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용의 혀를 본 적이 있나요?
(Who has seen the tongues of Dragons?)
이백의 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아는 조발백제성(早發
白帝城)이란 시가 있다. 혹은 조사(早辭)백제성이라고도
한다.
내용은 언젠가 이 란을 통해서 소개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쓴다.
조발백제채운간(早發白帝彩雲間) 오색 구름 영롱한 백제성을 이른 아침에 떠나서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 천리 강릉을 하룻만에 돌아오니
양안원성제부주(兩岸猿聲啼不住) 장강 양안의 원숭이 울음은 끊어지지 않고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 가벼운 내 배는 만개의 산을 지났구나
어제의 내 일정이 딱 그러했다. 강릉을 떠나서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경주를 거쳐 강릉까지 오는데 딱 2천리 오백리 (1000km)가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의 시를 내 입장에서 개작해 보았다.
조발강릉미명간(早發江陵未明間)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강릉을 벗어나
만리부산일일환(萬里釜山一日還) 만리 부산을 하룻만에 돌아오니
양변만홍연부절(兩邊萬紅連不絶) 길 양쪽은 끊기지 않는 꽃들
경차이과만중산(輕車已過萬重山) 가벼운 내차가 지나온 산이 萬개는 되리
내가 보행에 도움이 되고자 보조기를 착용한지 15년이 넘는데, 그걸 전담하는 집이 부산에 있다. 넘어진 김에 풀 뽑고, 활 쏘는 김에 코 닦는다고 부산 가는 김에 거기에 들러서 두어 시간을 보내고, 그 길로 간 곳이 상해만두!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집이라 거시서 두 가지 만두를 시켜서 연태고량주 한 병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빨간 고춧가루를 찌고 볶고 거기에 귤과 귤피와 가자미 어장(魚醬)까지 넣고 여러 과정을 거친 것을 만두 속으로 쓰는데 그 정성과 맛이 가히 놀라웠다.
지인의 결혼식이 오후 두시 반이라, 시간은 넉넉했다.
식장에서 십여명의 하객으로 온 친구들과 해후(邂逅)를 하고 소주만 몇 잔 마셨을 뿐으로, 음식은 이미 배가 불러 먹지 않았다.
피로연 자리를 빨리 파하고 간 곳이 경주의 홍은식당!
네시 반에 도착. 예약을 해놓았으니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이 식당은 백설갈비찜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집인데, 매년 벚꽃철이면 그 집을 찾는다.
하여, 그 집 주인도 잘 안다. 여기에 대하여 더 언급하면 욕을 먹을 수 있어서 자세한 것은 인터넷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왜 욕을 먹냐하면 그 전날이 바로 인제, 고성, 속초 그리고 강릉에서 큰 불이 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식도락이나 다녔다 하면 남의 염병이 제 고뿔 보다 못하냐는 항의를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속초 시장도 제 마누라 회갑 여행을 갔다하여 욕을 먹고 있는데, 산불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전에 떠난 여행이라 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원도에 살아온지가 40년이 넘는다만, 내 고향을 풍 기(豐基)라 이름한 것은 참 훌륭한 명명(命名)이다.
풍기에서는 내가 아는 한, 1959년도에 입은 태풍 사라호의 피해가 유일하다. 그것도 영주가 폐허가 되고, 안동 전체가 물에 잠긴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그 때 지금 택시 사업을 하는 운수라는 친구와 어디서 우리 마당으로 떠내려온 소죽통을 타고 논 기억 밖에는 없다. 아궁이에서도 물이 나오고 우물은 넘치고...
풍기는 풍요로운, 축복 받은 땅이란 뜻올 천재지변이 없는 곳이다. 소백산이 곁에 있어도 큰 산불은 없다.
그러나 사십여년 강원도에 살면서 내가 겪은 천재지변은 다 헤아리기 힘들다.
천재지변이란 천지재변(天地災變)을 일컫는 말이나, 용호쟁투를 용쟁호투라하고, 천지장구를 천장지구(天長地久)로 표현하는 한자어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다.
아무튼 밤새 고스톱을 치다가 오줌이 마려워 문을 열고 나오려 하니 1미터가 넘는 눈이 밤새 내려, 문열고 선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볼 수 밖에 없었던 일, 84년도 엔가에는 삼척 임원에 해일이 나서 방파제가 다 깨어지고 큰 멸치 떼를 맨손으로 무던히도 좁던 일, 루사 때는 오봉댐이 터지면 아파트 6층 까지는 물에 잠긴다하여 가슴 졸이던 일.
96년 삼척 산불 때, 나는 그 불줄기 한가운데에 있었다.
가족들은 죽변의 별장(? 낚시를 위해서 장만해둔 바닷가 언덕위의 아파트)에 있었고, 난 볼 일을 마치고 강릉에서
삼척 쪽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궁촌을 지나자 산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다.
작은 규모의 불이었다. 그리고 갈남, 용화, 장호를 지나는데 양쪽 산이 온통 불바다였다. 그리고 그 불은 임원까지 이어져서 사흘을 탔다. 불은 월천에 막혀서 경북쪽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불은 강풍을 타고 나무에서 나무로, 골짜기에서 산정으로, 다시 산정에서 산정(山頂)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난 그 불로 인한 연기에 앞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간신히 운전하여 월천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이런 불은 2000년에는 고성에서 나서 8일을 탔고, 낙산사를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사천산불, 양양산불, 옥계산불....
산불이 일어나지 않는 해는 손꼽을 정도였다.
재작년에는 서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서 솔 냄새가 나더니 삽시간에 연기가 강릉 시내를 온통 덮어버렸다.
강릉 산불!! 강릉 톨게이트 부근에서 발화한 불이 대관령 아랫동네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펜션을 짓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제일 먼저 피해를 입었다.
서고동저(西高東低)가 이 산불의 원인이다.
즉 대관령 서쪽에 고압대가 형성되고 동쪽에 저기압이 형성되면, 기압차를 메우기 위하여 기류가 동쪽으로 빠르게흐르는데, 태백산맥에 부딪친 공기는 팬 현상으로 가열되어서 백두대간을 넘어서는 덥고 빠른 바람이 된다.
초속 20~30m! 백 미터를 3~5초만에 돌파하는 바람이니 아무리 빨리 뛰어간들 이를 어찌 잡으랴!
이를 양양과 간성사이에 부는 바람이라하여 양간풍이라 하나, 이는 틀린 말이다. 강릉이 포함된 양강풍이 옳다.
이 양강풍이 불지 않는 해는 단 한번도 없다.
백두대간이 있는 한 이 바람은 백년이고 천년이고를 이어져왔다. 그리하여 낙산사는 몇 번인가를 탔고, 청간정이며
경포대도 불타고 짓기를 반복해왔다.
봄날 강릉 남산과 경포대의 벚꽃은 온전한 낙화를 모른다.
난 이번 불에도 가스전이나 주유소의 화재가 없었던 것에 안도하고, 헬기가 뜨지 못하는 한밤중에도 불의 확산이나 재발, 잔불정리에 힘쓴 수 많은 소방영웅에게 찬사와 감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자연재해가 주는 이차 피해에 대하여 나는 주목하고자한다.
산에 불이 나면 풀과 나무가 타는 것도 안타깝지만. 산흙도 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화재로 인한 잿더미는 비가 오면 잿물이 되어 강한 알칼리를 띄고 바닷속의 프랑크톤을 사멸시킨다. 푸나무가 없는 산은 빗물에 취약하여 작은 비에도 홍수가 난다.
루사가 휩쓸어 바다에 싣고 간 진흙 토사는 바닷 속 돌틈을 모조리 막아서 물고기의 산란장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산흙은 땅속에 그물망처럼 펼쳐져있던 버섯 이끼류의 균사체를 끊어버리고 포자를 태운다.
물기를 수용하지 못하는 그 흙은 딱딱한 도기(陶器) 껍데기가 되어 불모의 땅이 된다.
아, 이 안타까운 생명의 산화(散華)를 어찌 감당하려나.
오늘도 어드메선가 산불이 났단다.
30미터가 넘는 빠알간 혀를 낼름거리며 용이 승천을 한다.
그 불길은 용의 혀, 바로 용의 혀가 틀림이 없다.
아, 누가 용의 혀를 본 적이 있나요?
己亥年 불타는 淸明節 後
豊 江
첫댓글 풍강! 풍강다운 '제목'이다! 누가 용의 혀를 보았는가?로 고치면 더 좋을듯.... 멀리서 잡은 tv화면의 싯뻘건 불길에 소름이 끼치던데 가까이서 바라보며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과 공무원들, 주민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큰산불이 난 날짜가 작년과 올해가 일치하더군.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겁이난다. 다른곳의 산불은 대부분 인재였지만 강원도의 올해 큰산불은 천재인것 같아 무섭다. 그러니 풍강은 고향으로 돌아오라~~
풍강은 겁낼 사람도 아니지만 혹 옴겨볼 생각이 있다면 제천으로 왔으면 좋겠네 ~ ~