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 "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젊은 의사에게 미친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그의 가운을 붙잡아 흔들며 애원하고 또 애원했습니다.
의사는 한 두번 있는 상황이 아닌 터에 지쳐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어지러운 듯 눈을 감았습니다.
전 '이건 아니다' 싶어 재빨리 그의 가운을 놓아주었습니다.
제가 어찌나 힘껏 그의 가운을 붙들었던지 그의 깨끗한 하얀 가운엔 주름이 잡혔습니다.
"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저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
아빠는 늘 누워서 주무시기만 하시니, 전 병원에서 할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의사 선생님은 타이밍 좋게 아빠의 병실로 들어오곤 했어요.
나중에서야 안거지만 날렵한 눈에 오똑한 코. 그리고 하얀 가운만큼이나 하얀 피부.
무엇보다 너무나 어려보이는 그 얼굴은 의사 같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엔 어색해서 잠자코 의사의 얼굴과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의사 선생님께 여러가지 질문도 하고, 농담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전 의사 선생님과 제법 빨리 친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친해졌을 뿐인데,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의사라면 우리 아빠를 살릴 수 있겠구나'하는 바보같은 생각으로도 저는 하루종일 기뻤습니다.
STOP! 오종혁아잉의 소설입니다:)
아빠의 가족이라곤 달랑 이 못난 딸 하나입니다.
그러니 지금 의사 앞에 심각하게 앉아있는 사람도 저 하나뿐이지요.
" 어머님께서는 안 계시나요? "
" 네. "
저는 단호했고 그 의외의 단호함에 의사도 짓눌려 버린 것 같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저는 서로 말을 놓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왜 그랬는지도 모른 체 말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나름 중요한 자리라는 듯 의사는 제게 참 오랜만에 존댓말을 붙입니다.
그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는 말을 시작하려는 준비를 했습니다.
'참 대단한 말이 나오려나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저는 순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스무살. 철없는 짓은 끊어야 할 때 입니다.
"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던 그 진부한 말투, 그 진부한 목소리로 의사는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직접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그 진부한 대사를 전 듣고야 만 것입니다.
이제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서 다음 나올 대사라든지, 표정이라든지..
다른 환자 보호자들을 많이 겪어 이젠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으니까요.
" 아저씨 ..아니, 의사 선생님. 방법은 없을까요? "
의사를 아저씨라고 부르던 제게도 이번만큼은 의사 선생님이였습니다.
아빠를 살릴 단 하나의 마지막 희망, 그 희망 하나가 바로 의사 선생님이였습니다.
물론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 방법이 있었다면 환자가 죽는 날까지 그 방법을 안 가르켜 주었을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제게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아저씨도 모르는 그 방법을 저는 찾고 싶었습니다.
" ..없습니다 "
나는 힘겨웠는데, 마지막 희망이 .. 마지막 내 기도가 배반당한 것만 같아 힘겹고 억울했는데
아저씨는 아니었습니다.
힘겨운 표정도, 안쓰러운 표정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감정없는 시선으로 무감각하게 제게 말을 전할 뿐이었습니다.
" 아저씨 아빠는 아니야 "
" 네? "
평소 아저씨에게 말하던 버릇이 나와버렸지만 울컥한 저에게 그 것은 문제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의사라는 아저씨는 무진장 당황한 눈빛이지만요.
" 아저씨 아빠가 아니라 내 아빠야. 그래서 내가 더 힘들어. 아저씨는 힘들 이유가 없어 "
" ........ "
" 그렇지만.. 원래 그런거지만.. "
" ............. "
" 그냥 아저씨는 너무해.. 아저씨랑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는데,
그래서 아저씨도 같이 슬퍼해 줄줄 알았는데.. 결국 아저씨도 그 냉정하다는 의사였어 "
아저씨는 끝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말을 시작했던 순간부터 내가 말을 끝낸 그 순간까지 의사 아저씨의 표정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아빠는 돌아가셨습니다.
-
일주일 후
그 의사 아저씨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저씨가 미운만큼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저씨가 많이도 그리웠던겁니다.
일주일 만에 찾은 병원에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내던 간호사 언니께 의사 아저씨에 대해 물었습니다.
" 아마 또 그 곳에 가셨을거에요 "
저는 의사 아저씨가 자주 간다는 그 곳으로
조용함이 있고, 바다가 있고, 관용이 있는 곳으로 아저씨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STOP! 오종혁아잉의 소설입니다:)
저 멀리서 보이는 아저씨 옆에는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도 한 명 있었습니다.
순간 움찔해 아저씨에게 옮기던 발걸음이 무거워질 뻔 했지만 다시금 괜찮아졌습니다.
아저씨는 제법 쌀쌀한 초가을 날씨에 얇은 티 하나만 입고 있었습니다.
하얀 가운을 걸치지 않은 아저씨는 제가 보기에도 어색했습니다.
언제나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의사만 보던 저는 그 날, 평범한 한 남자를 본 것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그 곳 벤치에 앉아있는 한 남자를 말입니다.
..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여자와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뒤에서 서성거리며 지켜보던 저는 점점 그에게 한 걸음씩 더 가까워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러면 안돼' 하면서도 저는 저도 모르게 아저씨의 말을 엿듣고 있었던 겁니다.
" 오늘 널 보러 온지 딱 50번 째. 내가 담당한 환자들이 죽은지 50번 째.
환자 보호자들이 오열한지 50번 째, 내 마음이 찢어진지도 딱.. 50번 째 "
순간 가슴이 뭉클했지만 잠자코 듣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 차라리 나도 너처럼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았으면 .. 좋겠다.
환자들이 죽어가는 모습도 보기 싫고, 보호자들이 슬퍼하는 모습도 보기 싫고.
이런 악순환에 다시 의사가 되어야 하는 내가 싫고 "
그랬습니다.
그녀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장애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제서야 보였습니다.
그 옆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시설의 건물이 그제서야 보였어요.
이 여자를 보러 왔습니다.
의사 아저씨는 .. 아니, 이 한 남자는 딱 50번 째 이 여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 나 정말 죽고 싶다. 은정아 "
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그 여자는 그렇게 아저씨를 향해 웃어보였습니다.
" 웃어줘서 고맙다. 너라도 웃어줘서.. 고맙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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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어느 날 일이었습니다.
철없는 스무살에 저는
의사 아저씨도 사람이라는 것을 그 때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STOP! 오종혁아잉의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소설 올립니다!
아 날씨가 이젠 정말 쌀쌀해요.
모두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0^..
첫댓글 환자를 리려고 애써는데 죽는모습을 직저봐야하니 그마음이 오죽했을까요 ㅠ 의사도 사람인데ㅠㅠ
네. 의사도 힘든 직업이죠. 동욱러브님 코멘 감사드려여^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