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 말기에 살았던 무문 혜개(無門 慧開)스님이 48개의 화두(話頭)를 모아 엮은 책을 「무문관(無門關)」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본칙(本則)과 무문 스님이 자신의 선적(禪的) 체험을 바탕으로 48개의 화 두 모두에 평창(平唱)과 송(頌)을 덧붙이고 있다. 특히 맨 처음 나오는 '조주무자 (趙州無字)' 화두는 우리나라의 많은 스님들이 평생을 씨름하는 화두의 하나로 유명 하다.
그런데 여기에 담겨 있는 화두들은 무문 스님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예로부터 조 사(祖師) 스님네들로부터 내려오던 고칙(古則)이며 무문 스님도 '조주무자' 화두를 받아 대오(大悟) 철저하는 데 6년간이나 걸렸었다. 그리고 무문 스님이 깨쳤던 그 상황은 『중집속전동록』에 잘 남아 있는데 무문 스 님이 어느 날 제(齊)를 알리는 큰 북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았다고 하며 이 때의 상 황이 "청천백일에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雷聲)이 울렸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큰 북소리에 깨달음의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며 무문 스님의 수행이 이미 무르익어 있었으며 단지 큰 북소리와 더불어 깨달음이 열렸을 뿐인 것 이다. 이후 그는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제자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알맞다고 생각 되는 몇 개의 화두들을 부과해 수행시켜 오다가 그것들이 어느덧 48개나 쌓이게 되 자 1228년 남송(南宋) 이종황제(理宗皇帝)의 즉위를 기념하여 이들을 한데 모아 선 수행의 지침서로서 「무문관」을 엮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무문관은 첫 번째 '조주무자'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며 나 머지 47칙은 모두 이 '조주무자'를 철저히 투과했는지를 다시 점검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1974년에 종달(宗達) 이희익 노사(老師)께서 선에 처음 입문 하는 초심자들을 위해 매우 친절하게 풀어쓴 『무문관(無門關)』을 출판하셨는데 종 정을 지내셨던 고(故) 고암(古庵) 노사께서 이 책을 접하시고는 종달 노사께 너무 노골화시켜 놓았다며 극찬한 책이기도 하다.
(1) 무문관 제 1칙 : 조주무자(趙州無字)
무문관 제1칙에 다음과 같은 선 문답(問答)이 있다. 조주 스님에게 어느 때 중〔僧〕이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묻자 조주 스님, "무(無)!"라고 대답했다.〔趙州和尙 因 僧問 狗子 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이 화두의 핵심은 경전에서는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즉 모든 만 물은 다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데 왜 조주 선사께서는 "무(無)!"라고 했 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있다 없다'라고 할 때의 '없다'라는데 걸리면 이 화두는 평생 해결 못하는 난제로 남게 된다. 따라서 어떻게 유(有) 무(無)를 초월할 것인지는 각자가 진지하 게 체득할 일이다. 사실 조주 스님은 불성(佛性) 자체에 관한 자신의 선적(禪的) 체 험을 바탕으로 본인도 우주도 '무(無)'와 일체가 되어 물음을 던진 중 앞에 그 답을 내던진 것이었다.
자! 여러분! 불교에서는 모든 만물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왜 조주 스님 은 "무(無)!"라고 했는지에 관해 여러 조사어록(祖師語錄)들에 담겨있는 언구(言句) 들은 모두 다 집어던지고 직접 다리를 틀고 앉아 '조주무자'와 철저히 한 몸이 되어 조주 스님의 배짱을 스스로 꿰뚫어 보라! 참고로 부처님게서는 모든 만물은 다 부처 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설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하찮은 개라고 할지라도 불성이 있는 것이나 조주 스님은 어떤 중의 질문에 "무(無)!"라고 대답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날은 다른 중이 꼭같이 물었는데 이때는 "유(有)!"라고 대답을 하기도 했 다. 따라서 조주 스님의 '유'와 '무'는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뜻의 유나 무가 아 닌 것이며 팔만사천의 법문을 다 뒤져보아도 이에 대한 견해는 걸코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 체득해야만 조주 스님의 배짱을 꿰뚫어 볼 수 있다.
한편 삼일운동을 일으켰던 33인의 한 분이신 용성(龍城) 노사는 이 '조수무자'를 투 과하신 경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셨다.
개에게 불성이 없다함은 조주 스님의 망령된 분별이요
봄날 동쪽 호수의 물은 푸르른데 백구는 한가로이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구나!
狗子無佛性 趙州妄分別 東湖春水綠 白鷗任浮沈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종달 노사는 1984년에 펴낸 자서전(自敍傳)인 『인생의 계단』에서 '조주무자'의 경계를 다음과 같이 나투셨다.
간신히 조주무자를 얻어 평생을 쓰고도 다 못쓰고 가노라!
裳得趙州無字 一生受用不盡
한편 일본 임제종의 중흥조(中興祖)인 백은(白隱) 선사와 그 스승인 정수(正受) 노 인 사이에 다음과 같은 재미나는 선 문답이 있다. 정수 노인이 백은에게 물었다.
"조주의 무(無)라는 것은 무엇인가!" 백은이 의기양양하게 "우주에 충만해 있으며 손을 댈래야 댈 수도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마자 즉 시 정수 노인은 손을 뻗쳐 백은의 코를 잡아 비틀며 "나는 얼마든지 손을 댈 수 있 지!" 하며 소리내어 크게 웃고는 "이 토굴 속의 사선(死禪) 중아! 그런 무(無)로 충 분하다고 생각하느냐!" 하며 제자 백은을 다그쳤으며 백은은 이를 큰 깨달음을 얻는 계기로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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