尙)은 이곳에다 모국의 번영을 기원하며 서림사를 지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락국의 번성을 위해 동림사를 지었다고 한다아무리 이름난 명산일지라도 한 골짜기에 두 개의 절을 짓지 않는다는데 아득한 옛날에 동림과 서림사가 함께 들어섰으니 김해의 역사 문화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임진왜란(1592)때 모두 불타버렸는데 그후에 서림사만 창건하였으며 대웅전은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83년 12월 20일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숙종 14년(1688)의 십왕전상량문(十王殿上樑文), 영조 43년 불상중수개금(佛像重修改金), 정조15년(1791) 십왕전 이건 상량문, 헌종 원년(1835)의 대웅전 관음존상개의 후불탱화진성기 및 부사 심웅기(1837~39)의 대웅전 중창기 취운루 등의 현판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1837~39년에 중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9년 3월의 신어산 큰 화재시에도 서림사만 피해가 없어 가락불교의 성지임을 더욱 거룩하게 했다. 그러나 대웅전 수미단에 조각되어 있던 신어문양이 도난 당해 불교계는 물론 불교미술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재 대성 큰 스님이 서림사의 본 모습을 중창하기 위해 몇 년째 땀을 쏟고 있어 머지않은 날 가락불교의 성지로서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영구암에서 본 신어산출렁다리에서 본 신어산신어산의 은하사 영구암의 돌탑
신어산
위 치 : 김해시 삼방동 높이 : 630 m 신어산은 경상남도 김해시와 김해군 상동면의 경계선상에서 동서로 뻗어있는 산으로서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광할한 김해 평야가 펼쳐져 있다.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 탄강지로 전해오는 구지봉은 이 산맥의 서쪽 끝부분에 있다. 등산 코스는 보통 남쪽 삼방동에서 오르는 길을 많이 이용하나 이 길 외에 김해시 동상동에서 산성과 만장대, 영운이고개를 거쳐 오르는 길과 북쪽 상동면 대감리에서 오르는 길 등이 있다.삼방동 버스정류소에서 남쪽 산록에 있는 은하사와 동림사로 오르는 길은 약 3KM로서 택시를 이용할수도 있다. 은하사에서 새로 신축한 동림사를 거쳐 영구암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암벽이 많으며, 영구암은 암벽의 돌출부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좋으며, 물 맛이 약수처럼 좋다.영구암에서 뒷편 길로 10여분 가면 능선에 닿게 되고 동쪽으로 약 5분을 가면 신어산 정상에 서게 된다. 정상에서 서쪽 주능선길을 따라 630봉까지 가는 도중에는 군데군데 암봉이 있고, 광할한 김해 평야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장쾌하다.580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460봉의 암봉에 올라서서 신어산을 바라보면 빼어난 경치에 감탄하게 된다. 460봉의 전망대 같은 바위에서 동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암벽 밑에 천진암이 있고 숲길과 대밭 길을 거쳐 은하사에 닿게 된다. 김해 시내에서 김수로 왕릉과 허후릉,구지봉등 명소가 많으므로 산행시 함께 찾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신어(神漁)의 자욱옛가락국에서 신성시한 영험한 생물 - 신어(神漁)천년전설되어 구비구비 영험과 신비로 만개한 명산 … 신어산(神漁山)가락국 수로왕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인도로부터 불교를 전래하여 지었다고 전해져오며19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중의 하나인 은하사(銀河寺)신어산의 서림주산에 위치하고 있고 암자에는 한 샘물이 있어 물이 맑고 깨끗하여 청명한 날에는 대마도를 바라볼 수 있는 영구암(靈龜菴)은하사 동쪽에 가락국의 봉안과 번영을 빌기위해 세워진 동림사지(東林寺址)이렇듯 신어산은 수려한 경관과 이 고장의 종교적이고 토속적인 느낌이 짙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은하사,동림사 은하사,동림사 두절은 가락국(42 - 532)의 초기 장유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은하사의 본명은 서림사였고, 서역불교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동림사는 가락국의 안존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창건되었다.그 후 임진왜란때 모두 소실 된것을 은하사는 묘,경화 두 화상이 중창 하였고, 동림사는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크게 복원하였다. 교통편 :○ 자가운전 : 남해고속도로 - 동김해I.C. - 인제대 쪽으로 직진 - 하키경기장 - 은하사 입구 주차장에 주차. 동I.C에서 10여분 걸림 ○ 대중교통 : 김해시내에서 대야여객 20-1번 버스 이용 어방↔도요행 버스로 창암마을에 하차(하루 5차례 왕복) 시내 금강병원 앞에서 낮 12시 15분, 3시 20분 출발
주변관광지 : 가야랜드,가야CC,장척개곡 문의사항 : 시청 문화체육과 ☎(055)332
회현리 패총
위치 : 김해시 봉황동 규모 : 5,703㎡ 자취김해시 서남쪽 회현동 민가 뒤쪽에 높이 약 7m, 동서길이 약 130m, 남북 너비 약 30m의 낮은 구릉위에 형성된 회현리 패총은 남부지방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의 하나로서 1907년 일본학자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회현리 패총은 이 패총은 1920년 본격적인 발굴 조사에 의해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유적중에서 가장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 발굴을 통해서 얻어진 유물 중에는 소위 김해토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토기들의 파편이 제일 많고 석기는 거의 없었으며 그 대신 철제의 도끼와 칼이 나왔고그외에도 골각제품이 출토되었다. 특히 중국 한나라 왕망 때에 주조되었던 화천 1매가 발견됨으로써 이 패총의 연대가 초기 철기시대임이 확실해졌다. 회현리 패총에서 발견된 왕망의 화천과 김해식 옹관은 이 지역이 초기 철기시대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이어지는 국제적인 교역의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주변 관광지 : 김수로왕릉,구지봉 문의사항 : 시청 문화체육과 ☎(055)332-0101
구지봉 기념 주형물구지봉석
구지봉
위치 : 구산동 산 81-2번지
가락국 시조 수로왕이 하강하였다는 구지봉은 수로왕비릉 서쪽얕은 구릉 선단부로서 거북이 머리를 내민 것 같은 지형이다. 일제시대에 진영으로 가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거북의 목부분이 끊겼던 것을 근년에 흙을 덮은 돌다리로 연결하여 차는 다리 밑으로 통행하고 있다.구지봉에는 두개의 수로왕탄강비가 있고, 가락국의 건국신화를 형상화한 석조물이 있는데, 여섯 알은 수로왕과 오가야왕을,아홉 거북은 수로왕을 맞는 아홉 촌장(九干)을 나타낸다.구지봉석 명문 석조물 왼편 숲에는 고인돌이 있는데, 덮개돌에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 새겨져 있다.비와 석조물은 근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고인돌은 수로왕 출현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적어도 이 천년 이상 김해를 지켜보고 있는 역사의 증인이다.구지봉석은 지름 2.5m 정도의 덮개돌과 5 6 개의 짧은 받침돌로 된 기반식 고인돌로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이 고인돌의 피장자와 축조자들은 철기문화인인 수로집단이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토착의 청동기문화인으로서 구간(九干)들이 영도하였으며, 구지봉은 구간사회인들이 굿과 같은 제의(祭儀)를 벌렸던 신성한 지역이었을 것이다.도로에서 오르는 입구에는 구지가(龜旨歌)를 새긴 비가 있는데, 구간사회인들이 풍요(豊饒)를 기원하던 주술적 노래가 수로왕을 맞이하는 영신(迎神)의 노래로 재구성된 것이다.수로왕이 구지봉에 내린다는 것은 이러한 토착사회의 신성성을 빌려 가락국의 건국신화를 재구성하였음을 보여준다.
안내전화 : (055)330-3549(사적지관리소)
주변관광지 : 수로왕비릉,국립김해박물관
봉황대
위치 :봉황동 158번지 봉황대는 김해회현리패총 서쪽에 인접한 구릉 정상부로서, 1992 ∼ 1993년에 발굴조사되어, 조개더미, 집자리, 환호(環濠), 쓰레기장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조개더미는 동쪽 경사면을 제외한 전지역에 있는데, 3 ∼ 6 세기에 걸쳐 형성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는 중복되어 밀집을 이루고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3 ∼ 6 세기에 걸쳐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를 둘러싸듯이 축조되어 있는 환호는 깊이 150Cm 넓이 350Cm 정도의 규모로 B.C 1 세기의 것과 A.D 4 세기의 것으로 보고되었다.이들 유구에서는 다량의 적갈색연질토기와 소량의 와질토기와 도질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숫돌 골각기 목제빗 철기 동물뼈 철재 송풍관 등이 출토되었다.특히 철재(鐵滓)와 송풍관(送風管)은 야철(冶鐵)이 행해졌음을 보여주며, 위서 변진전에 '나라에서 철이 생산되어 인접의 한과 예를 비롯하여 멀리는 낙랑 대방의 2군과 일본열도의 왜에 수출되고 있었다'고 전하는 내용과의 관련성을 생각케 한다.김해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유적의 일부가 시민체육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정상부의 경사면에는 층위를 이룬 무수한 조개껍질층과 토기편들이 노출되어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천오백년전 가야인의 손길에 접할 수 있다.
안내전화 : (055)330-3549(사적지관리소) 주변관광지 : 수로왕릉,국립김해박물관, 구지봉
선조 어서각 분류 : 문화재자료 제30호 소재지: 홍동 산 20 - 3 번지 권탁장군의 단소로서 왜군과의 격전시에 내린 선조국문교서(보물 제951호)를 보관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836년에 건립한 것이다. 1칸 평면의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관리상태가 나빠 퇴락한 것을 1989년 4월 현 장소로 이전 복원하면서 현충사와 함께 증축하여 새롭게 단장했다.
산해정분류 : 문화재자료 제125호 소재지: 대동면 주동리 737 조선시대 중종때의 거유 남명 조식선생께서 30년간 강학하던 곳으로 조선 선조 21년(1588) 향인들의 청에 의해 김해부사 양사준이 정자의 동쪽에 서원으로 착공했으나 왜란으로 중지된 것을 광해군 원년(1609년) 안희, 허경윤에 의해 준공되어 신산 서원이라고 하였으며, 순조 23년(1823) 송윤증 등이 중건하였다.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철거되었다가 해방후 다시 중수한 것이 지금 건물인데 팔작지붕의 목조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사당영역이 없이 강학공간만으로 이루어진 서원형식을 가지고 있다.
신천망월석탑분류 : 문화재자료 제262호 소재지: 한림면 신천리 471번지현 흥덕사에서 약 1km정도 동쪽 망천마을 남쪽의 탑골 암자터에 소재하던 것을 1982년 이전한 것으로 원래는 3층탑이었으나 상륜부 및 2층 탑신 이하가 결실되었다. 제작수법으로 보아 고려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허왕후의 고향을 기리기 위해 망월골에 탑을 건립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서상동 지석묘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4호소재지: 서상동 6-7번지 청동기시대의 전형적인 남방식 지석묘로 무덤의 주체는 땅속에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지석묘에는 돌칼, 돌화살촉, 무문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길이가 4.6m나 되는 큰 상석위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충신의 한분인 송 빈 선생이 이곳에서 순절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양동산성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91호 소재지: 주촌면 양동리 산 39-1 양동리와 내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331m의 산봉우리를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일부는 흙으로 쌓고 일부는 대강 다듬은 할석으로 쌓았으며 마을이름을 따라 양동산성, 내삼성이라고도 불리고 가곡산성이라고도 한다. 가야시대에 쌓여져서 계속 수리되어 사용된 듯하여, 둘레 약 800m이고 성벽 높이는 2.5m에 두께 5m로 협축하였던 부분이 허물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남쪽과 북쪽의 문터에는 초석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우물터의 흔적도 남아 있다.
사충단 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99호소재지: 동상동 161번지조선시대 선조 25년(1592)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송빈,유식,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매년 음력 4월2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예안리고분군
분류 : 사적 제261호소재지: 대동면 예안리 369-6 1976년부터 1980년에 걸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됨으로써 무덤의 성격이 일부 밝혀지게 된 가야시대 서민계층의 집단 묘역이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해 밝혀진 무덤의 형태는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석실묘 등 매우 다양하며 이런 형태들의 무덤이 모두 300여기나 확인 되었다,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다양하고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100여구의 인골이 발견 되기도 하였다, 발굴된 수많은 인골은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형질학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편두의 풍습이 남아 있는 인골도 출토되었다.
대성동고분군
분류 : 사적 제341호 소재지 : 대성동 434번지 시대 : 금관가야
1990년에서 1991년까지 3차에 걸쳐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학술발굴된 2~6C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집단묘역으로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옹관묘 등 다양한 묘제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특히 금관가야의 지배계층묘로 보이는 목곽무덤에서 풍성한 철기문화와 강력한 기마군단을 가진 가야문화의 실체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 되었으며, 후한대의 중국제 거울을 비롯하여 일본의 고분에서 보이는 통형동기, 파형동기 등이 출토되어 한·중·일 삼국간의 문물교류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주촌면 이팝나무
분류 : 천연기념물 제137호 소재지 : 주촌면 천곡리 895-2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꽃이 피면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팝나무라고 한다. 수령 약 500년으로 높이 17m, 지면부의 둘레 6.9m로서 지상 1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지고 가슴높이 둘레는 동쪽의 것이 4.2m, 서쪽의 것이 3.5m로서 매년 5월중순에서 6월 상순에 걸쳐 꽃이 핀다.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어 농민들이 무척 좋아하는 나무중의 하나이다.
신천리 이팝나무
분류 : 천연기념물 제185호 소재지 : 한림면 신천리 946번지 규격 : 높이 15m, 둘레 35m
수령 600년으로 높이 15m, 둘레 35m이며 매년 섣달그믐에 용왕제를 지내고 있다. 나무 꽃이 잘 피면 풍년이 들고, 시름시름하면 한발이 오고, 잘피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전하며 하얀꽃이 마치 흰쌀밥 같다하여 이팝나무라고 한다.
안곡리 3층석탑
분류 : 도유형문화재 제24호소재지 : 한림면 안곡리 166-1 안곡리 폐사지에 있는 석탑으로서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있다. 탑의 기단부는 매몰되었고 옥개석 3매와 옥신석 1매만 남아 있는데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며 잔존하는 탑의 높이는 2.12m이다. 특히 1층 옥신석에는 문짝이 4면에 새겨져 있다. 2001년 복원 정비하였다
진영봉화산 마애불
분류 : 도유형문화재 제40호 소재지 : 진영읍 본산리 산 4-3번지 시대 :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여래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 2.48m, 무릎높이 1.7m이다. 광배는 없으나 균형잡힌 코등과 조그마한 입, 어깨까지 늘어진 커다란 귀 등이 세련된 조형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전설이란 기록을 보면 당나라 황후의 꿈에 한 청년이 자주 나타나서 괴롭힘으로 신승의 힘으로 바위틈에 넣어서 김해땅 봉화산의 석불로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흥미를 더하고 있다.
능동 석인 및 상석
분류 : 도유형문화재 제71호 소재지 : 장유면 삼문리 산 49-2
현지에서는 가락국의 왕릉이라고도 하고 혹은 조선 초기의 사대부 묘라고도 전해오고 있는 봉토분의 앞에 세워진 문인상 2기와 상석으로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관모를 쓰고 양손에 홀을 쥐고 있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석인상은 조선시대 문인 상이며, 상석 또한 중후한 점이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선대 마애불
분류 : 도유형문화재 제78호 소재지 : 안동 685-1 가락국의 2대왕인 거등왕이 철점산의 선인을 초대하여 금과 바둑으로 서로 즐겼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초선대의 암벽에 얕은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으로 일명 거등왕의 초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머리가 신체에 비해 너무 크고 표현이 간략하게 된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아미타 마애불로 추정된다. 크기는 높이 5.1m, 어깨폭 2.5m로 김해지방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 꼽히고 있다.
구산동 마애불
분류 : 도유형문화재 제186호 소재지 : 구산동 산 57-1 이 불상은 암벽의 한 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선각한 것으로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 하였다. 머리에는 육계가 솟아 있으며 갸름한 얼굴에는 눈, 코, 입 등이 얕게 새겨졌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무릎의 폭이 안정되어 강건한 느낌을 주는데,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올리고 왼손은 왼쪽 무릎에 대고 있어 아미타불로 생각되며, 선각으로 불상을 처리한 수법이나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김해 향교
분류 : 도유형문화재 제217호 소재지 : 대성동 224 번지 시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 관학 교육기관으로 유학을 가르치던 곳인데 현재의 중등교육기관에 해당된다. 김해향교는 선조말기(1602~1604)에 대성전이 건립되고 인조초기(1625~1629)에 동ㆍ서무와 대성전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이 향교의 주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 현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숙종 15년(1689) 동ㆍ서재를, 동 18년(1692)에 신주를 건립하였으며 동 19년(1693) 명륜당과 남루를 건립하여 면모를 갖추었다. 공자를 중심으로 5성위 18현의 얼을 모시고 있다. 음력 2월 초정일과 8월 초정일에 이 분들에 대한 제례를 대성전에서 지낸다.
서강 김계금 일고책판
분류 : 도유형문화재 제352호 소재지 : 진영읍 신용리 245-1 진영읍 신용리 245-1 시대 : 조선시대 조선전기의 유학자 서강 김계금선생의 언행과 업적, 관련기록등을 후손들이 모아서 편찬한 목판으로 1850년 제작 되었다. 표지를 포함한 총 26장의 책판 전부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어 조선후기 목판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진영 신용리에 있는 미양서원에 보관되어 있다.
숭선전 제례
분류 : 도무형문화재 제11호 숭선전은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향화를 받드는 전각으로 고종15년(1878)에 건립되었다. 이 전각은 국조 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을 모신 숭영전, 기자의 숭인전, 신라 시조 혁거세왕의 숭덕전, 탈해왕의 숭신전, 알지왕, 문무왕, 경순왕의 숭혜전, 백제 시조 온조왕의 숭열전, 고려 시조왕의 숭의전과 함께 팔전의 하나이다. 대제는 춘추향 2회로 춘향은 음력 3월 15일, 추향은 음력 9월 15일이며 시간은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동안 거행된다.
유하 패총
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45호 소재지 : 장유면 유하리 183번지 시대 : 4~5세기 하손부락 뒷산의 동남단에 형성되어 있는 유하패총은 가야시대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먹고 버린 조개껍질, 생선뼈, 동물뼈등과 당시 사람들이 쓰던 각종 토기나 도기들이 그대로 묻혀 쌓여 있는 곳이다. 정식으로 발굴조사가 되지 않아 정확한 유적의 성격은 알 수 없으나 넓은 범위에 걸쳐 있으며, 지표면에 흩어져 있는 토기편들로 보아 가야시대인 4~5세기 때의 패총으로 보인다.
내동지석묘
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97호 소재지 : 내동 469번지 내동은 오래전부터 형성된 마을이지만 최근 대단위 주택지로 변모한 지역으로 내동 지석묘는 '95년 동의대에서 발굴조사후 상석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이전 보관되어 있다. 내동 지석묘는 상석과 지석, 개석 및 하부 석곽을 갖춘 형식으로 내부 바닥에는 소형 판상의 할석을 깔아 시상대를 만들었다. 홍도가 1점 출토되어 매장과 관련된 의례행위가 이루어졌음을 밝혀주고 있다.
칠산동 고분군
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98호 소재지 : 명법동 산 11-1번지 칠산 남단의 해발 90m정도의 정상부 주변에 두곳으로 나누어져 형성되어 있는데 북쪽에는 10여기의 큰 수혈식 석곽묘군이, 남쪽에는 수십기의 작은 수혈식 석곽묘와 목곽묘가 혼재하고 있음이 1987년 경성대학교 박물관의 발굴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3~4세기의 목곽묘에서 4~5세기의 석곽묘로 변화하는 가야묘제 변천상을 잘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양동리 고분군
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136호 소재지 : 주촌면 양동리 산 3번지 시대 : 삼한 및 삼국시대 가곡부락 뒷산에 위치한 양동고분군은 삼한 및 삼국시대 무덤 유적지로 전체규모는 약 3만평으로 추정되며 김해에서는 가장 대규모이다. 이 고분군은 지하에 무덤이 중복된 상태로 조밀하게 설치되어 매우 복잡한 배치상태를 보여주며, 시기적으로는 가야시대 전기간동안에 걸쳐 조성되었음이 발굴조사 결과 밝혀졌다. 가야철기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토기, 청동기, 구슬류 등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외국과의 교섭, 교역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마현산성
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150호 소재지 : 생림면 봉림 산 102번지 시대 : 가락국 수로왕때 가락국 수로왕때 축조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해발 약 215m 정도의 뾰족하고 경사가 심한 독립된 산봉우리 정상부 주위에 축조되어 있다. 산성의 동쪽과 북쪽 일부는 천연의 석벽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석축은 서쪽과 남쪽에만 설치되어 있다. 성벽의 장축은 지형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설치되었으며 서쪽 중앙부가 약간 안으로 밀려들어와 전체가 누에고치 모양을 이루고있는 전형적인 한국식 산성이다.
무계리 지석묘
분류 : 도지정기념물 제151호 소재지 : 장유면 무계리 366-1 시대 : 청동기시대 규격 : 길이 6.1m, 폭 2.9m, 두께 1.1~1.3m 남방식 고인돌로서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지상에는 거대한 상석만 남아 있는데 북쪽끝 부분만 약간 들려있고 나머지 부분은 흙과 돌로서 메워져 있다. 상석규모는 길이 6.1m, 폭 2.9m, 두께 1.1~1.3m이며 장축은 남북향이다. 1964년 11월에 조사된 광석리 지석묘와 동일한 구조를 가졌을 가능성이 많다.
장유화상 사리탑
분류 : 문화재자료 제31호 소재지 : 장유면 대청리 산 68-1번지 이 팔각사리탑은 가락국 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허봉옥)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물로서 가락국 제8대 질지왕(451~492) 재위중 장유암 재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1500여년의 오랜 세월속에 여러번의 전란으로 암자와 관계 유물들은 거의 소실되고 사리탑만이 남았다고 전하나 현존 사리탑은 그 제작수법으로 보아 고려말의 작품으로 보인다.
허성재선생 철명편 목판
분류 : 문화재자료 제 174호 소재지 : 대성동 248번지 시대 : 조선시대 규격 : 30.3Cm X 19.2Cm 허성재 선생은 고종초 김해부사로서 많은 치적을 남기고 후학을 가르친 분으로서 보관중인 허성재 선생의 철명판 목판은 선생의 문집중 (총 32권 17책) 일부인 철명편 57장인데 책판의 크기는 30.3Cm X 19.2Cm이면 1890년 조판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 시례염수당 고문서
분류 : 문화재자료 제279호 소재지 : 진례면 시례리 316 진례면 시례리 거주 안봉환씨의 11대조 안경지공 이래로 전래되어 오는 총 18점(12책 6매)의 고문서들로 이중 특히 예산장묵, 화회문기, 강회절목등은 조선시대 지방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역사자료이며 혼간철, 노산장묵 등도 당시의 양반 사회에서 왕래된 혼서·서간문을 그대로 모아둔 것으로서 중요한 사회사 연구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