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 오나시스는 1904년 부유한 담배 상인의 아들로 터키에서 태어났다. 1922년 터키의 아즈미르 점령으로 모든 재산을 몰수, 파산 당하고 그리스로 돌아간다. 1931년, 당시 25세인 오나시스는 캐나다 중고 선박 2척을 구입하면서 해운업을 시작한다. 2차대전 중, 미국 정부의 비호와 전쟁 특수로 재산을 증식 시켰으며, 영어,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 터키어 등 6개국어에 능통했던 오나시스는 20년간 100여척의 탱커와 포경선을 보유하면서 세계 최대의 선박왕이 되었다.
그가 사망 전 남긴 유산이 수십~수백억 달러로, 손녀에게 남긴 유산만 한화로 79조원 이였다. 세계의 최고·최대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행복한 사람인가? 오나시스는 천상의 목소리로 무대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1923~1977)와 결혼 했지만, 8년도 안되어 가사 일을 돌보지 않는 칼라스에게 권태와 실망 끝에 이혼을 한다.
다시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영부인였던 재클린(1929~1994)과 재혼을 하지만, 사치와 씀씀이가 혜픈 재클린과 결혼 일 주일 만에 "내가 큰 실수를 했다" 며 후회 한다, 고민 끝에 친구의 조언을 들어 이혼하려 했지만…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자 이혼은 못하고, 한 달에 20억이 넘는 돈을 마구 쓰는 재클린 때문에 오나시스는 뚜껑이 열리고 혈압이 쭉쭉 오르게 된다. 그러던 중에 오나시스의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게되고, 그 충격으로 1973년, 나이 69세에 황천객이 되고 만다. 끝까지 이혼 합의를 않던 재클린은 오나시스의 엄청난 유산을 거의 다 차지 한다.
"나는 인생을 헛 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형편없는 세상에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며 오나시스는 죽어 갔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던 마리아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였던 재클린 케네디와 살아도... 남는 것은 후회 뿐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장탄식을 뿌리며 이 억만 장자 아리스토틀 오나시스는 죽어 갔다.
세상이 알아주던 그녀들도 사회적인 명성처럼 한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칼라스나나 재클린의 명성을 부러워 말고,
거저 아이 잘 낳고, 살림 잘하며 알뜰 저축하며 살아가는 조강지처가 최고지요! 신사 숙녀 여러분, 아니 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