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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은 교회 (계3:7-13절)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일곱 교회를 보면 어떤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받았고, 어떤 교회는 책망만 받았고, 어떤 교회는 칭찬만 받았습니다. 칭찬만 받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서머나 교회의 장점은 순교였고, 빌라델비아 교회의 장점은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인내와 진실성이었습니다. 이들은 순교에 이르지 않았지만 역경 가운데서 꾸준히 신앙을 유지한 것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진실성을 가진 교회에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의 주로 나타나실 때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이’였으나 칭찬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생명의 문을 열 수 있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표현은 곧 메시야 왕국의 절대 주권을 가지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교회는 웅장하고 훌륭한 건물을 가진 큰 교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요,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실제로 주변 도시가 모두 회교화 된 상황하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복음과 사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좇아 A.D 1392년까지 기독교 도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교회에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고 주님이 찾아오셔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을 기쁘시게 한 이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칭찬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열린 문 교회입니다.
다윗의 열쇠는 교회와 천국에 대한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을 의미합니다.
*히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의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곧 그 집의 책임자가 가지는 것입니다. 집안의 모든 열쇠는 집주인이 가집니다. 과거에 며느리가 시집을 와도 그 집안의 살림을 밑을 안주인이 되기 전까지는 시어머니가 열쇠를 넘겨주지 않습니다. 즉 열쇠를 자진 자가 그 집의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천국의 주권자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이 열쇠로 천국문을 열고 선택된 백성들, 역경 가운데서도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그 집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문은 어느 누구도 닫을 수 없고 한 번 닫히면 열 수 없는 문입니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분도 그리스도시오 그것을 섭리하시고 지배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천지 창조에 대해 증거하기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사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의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의 주권도 가지셨음을 의미합니다.
*마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히시고..
예수님은 교회의 주권만 가지신 것이 아니라 사망과 음부의 주권도 가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천국과 낙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과 지옥까지도 지배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탄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과 함께 그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행하여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열린 문이 무엇입니까?
1) 천국의 문입니다.
열린 문은 하늘의 문이요, 하늘의 문은 메시야 왕국으로 들어가는 천국의 문입니다.
*창28:10-12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지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어버지 집을 떠나 멀리 하란으로 가는 야곱에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야곱은 꿈에 열린 하늘의 문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고 자기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하면서 ‘이곳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습니다. 야곱의 인생에 처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행전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천국의 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이 그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을 정죄했던 사람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 들어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늘을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 역시 하늘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지만 주님이 누구신지, 그의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행전10:9-11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베드로도 욥바에 기거하며 기도할 때에 환상 중에 하늘이 열리며 보자기에 싸인 한 그릇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초청에 응하라는 주님의 계시였습니다.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가서 보니 천국의 문은 동서남북에 각각 셋이 있고 그 문들은 진주도 되어 있으며 그 문들은 도무지 닫히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문이 닫히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는 밤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문이 진주라 함은 천국의 아름다움을 상징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또 그 문이 사방으로 나 있는 것은 주께서 죄인들을 모두 부르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 문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흥사 무디 목사는 임종 시에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너무나 영광스러워서 “이것이 죽는 것이라면 속히 죽겠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2) 구원의 문 곧 신앙의 문입니다.
그 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행전14: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예수님은 하늘을 향하여 열려진 구원의 문입니다. 이 문은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입니다. 일찍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실이 구원의 문이 좁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선교의 사명 곧 전도의 문입니다.
이것은 형제 사랑의 문입니다.
*고전16: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고후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골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주께서 친히 전도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구원의 확신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2.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을 파수하였습니다.
*계3:8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에 적은 능력이라는 헬라어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 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재산의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다방면에서 사회적 부를 축적하여 당 시대의 어떤 부요한 도시 못지않게 부를 누리고 살았던 빌라델비아 시민이었던 교인들이 왜 이토록 사회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의 정절 때문이었습니다. 즉 교인들은 우상숭배와 비인간적 경제행위로 부를 획득하고 치부하는 세속적 삶에 참여하지 않고 오직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고집했기 때문에 결국 가난할 수밖에 없었고 그 가난은 그들을 하층민으로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했기에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며 세상의 명예나 재물이나 유혹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켰습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두아디라 교인들은 자신들이 속해있는 사회의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고 신앙의 정절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의 재물을 먹고 행음하기까지 이르게 됩니다. 나아가 신앙의 정조를 아예 버린 사데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이 땅의 것을 예수를 위하여 초개같이 버리고 참된 부와 안락을 위하여 지혜롭고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 인내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주님의 고난으로 이루어진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교인들은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진리를 결사적으로 파수하였던 것입니다.
3. 예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했습니다.
*계3:8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내 이름”은 “나의 그 이름”이란 뜻인데 유일무이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합니다.
*행전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빌라델비아 도시는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작은 아덴”이라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곳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소재지 중 가장 역사가 짧은 도시로 버가모 왕 아탈루스 2세가 자기 동생 유메네스에 대한 사랑으로 도시를 세우고 그 이름을 필라델포스 즉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당시 빌라델비아는 이교 황제숭배가 만연했으며 또 술의 신을 숭배하는 것이 도시민의 자랑이었습니다. 이유는 이 지역이 거대한 포도 재배의 집산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문화가 발달한 것과 동시에 이름 모를 수다한 신들을 섬기는 도시였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 “사단의 회”라고 정죄하고 있는 유대주의가 이방 세력과 합하여 교회에 박해를 가했던 것입니다.
*계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칭하는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따르지 않았으며 주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부르거나 높이지 아니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암미아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활하고부터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작은 무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하여 오직 구원, 오직 선교, 오직 예수, 오직 말씀 파수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권고하셨습니다.
*계3:10-11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시면서 인내하는 자에게 임할 상급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종말의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온 세상에 시험의 환난이 불어닥치면 그 때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도들 역시 마지막 고난을 당하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성도들도 동일한 환난을 당하지만 주님께서 그 환난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고난을 이기게 하시고 견디게 하셔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때로는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닥쳐오는 환난과 고난을 주께서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하여 그 깊고 넓고 아름다운 신앙의 승리를 쟁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십니다. 이 약속은 성도들의 영화로운 지위를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성도들 위에 기록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영원히 인을 쳐주시겠다는 것이고,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하늘의 시민권이 보장되었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광에 동참하게 해주신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앞에 천국을 향하여 열린 문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적은 교회요,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일지라도 말씀 파수의 정신과 신앙이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높이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가 있습니다. 선교와 전도에 불타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이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우리의 승리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도록 합시다. 주께서 우리 교회를 방문하실 때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것과 같은 큰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이 칭찬과 상급을 사모하며 오늘도 환난의 때를 이기고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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