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사야 54장
오늘 54장 말씀 “네 장막터를 넓혀라” 은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바벨론 포로70년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네 장막터를 넓히라고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돌아와서 터가 좁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한해 우리교회도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와서 이 자리에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잘 배우심으로 새로운 영혼들로 가득가득 담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영어 성경에 보면 “Sing, burst into song, shout for joy” 그랬습니다. 이 말은 노래를 부르되 적당히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burst into song, shout for joy! 노래를 터뜨리고, 기쁨에 겨워 외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는 감격으로 즐겁게 찬양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찬양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은 과거에 잉태치 못한 여인, 홀로 된 여인과 같았습니다. 죄 때문에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할 때 그들은 자식없는 여인, 과부와도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는 노래가 나오지 않습니다. 한숨소리만 나옵니다. 그러나 이제 포로생활이 끝났습니다. 새로운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이가 없고 열매도 없어서 기가 죽었는데, 이제는 누구보다 아이를 많이 낳게 됩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12명 13명을 낳습니다. 두 쌍둥이, 세 쌍둥이를 연달아 낳습니다. 이전에는 전도를 했어도 몇 년동안 열매가 없었는데 이제는 세 명, 네 명을 전도해서 데려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노래가 저절로 나옵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외쳐 노래할지어다”
사람들은 자기는 모르는데 자기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어둠의 영이 있습니다. 슬픔의 영이 있습니다. 절망과 패배감, 열등감, 죄로 인한 수치심, 두려움의 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과거에 얽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나의 문제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묻히실 때에 이미 나의 슬픔과 아픔, 죄와 수치를 다 끌어안고 땅속에 묻히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무자한 여인, 버림받은 자가 아닙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보석같이 귀한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로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뻐하며 노래하고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여 뜨겁게 찬양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발에 차꼬까지 차여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힘있게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큰 지진이 일어나더니 감옥 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려서 유유히 감옥을 걸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찬송의 능력입니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외쳐 노래할지어다” 찬송하고 노래하는 곳에 사단이 떠나갑니다. 아무리 사단 마귀가 우리를 두려움과 절망, 슬픔의 감옥에 가두고 죄의식의 차꼬로 채워도 우리가 찬송하고 기도하면 다 풀어집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외쳐 노래할지어다” 올 한해 어느 때보다 찬양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구원하셔서 당신의 아내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면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서 당신의 아내로 삼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노예를 아내로 맞이하다니!... 그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면 정숙한 하나님의 신부로 살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람이 났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멋있는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강대국들에게 한 눈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화가 나서 넘치는 분노로 그들을 치셨습니다. “강대국의 우상이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 그러면 그들과 함께 살아 봐라” 하나님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조강지처 이스라엘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구원하시고, 아내로 맞아 주십니다. 7,8절을 보면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죄 사함받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는데 틈만 나면 세상으로 눈이 다시 돌아가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참으로 밉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를 다시 받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스런 신부로 맞아 주십니다. 그리고 12절을 보시면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여기 나오는 홍보석, 청옥, 석류석등은 루비, 사파이어등으로 아주 비싼 보석들입니다. 하나님은 집 나간 아내를 맞이하면서 최고급 보석으로 신방을 꾸며 놓고 기다리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귀하게 여기십니다. 첫 결혼식에는 흔히 그렇게 귀한 보석을 선물하곤 합니다. 그러나 바람이 나 집나갔던 아내를 다시 맞이하면서 값진 보석을 선물하는 남편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귀하게 맞이하면서 최고급 보석으로 방을 꾸며놓고 맞이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사야 49:15에는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고 하였습니다. 젖먹이는 여인이 어린 자식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 비유에 보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받고 아버지의 유산까지 가지고 집을 나갔다가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그런 자식을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달려갑니다. 돼지 냄새나는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 뿐입니까?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고,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힙니다. 최신 나이키 신발을 신기고 손에는 가락지, 보석반지를 끼워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목소리를 크게 하여 찬양을 목청껏 불러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장막터’란 ‘삶의 영역’ 을 가리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은 ‘너의 삶의 영역을 확장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포로생활하느라 마음이 오그라져 있었습니다. 포로로 살았으니 확장할 궁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포로생활이 끝났습니다. 약속의 땅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이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3절을 보면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은 과거의 수치를 다 제하시고 황폐한 땅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하십니다. 과거의 우리 삶이 아무리 형편 없었을지라도 이제는 풍성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오그라진 가슴을 활짝 펴고 좁은 마음을 넓혀서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그리고 만민을 품고 섬기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라” 이 말씀은 ‘너의 관심과 사랑의 범위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세계적인 마인드, 우주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올 한해 우리가 믿음의 큰 그릇을 준비하기 원하십니다. 장막을 치되 겨우 자기 가족들만 들어가는 텐트를 치지 말고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 올 수 있는 큰 장막을 치기 원하십니다.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기 원하십니다. 줄을 짧게 하지 말고 길게 늘이기 원하십니다. 말씀의 말뚝을 견고히 박아서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의 스케일대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 외치며 전 세계를 품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전 세계에 수많은 감리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올 한해는 각 속회마다 장막터를 넓혀서 배가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길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좁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겨우 나와 내 가족만 들어가는 작은 장막에서 벗어나 많은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편하게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전도하면서 장막터를 넓혀가야 하겠습니다.
장막터를 넓히며 휘장을 널리 펴는 데는 수고와 아픔이 있습니다. 좀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창조 됩니다. 이사야 60:22절에는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이런 말씀을 깊이 영접하심으로 작은 교회의 장막터를 넓혀서 수많은 영혼들이 채워지는 교회를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우리 모두가 장막터를 넓히는 것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아직도 말씀을 몰라서 죽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생명의 장막터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떨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단의 불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10:1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음의 장막터를 넗혀서 한 사람, 한 영혼 들어올 수 있도록 이 장막터를 넓혀가야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나같은 자가 무엇을 하겠어! 또 그러다가 말겠지” 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5절을 보면 우리의 남편은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온 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잠시 우리를 연단하시지만 큰 긍휼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3절을 보면 우리 모든 자녀들로 말씀을 잘 받게 하셔서 잘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분쟁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불의가 사라지고 공의가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마침내 홍보석 청옥 석류석처럼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시되 목청껏 터져나오는 음성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절대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올한해 이 자리에 가득차도록 많은 영혼들로 채워져서 장막터를 넓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